|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김장 울력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이고, 김장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에 모두 마당에 모였습니다. 어제보다 울력 시작 시간을 1시간 늦추었습니다. 먼저 아침 식사를 하고 에너지를 보충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마지막 남은 배추를 김치양념에 버무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자, 힘을 냅시다. 오늘 오전에 끝을 냅시다.”
어제 하루 종일 서서 김장을 하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곳곳에서 아픈 곳을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아침 기온이 떨어지자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렸습니다.
하지만 김치 공장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다시 힘을 내어 김장을 계속했습니다.
“배추 가져다주세요.”
“여기 배추 갑니다.”
“양념 가져다주세요.”
“여기 양념 갑니다.”
드디어 끝이 보였습니다. 배추는 이제 한 바구니만 남았습니다.
“다했다!”
김치양념도 밑바닥까지 모두 사용했습니다. 이제 작은 양푼이 한 개의 양만 남았습니다.
“배추 잎 떨어진 것들을 전부 한곳에 모아주세요. 남은 양념을 버무려서 먹을 수 있게 합시다.”
스님은 양푼이에 묻은 양념까지 꼼꼼히 긁어서 조금도 남겨두지 않고 남은 배추잎들과 비벼서 먹을 수 있게 포장을 했습니다.
드디어 김장을 다 마쳤습니다. 소금물에 절였지만 양념은 묻히지 않은 배추가 많이 남았습니다. 소금물에 절여서 남은 배추는 서울 공동체와 두북 공동체 몫으로 모두 포장해서 박스에 담아 보내기로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뒷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담는 일을 할게요. 여러분은 뒷정리를 해주세요.”
스님은 소금에 절인 배추를 포장해서 담고, 행자들은 역할을 나누어 뒷정리를 했습니다. 사용한 선반, 도마, 식칼, 바구니, 쟁반, 그릇, 고무통을 모두 물로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창고에 있던 물건들도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겼습니다.
설치한 팔레트와 대형 튜브를 철거하고, 마당은 물을 뿌린 후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었습니다. 김치 양념이 묻은 고무장갑, 앞치마, 장화도 깨끗하게 빨아서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서울 공동체와 두북 공동체에서 1년 동안 먹을 김치는 모두 박스에 담아서 일부는 저온 냉장고로 옮기고, 일부는 서울로 가져갈 수 있게 봉고차에 실었습니다.
청소가 마무리될 무렵 스님은 행자들 몇 명과 텃밭에 가서 무를 뽑았습니다.
“곧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니 텃밭에 남은 무를 다 뽑아야겠어요.”
손으로 잡아당기자 무가 땅에서 쏙 뽑혔습니다. 그 자리에서 칼로 무청을 잘라 따로 모았습니다.
잘라낸 무청은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에 걸었습니다.
지난 2박 3일 동안 모두가 협력하여 1300포기의 김장을 잘 마쳤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마당에 둘러앉아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며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김장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힘과 조화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장을 하며 도반들과 함께한 시간은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김장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곳에서 도반들과 함께하면서 다시 그 따뜻한 시간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김장은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마음을 나누는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서로 도우며 함께 웃고 일한 시간 자체가 큰 행복이었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손도 쑤셨지만, 여럿이 함께하니 재밌었어요. 날씨도 따뜻해서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하며 발견한 자신의 모습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배추가 얼마나 절여져야 하는지, 배추 밑둥을 얼마나 잘라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일을 할 때 섬세한 면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잘 하는 일은 분별도 많이 하고 고집도 많이 부리는데, 김장은 제가 잘 모르는 분야다 보니 제 고집없이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김장 양념이 옷에 묻는 것이 싫어서 마음속으로 거부감이 있었어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싫은 마음이 크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싫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계속 울력을 하다보니 지금은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이번 김장은 두북 수련원에서 고인돌 법당으로 갑자기 장소가 변경되었지만, 두북 수련원에서 농사팀 행자들이 철저하게 준비해준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대중이 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2박 3일동안 울력을 해야한다고 하니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일이 척척 진행됐어요. 두북팀에서 준비를 너무 잘해주셔서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가볍습니다."
"농사팀 덕분에 이번 김장이 가능했어요. 무름병과 진딧물을 이겨내고 훌륭한 배추를 길러주신 덕분에 우리가 김치를 담글 수 있었습니다. 배추 심기부터 수확, 김장까지 이어진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두북 수련원의 행자들은 사전 준비를 도와준 대중부 봉사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장소가 변경되는 바람에 지붕이랑 건물 빼고는 거의 모든 걸 다 옮겨왔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대중부 봉사자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다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김장은 배추를 중간에 뒤집지 않는 새로운 절임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뒤집지 않아서 좋았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배추가 덜 절여져서 결과적으로 여러번 배추를 절여야 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배추를 2등분만 해서 절였습니다. 2등분을 하니 절인 배추를 씻을 때 배춧잎이 덜 떨어져서 좋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2등분을 했기 때문에 배추가 덜 절여졌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모두의 소감을 들은 후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모두 수고많으셨습니다. 김장은 가능하면 공동체 내에서 진행하는 방향으로 원칙을 세우는 게 좋겠어요. 물론 일손이 정말 부족하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먹을 음식은 우리가 책임지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 선물용 김치는 대중부에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잖아요. 사회 활동을 하면서 고마운 분들에게 전하는 김치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우리의 일로 생각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했으면 합니다.”
스님은 내년을 위한 구체적인 개선 방안도 제안했습니다.
“첫째, 배추의 크기에 따라 절임 방식을 달리해야 합니다. 큰 배추와 작은 배추를 같은 방식으로 절이다 보니, 큰 배추는 덜 절여지고 작은 배추는 너무 절여지는 문제가 생겼어요. 크기별로 배추를 나누어 작업하면 훨씬 효율적이고 절임 상태도 고르게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작업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특히 작업대의 높이가 체형에 맞지 않아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작업대를 키에 맞게 조정하거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한다면 하루 종일 작업하더라도 몸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 양념 준비 과정을 매뉴얼화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양념을 도맡아 온 분이 이제 팔십이 넘었잖아요. 시장에서 어떤 재료를 사야 하고,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 양념을 어떻게 섞어야 하는지 등 다음 세대가 배워서 이어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외에도 오늘 나누기에서 나온 여러 제안을 반영해서 내년에는 이번보다 더 잘해 봅시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장을 마친 후 대중들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밝은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몇 가지 일이 아직 남긴 했지만 김장을 마쳤기 때문에 1년 농사를 거의 다 마무리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들은 김장한 김치를 가득 싣고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스님은 실내에서 업무를 보고 원고를 교정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3일 제주도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능을 친 재수생입니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죠?
“저는 지난주 목요일에 있었던 수능을 치른 재수생입니다. 저는 짧지만 20년 인생을 돌아보면 꽤 잘나갔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수상도 많이 하고, 전교 1등도 해보았으며, 중학교 때는 전교 부회장을, 고등학교 때는 전교 학생회장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제가 원하던 대학교에 떨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인생에 처음으로 큰 실패를 겪었고,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매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때마다 항상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처럼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올해 수능 성적은 잘 나왔어요?”
“네. 작년보다는 잘 본 것 같습니다.”
“성적이 잘 나왔으니까 작년보다 더 점수가 높아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지망하고 싶겠네요?”
“네.”
“그러다가 또 떨어지면 이제 삼수를 하게 되겠네요. (웃음) 원래 등수라는 건 없어요. 등수는 상대적인 겁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앞서서 가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가면, 앞에 가는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을 보고 ‘뭐 하니? 빨리 좀 오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앞사람은 뒷사람이 늦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뒷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뭐 하러 빨리 가느냐고 할 것 같습니다.”
“뒷사람은 ‘뭘 그리 서두르나?’ 이러겠죠. 저도 오늘 숙소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5시 50분으로 정하고, 그 시간에 차를 타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50분이 돼도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않고 빵빵하고 경적을 울렸죠. 그때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50분에 가기로 했으면 50분에 나오지, 왜 미적거리는 거야?’ 이런 생각에 빵빵거렸겠죠. 그럼 안에 있던 사람은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스님은 참 성질 급하다. 좀 기다리면 되지, 뭘 그렇게 빵빵대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했겠죠. 이처럼 사람은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사물을 봅니다. 그것은 우리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 때는 가능하면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만약 내가 100% 잘못했어도, 아예 시치미를 뚝 떼고 있든지, 아니면 10%쯤 잘못했다고만 말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 잘한 일은 어떨까요? 10%쯤 해놓고 100%쯤 했다고 알리고 싶어 합니다. 사람의 심리가 다 그렇습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너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다 그렇습니다.
또한 내가 피해를 입은 일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언제 나를 야단쳤는지를 다 기억하고 있죠. 그런데 엄마에게 물어보면 그런 일은 기억도 못 합니다. 설령 기억을 했다 하더라도 ‘다 너를 위해서 한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바람을 핀 남편은 겉으로는 ‘여보,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줘’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바람을 필 수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이유를 찾으면서 합리화를 합니다. 겉으로는 죄송하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나는 이럴 수밖에 없었어. 내가 뭐 잘못했는데? 당신이 잔소리를 안하고 애교를 부리는 성격이었으면 내가 바람을 피웠겠어?’ 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하지만 말로 그걸 밖으로 꺼냈다가는 상대방이 난리를 치고 화를 낼 것이 뻔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나쁘기 때문도 아니고, 잘못한 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핸드폰에 특정 어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듯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변명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한다’, ‘예쁘다’ 이런 칭찬을 받고 자라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장 공부를 잘하고, 예쁜 줄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인 환경에 들어가게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까지는 항상 1등을 했을지 몰라도,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이는 대학 시험이나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는 자신이 예전처럼 잘한다는 말을 듣기가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열등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공부를 중간 정도만 해도 열등감을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와 같은 곳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열등감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형을 누가 더 많이 할 것 같나요? 우리 같이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이 할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이 성형을 더 많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저 사람은 이미 예쁜데, 왜 성형을 하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더 예뻐지기 위해서 성형을 합니다. 왜냐하면 배우나 모델 같은 사람들과 자신의 얼굴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눈이 조금 작다고 느껴서 눈 수술을 하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코가 조금 아쉽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또 코를 수술합니다. 코를 수술하고 나면 이번에는 턱이 조금 튀어나와 보인다고 생각해서 턱을 깎아야겠다고 결심하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성형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예쁘다’, ‘공부 잘한다’ 하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이 오히려 인생에서 불행을 느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특히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그렇습니다. 어릴 때 아이돌 가수로 성공해서 유명해질수록 크면 더 불행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명세를 얻은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에 묶여 평생을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도 지금 그런 위험에 처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좋은 대학에 가고, 거기서 또 성공을 거듭한다고 해도, 결국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좌절을 경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대학 시험에서 떨어진 일은 잘된 일일까요, 잘못된 일일까요?”
“잘 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런 좌절을 인생 후반에서 경험하게 될수록 개인이 느끼는 불행의 크기가 더 커집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느끼는 좌절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좌절을 맞본 경험 덕분에 ‘내가 남의 시선만 의식하면서 환상에 젖어 살았구나!’,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남의 평가와 시선에만 의존하며 살아왔구나!’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시험에 떨어져서 실패했다고만 볼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만약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만 하나님의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잘 나갈 때는 자만에 빠져서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경험을 나를 제대로 아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번 수능을 잘 봤다고 했으니 더 높은 학교를 목표로 하면 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실패를 ‘좌절’로 느끼기보다는 ‘괜찮다. 이 학교에 다시 도전하겠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밀어붙여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굳이 재수를 한 번 더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면 목표를 약간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잘 잡는 것입니다. 안전한 지망을 중시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전공을 포기해서도 안 되며, 더 좋은 학교를 가고 싶다는 선호만을 고집하다가 안전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대학에 한 번 떨어져 봄으로써 이런 인생의 경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반드시 성공이라는 이름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실패라는 이름으로, 또는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복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재앙을 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순간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외도를 하게 되면 처음에는 분하고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아왔구나. 남편의 허전한 마음을 내가 충분히 살피지 못했구나’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경험이 큰 복이 됩니다. 반면에 원망과 분노에만 휩싸여 있다면, 제2, 제3의 재앙을 스스로 불러오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실패를 통해 새로운 것을 깨닫고 자각해 나갈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실패했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관점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험에 한 번 떨어진 게 지금은 큰일처럼 느껴지겠지만, 30년 후에는 재수한 게 큰일일까요? 아무 일도 아닐 겁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재수, 삼수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큰일처럼 느껴졌어도 30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잠 못 자고 큰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고 10년, 20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그것도 별일이 아니게 됩니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을 별일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별일 아닌 것으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겁니다. 그 선택은 결국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부터는 2박 3일 동안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주관하여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으로 대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경주, 남원, 서울을 이동하며 순례하고 대화마당을 가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