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첫 토요일 성모 신심) 신뢰와 순종의 유전자
마리아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이 믿음은 성모님이 여신이거나 예수님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구세주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이라는 우리의 신앙 고백이다. 하늘에서 어른 예수님으로 강림한 게 아니라 성모님 태 안에서 열 달 동안 자라나 아기로 탄생하셨고 성모님 젖을 먹고 성장하셨다. 예수님도 우리 모두처럼 배꼽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분은 요셉 성인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잉태된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래서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날 한 남자의 욕망으로 한 여인의 몸 안에서 만들어졌다.(요한 1,13) 나의 삶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삶이 드러난다. 내 안에는 좋은 것 나쁜 것 둘 다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 이제는 알겠다. 두 분도 이런저런 육체적, 정신적 약점과 한계로 힘들었다. 특히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정신적, 심리적 고통과 어려움으로 두 분도 힘들었을 거다. 노력하지만 잘 극복되지 않고, 별로 나아지는 거 같지도 않다.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인정할 때가 된 거 같다. 나는 본래 그런 사람이다. 그런 한계와 약점을 지닌 존재다. 매일 같은 곳에 넘어지는 걸 보니 아마도 그걸 넘어설 수 없는 거 같다. 바오로 사도도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사도는 거기서 하느님의 은총을 알게 됐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7-10)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우리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산다.
예수님의 긴 족보를 보면 그 안에는 훌륭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안에는 비정상적, 비윤리적으로 아들을 낳은 이들도 있고, 이방인도 있다. 그 족보는 그분이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고, 동시에 모든 이들의 구세주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셉 성인의 아들이 아니고 마리아의 아들도 아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느님의 아들이다. 두 사람이 지닌 욕망의 흔적과 약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와 다르게 그분은 참 사람, 참 하느님이시다. 같은 약점을 지닌 사람끼리는 서로 쉽게 공감하며 위로한다. 하지만,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할 수 없다. 그러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루카 6,39) 우리가 사람이셨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기도하고 그분을 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성모님과 요셉 성인에게 사는 법을 배우셨다. 두 분의 공통점을 말하라면 그것은 신뢰와 순종이다. 요셉 성인은 천사가 전한 말에 말없이 그 즉시 순종했다. 자신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않고,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한 결정’(마태 1,19), 율법을 거스르는 그 결정을 완전히 바꿔 혼전 임신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성모님은 고민도 하지 않고, 종이 주인의 명령을 받아들이듯이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우리에게 바로 이 유전자가 필요하다. 선하신 하느님을 무한히 신뢰하며 그분 뜻에 순종함이다. 나의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약점과 한계는, 말 그대로 한계니까 그대로 짊어지고 살아야지 어쩌겠나. 거기에 하느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끊임없이 청해야겠다.
예수님, 주님은 저희와 같으면서도 다르십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믿고 무조건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저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십니다.(히브 4,15) 오히려 저희 모든 죄를 짊어져 없애시는 참된 구세주이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 손을 맞잡으셨으니 그분의 은총을 저에게 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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