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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축구의힘!K-league(k리그) 원문보기 글쓴이: 꽃미남
경력 |
경력기간 | 경력내역 | |||||
1995 | ~ | 2002 | 전남드래곤즈 선수 | |||
1995 | ~ | 1995 | 코리아컵 국가대표 | |||
1996 | ~ | 1996 | 아시안컵 국가대표 | |||
2003 | ~ | 대구FC 선수 | ||||
수상내역 |
수상연도 | 수상내역 | ||
1995 | 프로축구 득점왕 | ||
1995 | 프로축구 신인상 | ||
1995 | 프로축구 베스트11 | ||
1995 | 프로축구 올스타전 MVP | ||
1997 | FA컵 득점왕 | ||
1998 | 올해의 키카골 수상 | ||
1998 | 올해의 키카골 선정 | ||
1999 | 아시아위너스컵 MVP | ||
1999 | 아시안위너스컵 MVP | ||
* 필자가 본 노상래 선수
노상래 선수는 초등학교때 축구유니폼을 처음 입었다.
숭실대를 졸업하고 프로가 아닌 실업팀인 주택은행에서 뛰었다.
거기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95년에 전남에 입단하게 된다.
쉽게 말해 '중고신인' 이다.
프로입문 첫해에 득점왕과 신인상을 싹쓸이 하였고 인기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그의 캐논중거리슛은 팬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리그에서 좋은모습을 보인 노상래는선수는
그해에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그리고 전남에서 역시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하지만 약 5년후 좌절의 시간이 왔다.
2000년대 초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고 결국엔 2002년 월드컵의 해에
그에게 전남에서 방출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외진출도 무산 되었다.
하지만 대구FC 박종환 감독님의 부름을 받고 지독한 훈련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프로통산 다섯번째 50-50 클럽도 달성하였다.
전남의 영웅에서 대구의 영웅으로 탈바꿈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이제 그라운드에 없다.
이제 그의 캐논슛팅도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볼수 있다.
얼마전 김희태 축구센터에 코치로 확정되었다.
이제 그는 제2의 노상래. 아니 노상래 보다 나은 선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것이다.
그의 캐논슈팅에 국민과 전남, 대구 팬들이 흥분하고 고마워 했다.
이제는 그런 추억을 만들어준 노상래선수에게 우리가 고마워 해야할 차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첫댓글 국대와는 별로 인연이 없었지만 K리그에서는 레전드급의 기록을 남긴 선수죠. 비공식적으로 시속 150km/h의 슈팅을 기록했다는 말도...
억수같이 비내리던 은퇴경기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