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사는 신라 선덕여왕 7년(서기638)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안심사 사적기에 기록되어있다.
안심사 창건설화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삼칠일을 기도하던 중 부처님이 나타나
‘열반성지 안심입명처’로 가라는 말을 듣고 이곳에서 정진 중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절 이름을 안심사라 했다고 전한다. 실제 안심사 절 앞마당에서 바라본 앞산 능선의 모습은 영락없는
부처님의 열반상과 닮아있다. 그 뒤 헌강왕 7년(서기875)에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고,
신라 말기 조구(祖球)화상에 의해 재중창 되었다.
그 후 고려를 거쳐 조선조 선조34년(서기 1601) 수천화상이 네 번째 중창을 했으며,
숙종 39년(서기1710) 신열선백에 의해 다섯 번째 중창을 했다고 전한다.
안심사는 조선시대까지 간경도감이 설치됐던 사찰로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무려 30여 채의 전각과 13개의 암자가 있었던 거대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원각경〉<법화경〉〈한글언해본〉을 비롯해 수많은 경판이 보관돼 있던 판전을 비롯한
전각 일부가 소실됐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군 8사단 88연대 3대대가
작전상의 이유로 ‘징발중 소각’ 처리했다. 소각 이전까지 대웅보전 2층에 남은 경판본과
추가 제작된 경판이 보관돼 있다가 이마저도 대웅보전과 함께 소각됐다.
대웅보전은 현 주지 일연 스님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후 소각된 지 65년만인
2015년 9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10년만의 불사 끝에 복원했다.
현재 복원된 대웅보전에는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 여래의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안심사 동종을 만져보고......
안심사 금강계단
첫댓글 관세음보살 찬탄합니다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당신은 부처님 대박 으샤으샤
감사합니다참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