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꽃을 피운 농장
이월 첫째 토요일이다. 어제가 입춘으로 막바지 추위 기세가 맹렬하다. “입춘에 오줌독 깨진다.”와 “입춘에 장독 깨진다.”라는 속담에 들어맞은 절기였다. 예전에 인분은 농사의 소중한 거름으로 쓰였다. 재래식 화장실 분뇨는 물론 소변도 받아 보리밭이나 채소밭에 뿌렸던 시절이 있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길섶의 개똥도 주워 두엄더미에서 삭혀 농작물을 가꾸는데 거름으로 사용했다.
진흙으로 빚어 잿물을 바르지 않고 구운 그릇이 질그릇이다. 질그릇에 잿물을 발라 다시 구우면 오지그릇이다. 오줌을 받아두는 항아리는 질그릇이고 장을 담그는 항아리는 대부분 오지그릇이다. 오줌은 염분을 함유하고 간장이나 된장을 담은 독도 짠 성분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다. 바닷물이 담수보다 결빙점이 낮듯 오줌독이나 장독도 그럴 텐데 얼음이 얼 정도면 춥다는 뜻이다.
입춘에 이어지는 주말까지 며칠 동안 우리나라 전역은 영하권에 머문단다. 호남과 제주는 강설도 예보되고 바람이 차갑기만 하다. 날씨야 추워도 상관없다만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바깥나들이를 하지 못해 갑갑하다. 설을 쇠고 나니 코로나 감염지수가 전문가들 예측과 마찬가지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나 대중교통 이용은 여전히 머뭇거려진다.
코로나 확산 기세가 누그러지길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집에서부터 걸어서 산책을 나섰다. 사실 시내버스를 마음 놓고 탈 수 있다면 가려던 곳을 대체했다. 당초 가보고 싶던 곳은 마산합포구 현동 묘촌마을이었다. 거기 가면 창원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화초 양묘장이 있다. 가을에 마산에서 열리는 국화를 가꾸는 농장이며 사계절 꽃모종을 키워 공원으로 옮겨 심는다.
마산합포구 현동 묘촌 양묘장과 같은 시설이 창원 도심에도 있는데 팔룡동 파티마병원 곁 창원농업기술센터 구내 농장이다. 나는 봄이 오는 길목에 특용작물을 가꾸듯 겨울에도 꽃을 키우는 비닐하우스를 찾아간 적이 더러 있다. 토요일 이른 점심을 먹고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섰다. 예상대로 바깥 공기는 차갑게 느껴져도 대기는 미세먼지가 없어 쾌청한 날이었다.
창원천 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냇바닥에는 계절을 잊은 철새들이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중대백로와 쇠백로들이 얼음이 얼지 않는 웅덩이에 서서 먹잇감을 겨냥했다. 녀석들은 가을에 남녘으로 내려가야 할 여름철새로 먼 비행을 단념하고 우리 지역에서 겨울을 나는 텃새로 바뀌었다. 북녘에서 날아온 덩치가 작은 쇠오리도 흰뺨검둥오리들과 함께 냇바닥에 주둥이를 밀고 다녔다.
창원천 3교와 유목교를 거쳐 시티세븐에 이르러 창원천을 건너기 위해 산책로를 벗어났다. 내가 목표한 건너편 농업기술센터로 향했더니 들머리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농업과 무관한 한국전자기술원 표준제조혁신센터였다. 전에는 그 자리도 원예용 화초를 가꾸던 경작지였다. 농업기술센터 청사 곁에 아직 남겨둔 대형 비닐하우스에는 봄꽃을 가득 키웠다.
비닐하우스 바깥 파릇한 팬지 잎맥은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워 있었다. 이미 시청 앞이나 창원대로 입구 교통섬 꽃밭에 옮겨 심어둔 팬지도 봤다. 날씨가 풀리면 관공서나 도심 공원에 심겨져 눈을 즐겁게 해줄 꽃이었다. 넓은 비닐하우스 안에도 팬지와 양배추를 비롯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꽃들이 싱그럽게 자랐다. 이웃한 비닐하우스는 문이 빠끔 열러 있어 들어가 봤다.
옆 동과 다른 처음 보는 꽃들도 있어 폰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 농장에서 일하는 아낙 셋이 휴식을 마치고 들어왔다. 허락 없이 들어왔음을 양해 구했더니 윗분이 알면 난처하다고 해 서둘러 나오면서 예쁘게 핀 꽃이 뭐냐고 여쭈니 산파첸스라고 했다. 급히 나오면서 쑥갓처럼 자라는 꽃은 이름을 물어보질 못했다. 청사를 빠져나와 봉곡동 주택 담장을 지나다가 매화와 영춘화를 봤다. 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