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예수께서 인류 역사상에 실존하셨다는 근거는?
비신자들이 종종 예수가 역사상 실존 인물인지에 관해 질문해 옵니다. 예수께서 실제로 존재하신 분임은 틀림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근거가 있는지요. 자세히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끄는 말
우리 인류 역사 안에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는지에 대한 물음이나 이 점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는 실상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예수께서 당신 스스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참으로 인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신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고 본다. 이 글에서는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역사적으로 실존하셨음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를 크게 두 가지 테두리 안에서 살펴보겠다.
우선 그리스도교 밖의 문헌을 중심으로, 다음으로 그리스도교 문헌, 즉 신약 성경 안에 나타난 예수에 관한 역사적 근거를 종합해 보고자 한다.
‘예수’란 이름의 어원
그리스어 예수스(Ιησουs)는 히브리말 여수아[jesua : 바빌론 유배 이전엔 여호수아(jehosua)로 불렀으며 야훼께서 구원이시다란 뜻에서 유래한다.]를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며, 이스라엘인들이 매우 즐겨 부르던 이름이다.(구약 성경 1마카 2,55; 2역대 31,15; 에즈 2,6. 3,9; 느헤 8,7; 집회 49,12; 즈가 3,1; 신약 성경 사도 7,45; 히브 4,8; 루카 3,29; 콜로 4,11; 마태 1,21 등에 나타난다.)
마태오 복음 1장 21절에서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요셉에게 명한다 :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여기서 “예수”란 이름이 히브리어 “구원하다, 돕다”라는 동사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 외의 문헌에서 찾아본 예수
그리스도교 문헌 밖에서 예수에 관한 언급을 찾아보기는 실상 매우 힘들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리스나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다른 어떤 문필가도 팔레스티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은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그들은 사실 유다인들을 그저 하찮게 여겼을 뿐이다. 기원후 초세기의 유다인 문필가들 또한 아직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어린 그리스도교와 그 설립자(?)를 의도적으로 간과한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전승되어 오는 일련의 증거들(예를 들면 사복음서들과 신약 성경 그리고 그 밖의 디다케 등 초세기의 예수에 관한 그외 문헌들)이 바로 예수의 역사적 실존 문제가 초세기부터 그리스도인 공동체 밖에서도 곧 그를 알았던 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의문시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는 근거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스도교 밖의 문헌 증 예수에 대하여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는 라틴어 문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타치투스(Tacitus)는 그리스도인들을 네로 황제가 어떻게 박해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며 또한 플리니우스(Plinius)는 비티니엔(Bithynien)의 사절로서(기원후 l1l~113년) 트라얀(Trajan) 황제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 “그들은 어떤 특정한 날 해뜨기 전에 한데 모여 한 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행위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는 찬미가들을 부른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저녁 나절에 또 한 번 한데 모여 순수하게 음식을 서로 나눕니다”(Epist. lib. 10. 96) 위의 두 가지 라틴어 문헌 외에 예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유다계 문헌으로는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이 예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밖의 문헌 중 가장 상세한 자료로 뽑힌다. 그는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비록 세례자 요한이 선한 사람이었으며 친구들에 대하여 의롭게 대하고 하느님께 성실히 살도록 유다인들을 올바른 삶으로 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세례를 받도록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게 했던 것이다”(Ant 18,5,2).
예수에 대해서도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에서 매우 상세히 전해 주고 있다 : “그 당시에(곧 빌라도 지배 하에) - 우리가 감히 그렇게 부를 수 있다고 치면 - 한 현자 예수가 등장하였다. 즉 그는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행적들을 이루었고 기쁨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수많은 유다인들과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게 했다. 비록 빌라도가 우리 백성의 최고 지도자들의 압력에 의하여 십자가 형에 처하도록 심판했을지라도 이미 그(예수)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그를 충실히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언자들이 그의 운명과 그에 대한 수천 가지 다른 기적적인 사실들을 예언한 바와 같이 삼일째 되는 날 다시 살아나 (사람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스스로를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그리스도의 백성이 존속하고 있다”(Ant l8,3,33).
또한 라삐 문헌도 예수와 초대 그리스도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런 라삐 문헌들이 기원후 초세기의 라삐들의 제반 해설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때 여기서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도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사실로 확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도교 문헌에 나타난 예수
예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문헌으로 바오로 서간(서기 50년 이후)을 꼽는다. 사도 바오로 자신은 예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오로 사도는 특히 다음의 서간에서 예수에 관하여 직접 언급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에 대하여 : “그분(예수)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로마 1,3). “그러나 때가 왔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갈라 4,4).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분 :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실 때에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후손들에게’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한 사람이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갈라 3,16).
예수의 거룩한 삶에 대하여 :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 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2코린 5,21)
비록 사도 바오로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생각되지만 그는 자신이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사도 9장) 예수에 관하여 전해 받은 갖가지 사건들을, 즉 예수에 관해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음이 다음 장면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성체성사 설정에 관하여 :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1코린 11,23-25).
예수의 죽음과 묻히심 그리고 부활과 발현에 대하여 :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1코린 15,3-5).
사도 바오로는 또한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 구원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 “이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필립 2,6-11 참조).
마태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카 복음, 그리고 요한 복음 등 사복음서들은 예수의 제자들의 증언과 초대 교회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들 복음서들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들이 밝혀져 드러난다 : 복음서들은 결코 예수의 생애를 저술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이 예수의 전기식으로 이해되거나 그렇게 읽혀져서도 안되겠다. 또한 그러기에 복음서들 안에 묘사된 예수의 행적이나 말씀들을 연대순으로 확정지으려 해서도 옳지 못하다고 본다.
위에서 살펴본 점들로 미루어보아 예수에 관하여 가장 확실히 전해 주는 문헌은 신약 성경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신약 성경 저자들이 - 복음 기자들을 포함하여 - 예수의 생애를 상세히 기록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그의 삶을 연대 순으로 묘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 많은 이들이 그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데 열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특히 요한 복음에서 두드러진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수없이 행하셨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0-31).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시도와 나아가 예수의 존재를 신화적인 영역 안에서만 이해하려는 시도는 학문적으로도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오늘날 그런 시도를 하는 이도 없을 것같다.
맺는말
우리는 예수가 우리 인류 역사 안에 실제로 존재했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매우 짧게나마 간추려 보았다. 이러한 간추림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에 관하여 가장 상세히 그리고 깊은 관심을 갖고 전해 주는 문헌은 바로 신약 성경 자체임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네 복음서들과 바오로 서간을 통하여 우리는 그 저자들이 이 지구상에, 보다 정확히 말해 이스라엘에 다윗 후손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강생 / 육화 Incarnatio 교리)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선포하여 회개를 통한 구원을 부르짖다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가 바로 구약에서 예언된 구원자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고백하고 있음을 본다. 신약 성경에 따르면, 한마디로 “예수”가 곧 “그리스도”이시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의 두 가지 존재 양식을 로마 1장 3-4에서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 “그분은(하느님의 아들) 인성으로 말하면(κατα σαρκα)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κατα πνευμα)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l베드 3,18 참조).
인성(人性) :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실존 양식, 다윗 = 인간의 후손 - 역사 내적인 실존 양식의 범주에 속한다.
신성(神性) : 부활하여 현양된 상태 - 천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영역에 속하다.
이들 두 존재 양식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예수 부활 이전이나 이후에도 같은 그리스도가 문제의 핵심이 된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가 “예수” 안에서 “피조물”이 되심을 통해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곧 피조물을 구원하신다(필립 2장 참조).
[경향잡지, 1990년 10월호, 신교선 가브리엘(인천 계산동본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