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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중학교 17회 동문회
 
 
 
카페 게시글
잘 지내냐 친구야 스크랩 곁에 있을 때
이 재 열 추천 0 조회 72 12.06.30 16:1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 내일은 일요일,

  나름대로 계획들이 있겠지만 일단은, 장마 비가 시작 됐고.....

  따분하게 집에 있을 친구들에게 이 글을 퍼다 올립니다.

  가족들과 같이 읽으시고,

  마누라님께 충성하는 기회로 삼으시길.....

               (출처 : 2012.6.30.국제신문)

 

   

"지금 수리하러 온다니까 무조건 대기하고 있으셈! "

뒷산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가 울었다.

몹쓸 여편네 같으니, 아직 화가 덜 풀렸나 ?.

가정을 내팽개치고 엉덩이를 뺀 주제에 감히 남편한테 문자지령까지 내리다니.

기분이 엉켰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날씨가 날씨인 만큼 두어 시간 걸었더니 온통 땀범벅이라는 거였다.

샤워꼭지 밑으로 쪼르르 달려가고 싶은데 하필 지금 온다니 젖은 채로 기다릴 수밖에.

멀쩡하던 욕실에서 누수가 발생한 건 며칠 전이었다.

처음엔 바닥의 물기가 덜 말라서 그러려니 했었다.

알고 보니 벽과 세면기를 연결하는 파이프에서 물이 새고 있었던 것이다.

관리실에 수리를 부탁했다.

한데 직원이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주민 편의를 위해 아파트 관리실에서 서비스 차원에서 해주는 일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조만간 오겠지 한 수리공은 오지 않았다.

무턱대고 벽시계 눈치만 보고 앉아 있자니 땀까지 말라붙으면서 온몸이 가려워오기 시작했다.

첵첵첵, 첵첵첵. 초바늘은 부지런히 달음박질을 쳤다. 십 분 경과. 뭐 이 정도야 늦을 수 있겠지,

바쁜 양반들이니까. 첵첵첵, 첵첵첵. 이십 분 경과. 에이, 이렇게 늦을 거면 진즉부터 늦는다고 하든지 그랬더라면 샤워라도 했을 걸.

첵첵첵, 첵첵첵. 삼십 분 경과. 첵첵첵, 첵첵첵. 사십 분 경과. 이거 혹시 아내가 잘못 안 거 아냐?

휴대전화의 문자를 다시 확인하는 그 순간에도 바늘은 멈추지 않고 첵첵첵, 첵첵첵.

급기야 온몸은 부들부들, 머릿속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난 건 그때였다.

딱딱한 얼굴로 문을 열었더니 웬 장대같이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대체 식사량이 얼마인지 몸에는 비상살점까지 달았으며 면도도 걸렀는지 얼굴에는 수염이 수북했다.

뭐랄까. 오십 년 전에 태어났으면 영판 산적이라 불러야 할 정도?

"하이고, 많이 기다리셨죠? 늦어서 죄송합니다."

산적의 목소리는 제 덩치에 걸맞지 않게 부드러웠다.

그 바람에 나는 "아, 네." 하며 눈과 코와 입을 급히 재정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적은 욕실로 향했다. 그러더니 메고 온 공구가방을 풀었다.

산적은 금정산만큼 쌓인 내 짜증을 알아채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불쑥 꺼냈다.

"오늘따라 이상하네요, 주말인데 집집마다 혼자 있네요?"

산적의 흰소리에 나는 하마터면 "자식은 공부 때문에 집을 잠시 떠났고 아내는 제 맘대로 외출을 자행했네요," 하고 말할 뻔했다.

"어휴, 좀 전에 싱크대 배수구 수리한 집도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시지 뭡니까? 근데 얼마나 외로우신지 사람을 붙잡고 놔줘야 말이죠."

그래서 늦었다는 건가 ? 그걸로 내 짜증의 부피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

산적은 다시 제 말만 이어갔다.

"과일접시를 핑계로 주저앉히기에 처음에는 마지못해 앉아서 고개박자만 맞춰 줬죠.

 근데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일어날 수가 없더군요. 자꾸 아내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내 귀가 솔깃했다. 아내라는 말 탓인가.

아무튼 나는 "아내가 왜요? "하고 묻고 말았다.

산적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한동안 말문을 닫고 있었다.

"사실 제 아내가 늘 누워 지내는 처지거든요.

앓아누워 있는 것만 보면 집구석이 지옥 같아 술을 안 먹을 수 없었죠. 근데 할머니 얘기를 듣고 나니까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아파도 곁에 있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번 참에 술을 끊을까 하고요."

그 말을 끝으로 산적은 일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등을 굽힌 채 수리작업을 몰두하는 산적을 보면서 나는 아내 생각을 했다.

어제도 다림질해놓지 않은 와이셔츠를 빌미로 티격태격했었던가.

언제부터인가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싸움을 거는 것처럼 언성을 높이는 나.

그런 말다툼마저도 아내가 곁에 없다면 받아줄 수 없는 일이잖은가 ?

 

나는 남자를 뒤로 한 채 조용히 거실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소파 위에 던져둔 휴대전화를 거머쥐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문자를 찍기 시작했다.

"집안일은 잊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다가 들어오셈!"
                     (국제신문 아침 숲길)      글 쓴 이 : 소설가 이 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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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6.30 20:08

    첫댓글 사랑한다 말함을 아끼지 말것을 당부 ,이제 부터 라도 사랑과 감사를 생활화 하면 복 있을진저..
    옛것은 변하고 새 세상 이루자, 특히나 마눌님께는 ,,,,,,,회개하는 심뽀 ㅎㅎㅎ

  • 12.06.30 21:22

    니 쪼대로 놀고 오이소.....

  • 12.07.01 04:59

    아내 없는것도 그렇지만, 남편없는 아줌씨는 더 하다는데...마눌님들께서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 12.07.02 15:32

    그러게. 남편 먼저 가신 여자동기들이 헤맨 모습들을 보니...

  • 12.07.01 09:29

    마 잊어버릴만 하면 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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