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9~13 / 포도원 주인의 권위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
(눅 20: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눅 20: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눅 20: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눅 20: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눅 20: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한마디로 말하면 모퉁이의 머릿돌 권위입니다. 머릿돌 예수님은 두 가지로 말하면 어머니의 권위와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셨습니다. 어머니처럼 십자가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이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여 아버지와 같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셨습니다. 아버지로서 구원을 하시고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세 가지 권위를 알고 모두가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9~10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무슨 권위로 말씀을 가르치는지 포도원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농부들에게 소출을 얻으면 주인을 공경하는 표시로 십일조만 세로 바치고 모두 자신들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농부들에게 세만 바지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주인은 아주 부유해서 사실은 그렇게 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금을 바치는 가운데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인과 소작인으로 좋은 관계성을 갖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세금을 바치면 그 세금을 소작인들에게 더 많이 돌려주고자 하였습니다.
포도원의 포도 열매를 거둘 때쯤 주인은 세금을 받고자 종을 보내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농부들은 종교 지도자와 유대인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들을 온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계 만민에게 아름다운 지구를 주시고 해와 달과 물과 공기를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다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표시로 예배를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기뻐하사 더 큰 복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10~12 농부들은 포도원에서 열심히 농사지어서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맺혔습니다.
주인은 때가 되자 종을 보내서 삯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인으로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농부들의 입장에서 피해의식이 들었습니다.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일한 것은 우리인데 아무 일도 안 한 주인이 세금을 받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소작인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들은 세금을 바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이 맞고 왔어도 농부들을 곧바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들은 종을 때려도 주인은 다른 종을 보내서 다시 세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농부들은 자신들을 심판하지 않자 주인을 무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온 다른 종을 심히 때리고 능욕하여 보냈습니다.
주인은 이번에도 농부들을 심판하지 않고, 세 번째 또 다른 종들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이 세 번째로 또 다른 종을 보내자 이번에는 거의 죽을 지경으로 상하게 하여 내어 쫓았습니다. 그들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주인은 이들을 심판할 권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바로 심판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쫓아내면 그들이 얼마나 가난하게 살다가 죽을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사랑하고 배려했습니다.
농부들을 주인을 공경할 것을 믿어주었습니다. 주인은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
주인은 농부들과 어찌하든지 사랑의 관계를 맺고자 하였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을 인정하는 가운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자기의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믿어주셨습니다. 더 보낼 종이 없자 주인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적어도 아들은 공경할 것이라고 기대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들만 영접하면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주인이 아들을 보내는 데는 큰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농부들이 아들까지 죽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아들까지 잃을 각오로 아들을 보냈습니다. 주인은 자기의 외아들보다 농부들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주인은 사랑에 눈이 멀었습니다.
주인은 정말 바보 같습니다.
아들은 마지막 숨겨둔 히든카드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의 한 수였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보내신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낼 때 많은 경호원을 딸려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배려하고 존중함으로 대하셨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깊이 신뢰하였습니다. 농부들이 변화될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주인은 마치 바보처럼 되었습니다. 힘 있는 분이 힘없는 분처럼 되었습니다. 농부들이 강압적인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아들을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농부인 나는 주인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살고 있는지 오늘 아침 기도의 제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