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에 후기 빨리 올려달라는 부탁아닌 협박(?)을 처음 받았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헷갈린다.
누가 관심도 없고 그냥 내 기억이 남아 있을 동안에 천천히 그 때를 회상해가며 써보겠다고 했는데
이런 압력을 받을 줄이야....
세상은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는 게 없나 보다.ㅎㅎ
한라산 둘레길 3, 4구간 : 13.6km
- 3구간 : 산림휴양길(2.3km), 4구간 : 동백길(11.3km)
3, 4구간 둘레길 이름은 참 좋다.
휴양길, 동백길
마치 연인들이 가볍게 산책할 수 있을 듯한 이름들이다.
오늘도 홍 회장 친구분 찬스를 사용해서 호텔에서부터 3구간 출발지인 서귀포자연휴양림까지 이동했다.
출발지에 가기 전에 한라산 영실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가는 길에 올라가보자고 한다.
거기까지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의외로 차가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중간에 다시 돌아서 내려왔다.ㅎ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시도를 해봐야겠다.
서귀포 자연휴양림에 와서 휴양림 안을 차량으로 한 바퀴 돌았는데 여기도 산책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 었다.
친구분은 돌아갔고 우리는 이틀째 본격적인 트래킹을 시작한다.
이 사진은 마침 휴양림 해설사가 옆에 있어서 담아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1, 2구간은 가지고 간 모든 짐을 지고 걸었지만 오늘은 최소한 것만 휴대하고 나머지는 호텔에 놔두었기에
등에 가방이 메어 있는지도 몰랐다.ㅎㅎ
그래서 표정이 모두들 저리 밝은 것.ㅎㅎ
출발 준비를 마치고 휴양림 안으로 들어간다.
지금까지 걸었던 숲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인데 다만 산책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
휴양림을 빠져 나오다가 홍 회장이 신박한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만행(慢行)>
사실 지금까지 '만행'은 '만원의 행복'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 만원이 되면서 이름이 어정쩡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이 '만행( 慢行)'으로 불러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이 나이엔 '천천히 걷는 것'이 정답인 듯하다.
역시 천천히 걷다 보니 참으로 실하게 생긴 이런 요상한 소나무도 보게 된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나간다.ㅎㅎ
서로 다른 종류가 한 뿌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도 특이하다.
나무들도 근친혼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듯하다.ㅎ
땀이 좀 흘렸다면 그냥 풍덩 몸을 한 번 담그고 가고 싶은 계곡이다.
저 위에서 선녀들이 목욕을 할 것 같은 분위기에...ㅎㅎ
그 유혹을 참고 지나간다.
잘 만들어진 데크길을 따라 조금은 힘겹게 오른다.
그러나 어깨의 짐이 무겁지 않아서 발걸음이 가볍다.
안개가 잔뜩 끼어서 풍경이 좋지도 못한데 쉬어 간다고 인증샷을 요구한다.
난 가방도 내려놓지 못했는데...ㅎㅎ
홍 회장은 카메라만 가져다 대면 두 손을 든다.
뭔가 지은 죄(?)가 많은 것은 아닐까?ㅎㅎㅎ
혹시 나에게서 마눌님의 모습이 보였던 것은 아닌지....ㅎㅎㅎ
쉬는 김에 막걸리 한 잔은 기본. 힘을 더한다.
무오 법정사!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나기 5개월 전(무오년)에 여기 법정사 스님들이 일본에 대항해서 대규모 무장투쟁을 벌였단다.
경건한 마음으로 스님들의 항쟁역사를 읽어보고 그들의 애국과 일본 압제에 받았을 고난과 역경을 느끼며 지나간다.
3구간은 2.3km로 짧은 코스를 통과해서 4구간 동백길로 들어선다.
동백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런 계곡길이 처음에는 참 멋지고 신기하게 보여지기도 했지만 너무 자주 나타나는 바람에 신비함이 없어진다.ㅎ
호근이는 김 회장 뒤에 껌딱지 처럼 붙어간다.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 처럼...ㅎㅎ
둘레길 해설사가 제주 4.3 사태에 대한 간략한 비사를 이야기 해준다.
김달삼이 사주해서 제주 주민들이 엮이게 된 것이지 무고한 희생자가 많았다는....
사주를 당했다는 것만으로 모든 잘 못이 덮어질 수는 없을 것이고,
지금의 잣대로 풀어낸다면 그럴 수도 있으나 그 시대의 그 상황에서는 달리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4.3 사태의 정확한 재해석과 무고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고려해 봐야겠지만,
불행한 역사의 결과를 후대가 고스란히 그 책임을 떠 맡는 것은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가다가 쉴만한 멋진 계곡을 만나서 점심을 하기로 한다.
역시 '핫앤쿡'이다.
기간 중 네 번의 '핫앤쿡'을 먹었는 데 난 제육비빔밥 3번, 라면愛밥 1번을 먹었다.
쇠고기 비빔밥도 먹고 싶었는데 갑의 횡포(?)로 못 먹었다.ㅎㅎㅎ
점심 후에는 각각 인증샷을 하나씩 담아주고 출발한다.
눈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여 각기 다양한 포즈로 담아봤지만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 되었다.ㅎㅎ
그래도 내가 제일 자연스럽고 멋진 듯....ㅎㅎㅎ
하기야 찍어 준 사람이 잘 찍은 건데..ㅎㅎ
그래서 홍 회장에게 카메라를 안 맡길려고 한다.ㅎㅎㅎ
다시 점심 먹은 힘을 내어 출발한다.
한라산 둘레길은 이런 빨간 리본이 촘촘히 잘 부착되어 있다.
걷는 내내 한 번도 길을 헷갈려 본적이 없을 정도로...
가다가 좀 힘들고(?) 목이 컬컬하면 막걸리 한 잔!
사실 가볍던 배낭도 이 때쯤이면 조금씩 무거워 지기 시작하니 빨리 덜어내는 게 상책이다.ㅎㅎ
오랜 세월을 견디며 서로 상생하는 방법을 터득한 나무들을 많이 만난다.
서로가 서로를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감싸 안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마치 캄보디아 앙코르왓트에 있는 '스펑나무' 모습처럼 바위를 품어 안은 나무 뿌리도 본다.
제주 4.3 사태의 무장 반란요원들이 머물렀던 주둔소를 지난다.
조금 전에 해설사에게 들었던 이야기에 선동자들의 악에 바친 눈동자와 겁에 질린 주민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이런 슬픈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아직도 김정은이에게 충성하는 좌파들이 남아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다가 심심하면 '돌아!' 연습도 해본다.
그러면 가다가 고개만 돌려야 하는데 호근이와 삼남이는 아직 이해를 못했는지 그냥 돌아서 선다.ㅎㅎ
홍 회장만 제대로 이해를 하는 듯...ㅎㅎ
홍 회장이 가다가 커다란 삼나무를 보더니 갑자기 감싸 안는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아니라 '얼마나 큰겨?'하는 단순 차원의 비교일 듯.ㅎㅎ
삼나무 하나가 쓰러져있다.
삼나무 뿌리가 지면에 얕게 뻗어간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산사태같은 것을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안된다고 하는 듯하다.
삼나무 숲이 잘 조성된 멋진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 듯 넓은 평상도 준비되어 있다.
피톤치트가 많이 나온다니 여기에 누워 그냥 쉬고 싶어진다.
동백길은 이런 너덜길이 많다.
조금만 방심하면 발목이 삐끗하거나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잘 견디어 왔다.
특히 나는 등산화가 아닌 트래킹화를 신고 스틱도 없어서 좀 더 고생을 한 듯하다.
나도 스틱을 써보고 싶다.ㅎㅎ
제주도에 고사리를 꺾으러 간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디로 가나? 했는데 동백길 구간에 고사리 밭이 있다.
온 천지가 고사리이다.
어딘지 자세한 좌표를 알려주면 안되겠지요?ㅎㅎ
동백길 구간의 끝에 다다르니 모처럼 시원한 뷰가 나타난다.
멀리 보이는 왼쪽의 섬이 섭섬, 오른쪽이 문섬이란다.
너덜길 때문에 조금 힘들었던 구간을 잘 마쳤다.
모두 피곤한 기색은 하나도 없다.
나만 힘든가?ㅎㅎ
내일 아침엔 다시 여기로 와서 제 5구간 수악길을 시작해야 한다.
홍 회장이 <돈내코 탐방로>에 얼마를 내야하는지(돈 내고) 살피고 있는 듯하다.ㅎㅎ
돈 = 멧돼지, 내 = 하천, 코 = 입구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즉 '골짜기가 깊고 숲이 울창해 야생 멧돼지가 자주 물을 마시러 오는 하천의 입구'라는 뜻이다.
여기서 버스정류장까지 약 2km를 걸어 내려와 버스를 타고 서귀포시로 들어왔다.
서귀포의 맛집인 돔배고기집(천짓골 식당)을 홍 회장 친구 찬스를 이용해서 찾아갔다.
전에 제주에 와서 먹어 봤던 돔배고기를 먹었을 때는 그냥 우리가 먹는 수육과 다름을 못느꼈다.
그냥 돼지고기 수육을 도마 위에 올려 놓은 것 외에는...
근데 이 <천짓골 식당>에서는 여 사장이 직접 식탁에서 고기를 썰어 주는데 맛이 달랐다.
여 사장이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예쁜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돔배고기 맛은 너무 좋았다.ㅎㅎ
(얼굴을 보고 먹었으면 맛이 더 좋았을 지 떨어졌을 지 아직도 궁금함...ㅎㅎㅎ)
다음에 서귀포에 온다면 다시 찾아와 볼만큼...
식당 홍보비를 받아야 하는데...ㅎ
식사 후에 서귀포 구(舊)항과 새섬을 이어주는 새연교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네 명이 마시는 커피의 종류가 각기 다르다.
누가 어떤 커피를 마시는 지 한 번 맞추어 보는 것도 재미일 듯...ㅎㅎ
멋진 풍경과 향긋한 커피의 냄새는 하루의 피로를 싹 씻어준다.
더욱이 즐겁고 편안한 친구들과 함께라면...ㅎㅎㅎ
한라산 둘레길 3, 4구간은 전체구간에서 그래도 힘든 구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상,중, 하 중에서 중)
특히 너덜길은 자칫 발을 다칠 수 있어 다소 조심함이 요구된다.
그런 길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번개 김 회장의 탁월한 계획과 안내 때문이다.ㅎㅎ
To Be Continued...
첫댓글 한라산둘레길이 아무리 쉬운 길이라 해도 산은 산입니디.
앞으로 가시는 모든 분들은 중등산화에 스틱, 장갑을 반드시 사용하실 것을 권고 드립니다.
맛난 후기 잘 보고 갑니다.
돔베고기 먹으러 필히 가야겠습니다.
항상 댓글 선두주자로 납심에 감사드립니다.ㅎ
잘 읽었습니다.
역사와 구수함과 커피향까지 날리는 멋진 후기입니다.👍
그 때 봤어야 하는데...ㅎㅎ
압력받기전에 자발적으로~~ㅋㅋㅋ 뜸들이지 마시고....후기를 기둘리느라 목이 빠진다는 압력도 강하기에....ㅎㅎ ㅎㅎ ㅎㅎ
후기를 기다리다보니 6월 만행계획을 올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해해주세요!
정말 동백길은 주의가 요구되더군요.
멋진 후기구성이 돋보이는군요! 감사합니다!
아니? 같은 편(?)끼리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ㅎㅎ
아무래도 조상 님들이 지정한 등산 마니아들이야!
아마도 전생에 걷지 못한 귀신들이 씌어서 줄창 걷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고생하면서도 얼굴에는 행복이 넘치네요. 대단하십니다. ㅎㅎ
전생에 걷지 못한 귀신들...ㅎㅎㅎ
그런 귀신이 씌었으면 좋은 것 아닐까요?ㅎㅎㅎ
주창일이 안 갔으면 3사람 머리 속에만 있을 장면 들이
전 동기생과 공유하게 되는 군요
그러게요. 쓸데없는 짓(?)을 해가지고...ㅎㅎ
댓글을 달지 않으면 주작가가 혼낼 것 같아서 읽자마자 댓글을 남깁니다.
트레킹 후 잊어버렸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르도록 잘 설명해준 주작가께 감사드리며,
주작가 사진에 나왔듯이 한라산 둘레길에서는 해안 전망이나 숲 밖을 볼 수 있는 곳이 4구간 마지막 딱 한 군데밖에 없으며, 오직 숲 속을 걷고 걷는다는 것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감히 김 회장님을?ㅎㅎ
그러나 가슴 속에 남겨두긴 할 것입니다.ㅎㅎㅎ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또 빵구나시라도....ㅎㅎㅎ
잘 읽고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주작가님의 사진과 글을 읽으니
안방에 앉아서 한라산 둘레길을 다 갔다온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고요~~~
다 갔다 오셨는 데 굳이 뭘...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