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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읽기 57강 (75장)
(1) 제75장 원문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민지기, 이기상식세지다, 시이기. 민지난치, 이기상지유위, 시이난치. 민지경사, 이기상구생지후, 시이경사. 부유무이생위자, 시현어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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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饑) : 주리다. 굶주리다. 흉년. 기근.
이(以) :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써. ~로. ~를 가지고. ~에 따라. ~ 때문에
시이(是以) : 이로써. 이 때문에. 그러므로. 따라서.
식(食) : 밥. 음식. 먹다. 먹이다. 지우다. 기르다. 섭취하다.
세(稅) : 구실. 징수하다. 세금. 조세.
경(輕) : 가볍다. 가볍게 여기다. 모자라다.
후(厚) : 두텁다. 두터이 하다.
현(賢) : 어질다. 어진 사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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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은 그 윗사람이 먹을 세금이 많음에 따라, 이 때문에 (백성들이) 굶주린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 윗사람의 인위적인 행위(강제)가 있음에 따라, 이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그 윗사람이 삶을 두텁게 추구함에 따라, 이 때문에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 무릇 오직 인위적인 행위에 따르지 않는 삶을 사는 자는 (남들과 비교하여) 고귀한 삶을 사는 자보다 더 현명하다.
(3) 해설
75장에서는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계까지 가서 다스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구체적인 이유가 밝혀지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된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윗사람(통치자)이 세금을 많이 거두어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거두니 백성들은 생업에 종사해서 생산을 많이 하여도 국가에 다 빼앗기고 굶주리게 된다는 것이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공자가 한 말이지만,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노자도 동일한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은 그 윗사람이 먹을 세금이 많음에 따라, 이 때문에 (백성들이) 굶주린다.”(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윗사람(통치자)은 왜 세금을 많이 거두어 자신을 위해 쓰는가? 세금을 많이 거두는 이유는 노자가 보기에 부국강병(富國强兵) 때문이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부자며 강한 나라가 되어야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 커지기 때문이다. 윗사람은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이 더욱 잘났다는 생각을 한다. 즉 자신은 더욱 고귀(高貴)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생각은 상대적으로 아랫사람은 비천(卑賤)한 존재라는 것이 전제(前提)되어 있다. 윗사람 자신이 더욱 고귀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부국강병의 나라를 만들어야 되니 세금을 많이 거둘 수밖에 없고, 세금으로 인해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을 비천한 존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굶주리게 된 백성들은 윗사람이 자신들을 비천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굶주리고 있는데도 윗사람은 더욱 화려하게 살고 있고, 강한 국가를 만든다는 명목아래 통제는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제가 심해진다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의 언어로 말하면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다. 결국 백성들은 윗사람이 고귀한 존재로 되는데 자신들을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통제에 따르지 않게 된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 윗사람의 인위적인 행위(강제)가 있음에 따라, 이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여기서 인위적인 행위(강제)는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동물이나 물건처럼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의미이다. 백성들은 굶주려서 죽음으로 몰리고 있는데다가 동물이나 물건취급 당하니 윗사람을 따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백성들을 자유롭게 살게 놔두면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잘 살아간다. 윗사람(통치자)이 하는 일은 백성들 사이에 분쟁이 있으면 해결해주고 외적을 막아주며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돌봐주는 정도의 일에 그쳐야 한다. 이것을 근대정치이론에서는 ‘야경국가론’(夜警國家論)이라고 한다. 정부는 야간에 경비 쓰는 정도의 일에 거쳐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의 슬로건은 ‘최소(最小)의 정부가 최선(最善)의 정부’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간섭에 머물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이 노자의 정치사상을 모두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근접한 측면이 있다. 노자는 부국강병을 부정하고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이다. 그는 작은 나라 적은 백성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나라를 지향했다. 소국과민 상태를 유지하면 백성들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며 백성들은 세금에 시달리지 않고 여유롭게 살게 된다. 여기에 비해 부국강병을 지향하면 필연적으로 인위적인 행위(강제)가 강화되어 세금을 지나치게 거두고 되면서 백성들은 굶주리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몰리게 된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면서 윗사람의 통치에 따르지 않게 된다.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이유를 노자는 윗사람이 자신의 삶을 두텁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그 윗사람이 삶을 두텁게 추구함에 따라, 이 때문에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 삶을 두텁게 추구하는 것은 자신을 고귀하게 만들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것이다. 윗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권력을 이용한 뇌물을 챙기게 되고, 그 뇌물은 결국 백성의 세금으로 충당되니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죽지 못해 살게 된다. 그러다가 굶어죽으나 맞아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목숨을 담보로 어떤 일이든지 하게 된다. 이렇게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백성들은 무서운 것이 없어진다. 무서운 것이 없는 백성들이 많아지면 통치는 무너지고 결국 윗사람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윗사람이 현명하다면 이런 상태가 되도록 두지를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릇 오직 인위적인 행위에 따르지 않는 삶을 사는 자는 (남들과 비교하여) 고귀한 삶을 사는 자보다 더 현명하다.”(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윗사람이 현명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을 두텁게 하면서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러면서 자신은 고귀하고 백성은 비천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더욱 높고 귀한 자리에 오르려고 권력, 지위, 명예를 높이고 재산을 늘리기 위해 부국강병에 몰두한다. 물론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세금을 많이 거둘 수밖에 없다. 이것이 노자가 보기에 윗사람이 하는 인위적인 행위이다. 윗사람 중에서 이러한 ‘인위적인 행위에 따르지 않는 삶을 사는 자’는 자신을 높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권력, 지위, 명예를 높이려고 하지 않고 재산을 늘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소국과민에 만족한다. 소국과민에 만족하니 세금을 더 거둘 필요가 없고, 백성들의 삶에 인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최대한 자유롭게 살도록 둔다. 그래서 노자는 ‘인위적인 행위에 따르지 않는 삶을 사는 자’는 ‘고귀한 삶을 사는 자’보다 더 현명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현명한 자가 많은 나라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나라이다. 나라가 아니라 가정을 비롯한 어떠한 조직이라도 거기에는 웃음이 넘치게 될 것이다.
【75장】 요약 정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