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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어린이 추리 특공대
박그루의 아동 추리소설 <편의점 도난사건>
동화작가 김 문 홍
장르 개척을 통한 소재의 확대 심화
추리소설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가늠된다고 한다. 즉, 추리소설을 많이 읽는 나라일수록 국민의 문화수준이 높다고 한다. 추리소설의 독법은 일종의 논리적 게임이다. 독자들은 작중인물이 범인을 해결하는 과정에 간접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논리적 추리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일종의 지적인 논리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고학년 남자 어린이들은 추리소설, 모험소설, 공상과학소설 등을 선호한다. 이러한 수요 증가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모자란다. 어린이 독자들은 추리소설 읽기를 좋아하는데 정작 동화작가들은 추리소설 쓰기를 꺼려한다. 추리소설의 독법이 논리적인 지적 게임인 만큼 이의 창작 역시 논리적인 사고능력의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아동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는 아주 희소하다. 동화작가 한정기가 다섯 권의 『플루토 비밀 결사대』(비룡소)를 내놓은 것이 유일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동 추리소설의 묵정밭에 신인작가 박그루가 조그만 탑을 하나 세웠다. 박그루의 『편의점 도난사건』 (밝은 미래, 149쪽, 2019. 11)이 바로 그 화제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성인 추리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성인 추리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건 해결의 주체가 성인이 아닌 어린이일 뿐이지 기존 추리소설의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건 발생, 탐문 수사, 단서 잦기, 목격자 진술, 증거 확보 등의 과정을 논리적인 추리의 지적 게임으로 범인을 잡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살인 사건 대신 편의점 도난 사건을 다루고,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형사) 대신 어린이들이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동네로 이사 온 강은수라는 소녀가 편의점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활약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가 물건을 정리하는 사이에 계산대의 돈을 도난당한다. 자칫 잘못하면 목격자가 없어 어머니가 도둑 누명을 쓸 위기에 처한다. 강은수와 가게 주인의 아들이며 같은 반 친구인 이재우, 그리고 역시 같은 반인 하진주가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해결하여 범인을 잡아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는 것이 큰 틀의 서사구조이다.
추리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다
①
“그 도둑 때문에 너희 엄마가 누명 쓰게 됐잖아.”
은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경찰들 왔잖아. 그럼 된 거지.”
우재가 쯧쯧거리며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너 생각보다 단순하구나! 봐 봐. 경찰들이 봤을 때, 그때 편의점 안엔 아줌마 혼자였어. 그리고 때마침 CCTV도 작동이 안 됐잖아? 그럼 누가 제일 의심받을 거 같니?” (43-44쪽)
②
은수가 눈을 감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바람이 살살 불고 검은 모자가 급히 지나쳐......“
은수가 눈을 번쩍 떴다.
“이우재! 혹시 이것도 도움이 될까? 그 사람이 지나갈 때 과일 향 같은 게 났어!”
“뭐? 과일 향?”
“응! 분명해. 스칠 때 새콤달콤한 과일 향이 났어. 왜 풍선껌에서 나는 그런 냄새 있잖아.”
“호오. 샴푸 냄샌가? 아ㅓ니면 껌을 씹고 있었나?” (47-49쪽)
③
그때였다.
‘저건!’
은수의 심장이 쿵쾅댔다. 도깨비가 아니었다. 분명 사람 그림자였다. 저번에 봤던 나무 근처에 똑같이 그림자가 나타난 거였다. 은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바라봤다. 입에서 나온 입김이 유리창에 서리다가 옅어졌다. 그림자가 나무 아래에서 뭔가를 하는 듯 했다. 그러고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87-88쪽)
④
“그런데 저 형한테서 왜 그 냄새가 나는 걸까?”
우재가 중얼거리는 말에 은수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그래, 어제 옷가지에서 나던 냄새. 그거였어!”
은수가 서둘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엄마, 어제 검은 옷 누가 맡긴 거야?
초조한 마음으로 문자 답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94쪽)
⑤
진주가 진지한 표정으로 녹음 재생 버튼을 눌렀다. 모두 숨을 죽이고 휴대폰에ㅐ 귀를 기울였다. 의미 없는 말들이 한참 동안 오고 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이제 그 녀석 못 믿겠어. 뻣세기 시작한다고.
그래도 부려 먹기엔 딱이잖아요.
당신이 아직 뭘 모르네. 사람 눈을 보면 딱 알지. 지난번 채소 가게 털 때는 순순히 하더니, 이번에 편의점 일은 어디 끌려가는 소처럼 하더구만. 이러다 다음번에 금은 방 털 땐 사고 칠 수 있다고.
그럼 더 튼실한 놈으로 하나 잡아야 하나? 형호 고 녀석이 딱이었는데.
(142쪽)
위 인용문을 보면 수사 단계의 과정이 차례대로 잘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건 발생, 누명 쓰기, 추리 ①, 목격, 추리 ②, 결정적 증거 확보 등의 범죄 수사 과정이 한 눈이 보이듯 잘 드러나 있다. 어린이 3총사가 의기투합하여 이런 과정을 보여줄 때마다 독자들은 자신의 추리와 비교해 가며 사건을 훑어 나가는 지적이고 논리적인 두뇌 게임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인용문 ①은 사건 발생과 어머니가 누명 쓸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어머니가 편의점 물품들을 진열하고 있는 틈을 타서 범인이 계산대의 돈을 훔쳐 빠져나간다. 작가는 여기에서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강은수 엄마가 누명을 쓸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을 설정하는데, 이는 어린이 3총사가 의기투합해 사건을 해결핧 수밖에 없는 하나의 필연적 당위성을 제공하고 있다. cctv도 작동이 안 되고 사건 현장의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은수의 어머니가 돈을 훔치고 시치미를 뗄 수도 있다는 의심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인용문 ②는 기억을 통한 추리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편의점 앞에서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은수는 마침 그곳을 빠져나와 지나치던 범인의 옷에서 과일 향 같은 것을 촉각으로 감지하게 된다. 이것은 나중이 범인이 약국과 관련되어 있는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된다. 앞의 인용문 ①이 사건 현장과 누명 쓰기에 관한 것이라면 인용문 ②는 사건 해결의 단서를 수집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인용문 ③은 은수가 저녁 무렵에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도깨비 숲’에서 용의자의 행동을 목격하고 관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이 장면은 범인이 훔친 돈을 도깨비 숲으로 들어가 땅에 파묻고 나오는 장면이다. 이러한 목격과 관찰은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로 활용된다.
인용문 ④ 역시 과거의 기억을 통한 추리로 사건의 단서를 수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범인은 사건이 일어난 후에 입고 있던 청바지를 어머니에게 수선거리로 맡기게 되는데, 은수는 그 청바지에서 과일 향을 맡으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러한 단서로 범인은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결국은 그 청바지를 밭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용문 ⑤는 사건 해결의 키워드가 되는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3총사의 한 사람인 하진주가 용의자의 집에 이사 떡을 주러 갔다가 녹음 전원을 켜둔 핸드폰을 일부러 두고 나온다. 그 녹음기에 용의자 부부가 나눈 대화가 기록되는데, 그것은 곧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되고 용의자의 자백을 받는 증거물이 된다.
이처럼 『편의점 도난 사건』은 범죄 해결의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건 발생과 억울한 누명 쓰기, 관찰과 목격, 증거물 확보, 목격과 관찰, 추리, 결정적 단서 확보, 사건 해결이라는 과정을 3총사의 활약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 독자들을 참여하게 함으로써 지적인 게임을 즐기고, 결국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재미의 요소들
동화문학의 1차적 독자는 어린이들이다. 작가는 동화를 창작할 때 가장 먼저 이 작품을 누가 읽을 것인가에 대한 독자를 겨냥하는 일이 중요하다. 『편의점 도난사건』의 작가 박그루는 처음부터 어린이 독자를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독자가 혹시 놓칠 것을 염려해 중간 중간에 그림을 통해 하나씩 정리해 놓는 섬세함을 잃지 않는다. 검은 모자를 쓰고 있는 용의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 옆에 ‘과일 향기’, 검은 모자, 검은 옷, 남자?, 여자?‘ 등의 단서를 도식화하여 정리해 놓고 있다.(59쪽) 이런 예는 이 작품의 여러 군데에 보인다. ’골목길 입구-짧은 전선, 발자국‘을 기록하고 그 아래에 발자국의 길이 ’240mm?'까지 첨부해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73쪽) 그리고 ‘깨숲, 검은 대문’ 옆에 ‘짧은 머리 아저씨, 엄마랑 실랑이한 아줌마’ 등을 사람 모습의 그림과 함께 그려놓고, 그 밑에 ‘또 다른 공범’ 이라는 기록을 첨부해 놓고 있다.
또한 작가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재미의 소들을 작품 속에 구사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서술 기법인데, 될 수 있으면 작품의 템포나 리듬의 연속을 저지하는 묘사를 생략하고 서술체 문장과 대화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재의 말에 은수는 뭔가 번쩍 떠올랐다.
“맞다! 그때 경찰들 왔을 때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 저 아줌마가 있었어.”
“뭐라고? 만약에 저 세 명이 한 편이라면...... 상황을 확인하러 온 거였구나!”
은수의 팔뚝에 소름이 확 돋았다.
“그럼 편의점에서 일부러 서로 모른 척했던 거야?”
우재의 표정도 자못 심각해졌다.
‘정말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아.“
아저씨와 아줌마가 편의점 근처에 있는 연립 주택 앞에 멈춰 섰다. 은수와 우재는 깜짝 놀라서 옆 건물로 몸을 숨겼다. (113쪽)
위 인용문의 한 대목처럼 이 작품은 서술 문장의 길이가 아주 짧다. 동화문학의 문장은 아무 길어도 30개의 어절 이내가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위 인용문에서의 한 문장의 길이는 길어봐야 9개의 어절을 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문장의 템포를 더디게 히는 묘사를 사용하지 않고 서술체를 쓰고 있다. 또한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의 대화 문장을 통해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거나 추리를 하고 있어 가독성이 아주 높다. 서술이나 묘사보다 대화체를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동의 호흡을 고려한 작가의 계획적인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카메라 선이나 위치 같은 거, 편의점을 잘 아는 사람이 그런 거네.”
“그렇지? 분명히 범인은 작정하고 우리 가게를 턴 거야!”
우재가 씩씩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경찰들이 근처 카메라를 확인을 했는데 그런 사람은 안 찍혔대. 우리 가게 바로 앞에는 방범 카메라가 없거든. 에이! 그러니까 미리미리 달았어야 했는데!”
“뭐? 그런 사람이 없대?” (64쪽)
대화체를 아주 적절하게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 위 인용문이다. 우재와 은수의 대화를 통해 용의자의 범행 의도, 범행 장소를 잘 알고 있는 용의자, 그리고 범행 현장의 상황 같은 정보를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꼬집어서 정확하게 인지시키고 있다.
추리소설 시리즈 창작에 대한 전망
동화작가 박그루는 부산아동문학신인상과 김유정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신인 작가이다. 이 작품을 쓰게 된 작가의 의도는 보통 머리말에 잘 나타나게 마련이다. 박그루는 ‘작가의 말’ 한 대목에서 아래와 같이 그런 의도를 넌지시 밝히고 있다.
..........(전략)
그러나 우리 친구들이 사는 요즈음은 내가 놀던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휴대폰과 게임, 그리고 학원과 공부......나 어릴 때와 비교하면 무슨 일이 그리 많고 뭐가 그렇게 바쁜지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이면서요. 물론 친구들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에요. 열심히 사는 것도 잘 알고요. 하지만 가끔 나는 그런 친구들이 안타깝고 속이 상해요. 어쩌면 내가 동화를 쓰는 것도 그런 우리 친구들에게 재밌고 신나는 일을 찾아 주기 위함이에요. 또 내가 진짜 친구가 되어 주고 싶어서이기도 하고요. ............(후략) (고딕체 글씨는 필자가 한 것임)
박그루 작가가 『편의점 도난사건』이라는 아동 추리소설을 창작한 것은 마음껏 놀지 못하고 있는 요즘 어린이들을 위해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선사하고자 하는 연민의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들이 이 재미있는 작품을 통해 논리적이고 지적인 두뇌게임을 즐기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동화문학의 자장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재미있는 서사로서의 아동 추리소설을 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작품의 주인공인 강은수는 억울한 누명을 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사선 속으로 뛰어들어 갖은 고초 끝에 사건을 해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람의 마음도 작품 곳곳에 녹아있게 했더라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사건을 해결해 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조금은 아쉽다. 사건 해결의 과정 사이사이에 은수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람의 마음이 서술체의 독백이나 에피소드가 삽입되었다면 금상첨화가 되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또 하나 작가에게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 작품 하나만으로 끝내지 말고, 소재와 주제를 달리해 추리소설을 시리즈로 창작했으면 하는 점이다. 다섯 권 정도의 추리소설 시리즈가 한 세트로 완결되면, 어린이 독자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추리소설의 활성화로 동화문학의 지평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작가의 그간의 노고와 앞으로의 정진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20년 6월 14일)
첫댓글 후배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평입니다.
박그루 작가님이 나아갈 길까지
제시하다니 고마운 일입니다.
부산아동문협에
보배로운 선생님이 계셔서
늘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