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남성 쿤밍의 관광지로는 석림과 구향동굴 그리고 취호공원 등이 있다.
인터넷을 뒤지며 알아본 바로는 그랬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많이 알려진 곳보다는 덜 알려진 곳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더구나 쿤밍에서 여행업을 하는 어떤 분이 한 말이 내 구미를 더 당겼으니, 그의 말인즉슨 자기라면 석림보다 토림을 가보겠다 그랬다.
도대체 토림의 어떤 면이 사람들을 끌어당길까.
외진 곳에 있어서 찾아가기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갔다온 사람들이 하나 같이 추천을 하니, 안 가본다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쿤밍에서 할 일 중 1순위로 토림을 내세웠다.
우리가 모은 정보에 의하면 토림은 무척 오지에 있어 당일치기는 어렵고, 일박을 해야만 한다.
오가는 길에 대한 정보들이 부족했다.
길지않은 쿤밍 체류기간(2박3일)에 이틀씩이나 토림에 바쳐야 하니, 남편은 그게 계속 걸리는 모양이다.
"쿤밍에 예약해둔 호텔은 어떻게 하고? 토림 보려면 그곳에서 일박해야 한다는데, 그러면 호텔비가 날아가잖아."
안 그래도 시누이가 같이 여행하고 싶다고 해서 호텔방을 두 개나 잡았는데, 시누이가 못 가게 생겼다는 바람에 이틀치 호텔비를 날렸던 참이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중국의 호텔은 취소를 할 경우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하룻밤에 150원 정도라고 했지만 물가가 비싼 쿤밍인데 그 정도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어쨋든 우리는 이미 호텔비로 6만 원 이상 날린 셈인데 또 하룻밤을 그냥 빈 방으로 둔 채 값을 치뤄야 하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그래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호텔방값 날리자. 그것 아끼려고 토림 못 보면 그게 더 손해일거야. 다행히 원모현의 호텔들은 방값이 싸다니, 토림 보자."
그렇게 해서 찾아간 토림이었다.
토림은 아주 많이 대단하고 좋았지만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만큼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 같은 모래길을 두어 시간 돌아다니다 보니 지쳤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처음에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풍경들도 두어 시간 보다보니 감각이 무뎌졌고,
나중에는 대충 보고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쨋든 땅 위에 그런 곳은 또 없을 것 같다.
토림이라니... 오죽하면 수풀 '림'자를 붙였겠는가.
토림(土林)은 쿤밍에서 210km 떨어진 원모(元謨 위안모우)현에 있다.
토림은 하늘로 치솟은 흙기둥들이 마치 숲을 이룬 것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질박물관이라 불리는 토림은 150만 년 전에 생성된 지형으로 원래는 강과 호수와 폭포가 있던 곳이다.
그러던 것이 지각운동으로 인해 땅이 융기하면서 물 속에 있던 토림의 지형이 물 밖으로 올라오게 되었으며,
오랜 세월 비와 바람의 침식작용으로 흙과 모래와 자갈 등 퇴적물이 햇볕에 말라붙고 단단하게 굳어지면서
현재와 같은 각양각색의 지형이 형성되었다.
토림은 비와 바람과 햇볕이 합작해서 조각해 놓은 자연의 명작이다.
그러나 자연의 침식작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관계로 토림 역시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흙이 다 깎여나가기 전에 토림을 봐야 한다고 우스개 소리로 말하고는 하는데,
우리 생애에는 그런 일, 예컨대 토림이 사라지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세세만년 지나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토림이 있는 지역은 햇볕이 매우 강하다.
두어 시간 동안 그늘이 없는 곳을 돌아디니며 고개를 쳐들고 구경을 하다보면 얼굴이 벌겋게 타버리게 된다.
그러니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는 것은 물론이고 모자나 스카프 등으로 얼굴을 가려주는 것이 좋다.
또 토림 안에는 화장실이나 매점 같은 편의시설이 없으므로 미리 마실 물을 준비하고
화장실 역시 매표소에서 갔다오는 게 좋다.
신발은 걷기에 좋은 운동화나 미끄럼 방지를 위한 요철이 잘 되어 있는 등산화가 좋을 것 같다.
자연을 어떻게 다 담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카메라라도 토림의 전모를 다 담을 길은 없다.
그저 눈에 담아 내 가슴에 저장해 둘 밖에는...
더구나 나는 스마트폰만 달랑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으니...
두어 시간 돌아다녔는데도 반의 반도 못 봤다.
그래도 미련없이 돌아서기로 했다.
이만 하면 됐다.
너무 마이 봤다 아이가...
원모에서 토림까지는 택시를 대절해서 갔다.
대개 왕복 200원을 부른다고 하는데, 그러면 협상을 해서 요금을 깎아라고 갔다온 분들이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기사는 180원만 달라고 했다.
그래서 두 말 하지않고 그 차를 타고 토림으로 갔다.
기사는 우리가 다 보고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손님을 모시고 한두 번 와본 게 아닌지 오후 1시 30분 정도면 다 볼 수 있을 거라는 말도 했다.
11시에 택시를 탔으니 1시 30분이면 약 두 시간 정도면 토림을 다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설마, 토림을 두 시간만에 다 볼 수 있디고? 하면서 반신반의했는데 나중에 보니 기사의 말이 맞았다.
토림은 두 시간 정도 보면 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지치고 힘들어서, 그리고 비슷비슷한 흙기둥에 감이 무디어져서 그 정도 시간이 되면 '그만보고 가자'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원모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쿤밍행 버스 시간표를 보니 약 50분에 한 대 꼴로 버스가 있었다.
막차가 6시에 있고 그 전 차는 5시 10분... 이런 식으로 50분에 한 대씩 차가 있었다.
그런데도 인터넷에서는 차편이 없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내가 새로운 정보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뒤를 이어서 올 사람들을 위해서 정확한 정보를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 역시 여행 일정을 짜면서 먼저 갔다온 분들에게서 많이 보고 배웠기 때문에, 나도 갚고 싶었던 것이다.
토림이 있는 원모에서 쿤밍으로 돌아오는 버스 있음.
50분 간격으로 차가 있는데 막차는 오후 6시에 출발함.
토림을 보고 다시 원모로 돌아오니 약 2시가 되었던가?
기사는 대절비로 180원을 말했지만 김쌤은 200원을 주었다.
잘 통하지 않는 중국어로 기사에게 점심밥을 사먹으시라며 주었으니... 남편의 따뜻한 마음이 보였다.
2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 점심밥 한 끼 사주고 싶은 게 김쌤의 마음이었나 보다.
남들은 깎으라고 조언을 했는데 우리는 오히려 더 얹어주었다. 이것이 나중에 토림을 구경하러 오는 한국인들에게 해가 될까, 아니면 득이 될까...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게 뭐 있을까. 그냥 우리는 마음을 주고 싶었고, 그랬으면 됐다.
어쨋든 그 기사는 본연의 직분에 충실했고, 우리는 편안하게 토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끼니 때를 넘긴 시간까지 기다려 주었으니...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건 한국인의 정서상 옳다고 본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아봤다.
내 자랑 같지만 나는 약간의 감이 있는 것 같다.
오랜 세월동안 강화나들길을 걸은 덕분인 것 같다.
그것은 볼거리를 찾아내는 데도, 또 먹을거리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외 여행 짐을 꾸릴 때도 길을 걸은 경험이 도움이 되었고 나중에 호도협 트레킹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모는 우리나라로 치면 어디쯤과 비슷할까.
어쨋든 농지가 별로 없는, 척박한 시골의 군 소재지 정도라고 하면 될까.
쿤밍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산떼기만 보였다.
평지라고는 없었고 가파른 산비탈에 집들이 들어서있었다.
도대체 저곳에 사는 사람들은 뭘 해먹고 살까 궁금할 정도로 오지였다.
그런 중에 꽤 넓은 평지가 나왔고, 도시가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원모'다.
이리저리 감을 쫒아 식당을 찾다가 한 곳에 들어가서 주문을 했다.
만만한 게 쌀국수라서 오늘도 역시나 국수를 시켰다.
볶음밥도 하나 더 주문했는데 두 개 다 맛이 좋았다.
음식값 역시 착했다. 국수는 10원, 볶음밥은 6원, 다 합해서 16원.
쿤밍에서 닭국물로 한 무슨 국수는 한 그릇에 20몇 원 했던 것 같은데, 원모는 시골이라 그런지 물가도 엄청 싼 것 같았다.
흡족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이제 3시 조금 지나 있다.
쿤밍으로 돌아가도 도착하면 6시가 넘을 것이고, 빨리 가봐야 더 볼 것도 없을 테니 이곳 원모에서 시간을 더 보내다 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던 차에 '중의원'을 발견했다. 중의원은 우리나라로 치면 병원이다.
그 병원은 '골, 즉 뼈' 전문병원 같았다.
허리가 좋지 않은 나는 중의원에서 치료를 한 번 받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더구나 김쌤이 즉극 권하지 뭔가.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병원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쩌면 나는 그 병원 최초의 한국인 환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우리를 쳐다본다.
한국인이 치료를 받으러 왔으니 왜 신기하지 않겠는가.
원모는 완전 깡촌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니 외국인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 외국인이 되지도 않는 말을 더듬대면서 치료를 받기를 원하니 왜 신기하지 않겠는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허리를 치료받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중의사는 진맥을 짚어보더니 문진을 한다. 어디가 아프냐는 뜻일 것이다.
허리를 꾹꾹 누르며 여기가 아프냐 저기는 어떻냐 식으로 묻는다.
그리고 이러 이러한 치료를 받겠냐고 묻는다.
그가 권하는 것을 보니 침도 있고 부항에다 전기 자극 등등... 우리나라 한의원에서 해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6가지나 되었는데 다 받겠다고 했다. 그래봤자 치료비가 얼마 안 된다.
90원 밖에 안 되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7000원 정도 된다.
마사지를 받는데 70~80원을 줘야 되는데 여섯 가지씩이나 치료를 받고도 90원 밖에 하지 않으니 오히려 싸다.
일단 수납을 하고 오라고 했다.
그 점은 우리나라와 똑 같네.
돈을 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돈 없으면 병원 문턱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없네.
치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내과, 안과 등등이 있는 걸로 봐서 이 병원은 원모의 종합병원인 듯 했다.
골과, 즉 정형외과의 이 의사는 특별한 지 입구 잘 보이는 곳에 크게 안내판도 놓여 있었다.
나는 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지는 않았다.
이 의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정형외과 의사일 것 같다.
중국의 병원은 이렇게 양의와 중의가 같이 있나 보았다.
치료실의 모습.
우리나라로 치면 한의원과 같은 곳일 것 같다.
내가 받은 치료는 총 여섯 가지였는데 약 한 시간 이상 시간이 걸렸다.
뜨거운 핫팩으로 허리 부위를 한참동안 지진 다음에 부항, 침, 전기자극 등등을 했다.
엎드려 있어서 어떻게 하는지 볼 수는 없었지만 부항과 침이 우리나라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특히 침이 달랐다.
나는 전에 허리가 좋지 않아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많이 다녔다.
한의원의 경우 대부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고 정형외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침이라고 놔주는데 꼭 수지침 같은 걸 놔주었고 정형외과는 물리치료와 약을 처벙해 주었지만 그 물리치료라는 것도 그닥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온수리에 있는 할아버지 한의사가 놔주는 침은 좀 달랐지만 그외 한의원들은 비슷비슷했다.
진맥을 짚어보는 한의사도 온수리 동신 한의원의 할아버지 한의사를 빼고는 없었다.
과거의 한의원에서는 진맥 짚는 것으로 치료가 시작되었는데 현대의 한의원에서는 진맥을 짚는 경우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허리가 안 좋아서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허리는 여전히 좋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려면 허리가 구부려지지 않아 세수를 할 수 없다.
신체 활동을 좀 한 다음에는 허리를 굽혀 세수를 할 수 있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금방은 허리를 굽힐 수가 없어 세수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여기서 치료를 받은 다음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세수를 해도 된다.
허리가 굽혀진다는 소리다.
김쌤은 자꾸 나더러 허리가 좀 좋아진 것 같냐고 물어보는데,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통증이라던가 그런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분야로 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내가 느끼는 증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며 설령 내가 말로 전달을 한다고 해도 허리가 불편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모를 그 분야를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인가.
어쨋든 중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다음부터 허리를 구부려 세수를 할 수 있었고, 또 비행기를 타고 올 때 허리가 불편해서 자주 자세를 바꾸곤 했는데 그것 역시 의식하지 않게 되었으니 효과를 본 것은 틀림없다.
혹시 토림을 구경하러 가는 분들이 있다면, 토림만 보고 돌아올 게 아니라 터미널 근처에 있는 중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막차가 저녁 6시에 있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토림을 보고 돌아오면 2시 정도가 되고 점심을 먹고 그래도 3시밖에 안 된다.
바삐 쿤밍으로 돌아갈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어치피 쿤밍으로 가도 저녁 시간에나 도착할 테고, 그러면 다른 데 구경하러 갈 시간도 별로 없다,
그러니 차라리 원모에서 중의원에 가는게 더 낫다.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사지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7~80원 주고 잔신 맛사지 받아봐야 그게 그거다.
중의원 치료는 그런 것과는 질이 다르다.
그야말로 치료다.
그것도 중의지 않은가. 우리의 한의 즉 침이라던가 부항 그런 것도 다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배기 치료를 받는 흔치않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치료를 받고 나와서 원모 거리를 돌아다녀 보았다.
별로 볼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 구경하는 재미로 이리저리 다녔다.
오후 5시 10분 차로 쿤밍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원모로 향할 때 탔던 차는 큰 차였는데 돌아올 때 차는 그보다 조금 작았다.
아침의 차가 직행이라면 저녁에 탄 차는 일종의 완행인 셈일까.
짐을 실어다주는 일도 하는지 군데군데 정차해서 짐을 내려주고는 했다.
그래서 쿤밍으로 돌아오니 8시가 넘었고, 완전 밤이었다.
쿤밍의 서북부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에워싼다,
택시 기사들과 소위 빵차라고 부르는 야매 대절차 기사들이 손님을 잡기 위해 애를 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무섭기도 했고... 마음이 그리 독하지 않은 우리는 어쩔 바를 몰라 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려고 서둘렀다.
그중에 가장 집요하게 우리에게 대쉬한 사람이 있었고, 그 차를 탔다.
우리가 탄 차는 말하자면 총알택시였다.
스타렉스급의 낡은 차에 태워진 우리는 그때부터 겁나게 빨리 달리는 총알택시 안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젊은 기사는 어찌나 운전을 잘 하는지 요리조리 겁나게 차선 바꾸기도 잘 했고... 하여튼 총알택시였다.
쿤밍역까지 30원이라고 해놓고는 막상 도착하니 40원이란다.
잔돈이 없어 50원 짜리를 줬더니 거스름돈으로 10원 밖에 주지 않는다.
30원이라도 했지 않냐는 뜻을 전달했지만 그는 뻔뻔하게 40원이라고 하며 돈을 더 거슬러줄 뜻을 보이지 않는다.
이게 그거였구나. 그래서 큰 돈을 주지말라고 그랬구나. 30원 딱 맞춰서 줬으면 됐을 텐데 50원을 줬더니 그런 사달이 났다.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하고 기사를 돌려보냈다.
1월 5일 돈 쓴 내역
쿤밍역에서 서북부 터미널까지 택시비 - 40원
쿤밍- 원모간 버스비 : 한 사람당 69원씩 총 138원
원모- 토림까지 택시비 : 200원
토림 입장권 : 한 사람당 100원, 두 명이니 200원
전기차 - 20원
점심 : 16원
중의원 치료비 : 91.4원
원모- 쿤밍 버스비 : 54원씩 두 명 108원
서북부터미널 - 쿤밍역 호텔까지 빵차비 : 40원
첫댓글 여행 다녀온 지 벌써 한 달도 더 지났습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 두어야겠다 싶어 블로그에 담기 시작했는데,
임플란트 수술을 받고 몸살 앓느라 근 열흘 이상 그냥 보냈고,
딸이 약국을 개업하게 되어서 그것 알아본다고 또 여러 날 불려다녔고,
그러고 나니 설이 되어서 고향 다녀오느라 또 몸살 앓고...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도 계속 상황이 도와주지 않아 진도를 못 나갔습니다.
별 것도 아닌 사진 정리와 그에 따른 글쓰기도 조화로운 상태가 아니면 할 수 없는데,
작가, 화가, 음악가 등등 창의적인 생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스스로 조절을 잘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사진이 하나도 안 나왔네요.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을 그냥 퍼왔더니 이렇게 되었나봐요.
다시 고치겠습니다.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 주신 양선생님, 고맙습니다.
아이고, 사서 고생을 합니다.
'뭐 하러 여기 올려가지고 이래 고생을 하노?'
사진을 일일이 갖다붙이면서 속으로 이 소리를 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