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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3부작 2]
2. 최후의 만찬
정 세 봉 흥수는 오늘 아침 무섭게 화를 내였다. 녀편네한테는 종종 큰소리도 쳐보곤 하는 그였지만 아이들에게 그러기는 처음이였다. <울긴 왜 울어, 애비 죽었는기야? 그 잘난 핵교 그만 둬, 시원히 그만두면 필인기여!> 그럴수록 딸애 송이는 잉잉....울음속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아들애 철복이도 마침내 외면을 하면서 주먹으로 눈물을 뻑 훔친다. <큰 소린 왜 쳐요? 애들이 울지 않게 됐어요? 에그 어찌 살겠니? > 이번에는 녀편네까지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을 보기싫게 일그러뜨리며 애읍을 터뜨리고 있었다. 10평방도 되나마나한 굴속같은 세방에서 세 식구가 청승맞게 울고있는 꼴을 흥수는 더는 보고있을수가 없었다. <인제는 다 죽어야 허는기다. 못산다, 못살어!> 흥수는 이런 절망적인 선언같은 말까지 서슴없이 던지고는 정나미 떨어지게 출입문을 여닫고 나왔다. <나쁜놈들, 아무렇기로 아이들을 쫓아낸단 말이? 돈밖에 모르는 세상!> 흥수는 탕약처럼 끓어번지는 심화를 도저히 누를 길이 없어서 중학교당국에 연신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치 모든 죄가 삼륜인력거에 있기나 하듯이 와들랑탈랑 왁살스럽게 다루면서 골목길까지 끌어내였다. 이윽고 흥수는 거리에 나섰다. 끝없이 흐르는 자전거 행렬에 끼여들어서 곁눈 팔 겨를이 없이 도심지까지 깊숙이 들어가다가 동시장쪽으로 구부러져 가지고 마침내 삼륜인력거 주차장에 당도하였다. 벌써 여러 동업자들이 인력거들을 쭉 대기시켜놓고있었다. 흥수서방 어쩌고 아래우 다 무사하십능가 어쩌고 하면서 젊은 동업자들 녀석들이 여느 때처럼 버릇없이 지껄여왔다. 무척 불손하고 무례한 수작질이였지만 그것이 악의없는 놀림임을 알고있었던 까닭에 오히려 즐거운 듯이 헤헤 웃어주곤 했던 흥수였는데 오늘만은 사정이 달랐다. 머리를 기우뚱 드리우고 이마밑으로 잔뜩 심통 사납게 흘겨보고는 일언반구 없이 맨끝쪽 자기의 위치에다 삼륜차를 대기시켜놓았다. 전에 없던 거동에 더욱 재미가 난다는 듯이 동업자 녀석들이 웃어제끼고있었다. 그러건 말건 흥수는 워낙 꾀죄죄하고 왜소한 몰골인데다가 얼굼맞은 배추잎처럼 후줄군한 꼴이 돼가지고 삼륜차곁에 쭈그리고 앉아 <자려>표 권연 한개비를 피워물었다. 끝없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숱한 차량들과 자전거 행렬을 바라보연서 흥수는 느닷없이 온 도시가 생기로 넘쳐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도시의 약동과 생기를 불가사의한 두려움으로 느끼고있었다. 그것은 흥수가 문득문득 느끼군 하던 이 도시에서의 쓸쓸한 소외감이기도 했다. 흥수는 갑자기 마음이 알알하게 아파오고있었다. 귀여운 자시들한테 무섭게 화를 내였던 자신이 금방 후회되고 있는것이였다. <불쌍코나 너희들 못난 애비를 만나서.....내가 환장을 했지. 무슨 정신에 남의 말을 듣고 훌쩍 떠나왔던가 멀이여!>, 흥수는 비로소 그 좋은 농토를 버리고 훌쩍 도시로 들어왔던 자신의 실책을 아프게 절감하고 있는것이였다. 이태 전 어느 겨눌날의 일이였다 도시에 들어가서 3년째 식당업을 벌리고있었던 종철이가 문득 마을에 나타나서 어리숙한 흥수를 유혹하였다. <흥수, 시내에 들어가서 같이 살자구, 종사업에 마음대로 종사하라는 판인데 뭘 우물쭈물 할게있소? 땅에 매여 살다가는 한뉘 그 꼴이라니까. 한뉘세상이 얼마라구 그냥 풀속에 골을 들이밀고 살겠소?> 처음에 흥수는 종철이의 그러한 권고가 무척 고맙게 여겨졌지만 마이동풍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그저 수줍은듯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였을 뿐이였다. 그런데 종철이가 십분 심각하게 나오고있었던 까닭에 차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우리같은 사람들두 살수 있겠시유? > <들어만 가문 다 사우. 여자들이 하다 못해 남새를 넘겨팔아두 매일 10원 벌이는 헐하니까. 어디 셈해보우. 한달이면 3백원 아니우? 그건 순수입이 되는 셈인데 농살 지어서 언제 한 해에 3천원을 쥐여봤소? 내외간이 이악스레 벌면 년수입 6천원은 헐하니까 그게면 살지 못하겠소? 한번 시내생활도 해봐야지.> <나같은 사람 시내에 가서 할일이 있겠시유?> 삼륜차로 짐을 실어두 매일 10원 벌이는 식은 죽 먹기라우. 아이들 장래를 봐서라두 들어가는게 옳다니까.> <글쎄....... 그렇긴 한데.> 흥수는 일순간 바보처럼 얼굴을 붉혔다. 어쩔수 없는 당혹감에 빠져서 어쩔 줄 모르고있다가 언녕부터 궁굼했던 일을 넌지시 물었다. <형님은 그새 돈 잘 벌었겠시유? > 종철이는 대답 대신에 의미심장하게 손가락 세개를 펴보였다. <3천원?> <쳇, 3천원이 돈이우?> <그럼?> 흥수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확대되는걸 보면서 종철이는 사뭇 신비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고있었다. 3만원!........흥수에게 있어서 3만원이란 돈은 아름다운 몽환속에서의 일이였다.그는 자기와 같은 농사군들이 3만원 거금을 쥐여볼수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조차 없었다 그것은 팔자밖의 일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얼뜨기 농사군 종철이가 도시에 들어가더니 몇 해 안되는 사이에 일확 3만금 부자로 되였다고 하니 흥수한테는 무서운 충격이 아닐수가 없었다. 흥수의 가슴속에서는 일순간 눈먼 욕망과 무분별한 승벽심 같은것이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나고있었다. <나두 한번.....덤벼본다? > < 글쎄 나도 꼭 들어오라구 강권하는 건 아니라우. 별 랑패는 없을것 같아 하는 소린데 좌우간 많이 고려해 보고 결단하우. > 요대목에 와서 종철이는 바짝 당겨채던 고삐를 슬그머니 늦추고 있었다 .만일의 경우에 당할수 있는 책임감 같은것울 미리 회피하려는 심사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흥수의 오기를 발동시켰다. <에익, 결심했시유! 그저 형님만 믿겠시유.> 흥수는 무릎을 탁 치면서 당장 떠나기라도 할 듯한 기세를 보였던것이였다. 그뒤 흥수는 마음이 둥둥 떠가지고 재빨리 집을 팔고 부림소와 돼지,닭,오리 같은 가금가축은 물론이고 여러가지 농쟁기들까지 깨끗이 처분하여 가지고 벼락이사를 했던것이였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보니까 꿈과 현실은 엄연히 달라있었다. 애당초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과 계산에 넣지도 않았던 지출들이 간단없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었다.명목이 잡다한 가렴잡세에다 집세 까지 해마다 몫돈으로 추려바쳐야 했고 호구가 없는 학생들 에게서 받아내는 <무호구비> 라는것을 해마다 학생당 6백원 씩 울며 겨자먹기로 밀어넣었다.게다가 생활비용도 농촌에 비해 몇 갑절 들어야 살아갈수 있는 형편이여서 소중히 묶어가지고 들어왔던 몇 천원 돈을 이태도 되기전에 다 불어먹고 말았다.녀편네의 장사도 하며말며 되지를 않고 흥수 혼자서 삼륜차를 끌어 버는 푼전으로 생활난을 그럭저럭 풀어가고 있는 형편이였다. 그런데 개학 이?날 새 학기의 <무호구비 때문에 철복이와 송애, 두 아이가 학교에서 쫓겨왔던 것이였다.전학기에는 그럭저럭 담임선생님을 구슬려서 무사했댔는데 아마도 들통이 난 모양이였다. 이제 흥수는 힘이 없었다. 1200원은 고사하고 당장 쌀 사먹을 돈이 걱정이였다. 그래서 화만 났던것인데 다시 생각을 해보니 아이들 앞에 부끄러워졌다. 부끄럽다기보다는 아이들 마음속에 무능하고 실망적인 아버지로 비쳐진것만 같아 몹시 괴로왔다. 흥수는 빌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들 공부를 등한시할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고 천직이라고 느끼고있었다. <저녁에 종철이한테라도 가봐야지. 먼저 꿔서라도 들이대고 볼판이지 별수 있나? 아무렴 종철이가 사정을 봐주지 않을라구!> 흥수의 눈앞에는 손가락 세개를 펴보이면서 신비한 미소를 흘리던 종철이의 얼굴이 떠오르고있었다. 흥수는 온 하루동안 짐을 한 축도 싣지 못하였다. 그는 동업자들과 굳이 짐다툼을 하지 않았다.그저 운수에 맡기리라 하였고 나중에는 아예 삼륜차 우에 비스듬히 누워서 깜빡 잠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거리에 황혼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짐싣기를 포기하고 이제는 종철이네 <만원식당>으로 곧추 찾아가리라 작심을 했다. 그는 삼륜차를 타고 자전거 행렬에 슬쩍 끼여들었다. 바로 그 찰나였다. <어이, 삼륜차! 삼륜차!> 이런 부름소리가 등뒤에서 들리는것 같았다.차를 세우며 뒤를 돌아다보니 변색안경을 걸고 시체머리를 한 <현대청년> 둘이 반달음을 놓으며 손을 휘저어대고 있었다. 비닐통을 하나 씩 든것으로 보아 짐을 실으려는 게 분명했다. 흥수는 이 순간에 와서 느닷없이 나타난 일거리가 그닥 달갑지가 않았다. 돈벌이보다는 삼륜차를 리용하려는 사람들의 편의를 외면할수는 없다는 그런 의무감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들을 기다리고 서있었다. 두 안경쟁이 청년은 헐레벌떡 뛰여와서는 무작정 짐을 올려놓았다. 서른근들이 비닐통 두 개였는데 콩기름이 들어 있는것 같았다. 그들은 날파람을 일구며 아주 무례하게 삼륜차에 뛰여올랐는데 그 장난기 섞인 거동에는 흥수의 가슴을 섬?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소북 남새촌까지........> 키 큰 청년이 목적지를 명령하듯 알렸다. (소북 남새촌.........) 흥수는 속으로 한번 복창하고 나서 힘겨웁게 삼륜차의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소북 남새촌까지면 7원 쯤을 받아야 할 거리라고 생각했다. 두 청년은 삼륜차에는 처음 앉아보는 모양으로 하이야에 앉은것보다도 더 신명을 내고있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웃고 떠들어대다가 <속도를 더 냅소. 이렇게 느리구서야 돈을 버는가!> <자, 빨리 몰라구, 빨리! 빨리! > 이렇게 연신 재촉하고 있었다. 흥수는 그들이 술을 걸쳤다는것을 알았다. 늘 그랬듯이 흥수는 이런 <현대청년>들이 어쩐지 꺼려졌다. 징그러운 뱀이 싫은것과도 같은 그런 인간본능의 불가사의한 반응이였다. 그렇지만 흥수는 내색을 감추고 바보처럼 웃어보이면서 좌우로 몸을 힘겨운듯 움직이면서 속도를 내는 시늉을 하고있었다. 11선 뻐스 종점까지 갔을 때 흥수는 차를 멈춰세우고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더 가야하느냐 하는 무언의 질문이였다. 의아쩍은 눈길로 동시에 뒤돌아 보던 두 청년은 흥수의 뜻을 재빨리 파악한것 같있다 <왜 세우는가? 아직 멀었다구!> 키 큰 청년이 불손하게 말했고 다부지게 생긴 청년은 히물히물 웃으면서 오른 쪽 언덕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있었다. <거긴..........올라 못가유.> 흥수는 주저주저 사절을 했다. 순간 다부진 청년이 안경속으로 이상야릇하게 노려보면서 말없이 다시 손가락으로 어서 올리끌라는 시늉을 두번 했다.그 눈길과 손가락질에는 무서운 협박이 암시되고 있었다. 흥수는 무엇인가 잘못 걸려들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때 그는 돈을 생각했다. 삯전을 받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들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리라는걸 느끼고있었다. <이새끼, 빨리 끌엇.> 키 큰 청년이 잡아먹을 듯이 사납게 나왔다. 흥수는 공포에 질려가지고 거의 본능적으로 벌레처럼 삼륜차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는 삼륜차 앞에 나가서 당나귀처럼 밀차채안에 들어섰고 끌바를 어깨에 메였다. 체소한 흥수는 삼륜차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지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호주머니의 푼전을 다 털어가지고 군고구마 한 개를 사서 점심 한 끼를 달래였던 그였다. 두 망나니는 삼륜차위에 앉아서 <락타샹즈>어쩌고 하면서 즐거운듯 지껄여대고있었다. 흥수는 락타샹즈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자기가 이 두 망나니한테서 지금 무서운 수모를 당하고있다는것만은 의식하고있었다 그것은 환락과 생기로 넘치는 이 도시가 루추하고 가난한 한 밑바닥 인생에게 가해오는 학대인것이라고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흥수는 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자기가 그런 수모와 우롱을 받고있는 것을 일단 안해와 자식들이 모르고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했다. 남한테 버러지처럼 짓밟히고 고혈을 빨리운다 해도 그 대가로 안해가 즐거워하고 아이들이 희희락락 공부에 열심하면 기쁘리라 했다. 흥수는 마치 이 언덕배기를 오르는것이 자기 가정의 행복을 창출해내는 결정적인 순간이라도 되기나 하듯이 무서운 집념으로 거기에 매달려있었다. 이제는 그것이 망나니들의 협박에 의한 무모한 고역인것이 아니고 그의 삶의의무와 직책같은것으로써 인생을 노력하려는 자각적인 행위로 되여있었다. 흥수는 필사의 근력을 허비한 끝에 마침내 언덕배기에 올라서는데 성공을 했다. 그는 땅에 털썩 주저앉으며 사뭇 처참한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사지가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고 숨이 차다못해 메슥껍고 가슴이 괴로왔다. 이제 그는 무참하게 혹사당한 자신의 육체(혹은 생명)를 달래여야만 했고 원기가 회복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두 망나니도 이제 더 협박을 가하기가 과분하다고 여겼던지 슬그머니 기름통을 내려가지고 꽁무니를 빼고있었다. <돈....돈을 내!> 흥수는 헐떡 거리며 간신히 웨쳤다.두 망나니는 손을 휘젓고는 유유히 걸어갔다. 흥수는 용수철에 튕기듯 몸을 일으켜가지고 엎어지듯 그들을 쫓아갔다. <돈......삯전 내슈!> 흥수는 키 큰 청년의 점퍼깃을 꽉 잡았다. <못 놓겠어?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물러가라구.> <이런 법이 어디 있어유? 남 숱한 고생 시키구.> <정말 이러기여?> <사정 봐 주슈. 제발 ....이렇게 빌어유>. 흥수는 급기야 두 손을 비비면서 허리를 굽신거렸다.역시 자기의 그런 꼴을 안해와 아이들이 모르고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때 다부지게 생긴 망나니의 주먹이 번개같이 흥수의 볼따귀를 강타했다. 흥수는 눈깜빡할 사이에 허수아비처럼 저쪽에 나가 구겨박혔다. <개새끼들!> 미구하여 흥수는 울음소리 같은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가지고 허둥거리며 돌멩이들을 찾아 쥐였고 마치 생사결단이라도 낼듯이 그걸 연거퍼 뿌려던지고있었다 그것은 흡사 상급생한테 얻어맞은 나 어린 소학생의승산 없는 무모한 반항과도 같은 그런 것이였다 .그런 반항의 결과는 상대방의 더욱 란폭한 야성을 유발시켰다 .흥수는 연속 들어오는 발길에 비명을 질러대다가 버러지처럼 늘어져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땅에 코를 틀어박고 죽은 듯이 엎드려있던 흥수는 꿈틀 미동을 했다 이윽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고 또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옆구리가 퀭기고 척추에 무서운 통증이 왔다 .얼굴이 온통 얼얼하고 뜨겁게 달아오르고있었다. 흥수는 간신히 걸음을 옮겨 삼륜차께로 걸어갔다. 삼륜차는 이미 볼품없이 망가져있었다. 바퀴 세개가 떡쇠처럼 휘여져있었고 바퀴살들이 엉망이 돼있었다. 삼륜차 적재함의 유일한 구조물인 널판대기는 모조리 뽑혀서 사방에 뿌려졌고 자전거와 밀차를 련결시키는 쇠막대기도 보이지 않았다 .넋빠진 듯이 멍하니 서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흥수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갑자기 삼륜차를 오른발로 콱콱 두번 밟아주었다. 그리고는 휘칠거리며 언덕배기를 내려가기 시작했다.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11선 뻐스종점 정류소에는 마지막 뻐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흥수는 별 생각 없이 뻐스에 올랐다. 차장 처녀를 보는 순간에 그는 점심에 호주머니의 잔돈을 다 털어서 구운 고구마를 사먹었다는 생각을 했다. 행여나 하고 호주머니마다 다시 손을 넣어봤지만 번번히 빈손이였다. 흥수는 슬그머니 뻐스에서 내렸다. 표를 사지 않았다가 차장 처녀의 수모를 받을 일으 생각하니 더럭 겁이 났던것이다. 종철이네 <만원식당>까지는 퍼그나 먼 거리였지만 흥수는 인행도를 따라 고적하게 걷기 시작했다. 황홀하고도 신비스런 밤도시의 일상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었다.구석구석 절진해있는 어둠의 장막속에 헤드라이드 불빛을 란무시키면서 흘러오고 흘러가고 있는 숱한 차량들 경주라도 하듯이 줄지어 달리는 자전거 행렬, 화장냄새를 짙게 풍기면서 어디론가 즐겁게 걸어가고 있는 녀인들 간단없이 명멸하는 발갛고 파란 네온등 간판과 오색빛갈을 간단없이 창문에 뿌려던지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도장으의 오색등, 귀가 멍멍해오는 온갖 잡다한 소음들.....이 도시는 밤에도 생기와 환락에 차넘쳐있다고 흥수는 생각을 했다. 오로지 자기 한몸만을 그 속에 용해시켜주고 포용해주기를 거부하면서 도시는 무서운 배타성을 가지고 곧바로 흥수의 몸과 마음 밖에 존재해 있는것이였다. 흥수는 루추한 행색의 거지 꼴이 돼가지고 거리를 걷고있는 자신이 무척 가련하게 보여지고 있는 것이였다.버러지 같이 천하고 값없는 인생이 곧바로 자기, 흥수라 여겨졌다. 흥수는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마침내 <만원식당>에 당도하였다. 슬며시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까 손님 몇몇이 한상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을 뿐 식당안은 퍽 조용한것 같았다.흥수는 문앞에서 주춤 주춤거리다가 조심스레 식당안에 들어섰다. 계산대 앞에서 돋보기를 걸고 한가로이 주판을 튕기고 있는 종철이의 모습이 금방 보였다. 흥수는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서슴서슴 계산대 앞까지 다가가서 말없 이 종철이가 먼저 자기를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이윽고 무심히 내다보던 종철이의 두 눈에 놀람이 불?처럼 일었다. <어, 흥수구만.....아니, 어떻게 된거요?> 돋보기를 벗으며 종철이는 두 눈을 놀랍게 확대시켜 가지고 흥수를 뜯어보고있었다. 흥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떨어뜨리며 외면을 했다. 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어오른 얼굴이 금세 격렬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한고향 사람을 만나자 망나니들 한테 당했던 수모가 참을수 없어져서 걷잡을수 없이 설음이 쏟아지고 있는것이였다. 종철이가 다급히 나와서 재삼 물었으나 흥수는 말은 못하고 더욱 서럽게 울기만 했다. 온통 흙투성이가 된, 잔뜩 구겨진 검정바지와 낡고 해진 검은 곤색 등산복을 입고있는 체소한 흥수는 꼭 마치 조그마한 아이 같아보였다. <아이, 어쩌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종철이의 안해도 몹시 놀란다 . 손님들이 있는지라 종철이는 흥수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어디서 봉변을 당했구만. 도대체 어 떻게 된 판이우?> <짐을 실었는데.... 삯전 내라니까 그놈들이 때렸시유.> <어떤 놈들이였게?> <청년아이 둘이였시우.> 생각할수록 분하기만 해서 다시금 헉헉 흐느꼈다. <그럼 저녁 식사도 못했구만. 여보, 거좀....> 종철이가 암시하자 그의 안해는 식당칸으로 나가더니 여러가지 볶음채에다 술을 가지고 들어와서 재빠르게 풍성한 주안상을 차려놓았다. <시장하시겠어요. 어서 드세요. 아이, 어쩌면 저렇게!...> 하고 또 한번 놀램을 표시하고는 식당칸으로 나갔다. <자, 천천히 들면서 얘기하자구.> 종철이는 술을 조심스레 따라놓고 따뜻하게 권했다.흥수는 급기야 눈물을 훔치고서 술상에 마주앉았다.종철이 내외의 인정에 만신창이 되였던 흥수의 마음이 뜨겁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흥수는 첫 잔을 쭉 굽을 내면서 8년 전의 일,말하자면 종철이한테서 첫 대접을 받고서 우습강스럽게 술 주정을 부렸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흥수는 얼굴이 거꾸로 비끼는 술잔속에다 종철이 내외의 <력사적인 얼굴>을 번갈아 떠올리면서 의미심장한 울분의 술을 연속 마셨던것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흥수는 유리잔에 찰찰 넘치는 맑은 술속에 짓궂게 떠오르는 자기의 얼굴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생기에 찬 이 도시의 삶의 현장에서 고아처럼 소외되여있는 꾀죄죄하고 누죽이 든 자신의 몰골이 자꾸만 또렷해오는 것이였다. 그것은 이 도시의 시간과 공간속에 서럽게 투영이 되여있을 한 밑바닥 인생의 이미지였다 .흥수는 자기의 그런 못난 꼴이 보기 싫어서. 보고 있기가 슬퍼서 그걸 깡그리 잊고싶어서 부어주는대로 연속 술잔을 비워버렸다. <아니 , 빈속인데 천천히 드우. 안주를 많이 집으라니까.> 흥수의 전에 없던 거동을 지켜보고 있던 종철이가 걱정스럽게 만류했다.그렇지만 흥수는 또 몇잔의 소낙술을 했다. 그제야 흥수는 큰 숨을 훌- 내쉬고 나서 안주를 집었다. 머리를 왼?쪽으로 기우뚱 드리우고 주안상을 응시하고 있다가 <형님, 난 가겠시유......가겠시유> <술상에 앉자마자 무슨 소리우? 가도 식사나 하고 가야지.> <가겠시유....가겠시유!> <아직 여덟시도 안됐는데 천천히 마시면서 이야기나 하자니 까. 한 시내 안이라두 어디 자주 만나게 되우?> <가겠시유....가겠시유.> 흥수는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기라도 하듯이 기우뚱 드리운 머리를 끄덕끄덕 거리면서 연신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는대로 종철이는 그 말의 속뜻을 파악 못한 채 흥수를 만류하느라고 열성을 식히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기묘하고도 우습강스러운 재담 같은 것으로 혹은 이중창같은 것으로 되여지고 있었다 워낙 흥수가 종철이네 식당을 찾아가려고 목적했던것은 1200원의 지페를 돌려쓰려는 것이였지만 지금 흥수는 그걸 까맣게 잊고있었다. 잊었다기보다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은 언녕 체념이 되여 있었다. 언덕배기 위에서 볼꼴없이 망가져버린 삼륜차를 건져가지고 올 대신에 도리여 발로 콱콱 밟아주던 그 순간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자기의 삶에 대한 그 어떤 새로운 주장과 결단이 일어서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흥수는 오늘 밤의 이 풍성한 주안상은 종철이한테서 받는 마지막 대접이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리고 이 도시에서의 최후의 만찬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술상에 마주앉았던 흥수였기에 그의 피끓는 생리는 무모한 폭음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였다. <혀, 형님, 오늘 밤 실컷 마시겠시유. 우리 같은 값없는 놈들 별것 있어유? 나...마시겠시유.> 흥수는 술병을 가져다가 저절로 부어서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쭉_찌웠다 두 눈동자가 어느새 주독에 걔걔 풀려있었고 꼬부라지는 혀를 주체못하고 있었다. <아니, 안되겠소. 오늘 밤 기분이 좋지 않는 것 같은데 이럴 때 자칫하면 술에 낭패를 본다니까. 어서 식사나 하우.> 종철이는 술병을 빼앗으며 안해한테 국밥을 들여오라고 손짓을 했다. <일없시유, 거 걱정마시우,언제 또 형님과 이렇게 술 마시겠시유. 우리....통쾌히 마셔봅시다유.> <그럼 딱 한잔이요. 그담엔 안되우.> 종철이는 술병을 들고 흥수에게 다짐을 약속하는 눈길을 보내였다. 흥수는 ?하니 종철이를 노려보더니만 헤헤 바보처럼 웃었다. <좋아유, 딱 한잔.........> 종철이와 잔을 마주치고 또 한잔 술을 비워버린 흥수는 들어온 국밥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한식경이나 그러고 앉아있던 흥수는 <혀, 형님, 그 술병 날 주시우. 집에 갖구 가서 해장술 하겠시유. 그, 그럼 않되우? > <다른것으로 보내지.꼭 내일아침에 마셔야 하우.> 종철이는 뚜껑도 떼지 않은 수수술 한 병을 흥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흥수는 드디어 몸을 일으켜가지고 비틀거리며 방을 나가고 있었다. 종철이가 식사나 하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흥수는 쇠코처럼 끈질긴 고집을 부리는것이여서 종철이는 부축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택시 잡아줄테니까 좀 기다리우.> <택시? 흐흐흐........그런 호강 싫어유. 흥수가 언제 그런 펄자 타고 났어유?> 얼마후 흥수는 어득시그레한 골목길을 걷고있었다. 우왕좌왕 비칠거리다가도 잠간 선 자리에서 흔들흔들 가까스로 몸을 가누면서 꿀럭꿀럭 병나발을 불었다. 그리고는 끄덕끄덕 조으는듯 하다가도 비틀거리며 행보를 이어가곤 했다. <난 가겠어. 간다능기여! 누가 겁낼줄 알아?> 흥수의 입에서는 연속 이런 언어가 지껄여지고 있었다. 그는 녹두알만해진 세상앞에서 대담무쌍해지고 있었고 누군가와 집털이라도 하고싶은 무척 반항적인 충동속에 온 몸이 투척이 되여있었다. 갑자기 강렬한 헤드라이트빛이 하얗게 육박해 왔다 뒤미처 콘크리트바닥을 긁어대는듯한 금속성과 함께 흥수의 코 앞에서 차가 급정거를 했다. <죽고싶어?> 운전기사의 질타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공간을 찢었다. 흥수는 헤드라이트빛속에 문둥이 귀신처럼 현시되여 가지고 흔들거리다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꿀럭꿀럭 술병을 기울여댔다. 그리고는 가까스로 몸을 가누면서 이마밑으로 택시를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임잔 누구여? 어른두 몰라보는 놈 !비켜 길 비키란 말이여!> 만취한 흥수의 호령에 어이가 없었던지 운전기사는 택시?를 뒤로 후퇴시켰다가 재빠르게 흥수의 옆구리를 스치듯이 미끄러져 나갔다. 흥수는 허우적거리며 택시를 쫓아 가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놈들, 누가 무서워 할줄 알아? 겁쟁이 같은 놈들, 꼬리 빼는 꼴 보기 좋다. 옛다 이 놈들, 이별주나 마시란 말이여!> 흥수는 목청이 터져라고 웨쳐대며 택시를 향해 술병을 힘껏 뿌려던졌다.그것은 랭혹한 배타성을 지니고 정직하고 초라한 생명체를 고아처럼 소외시키고 있는 도시라는 화려한 표상속에 던지는 울분의 몸짓이였다. 흥수는 자꾸만 기울여지는 위태롭게 비칠거리다가 팬더곰 모형으로 만들어진 청결 통을 축구공처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팬더곰아가씨>의 목을 꼭 껴안은 채 이윽토록 미동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한폭의 우아하고 달콤한 애정도처럼 보이였다. <왝!...왝!.....> 갑자기 흥수는 체소한 몸뚱이를 요동치며 토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속 치달아올라서 거꾸로 쏟히는 신음소리를 동반한 격렬한 구토였다.그만큼 고통스러운 구토였던 까닭에 연속 토해내는 구토물은 마치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자의 설음과 울분인것처럼 느껴지고있었다. 열물까지 토해낸 흥수는 기진맥진해져 가지고 마침내 불볕아래 양배추모처럼 철저히 나부러져 버렸다 그는 <팬더곰아가씨>의 엉덩이 밑에 얼굴을 처박고 두눈을 감은채 갑자기 찾아든 육신과 령혼의 기적과도 같은 안식을 고즈넉이 누려가고있었다. 졸음이 억척같이 밀려들고 있었다. 흥수는 각일각 적멸의 심연으로 가물가물 꺼져가고있는, 한쪼각 깨여있는 정신의 광점을 붙잡고 집요하게 매달려있었다. ......고향 마을이 우렷이 떠오르고 있었다.기름진 농토에서 보탑을 잡고서 건드러지게 농부가를 부르는 흥수.......자기의 모습이 보이고있었다. (1990년 7월) [<연변일보 1990년 7월 X일 "해란강부간 登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