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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상권)
● 탄고의 바다 (丹後の海) 12-1
호소카와 후지타카, 코레토 미츠히데(惟任光秀: 아케치 미츠히데), 아케치 야헤이지, 그리고 타마코를 태운 나룻배는 지금 막 몬주지(文珠寺)의 뜰 앞을 떠난 참이다. 강변 일대는 깊은 갈대밭이다. 그 갈대밭을 벗어난 바다가 암반수처럼 맑고 깨끗하다.
“어머, 아름다워라.” 타마코는 배 위에서 지나가는 물밑을 보았다. 물밑은 고운 모래밭으로 작은 조개가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사이로 모래가 살짝 흔들린다. 4월의 햇살이 비쳐들고 빛 역시 흔들리고 있다.
“오타마는 배가 무섭지 않은 모양이구나.” 배는 아마노하시다테(天の橋立-일본3대名勝)를 오른쪽에 두고 정적 속에 미끄러져 간다. 아마노하시다테의 소나무 늘어선 길 너머로 보이는 요사(余佐)의 바다로 눈을 돌리고 있던 후지타카가 타마코에게 말을 건넸다. “예, 무섭지 않습니다.” 타마코가 수줍게 답했다.
“후지타카 도노, 오타마는 사카모토성에 있을 때 자주 뱃놀이를 하던 아이라오.” 라고 미츠히데는 사랑스럽다는 듯 타마코에게 시선을 쏟았다. 타마코가 시집간 이래, 미츠히데는 몇 번인가 쇼류지성을 방문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타마코를 눈앞에서 바라볼 여유는 없었다. 타마코가 지난해 장남 구마치요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달, 호소카와가는 노부나가로부터 단고국을 하사받아 미야즈宮津로 거처를 옮겼다.
줄곧 단고는 아시카가足利 시대 240년간 잇시키(一色) 씨가 슈고직(守護職)을 맡아온 곳이었다. 3대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 때부터 잇시키 씨는 단고국을 하사받았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15대 요시아키를 추방했고 아시카가 시대는 끝이 났다.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추방함과 동시에 잇시키 씨를 자신의 위세에 복종시키려 했다. 3년 전인 텐쇼 6년, 노부나가의 명을 받은 호소카와 후지타카 부자는 단고 평정에 힘을 쏟았다.
우선 단고의 중심에 있는 야하타산에 보루를 쌓은 후지타카는 일시키 씨의 호웅(豪雄)인 오구라 하리마노카미(小倉播磨守) 일족이 지키는 오구라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명색이 240년 동안 이어진 슈고직의 잇시키 씨였다. 잇시키 씨에게는 ‘85인 중(八十五人衆)’이라 불리는 용맹한 자들이 단고국의 요충지마다 보루를 쌓고 있었다.
게다가 민심도 잇시키 씨에게 복종하고 있어, 노부나가의 부하인 호소카와가에는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오구라성 공략은 호소카와가의 참패였다. 재차 공격할 때에는 미츠히데도 도왔으나 마찬가지로 패했다. 겨우 후지타카는 장기인 정보 수집을 통해 교묘하게 오구라성의 수원(水源)을 찾아내어, 이를 끊어냄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타다오키와 함께 단고에 입국하여 후지타카는 야하타산성에, 타다오키는 오쿠보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단고 240년의 태평한 꿈을 깨뜨린 호소카와가에 잇시키 씨가 진심으로 복종할 리는 없었다.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이라 해서 결코 한가롭게 뱃놀이나 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때로는 이러한 한때를 장수들은 즐겼다.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미야즈에 와서 처음으로 다회를 연 것이 어제였고, 미츠히데는 계속해서 체류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타다오키가 장인인 미츠히데를 아마노하시다테로 안내해야 했으나, 타다오키는 어제 다회 주최자로서의 피로를 핑계로 타마코를 접대역으로 돌렸다. 그것은 오랜만에 부녀가 느긋하게 즐기도록 배려한 타다오키의 마음씨였다.
타마코가 사카모토성에 있을 때 자주 뱃놀이를 했다는 말을 들은 후지타카는 부채로 가볍게 무릎을 치며, “오호, 비와호에서 말이군요. 하지만 그 호수는 도적이 출몰하기로 이름난 위험한 호수이지요.” “그렇기에 성에서 멀리는 노를 저어 나가지 못하게 한 모양입니다만.”
“시아버님.” 타마코는 후지타카를 보며, “그 비와호는 호수이긴 해도 이 미야즈의 바다보다 훨씬 넓고 거칠었습니다.”
“참으로 그렇다.” 미츠히데와 후지타카는 이구동성으로 말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새들의 그림자가 조용한 못과도 같은 바다에 비쳤다가 사라졌다. 그 물밑으로 연두색의 부드러운 수초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머나!” 타마코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야헤이지가, “무엇이 보이셨습니까?” “보세요, 하얀 별 같은 모양의…”
야헤이지는 물을 투과해 보며, “아아, 저것은 불가사리입니다. 불가사리가 저렇게 조개 위에 덮쳐서 숨을 막히게 해 죽이고는 살을 먹는다고 합니다.”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타마코는 불가사리 일곱 여덟 개가 물밑에 붙어 있는 것을 지켜본 채, “어머나…” 하고 숨을 죽였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천진난만함이 남아 있다. 타마코는 이해에 장녀 오초(お長)를 낳았었다.
“후지타카 도노, 이 곳에 부임하여 시(歌)를 지어 보내셨더군요?” 미츠히데가 물었다. 지난해 8월 지역에 들어오자마자 후지타카는 아마노하시다테를 읊은 시 3수를 미츠히데에게 보냈었다.
--- 단고 입국하여 하시다테를 보러 가서 그 옛날 맺었던 신들의 시대까지 마음 두고 생각하노라, 천상의 다리 아마노하시다테 (丹後入国の刻 橋立をみにまかりて そのかみに契り初めつる神代まで かけてぞ思ふ天の橋立) ㅡ 옛날에는 인연 맺은 두기둥의 신이여 지금도 썩지 아니하였네, 아마노하시다테 (いにしへに契りし神のふた柱くち いまも朽せぬあまのはし立) ㅡ 요사의 포구(미야즈만)에서 요사의 포구 소나무 속 맑은 샘물 이곳이 도읍이라면 하늘의 신도 물을 길어 마시리 (余佐のうら(宮津湾)にて. 余佐のうら松の中なる磯清水 みやこなりせば天も汲みみん)
위의 3수가 그것이었다. 아마노하시다테는 이자나기 미고토와 이자나미 미고토가 하늘로 오르는 구름다리였다. 어느 날, 두 신은 아마노하시다테를 지나 하늘로 올라가 소곤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놀이에 푹 빠졌다가 문득 깨달았을 때는 이미 아마노하시다테가 바다 위에 누워 있었다.그래서 이자나기, 이자나미의 미고토는 끝내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전설을 후지타카는 시에 담아 읊은 것이었다.
“이것은 어떠할지요.” 후지타카는 허리의 화살통에서 꺼낸 종이에 쓱쓱 한 수를 적었다.
ㅡ 두 신께서 돌아오시지 않는 하시다테에서
노닐 나의 모습은 단고의 수장이라네 (ふた柱帰りきまさぬ橋立に 遊ばむ吾は丹後の長ぞおさ) 미츠히데는 나직히 읽어 보다가, “훌륭하오!” 하고 말하며 후지타카를 보았다. 미츠히데와 후지타카의 시선이 얽힌 채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의 ‘두 신(ふた柱)’이 잇시키(一色)씨를 가리키고 있음을 미츠히데는 재빨리 눈치챈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시 자체를 칭찬한 것은 아니었다. 시로서는 평소의 후지타카답지 않게 너무 강한 면이 있었다. 미츠히데는 후지타카의 기개에 감복한 것이었다. 잇시키 씨에게 여전히 애를 먹고 있는 후지타카를 위해 사실 미츠히데는 다회를 겸해 찾아온 것이었다.
잇시키의 당주 요시아리(義有)에게 후지타카의 딸 이야(伊也)를 다음 달 시집보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 것은 미츠히데였다. 그 이야기도 잘 타결되어 다음 달 이야는 잇시키가로 시집가게 되었다. 그 마지막 조율을 위해 미츠히데는 내일 잇시키가에 갈 예정이었다. “이것으로 무사히 평정되면 좋을 텐데 말이오.” “그렇소이다만.”
후지타카는 보기 드물게 눈살을 찌푸리며,
“사쿠마(佐久間信盛) 도노가 고야산(高野山)으로 쫓겨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구려, 코레토 도노.” “아니오, 8월이 되어야 1년이오.” 미츠히데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코레토 도노. 나는 말이오, 사쿠마 도노가 쫓겨났을 때만큼 가슴이 울렁거린 적이 없었소.”
타마코와 야헤이지가 불가사리를 바라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야헤이지는 타마코의 언니인 린을 아내로 맞아, 이 미야즈에 가까운 후쿠치야마(福知山)성의 성주가 되어 있다.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소곤소곤 낮아졌으므로, 타마코는 야헤이지에게 린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사쿠마 도노 부자의 추방 소식을 듣고는 누구든 같은 심정이었소. 명색이 사쿠마 노부모리 (佐久間信盛) 도노는 주군(노부나가)의 전성 시절부터의 중신이오. 후지타카 도노나 나 같은 신참이 아니란 말이오. 그 노부모리 도노를 특별히 쫓겨날 만한 실책도 없는데 고야산으로 입은 옷 그대로 추방했으니 말이오.” 사공은 심복 가신이었지만, 미츠히데는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노부나가는 지난해 8월 혼간지를 항복시키자마자 즉시 사쿠마 부자를 추방했다. 노부나가 장수들의 1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이어서 아버지 노부히데(信秀) 대부터의 가신인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그리고 그 아래에 미츠히데(光秀), 히데요시(秀吉),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타키가와 카즈마스(滝川一益) 등이 있었다.
이 높은 지위에 있던 노부모리가 어제와 달리 순식간에 깃털이 다 빠진 방랑자 신세가 된 것이다. 게다가 딱히 실패한 일도 없었고, 당연히 딴마음을 품은 것도 아니었다. 노부나가는 그 절함장(折檻状-징계서)에, ‘본간지를 오사카에서 공격할 때의 이 5년간 특별한 공적이 없다. 단바국에서의 미츠히데의 활약은 천하에 노부나가의 위세를 나타내어 체면을 세워주었다. 히데요시의 활약도 마찬가지로 수개 국을 하사받아 비견할 자가 없다. 운운…’ 하며, 우선 공적이 없다는 것을 추방의 이유로 꼽았다.
물론 혼간지(本願寺)는 강적이었다. 그러나 노부모리는 미카와(三河), 오와리(尾張), 오미(近江), 기이(紀伊), 카와치(河内), 이즈미(和泉), 야마토(大和) 등 7개 국의 무사를 자신의 부하 외에도 노부나가로부터 제공받고 있었다. 이 두 힘을 결집했다면 노부모리가 더욱 눈부신 활약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노부모리는 그저 견고한 요새에 머물며 적을 감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구두쇠라 돈에 인색하여 노부나가에게 하사받은 토지를 돈으로 바꿨다. 부하에게 영지를 더 주지도 않고 부하의 수를 늘리지도 않았다. 노부나가의 시대가 된 지 이미 30년, 그저 돈만 모을 뿐 어떤 활약도 하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이렇게 분노한 것이었다. 또한 노부나가는 30년 전 동생인 노부유키를 옹립하려 했던 가로 하야시 미치카츠도 추방했다.
30년 전 하야시의 행태를 노부나가는 이제야 끄집어낸 것이었다. 이 두 사건은 어떤 장수들이라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노부나가는 언제, 무슨 이유로 부하를 추방할지 모르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ㅡ두 신께서 돌아오시지 않는 하시다테에서 노닐 나의 모습은 단고의 수장이라네ㅡ 라고 읊고 싶은 후지타카의 심정을 미츠히데는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잇시키 씨는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후지타카는 언제 사쿠마 노부모리처럼 추방당할지 몰라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은 미츠히데 쪽이 더 강했다. 확실히 단바국 평정으로 노부나가에게 치하 문서를 받기는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천하를 평정한 후에, 예전에 쇼군 아시카가 요시시아키를 옹립했던 자신을 요시아키와 마찬가지로 추방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쇼군 요시시아키를 노부나가에게 소개해 준 것이 당시에는 출세의 길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지위를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불안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사쿠마나 하야시의 추방 이래 문득문득 느끼는 불안이었다. 비단 미츠히데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장수들이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며 이 일, 저 일을 죄스럽게 여기며 덜덜 떨고 있는 것이다. 사쿠마 노부모리를 추방함으로써 부하들이 이렇게 떨 것을 노부나가는 처음부터 계산에 넣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영주들이 그 일 이래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배는 하시다테 기슭의 한 곳에 도달했다. 먼저 야헤이지가 뛰어내렸고 미츠히데가 내렸다. 후지타카에 이어 내리는 타마코의 손을 미츠히데가 잡았다. 타마코는 그 따스한 아버지의 손에서 육신의 따스함을 느꼈다. 하얀 모래밭의 감촉이 발에 부드럽다. 기슭을 때리는 파도 소리조차 없는 조용한 요사의 바다를 네 사람은 바라보았다. “저 근처가 오쿠보로군요.” “네, 그리고 저쪽이 야하타입니다.”
미츠히데와 타마코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었다. “어머님께도 이 하시다테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음… 히로는 하시다테보다 네 얼굴이 보고 싶을 게다.” 타마코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곰보 자국이 있는 어머니의 피부가 말로 다 할 수 없이 그립다. ‘만약 이 곰보 자국만 없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셨을까’ 하고 어린 시절에는 자주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 곰보 자국 덕분에 깊은 맛마저 느껴지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겨진다. “아버님께서는 언제까지 체류하시옵니까?” “음, 아직 2~3일은 더 있을 게다. 사토무라 쇼하(里村紹巴)와도 또 여기서 노닐기로 되어 있어서 말이다.” “어머나, 참 기쁩니다.” “오린도 행복해졌다. 모두 언제까지나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순진하게 타마코는 기뻐했다.
오린이 아라키가로 시집갔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아라키 무라시게의 반란으로 인연이 끊어졌다. 그 오린이 겨우 야헤이지와 함께 후쿠치야마성에 살게는 되었지만, 그 행복도 과연 앞으로 몇 년이나 갈지 미츠히데는 마음에 걸렸다. 지금 아버지의 불과 2~3일 체류를 아이처럼 기뻐하고 있는 타마코라 해도, 잇시키 일족이 모두 반격해 오는 날이 오면 언제 이 아름다운 미야즈의 바다에서 목숨을 다할지 모른다.
“참으로 언제까지나 행복하고 싶습니다.” 타마코는 할머니의 비참한 죽음을 생각했다. 할머니는 타마코가 시집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만약 내 결혼이 1년 늦어졌다면 할머니가 볼모가 되지 않고 내가 볼모가 되었겠지. 그렇다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타마코는 새삼 그렇게 생각하며 할머니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단고 평정은 서두르고 싶구나.” 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돌아보니 후지타카와 야헤이지가 나란히 서 있는 두 그루의 부부 소나무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츠히데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오타마, 잇시키 씨와의 혼담은 들었겠지?” “네, 들었습니다. 아직 열넷에 시집가는 이야 님이 안타까워서…” “…음.” “아버님.” 타마코는 걸음을 멈췄다. “무엇이냐?” “이야 님의 결혼은 결국 정략 때문이겠지요?”
“…오타마,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잇시키 요시아리의 짝은 이 단고에 호소카와의 딸밖에 없는 것이다.” “어째서입니까?” “가문이 어울리지 않느냐.” 타마코는 거기에 답하지 않고,
“이야 님도 결국 신부라기보다 볼모라고 아뢰는 편이…” “오타마, 말을 삼가라. 여전하구나, 너는.” 꾸짖으면서도 미츠히데는 타마코의 이러한 성격을 사랑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강하게 말하는 방식은 자신은 하지 못한다. 솔직하게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이 깨끗하다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아버님. 타마는 지금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 “왜 여성은 슬프게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이야 님도, 언니도, 할머니도…” “너도 슬프게 살고 있단 말이냐?” 미츠히데는 화제를 돌렸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네 어머니도, 호소카와 도노의 부인도 행복하단다. 여자가 불행하기만 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아버님.” 타마코는 미츠히데를 올려다보며, “아버님은 변하셨습니다.” 하고 그 맑은 눈으로 똑바로 보았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어딘가가 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지금 타마의 물음을 돌리셨습니다. 이야 님과 잇시키 도노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계신 것은 아버님이시라고…” “음.”
“어째서입니까? 이야 님은… 부모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을 텐데…” “오타마, 이 아비가 좋을 것이라 생각해서 하는 일이다. 아비를 믿어라.” “……” “아니면 너는 아비를 믿지 못하겠느냐?” 질문을 받고 타마코는 시선을 바다로 던졌다. “믿지 못하겠느냐, 오타마?” “아닙니다. 아버님만큼 믿을 수 있는 분은 달리 없습니다. 저는 아버님을 타다오키 도노보다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타마코의 진심이었다. 어릴 때부터 타마코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더없이 흠모하고 존경해 왔다. 타다오키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시집온 지 3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타다오키가 하는 일에 무조건 따르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때때로 타다오키의 언행을 비판하는 마음이 들 때가 타마코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미츠히데는 다르다. 아버지라는 인간이 하는 일에는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안 될 말이지. 타다오키 도노를 첫째로 믿어야지… 뭐, 어쨌든 이 아비를 믿어준다는 뜻이겠지?” “네. …하지만.” “하지만? 무엇이냐?” “이번 이야 님의 혼례만큼은 행복하게 진행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냐. 뭐, 여자인 네게는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오타마, 방금 말했듯이 이것도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는 혼담이다. 아비를 믿거라.”
타마코는 미츠히데를 보았다. 더없이 사려 깊어 보이는 눈빛, 성실해 보이는 그 입술, 이 아버지의 마음 어디에도 거짓은 없다고 타마코는 생각했다. 뒤쪽에서 무언가 야헤이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후지타카가 다가왔다. “코레토 도노, 야헤이지 도노는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더 훌륭한 사위군요.”
“이거 황송합니다.” “참으로 이 야헤이지 도노가 이 후쿠치야마에 계신다면 저희도 안심이라 할 수 있지요.” “이보게, 야헤이지,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되네.” 미츠히데가 말하고는 후지타카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타마코는 그 두 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버지인 미츠히데도, 시아버지인 후지타카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의 결혼을 이 두 아버지가 결정했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납득이 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두 아버지조차 무언가 믿기 어렵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번 이야의 결혼만큼은 묘하게 불안한 것이다. 저 아직 열네 살의 천진난만한 이야의 앞날에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왜 그러십니까?” 야헤이지가 물었다. “별일 아닙니다… 아, 야헤이지 님, 배가 서너 척 떠 있네요. 무엇을 하는 배일까요?” 굵은 소나무 숲 너머로 떠 있는 배가 보였다. “아, 저것은 조개를 잡고 있는 것이겠지요. …조개라고 하니 사카모토성의 그 하츠노스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하츠노스케요? 당연히 알고 있지요. 언젠가는 하츠노스케의 꿈을 꾸고 그리워했었습니다.”
이 말을 하츠노스케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야헤이지는 말했다. “그 하츠노스케는 재첩을 잡는 데 아주 뛰어난 솜씨가 있어서…” “그러고 보니 어머님께서 간을 앓으셨을 때 매일 재첩을 잡아다 준 것이 하츠노스케였습니다. 하츠노스케는 이제 장가를 들었습니까?”
“아니요, 평생 장가가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니더군요.” “그것은 또 어째서…” 그 타마코의 표정을 바라보며 야헤이지는, “하츠노스케는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장가를 가지 않는다고…” “어머, 그렇다면 예전의 야헤이지 님과 같지 않습니까.” 타마코는 웃으며, “언니가 행복해져서 기쁩니다. 조만간 한번 이 아마노하시다테에 언니를 데려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츠노스케의 마음 따위는 타마코에게 있어 꿈에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린도 매우 기뻐하겠지요. 어라, 방금 소리는…” 휘파람새가 울었다. “참으로… 얼마나 좋은 소리인지요.” 두 사람이 휘파람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인지 백 칸(약 180m) 떨어진 곳에서 재첩을 잡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뜻밖에 가까이 들려왔다.
“호소카와 따위,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인지도 모르는 놈들에게… 원래 잇시키 님의 나라였어, 이 단고는.” “그렇고말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것을, 전쟁이나 걸어오고 말이야…” 타마코는 헉 하고 숨을 죽였다. 증오에 찬 그 목소리를 들으며, 조금 전 보았던 조개 위에 딱 붙어 숨을 막히게 하던 불가사리가 다름 아닌 호소카와가처럼 타마코에게는 느껴졌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상권)
● 탄고의 바다 (丹後の海) 12-2
유월의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이다. 스르륵 잠들어 있는 오초를 안고 타마코는 오쿠보성의 회랑에 서서, 약간 멀리 좌측으로 이어지는 아마노하시다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미츠히데와 그 아마노하시다테에서 노닐던 날로부터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타마코의 검고 윤기 나는 머리채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미풍이 지나간다.
지난달, 타다오키의 여동생 이야伊也는 잇시키 요시아리(一色義有)에게 시집갔다. 하얀 결혼복장 차림의 신부 모습이 가련할 정도로 이야를 어린아이처럼 보이게 했었다. 하지만 이야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그 가느다란 손을 모아 타마코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요시아리와 사이좋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편지가 바로 얼마 전 이야의 아버지인 후지타카에게 도착했다.
“그 사내는 호방하고 성품이 좋은 사내니까 말이다. 이야를 아껴주겠지.” 후지타카가 그렇게 타다오키에게 말하며 칭찬하는 것을 타마코도 들었다. 하지만 타다오키는 입을 일자(一字)로 다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타다오키의 표정을 떠올리며 타마코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안으로 감싸인 바다인 요사의 바다는 푸르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흰 파도 하나 일지 않는 이 바다를 바라보며 타마코는 지금 왜인지 불안해졌다. 본래 바다가 이렇게 정적일 리가 없다. 조용해 보여도 언제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기분이 든다. 이야의 행복해 보이는 편지도 결국은 이 요사의 바다와 닮은 불안을 안겨주는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소? 오타마.” 갑자기 타다오키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타마코는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바다라.” 아이를 낳고 나서 미소가 한층 더 품위 있어졌다고 생각하며, 타다오키는 타마코와 나란히 섰다. 자신의 아내이지만 때때로 흠칫 놀랄 정도로 아름답다. 타다오키에게는 그것이 자랑 매우스럽기도 하고, 또한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타마코가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히오키의 백사장이 오늘은 가깝게 보이는구려.” “참으로 그러하네요.” 맞은편의 히오키 백사장은 아마노하시다테와 땅으로 이어져 있다. “방금 영주님께서 히오키의 백사장이라 말씀하셨을 때, 저에게는 시오키(仕置き-처형)의 백사장으로 들렸습니다.” “시오키(처형)의 백사장이라고?”
“노부나가 사마의 영지라면 그런 백사장도 여럿 있을 법하여…” “이 사람! 말을 삼가시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늘 타다오키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즈치(安土)에서의 처형은 너무나 잔혹하옵니다.” “음. 하지만 천하를 쥐고 계신 분이다. 몇 번이고 말했듯 엄격함도 예사 사람과 같을 수는 없겠지.” 오초의 사랑스러운 자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말한다.
타다오키는 노부나가에게 눈도장을 받고 있다. 이곳 단고국도 노부나가는 아버지 후지타카가 아니라 “타다오키에게 주노라” 하고 말했다. 이에 타다오키는 노부나가의 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은 탓인지 말투가 온화하다.
타다오키도 내심 요즘 노부나가가 묘하게 초조해하며 엄격함도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방금 타마코가 말한 3월의 사건은 4월에 미츠히데가 왔을 때도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지만, 그것은 참으로 엄격하다기보다 이상하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이해 텐쇼 9년(1581년) 3월 10일의 일이었다. 노부나가는 아즈치安土성을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치쿠부시마(竹生島)로 놀러 나갔다. 비와호의 치쿠부시마는 아즈치에서 육로 10리(40km), 수로 5리(20km) 거리의 장소에 있었다. 누구나 치쿠부시마 근처인 히데요시의 성, 나가하마성(長浜城)에 하룻밤 묵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치성의 시녀들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거나 거리 구경을 하러 외출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부나가는 그날로 돌아왔던 것이다. 시녀들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분노한 노부나가는 외출했던 시녀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중재하려던 절의 스님까지 죽여버렸다. 이를 전해 들은 다이묘들은 자신에게도 언제 어떤 노부나가의 분노가 닥칠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왜 죽여야만 했을까요. 엄하게 꾸짖기만 하셨어도 일이 끝났을 텐데요.” 라며 타마코는 탄식했다.
“우후 도노(노부나가)는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을 싫어하신다오.” “하지만 영주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사이에 느긋하게 외출을 해보고 싶어지는 것도 인정이 아니옵니까?” “아니오, 노부나가 도노는 항상 누구인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까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신다오. 겉으로는 충성을 다해도 언제 헛된 마음을 품을지 모르는 장수들을 향한, 저것은 위협일 게요. 나는 요즘 들어 특히 그렇게 생각한다오.”
“어머나! …하지만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되면 도리어 사람의 마음이 떠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이란 어차피 정을 베풀어보았자 정으로 보답하지 않는 법이오. 공포심에 호소하는 것이 지름길일지도 모르지.” “도노! 도노께서는 진정 그리 생각하십니까? 인간이란 정에 보답할 수 없는 존재란 말씀입니까?”
바다에 던져두었던 시선을 타마코는 남편 타다오키에게 돌렸다. “상대 나름이기도 하겠지… 어쨌든 우후 도노는 외출을 금지하고 나가셨던 거요. 명을 어긴 자는 시녀라 할지라도 용서할 수 없었던 거지.” “그렇다면 도노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노께서 부재중이실 때 시녀들이 절에 구경이라도 갔다면 역시 일도양단하시겠습니까?”
“때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 무의 길은 역시 무니까 말이오. 지금 나는 그대에게 코레토 도노의 편지를 보여주려던 참이었소.” 타다오키는 타마코를 재촉하여 서원으로 돌아갔다. “아버님의 편지 말씀이옵니까?” 화색이 돈 타마코는 얼굴을 빛내며 타다오키를 따랐다. 열다섯 평 남짓한 열린 서원으로 하얀 나비가 하늘하늘 지나갔다.
“음, 이것을 보시오. 이것도 결국은 무의 길이오. 그대의 아버지는 뛰어난 장수요.” 타다오키의 기분이 좋은 것은 미츠히데의 편지 덕분이었던가 하고 생각하며 타마코는 편지를 읽었다. 4월에 아마노하시다테에서 놀던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편지에는, ‘너희 부부의 사이좋은 모습과 구마치요, 오초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떠올리며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에 늦게나마 군규(軍規)를 정하였다. 타다오키 도노의 향후 행보에 참고가 될까 하여 적어 보내니 읽어보기 바란다.’ 하고 간단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타마코는 조금 더 어머니의 안부라도 적혀 있을까 생각했었기에 약간 실망했지만, 자신이 다음 글을 읽기를 즐거운 듯 지켜보는 타다오키를 보고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아케치가 군규(明智家軍規) 18조. 제1조, 진지에서는 대장, 참모, 전령 외의 자가 큰 소리를 내거나 잡담하는 것을 금한다.’ 라고 적혀 있었고, 제2조, 제3조에 이어 제4조에는,
‘행진은 먼저 병사를 앞에 내세우고, 이어 기마 장수가 그 뒤를 따를 것. 만일 병사보다 뒤처지는 기마 장수가 있다면 영지를 몰수하고 때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 제5조, 전투 중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사죄에 처한다. 전투 중 명령에는 응답할 것. 만약 이에 거역하는 자가 있다면 어떠한 공훈이 있더라도 처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라는 등의 엄격한 규율이 적혀 있다.
타마코는 그 행간에서 아버지의 격렬한 기백을 느꼈다.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현장이라는 엄숙함을 느꼈다. 그리고 아무리 엄격하다 한들 미리 이러한 규율을 정하는 아버지 미츠히데의 마음은 노부나가의 잔혹함, 무자비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타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군율과 군기를 만들 때 장수로서의 아버지 얼굴을 자신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일면을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츠히데의 서신에는 그 외에도 군역(軍役)에 관한 내용도 적혀 있었다.
마지막에는, ‘공이 없는 자는 무용지물의 으뜸이다. 이러한 군기를 혹자는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낭인의 신분에서 발탁되어 이러한 다이묘가 되었고, 노부나가 공으로부터 많은 병사를 위임받은 신분이 된 이상 단 한 명의 병사라 할지라도 용맹하게 싸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귀공 역시 발탁된 바가 마찬가지라 생각되는데 어떠한가. 부디 이 이상으로 무훈을 세워 명예를 올려주기를 바란다.’ 라는 뜻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사위인 타다오키에 대해 진정이 넘쳐나는 편지였다. “어떠시오. 그대의 아버지는 참으로 열심이시지 않소, 나도 장인어른께 뒤처질 수는 없지.” 타마코가 읽기를 마친 편지에 타다오키는 다시금 눈을 빛냈다. “흠, 군역은… 백 석인 자는 병사 6명을 낼 것인가. 오백 석 이상 육백 석 이내에서는 갑주 2인, 조마 2두, 조총 2정, 깃발 1본… 인가. 음, 과연,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사죄死罪라, 그럴 법하군, 그럴 법해.”
타다오키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빙긋 웃으며, “그대의 아버지인 장인어른도 명을 어긴 자는 사죄라 하셨소. 노부나가 도노의 명을 어긴 시녀가 사죄에 처해져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아닙니다. 아버님의 군기에는 ‘전투 중’ 명을 어긴 자라 되어 있습니다. 우후 사마의 그 경우는 전투 중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성 안에서의…”
“아니 아니, 오타마. 노부나가 공 정도의 분이 되면 전투 중이든 일상이든 명령의 무거움은 같은 법이오. 노부나가 사마는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실 정도이니까.” 타마코는 가볍게 웃었다. 비꼬는 듯한 미소였다. 신이라 자칭하는 노부나가가 울부짖는 시녀들을 차례차례 베어 넘기는 모습을 타마코는 가슴속에 그렸다.
“인간이 신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인간이 신인 법이오.” “노부나가 사마는 모든 것이 가능하십니까? 하늘을 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누구든 주군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것은 누구의 운명도 주군이 쥐고 계시기 때문이오. 주군에게는 망하게 하는 것도, 책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지.”
“설령 망하게 하는 것과 책망하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정을 베푸는 것,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한 분. 자신의 시녀조차 용서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옵니까. 결코 모든 것이 가능한 분은 아니옵니다.” “그대는…” 타다오키는 조금 기가 막히다는 듯 타마코를 보며, “어째서 그리 나에게 거역하는 것이오?”
“도노께 거역하려는 뜻은 없나이다. 노부나가 사마의 방식에 거역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됐소. 그대의 입담에는 내가 이길 수 없구려. 나도 규율을 정해야겠소. 아내는 남편에게 말대꾸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오.” 보기 드물게 타다오키가 농담을 했다. 이것은 참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 틀림없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고 어리둥절해하는 타마코에게, “사실은 말이오, 그대에게 또 하나 보여줄 것이 있소.” 하고 타다오키는 즐거운 듯 서원 선반의 문함(文箱)을 열었다.
그것은 구요(九曜) 문양이 박힌 검은 칠을 한 큰 문함으로,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일컬어지던 문함이었다. “어머나, 무엇입니까?” 타마코도 부드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요.” “어머나, 예뻐라… 이것은 카루타(歌留多-놀이용 카드)가 아니옵니까?” 두꺼운 종이에 금박을 입힌 부채꼴 모양의 카르타가 많이 문함에서 꺼내졌다.
“어떻소? 오타마.” 의기양양하게 타다오키는 타마코를 보았다. 타마코는 오초를 살며시 아래에 내려놓고, “정말 예쁘군요!” 타마코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중 하나를 손바닥에 올렸다. “이것은 대체 어느 분께서 하사하신…” “하사받은 것이 아니오. 사실은 말이지, 그대를 아내로 맞이했을 때부터 틈틈이 몰래 내가 만든 것이오.”
부끄러운 듯 웃는 남편의 얼굴을 타마코는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머나, 그렇다면… 이 금박도 도노께서?” “그래요, 내가 붙였소. 붙이는 법은 이전에 병풍 장인에게 배웠었지. 그대를 기쁘게 해주려고 시작한 것이 3년 전.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어 좀처럼 시간도 나지 않았지. 겨우 조금 전에 백 장을 완성했다오.” “도노!”
타마코의 하얀 뺨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뜻밖의 남편의 상냥함이었다. “과분하옵니다…” “그래, 기뻐해 주는가? 나도 기쁘구려. 그렇게나 기뻐해 줄 줄은 몰랐소.” 타마코는 한 장 한 장을 그 고운 손가락으로 살포시 집어 올리듯 들었다. 금박 위에 타다오키의 훌륭한 붓글씨로 백인일수(百人一首)가 적혀 있다.
너를 위해 아깝지 않던 목숨조차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었구나
함께 슬퍼하자꾸나, 산벚꽃이여
꽃 외에는 나를 알아주는 이 없구나
낮게 읽어 내려가며 타마코는 행복한 감정으로 채워져 갔다. 결혼 이래 3년, 타다오키는 상냥하다 싶으면 안달하고, 화가 났다 싶으면 어느새 격렬하게 애무하는 남편으로, 도무지 속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항상 무언가 변덕스럽게 대해지는 것 같아 자존심 강한 타마코는 내심 참기 힘든 적도 있었다.
무언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이 없는 쓸쓸함이 있었다. 그 쓸쓸함, 공허함이 결국은 타다오키에게 안기면서도 타카야마 우콘의 환영에 안기는 불륜한 생각으로 타마코를 이끌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타다오키가 직접 만든 우아한 카르타를 손에 쥐고 타마코의 마음은 부드럽게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아내인 자신을 기쁘게 해주려고 격렬한 전쟁 틈틈이 몰래 두꺼운 종이로 모양을 내고 금박을 붙이고 가느다란 글씨를 써 내려가는 타다오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평생 저의 보물로 삼겠습니다. 도노, 감사하나이다.” 깊숙이 두 손을 짚고 절을 하는 타마코를 타다오키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았다.
“참으로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었을 줄 아옵니다.” 타마코는 질리지도 않고 한 장 한 장 카르타를 바라보았다. 이 백 장을 3년이나 걸려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니 소홀히 여겨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타다오키 역시 타마코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비할 데 없는 미모의 여성이라는 생각은 처음 타마코를 본 이래 변함이 없었지만, 마음씨는 참으로 차가운 여자로 느껴졌었다. 여성답지 않게 사물에 비판적이고 남편인 타다오키가 하는 일과 말에 냉소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것이 지금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깊숙이 인사를 하고 백 장의 카르타 단 한 장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차례차례 흥미롭게 바라보아 주고 있다. 지금 타마코는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타다오키는 참으로 기뻤다. 타마코의 아름다움과 영리함에 압도되어 타다오키는 처음부터 열등감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이후 타다오키와 타마코 사이에 있던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은 허물어진 것 같았다. 그것은 구마치요와 오초라는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얻었음에도 여전히 허물지 못했던 장벽이었던 것이다. 덧붙여 이 타다오키가 직접 만든 백인일수는 현재도 호소카와가에 전해져 몇 장이 남아있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상권)
● 폭군 노부나가(暴君信長) 13-1
덴쇼 10년(1582년) 새해 첫날, 미츠히데는 다른 무장들과 함께 노부나가에게 새해 하례를 올리기 위해 아즈치(安土)성에 등청했다.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술잔을 내리며 말했다. “조금 이르다만, 7일에 긴밀히 나누고 싶은 상담이 있다. 아침 일찍 등청하도록 해라.” 미츠히데는 노부나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노부나가 눈빛이 일의 중대함을 말해주듯 번뜩였다. (알겠느냐?) 그 눈빛이 다짐을 받고 있었다.
“삼가 명을 받들겠나이다.” 미츠히데가 술잔을 든 채 엎드리자, 술을 따르던 후쿠즈미 헤이자에몬이 다가와 다시 술을 채웠다. “좋은 해로다, 올해는.” 그제야 노부나가가 웃었다. 그해 6월, 설마 미츠히데에게 배신당해 죽게 될 줄은 노부나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미츠히데 역시 자신이 노부나가 천하를 빼앗고, 그 후 20일도 채 되지 않아 전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새해 하례에는 후지타카와 타다오키도 와 있었다. 타카야마 우콘의 늠름하고 깨끗한 얼굴도 보였다. 그러나 미츠히데는 일찍 아즈치성을 나왔다. 따르는 이들은 야헤이지, 하츠노스케 외에 두 명뿐이었다.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비와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아즈치성 근처 신학교에서 서양 음악이 흘러나왔다. 3층으로 세워진 화려한 신학교는 아즈치성을 제외하면 아즈치 최고의 대단한 건축물이었다.
불교를 싫어하는 노부나가는 아즈치에 새로운 절을 짓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으나, 이 교회 학교를 위해서는 땅을 제공하고 건축에 힘을 보탰다. 기리시탄(크리스천) 다이묘들은 돈과 인부 등을 바쳤는데, 특히 우콘이 열성적이어서 1,500명의 인부와 막대한 금전을 바쳤다고 미츠히데는 들었다.
미츠히데는 말을 멈추고 웅장한 3층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와서 올려다볼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언젠가 노부나가가 “어떠냐, 이것이 아즈치 으뜸가는 장식이 아니냐.”하고 했던 말이다. 이곳에서는 기독교 교육은 물론 라틴어, 포르투갈어, 국어(일어) 외에 서양 음악을 가르치고 있어서 25명의 학생들은 풍금(오르간)을 친다고 들었다.
미츠히데는 이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느낀다. 무사의 자식이 머리를 깎고 이국의 말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미츠히데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일이었다. 타카야마 우콘이 영지로 삼은 타카츠키 교회에는 소형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그레고리오 성가가 마을에 울려 퍼진다는 소문도 떠올랐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츠히데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오늘도 초조함을 느끼며 교회 학교 앞을 떠났다. “전하.” 야헤이지가 말을 걸었다. “음.” “서두르지 않으시면 눈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렇겠구나.” 드리운 구름에서 당장이라도 눈이 내릴 듯한 추위였다. 길에는 전년에 내린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야헤이지.” “예.” 야헤이지는 거리낌 없이 말재갈을 나란히 했다.
“주상께서 7일에 등청하라는 어명이 있으셨다. 긴밀히 상담할 것이 있으시다고.” “7일에 말입니까? 아직 신정연휴(松の内) 기간입니다만.” “음. 무슨 용무라고 생각하느냐, 야헤이지는.” 수행하는 기마병 한 명이 앞서가고, 하츠노스케는 5간(五間-약 9m) 정도 뒤에서 고삐를 잡고 있었다. “글쎄요…?” “나는 고슈(甲州) 정벌에 대한 상담일 거라 생각한다.”
낮은 목소리로 미츠히데가 말했다. 노부나가의 그 번뜩이던 눈빛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무언가 대사를 암시하고 있었다. “과연, 다케다 퇴치 말입니까?” “음. 지금 주상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리와 다케다다. 모리는 히데요시의 일이니, 나에게 긴밀히 상담하지는 않으실 게다. 달리 시코쿠 평정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숙적인 다케다와의 대결이 먼저겠지.”
“말씀하신 대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올해 첫 과업은 다케다 퇴치인가. 좋아, 가자!” 미츠히데는 채찍을 한 번 가했다. 빠른 걸음이던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미츠히데의 만족스러운 표정에 야헤이지의 마음도 밝아졌다. 그날 밤도 야헤이지와 미츠히데는 사카모토성坂本城에 하룻밤 묵었다. 미츠히데는 이미 거성居城을 탄바 카메야마丹波亀山로 옮긴 뒤였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상권)
● 폭군 노부나가(暴君信長) 13-2
미츠히데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수행하는 자가 한 명도 없다. '아니,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미츠히데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다. 그러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수행원 중 한 명인가 싶어 “누구냐?” 하고 신원을 물었으나 답이 없었다. (수상한 놈!?) 미츠히데가 칼을 뽑으려 했다.
“나를 벨 수 있겠느냐, 주베(十兵衛)?” 그림자가 낮게 말했다. 뜻밖에 쇼군 요시아키(将軍義昭)의 목소리였다. “아, 나으리께서는…!” 깜짝 놀라는 순간, 미츠히데는 눈을 떴다. “요시아키 님이…” 낮지만 선명하게 요시아키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다. ‘나를 벨 수 있겠느냐, 주베.’ 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목소리였다. 미츠히데는 이부자리 위로 일어났다.
일어나 맹장지(襖-ふすま)를 열었다. 옆방에는 아무도 없다. 싸늘하게 찬 마룻바닥을 밟고 추운 널문(板戸-いたど)을 열자 회랑이다. 당연히 거기에도 사람의 그림자가 있을 리 없었다. “꿈인가.” 미츠히데는 이른 아침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납빛 바다(호수)다. 눈이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문틀을 닫고 이불 속으로 돌아오자, 아내인 히로코가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하고 조용히 물었다.
“음, 꿈을 꾸었소.” “꿈이요?” “요시아키 님의 꿈이라오.” “어머나, 어떤 꿈이길래…” 미츠히데는 방금 꾼 꿈을 이야기해 주었다. “묘한 첫꿈(初夢)이군요.” “아, 그렇군. 첫꿈인가.” “쇼군님께서는 그때 이후로 몇 년이나 지났을까요.” “벌써 10년이 되는구려.”
10년 전인 덴쇼 원년, 자신은 주군으로 모시던 쇼군 요시아키의 적이 되어 결국 요시아키를 추방하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주군 노부나가의 엄명이었다. 그때 자신은 노부나가의 신하로서 본의 아니게 요시아키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안 요시아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미츠히데는 새삼 가슴이 아팠다. “쇼군님께서는 어디서 어떤 새해를 맞이하셨을까요…” “…”
미츠히데는 말없이 몸을 뒤척였다. 눈이 내리는 속을 요시아키가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그때 쇼군과 운명을 함께했더라면 마찬가지로 몰락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미츠히데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그때 노부나가의 위치에 있었다면 결코 요시아키를 추방 따위 하지 않고 쇼군으로 모셨을 것이라고 미츠히데는 생각한다.
(만약 내가 천하를 잡았더라면…) 지금처럼 비참한 처지에 요시아키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미츠히데는 앗 하고 놀랐다. (만약 내가 천하를 잡았더라면…) 이 무슨 당돌하고 망령된 생각을 하는가. 천하는 노부나가의 것이 아닌가. 미츠히데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쨌든 묘한 첫꿈이로군.)
미츠히데는 7일에 긴밀히 상담이 있다고 했던 노부나가의 말을 떠올렸다. 이 일이 지금은 꿈보다 중요했다.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죽고 그 아들 카츠요리(勝頼)의 시대가 되어 올해로 10년째인데, 아직도 다케다 퇴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올해 매듭을 지을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미츠히데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천하를 잡았더라면…) 요시아키를 맞아들여 쇼군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노부나가보다 못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군략에 능하고 무술도 뛰어나다.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도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노부나가를 도왔던가. 그렇다는 것은 노부나가는 자신이 없었다면 천하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물론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히데요시(秀吉)의 공도 크다. …히데요시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자 미츠히데는 마음이 편치 않아졌다. 이것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미츠히데는 지금까지 항상 히데요시를 의식해 왔다. 사카모토성을 쌓았을 때 기쁨 중 하나도 히데요시보다 먼저 성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2년 후에 히데요시는 나가하마 성주가 되었지만, 미츠히데는 우월감을 품고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탄바 공략을 명령받고 기뻐 뛰었던 것도, 히데요시에게 탄바 공격의 대장이 내려지지 않고 자신에게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은 히데요시도 주코쿠 공격의 총대장이 되어 있다. 자신이 한발 앞서 탄바를 평정했지만, 말하자면 화려한 무대에는 서 있지 않다. 히데요시의 주변은 자못 화려하고,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올해로쉰일곱이다.) 때로는 심한 피로를 느끼고 체력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에 비하면 47세의 히데요시는 아직 한창 일할 나이다. 열 살의 나이 차이는 미츠히데에게 지극히 크게 느껴졌다. 자신이 제대로 일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히데요시는 아직 일할 수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향후 두 사람에 대해 노부나가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오래 섬긴 신하 사쿠마 노부모리를 별다른 공이 없다고 하여 고야산으로 쫓아낸 것처럼, 언제 또 자신도 소용없는 늙은 장수로 쫓겨날지 모른다. 노부나가는 쓸모없는 자를 귀하게 여길 만큼 정이 있는 인간이 아니다. 비정이 장기인 노부나가다.
(쉰일곱인가…) 미츠히데는 한숨을 쉬었다. 히로코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나갔다. 인생 50년인 세상에서 자신은 제법 오래 살았다고 미츠히데는 생각한다. (켄신은 마흔아홉에 죽었다.) (히데요시 놈…!) 신겐 역시 쉰셋이었다. 지금의 지위를 유지한 채 안온하게 죽을 수 있다면 최상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자신을 언제까지 중용할 것인가. (*上杉謙信 1530~1578/武田信玄 1521~1573)
이번 7일의 상담도 필시 고슈(甲州) 정벌이겠지만,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어떤 진노를 입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요즈음의 노부나가는 초조해하고 있다. 노부나가는 아직 49세다. 하지만 '인생 50년'이라 불리는 그 50세를 눈앞에 두고 노부나가도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천하 패업의 과업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장은 전장에 있어야만 비로소 무장이다. 모리라는 강적을 상대하며 애를 먹고 있는 히데요시가 지금의 미츠히데에게는 부러웠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부러운 것은 히데요시가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리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낭인 생활을 한 시절이 너무 길었다고 생각한다. 장군 요시아키를 노부나가에게 소개하고 노부나가를 섬긴 것이 이미 마흔 살 때였다.
(1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을 생각하는 자신은 역시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고 미츠히데는 씁쓸하게 웃었다. 묘시(오전 6시경)나 되었을까. 복도를 살금살금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늘어났다. (10년이 지나 요시아키 장군의 목소리를 꿈에서 듣다니.)
지나고 보니 요시아키 역시 그리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무심코 요시아키와의 첫 만남 무렵을 떠올리고 있자니 문득 노부나가가 총애하는 시동 모리 난마루(森蘭丸)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요즈음 난마루는 미츠히데를 보면 살짝 웃는다. 그것은 미소처럼 보이지만 결코 미소가 아니다. 비웃음(조소)이다. 미츠히데가 정면으로 노려보면 시선을 피한다. 모리 난마루에 대해서는 요즈음 묘한 소문이 돌고 있다.
노부나가가 “무엇이든 바라는 것을 말해라” 하자 난마루가 “아버지의 원래 영지였던 사카모토(坂本)를 저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떼를 썼다는 것이다. 사카모토는 미츠히데의 영지다. 원래 확실한 증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불현듯 미츠히데는 불안해졌다. 오랜만에 요시아키의 꿈을 꾸었기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미츠히데는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상권)
● 폭군 노부나가(暴君信長) 13-3
노부나가는 다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에게 압승을 거두었다. 이날, 3월 19일, 노부나가의 진영은 신슈信州의 이이다(飯田)에서 카미수와(上諏訪)의 신사로 옮겨갔다. 3월의 하늘이 푸르고 부드러웠다. 오다 측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승전의 날씨였다. 수목이 우거진 신사의 진영에는 진막(陣幕)이 둘러쳐져 있었고, 노부나가信長와 노부타다信忠 부자를 중심으로 미츠히데, 모리 난마루 등이 뒤에 시립하고 있었으며, 가신들이 회랑에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 다케다(武田) 세력을 스루가(駿河) 입구에서 공격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방금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이어 다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의 매형으로, 노부나가 편으로 배신하여 돌아선 아나야마 바이세츠(穴山梅雪)가 그 뒤를 이었다. 엎드려 절하는 바이세츠에게 노부나가가 천천히 말을 건네기도 전에 기소 요시마사(木曾義昌)가 모습을 나타냈다.
항장(降将)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진영 안이 울렁거렸다. 특히 기소 요시마사의 모습을 보자 그 울렁거림은 더욱 커졌다. 요시마사는 기소 요시나카(木曾義仲) 이래의 명문가였으나, 다케다 신겐의 공격을 받고 항복했다. 후에 신겐의 딸과 결혼하여 아내로 삼았다. 말하자면 카츠요리의 매형인 셈이다. 이 요시마사가 카츠요리의 폭정에 저항하여 반기를 든 것이었다. 그리고 즉시 노부나가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말하자면 이번 다케다 정벌의 물꼬를 튼 것은 이 요시마사였다. 단단히 다문 입술이 여자처럼 붉었다. 차례차례 노부나가 앞에 엎드려 절하는 바이세츠와 요시마사 등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사람은 미츠히데였다. 올해 1월 7일, 노부나가는 긴밀히 나누고 싶은 상담이 있다며 미츠히데 단 한 사람만을 불렀다. 그것은 미츠히데가 예상했던 대로 다케다 정벌을 위한 군의(軍議)였다.
호소카와 모리사다(細川護貞) 씨가 쓴 《호소카와 유사이細川幽斎》에도, 〈동 7일, 노부나가는 코레토(미츠히데)와 수 시간 동안 군의를 거듭한 후, 그 자리에 후지타카藤孝도 불러 "오는 2월 하순부터 고슈甲州를 정벌한다. 그때 후지타카는 아즈치의 경호를 맡아라"라고 명하셨다 등등〉이라는 기록이 있다. 미츠히데는 지금 그날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그날 고슈(甲州)와 시나노(信濃)의 지도를 크게 펼쳐놓고 미츠히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기다리고 있었다.” 미츠히데를 맞이하는 노부나가의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이 기분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가늠할 수 없었다. “다케다 정벌이시옵니까.” 인사를 마친 뒤 미츠히데는 다가가 지도를 바라보았다.
“음. 이미 해가 지나기 전에 미카와의 마키노성에 반년 치의 군량을 운반해 두었다.” 노부나가는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반년 치… 말씀이십니까.” 미츠히데가 희미하게 웃었다. 노부나가의 눈이 번뜩였다. “적다고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역시 주상이시옵니다. 다만 반년 치는 다소 너무 많다고 미츠히데는 생각되옵니다.” “많다고?” “예, 주군의 위세 앞에서는 다케다 세력이 두 달도 버텨내지 못할 것입니다.” “두 달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노부나가는 씨익 웃었다. 미츠히데의 말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예, 우선 한 달 반 정도로 보옵니다.” 확신에 찬 미츠히데의 어조였다. “그런데, 카츠요리 놈은 지난해 카츠나가(勝長)를 돌려보내 왔다. 너는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말이옵니다…” 카츠나가는 노부나가의 막내아들이다.
다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의 아버지 신겐은 살아생전 미노(美濃)의 이와무라岩村성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노부나가의 막내아들 카츠나가는 당시 그 성주의 양자였으나, 인질로서 다케다 측에 넘겨졌다. 그리고 나중에 신겐의 양자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즉, 노부나가의 막내아들이 신겐의 양자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것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느닷없이 아버지인 노부나가에게 돌아온 것이다.
“다케다에 싸울 의지가 있다면 인질은 귀중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럼 다케다에 싸울 의지가 없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싸울 뜻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려는 모략일지도…” “시바타는 이것이 절교장이라고 하더군. 신겐이 카츠나가를 양자로 삼은 것은 말하자면 정략결혼 같은 것인데, 그 인연을 카츠요리 놈이 끊어버린 것이라고.”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설령 카츠요리가 그렇게 고압적으로 나온다 한들, 과연 다케다의 가신들에게 그 정도의 기개가 있겠습니까?” “음. 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신겐이 죽은 지 10년, 이제 다케다는 호랑이가 아니다. 고양이에 불과하지. 그 고양이가 카츠나가를 돌려보낸 게야.”
“카츠요리는 아직도 자신을 호랑이라고 과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양이가 자신을 호랑이라고 착각한다면 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하지만 가신들은 자신의 주군이 고양이인지 호랑이인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잘 알고 있다면…” “잘 알고 있다면?” “아무리 고양이 가 강한 척을 해보았자, 민심은 이탈할뿐…” 미츠히데의 말에 노부나가는 기분 좋은 듯 소리 내어 웃었으나, “다케다에 총공격을 가한다! 때는 2월 말이다.” 하고 단정 지어 말했다.
“2월 말 말씀이십니까?” “늦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어쩌면 주군, 그 전에 멀지 않아 다케다 내부에서 모반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뭐라? 모반이?” “예, 호소카와 후지타카도노에게 물어보시면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있으실 줄 압니다. 후지타카도노는 수년 전부터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자토비와보주(座頭琵琶坊主-맹인비파연주예능인) 등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니, 여러 나라의 사정 또한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음, 후지타카가 정보를 많이 모으고 있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만… 그래서 너는 다케다 세력에 대해 들은 것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예, 카츠요리의 시대가 된 이래 조공도, 부역도 지나쳐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시나노信濃의 기소 요시마사木曾義昌 영지 내에서는 카츠요리의 평판이 매우 나쁘다고 들었습니다.”
“뭐라, 기소 요시마사가? 하지만 그놈은 카츠요리의 매형이 아닌가.” “의외로 누나나 누이동생의 남편 같은 이들이 가장 먼저 불만을 토로하는 법입니다…” “자식이라도 부모를 배신하고, 사위라도 장인에게 활을 겨누는 세상이니.” 노부나가는 약간 비꼬듯 웃었다. 미츠히데는 등골이 오싹했다. 노부나가 자신도 누이동생의 남편인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후지타카에게 자세히 물어보겠다. 즉시 전령을 미야즈로 보내라.” “예, 실은 무슨 용무가 있으실까 하여 후지타카 도노도 오늘 함께 등청해 있습니다.” “오, 너는 빈틈없는 놈이로군. 그럼 나중에 불러내도록 하겠다.” 노부나가는 몇 번이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츠히데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해서 그날 미츠히데의 진언은 이번 전쟁에서 너무나도 적중했다.
그로부터 20일 뒤인 1월 27일, 과연 기소 요시마사가 다케다에 반기를 들고 오다 측에 구원을 요청해 왔다. 노부나가는 기소 요시마사의 동생 우에마츠 쿠라인(上松蔵人)을 인질로 잡은 뒤 예정보다 한 달 빠른 다케다 정벌을 시작했다. 기소 입구, 스루가 입구, 히다 입구, 관동 입구에서 오다 군세는 고슈와 시나노를 향해 동시에 군사를 진격시켰다.
미츠히데는 노브나가에게 말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이 살아남을 길을 생각하는 법입니다. 승산이 없는 싸움임을 알게 되면 주군을 버리고 오다 측으로 돌아설 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스루가 입구의 총대장 아나야마 노부키미(穴山信君-梅雪 바이세츠)를 비롯하여 아사히나(朝比奈), 오오쿠마(大熊), 요다(依田) 등이 먼저 자신의 성을 버리고 투항했다.
마침내 카츠요리(勝頼)에게 전진을 권했던 코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는 가던 도중 사사고 고개(笹子峠)에서 느닷없이 카츠요리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카츠요리의 군사는 맥없이 도망쳤고, 카츠요리는 겨우 41명의 병사와 50명의 시녀들과 함께 민가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숨어지낸 지 8일 남짓, 다키가와 카즈마스 등에게 공격을 당해 카츠요리는 처자와 함께 자결하여 생을 마감했다.
끝까지 따랐던 남녀 합쳐 91명의 사람들도 함께 목숨을 끊었다. 이것이 참으로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던 다케다 가문의 비참한 최후였다. 3월 11일의 일이었다. 다케다 카츠요리는 적과 싸워 패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미츠히데의 예언대로 카츠요리는 군사를 일으켜 두 달을 버티지 못했다. (과연, 반년 치의 군량은 필요 없었구나.)
미츠히데는 내심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자신의 통찰력은 노부나가에 못지않지 않은가. 이에야스나 아나야마 바이세츠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부나가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미츠히데는 전에 없던 만족감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다케다도 허무하게 끝났구나. 몰락해 가는 주군이야말로 충성을 다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이거늘.)
겨우 41명의 병사와 함께 생을 마감한 카츠요리를 미츠히데는 불쌍히 여겼다.(몰락해 가는 주군을 사람은 쉽게 배신할 수 있다. 그러나 해가 뜨는 기세의 주군을 배신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란 그저 자신이 소중한 법이지.) 생각하면서도 미츠히데는 내심 흠칫했다. 해가 뜨는 기세의 주군이란 바로 이 노부나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 노부나가에게 내가 반기를 들 수 있을 것인가.
미츠히데는 노부나가의 넓은 둔부에 시선을 고정했다. 튕겨 나갈 듯한 힘이 등에도 어깨에도 넘쳐흐르고 있었다. ‘강한 남자다. 운도 강해.’ 미츠히데는 노부나가의 뒷모습에 눈을 고정한 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노부나가의 웃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미츠히데는 앗 하고 정신을 차렸다. 노부나가가 말했다. “새삼 너희의 구 영지는 그대로 인정해 주겠다.”
기소 요시마사, 아나야마 노부키미, 오가사와라 노부미네 등이 두 손을 짚고 땅에 머리를 조아렸다. 오가사와라의 어깨가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또한 기소 요시마사는 특별한 공로로 시나노의 아즈미, 치쿠마를 영지로 내리노라. 수고했다.” 기소 요시마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고개를 들어 노부나가를 올려다보았으나, 이내 더욱 낮게 엎드렸다. (결국 주군을 배신한 것이 공이 되었단 말인가.)
미츠히데는 땅에 엎드려 있는 기소 요시마사를 지켜보았다. 이 남자는 노부나가가 몰락하면 또 배신할지도 모른다. 겨우 얼굴을 든 요시마사의 붉은 입술을 미츠히데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경사스러운 일이외다.” 옆자리의 다키가와 카즈마스가 미츠히데에게 소곤거렸다.
“오, 그렇지. 난마루.” 노부나가가 뒤를 돌아보며 모리 난마루를 보았다. 난마루가 하얀 목덜미를 살짝 기울였다. 조각한 듯 탄력 있는 눈매가 애교를 띠며 노부나가에게 쏠린다. “네 형인 나가요시長可에게는 시나노 카와나카지마 4군(信濃川中島四郡)의 18만 석을 내리노라.” “예? 18만 석을요!” 놀라는 난마루를 핥듯이 노부나가는 바라보았다.
놀란 것은 난마루뿐만이 아니었다. 줄지어 앉아 있던 자들도, 미츠히데도 경악했다. (구 영지 2만 석과 합쳐 일거에 20만 석이라니!) 난마루의 형 무사시노카미 나가요시(武蔵守長可)는 아직 24세이다. 아무리 '귀신 무사시(鬼武蔵)'라 불리며 그 용맹함이 널리 알려졌다 한들, 혈기 왕성한 24세의 나이에 2만 석에서 일거에 20만 석의 영주가 되다니.
내심 미츠히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동요도 가라앉지 않은 미츠히데의 귀에 노부나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마루, 너에게는 미노 이와무라의 5만 석을 주마.” (5만 석!?) 난마루는 아직 17세의 어린아이가 아닌가. “조만간 영지를 더 늘려줄 테니 기대하고 있거라.”
문득 이전에 들었던 소문이 미츠히데의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랐다. 난마루가 아버지 모리 요시나리의 옛 영지인 사카모토를 하사받고 싶다고 청했다는 소문이다. 난마루는 6세 때 아버지 요시나리를 잃었다. 요시나리는 노부나가를 따라 아자이 나가마사,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습격하려다 전사했다. 본래 미노국 카네야마 성주였다.
노부나가가 모리 가문 일족을 편애하는 것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모리 형제에 대한 대우는 파격적이었다. 물론 그것이 노부나가의 방식이기도 했다. 쓸모가 있다고 생각되면 가문 따위는 개의치 않고 높은 봉록을 내린다. 하물며 모리가는 명문가이다. (나에게도, 히데요시에게도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었지.)
(그러나 이대로 두었다간 정말로 사카모토를 난마루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미츠히데는 고개를 숙였다. 뺨이 경련하는 듯했다. 바로 그때, 노부나가의 시선이 미츠히데에게 머물렀다. 순간 미츠히데의 씁쓸해하는 기색이 노부나가의 심기를 건드렸다. (경사스러운 승전 자리에서 저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노부나가의 미간에 깊은 세로 주름이 잡혔다. (모든 것이 미츠히데의 말대로 되었다.)
총공격을 가하기 전에 기소 요시마사가 반란의 횃불을 올린 것도, 카츠요리를 배신하는 자들이 속출한 것도. 그리고 한 달 반도 되지 않아 다케다를 멸망시킨 것도. (내심 저 남자는 나를 비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미츠히데의 진언은 적중했다. 적중할 때마다 노부나가는 미츠히데라는 남자의 깊은 통찰력에 내심 혀를 내둘렀고, 그것이 또한 얄랍기도 했다.
(다케다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 덕분이라고 이 미츠히데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겐이 죽은 뒤 10년, 인내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미츠히데에게 그 인내와 자중을 몇 번이고 설파당해 왔다. (놈은 역시 자신의 공을 세고 있는 것이겠지.) 때마침 미츠히데의 옆에서 누군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났다. 미츠히데가 낮게 응답했다. 그 순간 노부나가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미츠히데!” 눈썹을 치켜세운 형상이 몹시 흉흉하여 노부나가는 고함을 질렀다. “예?” 무슨 일인지 미츠히데는 알 수 없었다. “이놈! 무엇을 그리 씁쓸하게 생각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별다른… 경사스러운 승전을 축하드리고자…” “말하지 마라! 그것이 승전을 기뻐하는 얼굴이냐. 네 놈의 속내쯤 내가 보이지 않는 줄 아느냐!”
노부나가는 일어서자마자 성큼성큼 미츠히데 옆으로 다가와 다짜고짜 덜미를 낚아챘다. “주군!” “이놈이… 이놈이, 자기 혼자 고생해서 이 승전을 이끌어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주군, 결코…” 미츠히데는 아무리 잘못되어도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위인이 아니다. 그것을 누구보다 노부나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더욱 화가 났다.
모든 일에서 미츠히데가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놈!”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의 상투를 끌어당겨 신사의 난간에 미츠히데의 머리를 힘껏 찍어 눌렀다. 미츠히데의 머리가 쿵 하고 섬뜩한 소리를 냈다. “고생을 한 것은 이 노부나가다!” “어의대로, 어의대로이옵니다.” 무저항 상태인 미츠히데의 머리를 노부나가는 두 번, 세 번 난간에 찍어댔다. 머리에서 뺨으로 피가 주룩하고 흘러내렸다.
(다케다 정벌에 참여한 나에 대한 이것이 포상이란 말인가.) 미츠히데는 자기도 모르게 노부나가를 노려보았다. “이놈이!” 미친 듯이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의 상투를 쥐어뜯었다. “주군! 주군! 진정하십시오!” 이때 겨우 다키가와 카즈마스滝川一益가 달려와 노부나가를 뒤에서 껴안아 말렸다.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 여전히 날뛰는 노부나가의 귀에 카즈마스가 소곤거렸다.
“주군, 도쿠가와도노를 비롯하여 다케다 측 사람들도 진영에 있사옵니다. 진정하십시오.” 그제야 노부나가의 손이 미츠히데의 상투에서 떨어졌다. 미츠히데는 품에 있던 종이로 조용히 피를 닦고 의복을 정돈한 뒤 천천히 자리를 물러났다.
아무도 무엇이 노부나가를 그토록 화나게 했는지 알지 못했다. 노부나가의 말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미츠히데가 "우리들의 수년간의 수고도 이것으로 보답받았구나" 하고 회고한 것이 노부나가의 귀에 들어간 것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상권)
● 폭군 노부나가(暴君信長) 13-4
고슈(甲州)에서 돌아온 미츠히데는 우선 사카모토성(坂本城)에 들어갔다. 평소와 달리 지칠 대로 지쳐 돌아온 미츠히데의 모습에 히로코는 가슴이 아팠다. “어디 다치기라도 하셨습니까?” 승전하고 돌아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지쳤다 한들 승전의 경우에는 눈이 빛나고 표정이 생생한 법이다. 그러나 오늘의 미츠히데는 멍하니 있었다. 눈가에는 검은 멍울이 생겼고 표정은 헛헛했다.
그날 밤의 축연은 미츠히데 부부와 아케치 야헤이지, 사이토 토시미츠(斎藤利三)에 의해 열렸다. 술시중은 하츠노스케가 들었다. 토시미츠는 재작년부터 미츠히데를 모시고 있었다. “드디어 다케다도 멸망했군요.” 야헤이지가 쾌활하게 말했다. “다음은 모리겠지요.”라고 토시미츠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미츠히데는 젓가락을 든 채 상 위로 멍하니 시선을 두고 있었다. 평소의 미츠히데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야헤이지와 토시미츠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의아한 눈빛으로 미츠히데를 바라보던 히로코가 토시미츠와 야헤이지의 표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츠노스케가 든 술병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노!” “음.”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그제야 미츠히데는 알아챘다. 4월의 바람이 미지근하게 방안으로 흘러들어 등불이 흔들렸다. “지쳤구려.” 미츠히데는 씁쓸하게 웃으며, “너희도 수고 많았다.” 하고 그제야 평소의 미츠히데로 돌아왔다. 하츠노스케가 술을 따르자 좌중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도노, 오린이 임신을 하였다고 합니다.” 히로코의 말에, “호오, 그것 참 경사스럽구려. 야헤이지, 자네 장하네.” “예, 덕분입니다…” 야헤이지는 얼굴이 빨개져 머리를 긁적였다. 토시미츠도 하츠노스케도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히로코가 다시 말했다. “도노, 오타마 역시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옵니다.” “뭐라, 오타마도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가.”
“축하드립니다.” 토시미츠와 야헤이지가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하츠노스케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자, 한 번 밝은 기분으로 가보도록 할까요?" 야헤이지(弥平次)는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도노, 노부나가 도노는 이에야스 도노의 영지를 지나 귀환하셨다고 하는데, 참 무사히 그 영지를 지나 돌아오셨군요.” 라고 토시미츠가 말했다. “음.”
이 토시미츠 때문에 자신이 노부나가에게 칼을 맞댈 뻔한 적이 있었다고 미츠히데는 떠올렸다. 토시미츠의 어머니는 미츠히데의 여동생이다. 토시미츠는 즉 미츠히데의 조카인 셈이다. 그의 아내는 이나바 이테츠稲葉一鉄의 조카로, 재작년까지 토시미츠는 이테츠를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테츠에게 거듭 원한을 품게 되어 한때 노부나가를 섬기다가 재작년부터 미츠히데를 따랐다.
이테츠는 사이토 토시미츠를 돌려달라고 노부나가를 통해 부탁해 왔다. 일단 거절했으나 그 후 끈질기게 노부나가에게 촉구했다. 토시미츠가 이나바 이테츠를 떠난 이유를 노부나가도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미츠히데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뭇사람들 앞에서. “이제 그만 돌려주지 않겠느냐?” 하고 재촉을 받았다. 그러나 미츠히데는 이제 와서 이나바 이테츠에게 토시미츠를 돌려보낸다면 그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라 생각하여 조용히 거절했다. 이치는 미츠히데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 이치가 있다는 사실이 노부나가를 노엽게 만들었다. 느닷없이 소도를 뽑아 미츠히데를 위협했던 것이다.
“나의 명령에 거역하느냐!” 하고 노부나가는 날뛰었다. 그러나 목숨을 걸어서라도 미츠히데는 토시미츠를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식을 들은 토시미츠는 아이처럼 통곡했다. 마흔이 넘은 남자라고는 믿기지 않는 울음이었다. 이래로 토시미츠는 더욱더 미츠히데를 둘도 없는 주군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노부나가를 격렬히 증오하게 되기도 했다.
“나를 이테츠에게 돌려보내라니, 즉 내 목숨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나는 미츠히데 도노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노부나가를 위해서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야헤이지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토시미츠는 훗날 그 이름을 천하에 남긴 카스가노츠보네(春日局-徳川家光의 유모)의 아버지답게 머리도 배짱도 좋았으나 성격 또한 격렬했다.
복잡한 심정으로 미츠히데는 토시미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야헤이지가 말했다. “노부나가도노는 두려울 게 없는 분이지요. 이에야스도노 따위는 두렵지도 않은 게지요.” “글쎄다. 두려울 게 없을까. 나에게는 우둔하게 느껴지네만. 이에야스도노의 영지를 지난 것은 방심이라네.” “토시미츠.” 나무라는 미츠히데에게,
“하지만 주군, 그렇지 않습니까? 이에야스 도노의 장남 노부야스(信康) 도노에게 터무니없는 의심을 품게 하여 할복하게 만든 것이 불과 2, 3년 전의 일. 아직도 노부야스 도노의 원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그 영지를 열흘 남짓이나 유유히 지나 돌아오시다니요.”
이에야스의 장남 노부야스(信康)는 노부나가의 애지중지하는 딸 토쿠히메(徳姫)와 결혼했었다. 노부야스의 생모 츠키야마 고젠(築山御前)은 남편 이에야스와의 관계가 냉랭했다. 그 때문인지 츠키야마 고젠은 며느리인 토쿠히메에게도 가혹하게 대하며 노부야스와 토쿠히메 사이를 갈라놓으려만 했다. 노부야스가 토쿠히메를 사랑하는 것이 미웠던 것이다.
노부야스에게 첩을 강제로 두게 하여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나아가 노부나가에 대한 모반까지 꾀했다. 이 사실을 토쿠히메가 눈치채고 아버지 노부나가에게 급보를 전했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를 통해 노부야스에게 할복을 요구했다. 이에야스는 요청을 받고 한 달 가량 자신의 자식인 노부야스를 죽이지 못해 번민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결국 노부야스를 할복시켰다. 3년 전의 일이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가신이 아니다. 충실한 동맹자이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이에야스를 신하처럼 다루었다. 이에야스에게는 아직 노부나가에게 맞설 힘이 없었다. 노부나가는 굳이 자신의 사위인 노부야스를 죽이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츠키야마 고젠의 언행이야 어찌 되었든 노부야스가 결백하다는 것은 뭇사람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노부야스가 어머니 츠키야마 고젠의 흉계에 휘말렸다고 하여 감히 할복시켰던 것이다. 미츠히데는 그 후, “노부야스도노는 뛰어난 분이었지. 노부나가 도노의 장남 노부타다 도노는 여기에 훨씬 미치지 못해. 노부타다 도노의 시대가 되면 노부야스 도노가 오다가를 압도할 것임을 꿰뚫어 보고 계셨던 것이겠지.”하고 야헤이지에게 흘린 적이 있었다.
특히 노부야스의 지모는 아버지인 이에야스조차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러한 내력이 있는 이에야스의 영지를 유유히 통과해 온 노부나가를 사람들은 호담하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길도 있을 텐데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자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에야스 도노는 참 무사히도 통과시켜 주었군요.”
토시미츠가 다시 말했다. 눈이 번뜩이며 빛나고 있었다. 야헤이지는 미츠히데의 사촌 동생이었고, 토시미츠는 미츠히데의 조카였다. 하츠노스케 한 사람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는 혈육들뿐이었다. 자연스레 노부나가의 험구를 말해보고 싶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특히 이번 다케다 정벌에는 1월 7일 미츠히데의 수많은 진언이 있었다. 그 말들이 모두 적절한 것이었음은 누구보다 노부나가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단 한 마디의 치하 말도 내리지 않았고, 하물며 상도 없이 터무니없게도 뭇사람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가한 것이다.
미츠히데의 속내를 생각하면 미츠히데를 더할 나위 없는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토시미츠, 야헤이지의 창자도 뒤틀릴 만큼 화가 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 마음은 하츠노스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보게 토시미츠도노. 미카와도노(이에야스)는 노부나가 도노가 지나가실 때 식은땀을 흘렸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스루가 한 나라를 하사받은 감사의 뜻으로 아즈치에 찾아오신다고 하네.”
“그 참 대단한 정성이구려. 도쿠가와 도노가 수년간 다케다를 견제했던 공로만으로도 스루가 한 나라의 가치는 충분하네. 감사 인사는 오히려 노부나가 도노가 해야 마땅한 일이지.” “맞네, 맞아. 모반의 뜻도 없던 노부야스 도노에게 억지 할복을 시킨 것을 생각하면 스루가 한 나라나 두 나라따위 감사할 것도 없지.”
어느 정도는 울분도 풀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미츠히데는 토시미츠와 야헤이지의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맞장구를 칠 뻔했다. “이제 되었다.” 미츠히데의 말에 토시미츠는 무슨 말인가 하려 입을 벌렸으나 야헤이지가 팔꿈치로 찌르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마음을 비우고 번뇌를 없애면, 불(火)도 저절로 시원하게 느껴진다."(心頭滅卻火自涼)… 인가. 카이센(快川) 화상의 최후는 장엄했지.” 미츠히데의 뺨에 번지던 조용한 미소가 사라졌다. “아아, 참으로 장엄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야헤이지 도노?”
“오오, 나 역시 그 타오르는 산문의 불길 속에서 합장하는 화상의 모습에는 몸이 떨렸다네.” 이번에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의 보제사인 에린지恵林寺의 화상 카이센和尚快川을 사찰 안의 승려들과 함께 산문에 가두고 150여 명을 불태워 죽였다. 카이센 화상은 카츠요리의 넋을 기리는 재를 올렸다. 그것이 큰 죄목 중 하나로 내세워졌다. 보제사의 승려가 주군 카츠요리勝頼의 넋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신나가는 그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센은 이 불길 속에서 "심두멸각하면 불 또한 서늘하다"라며 껄껄 웃으며 죽어갔던 것이다. “카이센 화상에 비하면 무사의 죽음은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드는군요.” “그렇고말고. 그거야말로 인간의 참된 죽음의 모습인가 하고 감명받았습니다.” “음. 하지만 그 화상은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야헤이지?” 미츠히데는 젓가락을 놓고 야헤이지를 바라보았다.
“죽어서 살았다고나 할까요.” “과연, 죽어서 살았다인가.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 토시미츠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 소인도 야헤이지도노와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한 노부나가 도노라 할지라도 그 카이센 화상은 죽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부나가 도노도 죽이지 못했다고?” “예, 노부나가 도노는 불태워 죽였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카이센 화상은 결코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과연. 나 역시 그 화상의 목소리를 똑똑히 이 귀로 들었다. 조용히 합장하는 모습을 이 눈으로 보았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손으로 불태워 죽일 수 없는 것이라고 나 역시 생각했다.” 히로코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히 듣고 있던 하츠노스케에게 미츠히데가 말했다. “너도, 하츠노스케. 너도 그 목소리를 들었겠지?” “예, 고귀한 모습이라 저도 모르게 합장하였습니다. 도노, 인간은 어떻게 해야 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다. 그것을 나 역시 생각했다.” 언젠가 또 자신이 노부나가에게 엄하게 맞을 때, "심두멸각하면 불 또한 서늘하다" 하며 웃으며 그 철권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이 증오는 카이센 앞에서 너무나도 부끄럽다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어쨌든 인간의 마음은 철권이나 칼날 따위로 따르게 할 수 없는 법…)
“도노, 어쨌든 그 승부는 카이센의 승리라고 이 야헤이지는 생각했습니다.” “음.” “그렇다면 노부나가도노는 다케다 측에 완승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카이센에게는 이기지 못한 셈이군요.” “과연, 과연. 야헤이지 도노가 말을 잘하시는구려. 전쟁은 사람을 죽인다고 이기는 것은 아닌 법이지요. 도노께서 늘 말씀하시듯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짜 승리일지도 모릅니다.”
토시미츠는 무릎을 쳤다. 미츠히데는 문득 밤의 비와호로 시선을 돌렸다. 이 호수 건너편 아즈치성에 자신을 피가 나도록 때려눕힌 노부나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격렬하게 마음이 타올랐다. (하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