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오산(金鰲山849m)
<진교에서 바라본 금오산 전경>
하동포구 전망대 금오산(金鰲山849m)은 해안 산악으로 옛적에는 진교면에서 바라보았을 적에는 노적가리처럼 생겼다 해서 소오산, 고전면에서 바라보았을 적에는 장생주의 술병처럼 생겼다 해서 병요산(甁要山)으로도 불렸다 한다. 금오산은 산세가 물가로 내려서는 목이 긴 자라의 형상과 해질녘 황금빛으로 물든 모습이 마치 황금자라와 같아 금오산이라 이름 한다. 자라는 물과 관련이 있고 사슴과 두루미와 함께 목이 긴 동물 이어서 예부터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황금 까마귀를 뜻하는 구미 금오산(金烏山976,7m), 밀양 금오산(金烏山766m), 예산 금오산(金烏山234m)과는 발음은 같아도 뜻은 전혀 다르다. 이곳 하동 금오산(金鰲山849m)은 경주 남산 부근의 금오산(金鰲山468m), 여수 돌산도 금오산(金鰲山323m)과 더불어 비교적 잘 알려진 같은 뜻을 가진 산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어서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현기증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낮은 산도 높은 산도 아니지만 섬진강 하구 남해안에 위치하여, 산 아래 광양만에서 사천만으로 해류가 흘러내리며 은빛 물결이 반짝이는 노량해협을 비롯한 삼천포에서 여수까지 남해안의 한려수도 풍광을 두루 조망하게 된다. 이곳 금오산에서 병풍처럼 늘어선 북쪽 지리산 전경은 물론, 동쪽으로 사천 와룡산, 서쪽으로는 가까이 광양 백운산과 조계산 전경을 비롯하여 멀리 광주 무등산, 영암 월출산, 해남 두륜산, 보성 제암산, 장흥 천관산 등이 조망고 남쪽으로는 남해의 금산, 망운산이 조망된다. 또한 섬진강 물줄기가 비단 폭처럼 광양만으로 흘러내리는 풍광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어서 유감없이 하동포구 전망대 역할을 갖고 있다. 기회가 닿으면 운해의 장관을 볼 수도 있어 남해고속도로 하동 진교(辰橋)부근을 지날 적에 한번쯤 올라보는 것도 좋겠다. 정상까지 자동차가 올라오는 관계로 등산성은 떨어지나 일출명소로 알려져 매년 1월1일 신년일출 광경을 보려는 가족단위 인파로 크게 혼잡을 빚기도 한다.
天下 眺望 第一 河東浦口 展望臺
<남양마을(옛 원동마을)에서 바라본 금오산>
2013년 한해를 보내며 금오산 낙조를 보기위해 내일 예정된 일출을 보기에 앞서 금오산에 올랐다. 진교에서 정상까지 8km 거리, 자동차로 25분, 걸어서 상행 2시간 40분, 하행 2시간 정도 걸린다. 진교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대교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 금오산방향 남양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군부대가 있는 마을이 남양마을이다. 남양마을은 본시 원동마을로서 나이든 주민들은 아직도 원동마을이라 부른다. 원동(院洞)이란 조선시대에 곤양에서 노량해협을 건너 남해로 출장 가는 관원들의 숙소인 원(院)을 설치하고 원주(院主)를 두어 운영했던 마을이라 해서 원동마을인데 1988년에 곤양의 남쪽이란 뜻으로 남양(南陽)이라 개칭한 마을이다.
<금오산 정상>
이 마을 군부대 입구에 금오산 7km 라고 표시된 이정표가 있다. 계곡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 찻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이다. 계곡 깊숙이 금성사에서 옛길을 따라 오르려다가 10여 년째 통행인이 없어 우거진 숲으로 인해 길이 없어져 버렸다. 계곡을 나와 다시 능선 길로 접어드니 3시30분, 벌써 1시간40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 6km, 2시간 이상 걸린다. 낙조시각에 맞추려면 걸어서 오르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이때 짚 차가 올라왔다. 걷는 것이 원칙이지만 뜻하지 않게 1시간을 낭비하여 부득이 낙조시각에 맞추기 위해 산상근무자의 차를 얻어 타고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본 저 멀리 삼천포대교와 그 뒤로 삼천포 화력발전소>
정상에 도착하니 3시50분, 낙조 예상 시각이 17시25분이니 1시간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일몰직전까지 정상주변을 거닐며 산 아래 풍광을 감상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 날씨는 드물게도 한 겨울인데도 비교적 따뜻하고 바람도 없다. 등산객은 보이질 않고 승용차로 올라온 사진작가들만이 낙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금오산을 산악회에서 3회, 승용차로 1회, 택시로 1회, 이렇게 다섯 차례 올랐으니 오늘로써 모두 6회째이다. 곧장 해맞이공원 전망대에 섰다. 오늘은 비교적 쾌청한 날씨다. 이 산 남쪽 아래로는 노량해협(露梁海峽)이 내려다보이는데, 광양만에서 사천만으로 와폭(臥瀑)처럼 흐르는 해류를 따라 아침이슬 같은 은빛 물결이 햇빛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산 아래 정상 남쪽으로 내려다본 노량해협>
남해의 관문인 남해대교 진입은 금오산 동쪽 길과 서쪽 길이 있는데 하동 노량리에서 만난다. 1973년에 준공한 하동 노량리와 남해 노량리를 잇는 전장 660m의 남해대교를 건너면 곧바로 남해군 노량리다. 이곳에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사당인 충렬사(忠烈祠 사적 제233호)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 관음포에서 전사한 장군의 시신은 이곳에 가매장되었다가 1598년 아산 현충사로 이장되었다. 1598년 8월17일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사망하자 왜군들은 철수를 위해 남해안으로 집결했다. 명나라와 연합으로 왜선500여척과 싸우던 중 “讐夷如盡滅 雖死不爲辭 (수이여진멸 수사불위사) 이 원수 왜적들을 모조리 무찌른다면, 비록 이 한 몸 죽는다 해도 결코 사양치 않겠노라!” 했던 충무공은 11월19일 아침 이곳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적탄에 맞으면서 장군이 남긴 마지막 유언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였다. 남은 군사들로 전투는 계속되어 왜선 200여척을 격파 수장시키니 소서행장(小西行長)은 달아나고 임진왜란 7년 전쟁은 공의 전사와 함께 막을 내렸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불편한 이웃이다. 우리는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할 때다. 그런데 남북이 분단된 것도 원통한 일인데 거기다 정치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든다. 어찌 국민을 위한 정부가 타도의 대상인가? 임진왜란 첫해 1592년 충무공이 장계를 올리면서 쓴 시
狀啓 (장계)
天步西門遠 (천보서문원) 임금은 서쪽으로 멀리 가시고 君儲北地危 (군저북지위) 왕자님은 북쪽으로 위태한 오늘 孤臣憂國日 (고신우국일) 외로운 신하가 나라를 걱정하는 날이여 壯士樹勳時 (장사수훈시) 이제 장사들은 공을 세울 때로다 誓海魚龍動 (서해어룡동) 바다에 서약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盟山草木知 (맹산초목지) 산에 맹세하니 초목들이 아는 구나!
<동쪽 산 아래 점점이 떠있는 섬들과 저 멀리 삼천포대교 방향의 또 다른 풍광>
동쪽 방향으로는 산 아래 노량해협 물결 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은 마치 거북선 같고, 저 멀리 삼천포의 진산 와룡산 아래로 삼천포와 남해를 연결하는 삼천포 대교와 뒤로 삼천포화력발전소 굴뚝이 선명히 보였다. 누가 이런 풍광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노고단~천왕봉 지리산 주능선>
정상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 북쪽을 바라보며 지리산의 웅자를 감상했다. 국립공원 제1호 저, 지리산! 지금까지 100여회 가까이 내 고향 뒷동산처럼 오르내렸던 산이다. 백두산으로부터 남으로 장장 1625km,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한 일(一)자로 뻗은 25,5km의 주능선이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다.
<섬진강과 건너 광양 백운산정상~억불봉>
지리산 자락을 감아 돌아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蟾津江212km)은 전북 진안 팔공산(八公山1151m) 북쪽 상추막이 골 데미 샘에서 발원한다.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의 경계를 그으며 구례 지리산 자락을 지나고 지리산의 심장 화계동천 계곡물을 받아들여 비로소 대하가 되어 하동포구를 통해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옛적 바다 배가 화개장터까지 오르내리던 하동포구 70리 뱃길이다. 오늘은 겨울이라 썰렁해 보이지마는 머지않아 겨울의 빗장을 열고 봄이 가장 먼저 찾아드는 섬진강이 될 것이다. 강 건너 서쪽 광양 백운산 정상으로부터 남쪽 억불봉 능선이 멋지다. 또 백운산 정상으로부터 흘러내린 쫒비산 능선 아래는 3월 중순이면 지리산은 흰 눈이 쌓여있어도 광양 매실마을에는 매화가 만개하여, 이따금 지리산에 눈이 내릴 때 눈과 함께 피어 설중매가 되기도 한다. 가을은 북으로부터 오고 봄은 남으로부터 온다. 섬진강변 버들강아지 통통 살이 찌기 전이라도 해마다 우수, 경칩이 지나면 각 방송에서는 남녘의 봄소식을 다투어 전한다. 아무리 혹독한 추위도 앞으로 석 달만 지긋이 견뎌내면 광양만에서 화개(花開)장터까지, 이 땅의 봄은 어김없이 하동포구(河東浦口) 섬진강 물길 따라 매화, 산수유, 벚꽃 등 봄꽃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금오산 마애불>
자리를 옮겨 정상에서 대송리 방향으로 300m 내려가면 석굴 암벽에 금오산 마애불(경남 유형문화재 제 290호)이 있다.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는 이때에 여기서 문득 학명선사 (鶴鳴禪師1867~1929)의 선시를 생각해 보았다.
不變(불변)
安道始終分兩頭 (안도시종분양두) 묵은해니 새해니 구별하지 말게나. 冬經春到似年流 (동경춘도사년류) 겨울가고 봄이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試看長天何二相 (시간장천하이상) 여보게!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浮生自作夢中遊 (부생자작몽중유)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는 걸세!
<섬진강하구도 선명한 일몰직전>
다시 정상에 올라와 낙조를 보기위해 서쪽 자리 좋은 곳에 섰다. 낙조는 아직 일러 섬진강하구 하동화력발전소 건너편 광양제철소 등 광양만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광양만의 풍광을 감상했다. 광양제철소와 가까이 하동화력발전소 멀리는 여수 석유화학단지, 거기다 삼천포 화력발전소까지 더해지면 이 일대에는 굴뚝도 참 많다. 이 시각 광양만의 화물선 뱃고동소리가 일몰 시각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듯했다. 일몰 30분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본다. 어디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될까 보냐만 이번에도 년 초의 바람이 물거품이 되어 한해가 갔다. 누가 인생을 연습하고 살까마는 언제나 그렇듯이 인생은 이렇게 항상 초보를 면하기 어렵다. 항공기가 지상으로 착륙하듯 태양은 하루의 고유한 임무를 완수하고 내려앉았다. 오늘 지는 해가 내일이면 분명 다시 뜰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10분전 3분전 그리고 17시26분3초다.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태양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는 이때에 지난해의 아쉬움과 이루지 못한 미련들일랑 훌훌 털어 버리고 금오산 낙조를 마무리 한다. 올라 올 때 걸어 오르기로 했다가 차를 얻어 타고 왔는데 내려갈 때는 걸어 내려가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다. 17시35분, 등로에 나를 태워준 그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차를 세웠다. 자신도 등산을 한다는 그는 나이로는 나의 절반 밖에 못 살았지만 이심전심 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러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등, 하 로에 나를 위해 예비 된 사람처럼 나타나서 말이다. 기왕에 도움을 받았으니 산 아래까지만 태워주길 바랐는데 오늘밤 내가 묵을 숙소까지 태워 주겠단다. 숙소에 도착하니 18시 정각이더라. 나는 그에게 저녁 식사나 하고 가시라고 정중히 제의를 했지마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그냥 가겠노라 했다. 그는 젊었다. 그래, 오늘은 성탄전야!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가 아닌가?
2013년 12월24일 화 맑음
<여명>
오늘은 감오년 새해를 앞두고 신년기획 산행으로 금오산 일출을 보기위해 04시에 일어나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기상 벨을 설정해 두었는데 0시30분에 잠이 들어 03시30분에 저절로 잠이 깼다. 여기서 정상까지 8km, 걸어서 2시간30분 거리다. 일출 예상시각 07시20분이어서 07시까지 정상에 도착할 계획이나 넉넉히 30분의 시간 여유를 두었다. 계획을 세울 때는 항상 여유를 두고 해야 몸도 마음도 부담스럽지 않다. 04시 정각에 숙소를 나와 산마루 불 켜진 정상을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맑은 날씨라 반달이지만 휘엉청 밝았다. 정상까지 찻길이라 헤드 랜턴을 안 켜는 것만으로도 한결 부담을 덜었다. 남양마을을 가로질러 산길로 접어드니 오르막이다. 정상 3km 쯤 남겨둔 지점에 이르니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르는 차량들이 하나 둘씩 올라온다. 나는 땀을 흘리면서 오르는데 그들은 승용차로 씽씽 올랐다. 차로 오르면 편한 줄을 왜 모르겠는가? 차로 오르내릴 것 같았으면 당초 집에서 차를 가지고 왔을 게다. 어제는 부득이 차를 얻어 타고 오르내렸지마는 오늘은 기어코 걸어 오르기로 작심을 하고 나섰던 것이 아닌가? 힘이 들지마는 누가 차를 태워준다 해도 나는 정중히 거절했을 것이다.
<해는 떴으나 해무에 가려 양 갈래 빛이 세고 있다>
마침내 금오산 정상이다. 06시40분에 도착했으니 8km 거리에 2시간40분 걸렸다. 예정시각보다 일찍 도착하고 보니 시간여유가 많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광양만의 야경과 사천만의 야경을 감상했다. 광양(光陽)은 이름값을 하려는 듯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인데도 어제저녁 보았던 것과 같이 광양만 불빛은 밤새워 역동적이다. 07시10분 금오산 해맞이공원 전망대에 자리 잡았다. 여명이 밝아 온지 20분이 지났는데도 해무가 끼어 해가 보이지 않았다. 12월25일 07시23분 마침내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를 타고 오른 사진작가들은 힘들여 오른 산이 아니어서 감동도 없는 모양이다. 지리산 천왕봉 일출처럼 환호도 없다. 이 좋은 장면도 내게는 눈에 보이는 만큼 멋진 사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저 카메라셔터만 꾹꾹 눌러 찍을 뿐이다.
오늘은 1월1일을 1주일 앞둔 동지가 지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성탄절이다. 이 어둠의 세상에서 소망의 빛으로 인도하실 슈퍼스타(Superstar) 예수그리스도(Jesus christ)가 이 땅에 오심을 만백성이 축하하는 날이다. 그의 탄생으로 기원전(Before Christ)과 기원후(Anno Domini)를 구분지울 만큼 인류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할 대사건임에는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천지만물의 운행과 인간의 생사화복이 그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그를 보내신 이의 통치아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각(知覺) 있는 사람은 다 알 터이니 말이다. 이런 날에 내가 금오산 정상 일출전망대에 선 뜻을 어느 누가 알기나할까?
<해맞이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오산 일출>
어디엔들 해가 뜨지 않는 곳이 있으랴만 일출명소는 분명 있다. 해마다 일취월장(日就月將) 한해의 시작을 의미삼아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일출명소마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곳 금오산 해맞이공원도 그 중에 한곳이다. 수년전부터 일출명소로 알려져 1월1일 금오산 신년일출은 몰려드는 차량들로 정상주차장은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진입도로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주차 차량들로 매우 혼잡하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전날 올라와 해맞이 공원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1월1일만 피하면 혼잡하지 않아 진교에서 숙박을 하고 남해대교 방향으로 500m 정도 가다가 이정표가 표시된 남양마을(옛 원동마을)입구 우측 길 금오산 방향으로 접어들면 금오산 정상길이다. 진교에서 정상까지 거리 약 8km 걸어서 2시간30분, 승용차로 15분이면 오를 수 있다. 좋은 일출을 보겠다면 한해의 첫날의 의미보다 날씨가 중요하므로 굳이 신년1월1일을 고집하지 말아야한다. 낙조와 일출을 겸하여 보겠다면 대체로 맑은 날씨에 만월 때를 택하면 낙조와 일출 그리고 월출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역동적인 광양만의 아침>
금오산 해맞이공원에서 저 높은 하늘도 쳐다보고 지는 해와 뜨는 해도 보고 저 아래 바다도 내려다보고, 언제나 변함없이 그곳에 있어 듬직한 지리산과 태고로부터 지금까지 순리대로 흐르는 섬진강도 봤다. 두 눈으로 하늘과 바다 산과 강, 이렇게 네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산이 그리 흔치를 않다. 문명은 볼거리를 많게 한다. 현대인들은 지고한 가치를 둔 영적 신령함에는 문명의 빛으로 눈이 가리어지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만 관심을 두고 죽기 살기로 매달려 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을 늘 피곤하게 한다. 눈이 피곤하면 온 몸이 피곤하다. 대개 사람들은 물심양면 어느 것을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취하려든다. 지금까지 세상에 내 욕심대로 된 일이 얼마였던고? 그것을 알면서도 마음의 창으로 들어오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속이 상할 대로 상해있다. 간이 나쁘면 온몸이 피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우리 몸이 일천 냥이면 간은 육백 냥이요, 눈은 구백 냥이라 했다. 서산에 지는 해와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광경을 통해 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해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하동화력발전소와 그 뒤 광양제철소>
겨울 산처럼 허옇게 머리가 희어져도 인생은 늘 초보를 면하지 못한다. 누가 인생을 연습 해보고 살아가나? 지나고 보면 온통 실수요, 하는 일들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던 것을 말이다. 옛말에 “인생칠십고래희 (人生七十古來稀)”라, 예부터 사람이 태어나서 일흔까지 사는 것은 극히 드물다 했다. 요즘은 여든을 넘긴 사람도 흔하지만 그만큼 병치레하는 기간이 길어졌다는 이야기와 같다. 오래 살았다 해도 그것도 잠시, 누가 원해서 태어나고 누가 원해서 나이를 먹고 그러다가 죽나.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오는 해를 반길 일인가? 이렇게 몸을 늙어가도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인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 썩어질 몸 뚱 아리는 감추고 꼬리만 가지고 나이를 계산한 이가 있었으니, 나도 누가 내 나이를 물어올 때면 그런 나이 계산법을 가끔씩 써 먹어 본다.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는 금오산 산마루에서 당시로서는 드물게 장수하여 일흔 셋에 지은 자하 신위 (紫霞 申緯1769~1845)선생의 시 내 나이를 헤아려본다.
我 年歲 (아 연세)
佳人莫問郎年歲 (가인막문낭연세) 그대여 내 나이를 묻지를 마시오. 五十年前二十三 (오십년전이십삼) 오십년 전 이십 삼세밖에 안 되었다오!
<역동적인 광양만의 아침>
오늘 일출에는 사진작가들이 전부고 등산을 겸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일출을 보고 나니 08시5분이다. 이제 하산이다. 이곳 정상에서 진교 시외버스터미널까지 8km가 조금 넘는다. 새벽에 오르던 길을 걸어 내려오니 내리막길도 딱딱한 시멘트 포장길이라 쉽지를 않았다. 힘든 것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안태워줘서 걸어내려 온다면 무척 원망스런 일이였을 게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목적이 분명 다르니 그런 유혹도 너끈히 참아낸 것이다. 진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5분이더라. 오늘 일출산행은 등 하로 왕복16km, 6시간5분이다.
2013년 12월25일 수요일 구름 조금
|
첫댓글 생명이 꿈틀대고 오늘날의 과학이 어울어져 새로운 느낌을 주는 사진들입니다.
감상하고 갑니다.
가까이 사시는 분이시면 차가 정상까지 올라가니
시간이 없으신 분들도 지나시는 길에 꼭 한번쯤 올라 보시기를 권합니다.
일몰의 경관이 일품입니다.
일출도 좋았었는데 해무현상으로 조금 아쉽습니다.
예측을 불허하는 우리의 엄중한 현실같습니다.
그래도 새해에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佳人莫問郞年歲,五十年前二十三.
저도 삼십삼년전에 이십삼세였답니다.
日沒이 日出 같기도 하고 여명도 좋고
다시 일출도 아름답고 섬진강 일출은 달무리 같기도 하고
달맞이꽃같아 아름답습니다.산업현장 굴뚝에 연기가 힘차보이고 力動的이고
한발한발 걸어서 오른뒤 힘들게 얻은 사진이라 더욱 값집니다.
한시를 곁들여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올 한해 산행일기로 한시속으로가 풍성했습니다.
한분한분 올려주시는 귀한작품이 한시속으로를 빛내줍니다.
甲午年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안전한 산행하세요.
琴提님은 三이 三번 들어가는 年歲시군요. 저는 五十年 前 十五歲였답니다.
저의 서투른 글 솜씨로 쓰여진 산행기를 잊지않고 찾아 읽어 주심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특별히 琴提님의 댓글로 인하여 저의 글을 더욱 빛나게 하셨습니다.
새해에도 변합없는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림니다.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들마다 능히 이루어 지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금오산(일명 소오산)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얼마나 멋진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지 않습니까
저의 고향입니다. 아름다운 사진, 정말 눈물이 날정도 울컥합니다.
法泉 선생님께서 故鄕이 河東이군요.
少時的에 金鰲山을 자주 오르 내리셨겠는데요.
앉아서 故鄕 山川을 그려보시다니 感懷가 남 다르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고향은 다도해가 아름답게
펼쳐진 사천시(泗川市)입니다.
섬이 또렷이 보이네요. 별주부전의 고향
토끼섬, 거북섬, 목섬, 별학섬, 미섬, 향기섬...사진 정말 잘 찍었습니다.
고향이 사천이시군요.
이름도 재미있는 섬들도 잘 보이지만 사천비행장도 보였습니다.
그러니 사천에서도 금오산이 잘 보이지요?
서산해가 금오산 정수리로 뚝 떨어지니까요.
진교면 소재지에 살고 있습니다. 남양 마을에는 제가 다니는 전원교회가 금오산 올라가는 입구 대원사 절 옆에 있지요. 그런데 금오산을 이렇게 소개를 받으니 색다르고 부끄럽습니다. 색다르다는 것은 금오산 기슭에 살면서 이런 아름다움을 모르것에 깨다름이구요. 부끄러운 것은 저의 꾸지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금오산 아래 진교에도 우리
"한시 속으로" 회원님이 사셨군요.
25일 새벽 등로에서 전원교회가 보였습니다.
성탄트리도 장식되어 있었고요.
제가 서울 근교 산행을 할적에
서울사람을 상대로 산행가이드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정작, 너무 가까이 있으면 잘 알지도
좋은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함께 사는 배우자가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것 같이 말이지요.
금오산이라 해서 대구에 있는 금오산인줄 알았는데
하동쪽에도 금오산이 있군요
저도 10년을 산에 미쳐서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명산을 찾아 주유하고 다녔는데
이제 무릅도 안좋고 하여 산행을 많이 줄일 수 밖에 없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멋진 풍경 사진과 한시까지 곁들여 정성들여 올려주시니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담님께서는 한때 산을 무척 좋아하셨던
분이셨는데 무룹이 안 좋으시군요.
안타깝습니다. 산행은 내려올 때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 하셔야합니다.
대개 젊은 시절 체력을 과시하던 분들이
고생을 하시는 분들이많습니다.
금오산은 차량으로도 오를 수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