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소설이나 일본 소설을 읽으면 헷갈리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선 이름이 길고 복잡해서 주인공 이름외에는 잘 외워지지가 않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성과 이름의 길이가 둘 다 길고 복잡하고, 어떨때는 이름으로 불렀다가 어떨 때는 성으로 말하는데다가 애칭이나 줄여서 쓰는 이름도 있어서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소설에는 앞에 등장인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어서 헷갈릴 때마다 그 설명을 보면 그런대로 내용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번역본 중에도 앞에 등장 인물에 대한 요약이 있을 때는 편하게 읽었는데, 등장 인물에 대한 소개가 없을 때는 진도나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종이에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가면서 읽곤 했습니다.
추리소설은 탐정이나 형사의 논리정연한 추론과 예리한 직관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을 풀어가는 일종의 수수께끼 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탐정이든 형사이든 그들의 활약에 의해 사건을 해결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스웨덴 작가 레이프 페라손의 추리 소설 <린다 살인 사건의 린다>는 주인공이 벡스트림이라는 형사인데 범인 검거에 도움되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벡셰라는 지방도시에서 인턴 경찰인 린다라는 여성이 강간당한 후 살해되었고 범인은 도망갔는데, 경찰은 범인것으로 추정되는 DNA를 채취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중대사건으로 규정한 스웨덴 국가범죄수사국은 벡스트림 경감을 팀장으로 총 6명의 수사관을 벡셰로 파견합니다. 이 소설은 두권이나 되는 꽤 두 꺼운책인데 이들 수사관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DNA검사만 합니다. 무슨 추리나 어떤 활약으로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100명, 200명.. 점점 늘어나서 벡셔 주민 1000명에 대한 DNA검사만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벡스트림은 집에 있던 몇달 동안 세탁하지 않은 옷들을 벡셔 호텔에 가져가서 세탁을 맡기고 활동비에서 결재합니다. 매일같이 술마시고 호텔 TV로 유료 포르노영화를 보고나서 뻔뻔하게 활동비로 청구합니다. 벡셔의 어떤 여기자가 자기에게 반했다고 생각하고 그 여기자를 호텔 방에 데려와서 대화 도중 갑자기 옷을 벗고 자기 알몸을 여기자에게 보여주었고, 놀란 여기자는 호텔 방에서 도망치고 추행범으로 벡스트림을 고소합니다.
읽다보니 점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들이 헷갈리기 시작하는데도, 형사들이 수사라고는 줄창 DNA검사만 하고 있고, 수사와 관련없는 대화만 하고 있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추리소설이 아니라 풍자소설인가? 나중에 범인을 잡긴 잡는데, 형사들의 수사때문에 잡는게 아니라, 이 범인이 다른 범죄를 저질러서 DNA검사를 하니 린다살인사건의 범인의 DNA와 일치해서 잡게됩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 소설에서 공금횡령과 성추행을 저질렀던 주인공 벡스트림 형사의 이야기가 시리즈로 계속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열린도서관에 <형사 벡스트림 시리즈>가 두 편이나 더 있습니다. 이제까지 읽은 추리소설 중에 제일 재미없는 추리소설이었습니다. 무슨 긴장감이나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고 범인을 잡았을 때의 통쾌함도 없어서 아직도 어리둥절 합니다. 아마 추리소설이 아니라 사회비판 소설인 것 같습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을 고발하는 소설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왜 표지에 추리소설이라고 써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