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 학생들이 방과후 지도 … 서울 아이들도 전학옵니다
통폐합 대상 학교였던 면온초를 ‘가고 싶은 학교’로 변화시킨 서대식 교장(왼쪽)이 학교 스노보드 부원들의 훈련 현장을 찾아 격려하고 있다. [최명헌 기자] | |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보다
교장 직함을 달고 처음 부임한 면온초등학교. 서 교장은 “잘해 보겠다”는 열의에 차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전교생(39명)을 붙잡고 ‘꿈이 뭐냐’고 물어보니 하나같이 ‘모른다’ ‘생각 안 해 봤다’고 대답하더군요.”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 얘기하고, 성공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롤(Roll) 모델’을 찾아 보여줘야 했다. 서 교장은 무작정 인근 민족사관고를 찾았다. 당시 교장이었던 이돈희(72)씨를 만나 “민사고 학생들이 면온초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지도를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2주 동안 매일같이 찾아가 설득한 끝에 승낙을 받아냈다.
이후 민사고 학생 35명이 매주 2차례 찾아와 외국어·과학 등을 지도하고, 1대 1 생활·진로상담을 하면서 아이들이 달라졌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생겨났고, “나도 민사고에 가겠다”는 구체적인 진로계획도 잡았다. 민사고생들을 만난 뒤 아이들은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당시 5학년 학생 7명 중 5명이 ‘강원도 명문’으로 손꼽히는 원주 삼육중학교에 합격했다. “한 달 만에 아이들의 학습 태도부터 진지해졌어요. 작은 동기 부여에도 아이들은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방과후 수업으로 일궈낸 시골 학교의 ‘기적’
면온초등학교 주변에는 학원이 없다. 학원에 가려면 차로 30분 이상을 나가야 한다. 서 교장은 “학교에서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부임 한 달 뒤 지역 인사들과 함께 ‘농촌 학교 살리기 운영위원회’를 만들었다. 방과후 수업을 활성화하기로 한 것이다.
각종 지역기관과 인근 부대, 기업체 등을 찾아 다니며 방과후 수업을 담당해 줄 강사를 찾아 나섰다. 한 달여 동안 강사 섭외를 다니느라 서 교장은 오전 9시부터 밤까지 강원도 전역을 누볐다. 그 결과 5월부터는 체육과 미술·글짓기 등 12개의 방과후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었다. 태권도 수업은 인근 부대 병사가 가르쳤고, 글짓기는 강원도 문인협회 회원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강사의 명성보다 수업을 받으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좌 수는 꾸준히 늘었고, 현재 이 학교에는 20가지가 넘는 방과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 교장의 바람대로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을 찾아나갔다. 스키와 글짓기, 발명품 대회 등 1년 동안 학생들이 받아오는 상장만 50개가 넘는다. 학교 이름이 알려지면서 한 학기 만에 학생 수가 63명으로 늘었고, 2007년부터는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서울 등 대도시에서 이사 오는 학생까지 생겼다. 손자(초3)를 면온초에 보내기 위해 서울에서 이사 왔다는 주병옥(75)씨는 “방과후 수업으로 영어 말하기를 수강하면서 지난해 대한민국 영어말하기대회에서 우수상까지 받았다”며 “영어뿐 아니라 과학과 스키 등 다양한 수업을 들으면서 손자 스스로 재능을 찾아낼 수 있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쓴 ‘편지’
이 학교의 모든 방과후 수업은 무료다. 부임 후 “모든 비용은 학교가 부담하겠다”는 학부모와의 약속을 지켜왔다. 이를 위해 서 교장은 기업체에 수십 통의 편지를 썼다. 시골 학교의 상황을 설명하고, ‘학생들을 위해 투자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처음에는 쑥스럽고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못하겠냐고 생각했습니다.” 각종 기업체에서 후원이 이어졌다. 후원 받은 금액만 8억원에 이른다. 방과후 수업에 참여하는 강사비를 충당했고, 풋살경기장과 골프연습장도 지었다.
방과후 수업으로 가야금을 배우는 권선우(초6)양. | |
교사경력 36년째인 서 교장은 도시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농어촌 벽지 학교만을 지원해 다녔다. “첫 발령지였던 강원도 인제 김부초등학교에서 5~6학년 학생 8명을 모아놓고 첫 수업을 했죠. 티없이 맑은 아이들이 주변 환경이 어려워 ‘공부를 접어야 하나’ 고민하는 걸 봤습니다. 그때 ‘내가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은 적어도 환경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은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정년 6년을 남겨놓은 그에게 ‘꿈’에 대해 물었다. “저는 교육장 등 행정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는 날까지 한 학교의 ‘교장’으로 남고 싶습니다. 또 다른 벽지 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제2의 면온초등학교를 만들어 내는 게 교직생활 동안 이루고픈 마지막 꿈입니다.”
평창= 최석호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