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유회를 겸해서 간 산행이었다. 산이름의 유래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산세의 포근함에 너무나도 편한 산행이었다.
전날 술독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일요일 아침. 박양규(보훈신문)형님의 전화가 나를 깨운다. 아뿔사.. 1시간 전이건만 준비할게 많다. 나의 산행이 항상 그렇지만, 굳이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이 많다. 지리산 종주 때처럼, 뒷산을 가더라도 가방에 가득 채우는 버릇은 평생 버리지 못할 듯 하다. 잠결에 들은 소나기 기상예보에 하늘은 쳐다보지도 않고 비옷부터 챙긴다. 카메라 챙기고, 어안렌즈는 챙겨 말어, 풍경 찍을때는 필요한데, 꽃사진 접사에는 매크로렌즈에 플래쉬는 필수이고, 간식에 시원한 맥주 아이스팩에 담고. 담다 보면 끝이 없다. 결국에는 한번도 꺼내보지 못하고 올 물건들이다. 결국 카메라에 줌렌즈하나 달고, 쌍안경, 약간의 간식에 맥주 6캔을 담고 나니.보훈형님! 집 앞이란다. 지하철공사 용산기지역 뒷편에서 모여 물건을 나누어 싣고 인원도 다시 차량에 편성해서 모후산으로 출발한다.
직업 탓에 왠만한 길이나 위치라면 감으로 찾아는 필자이지만, 역시나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고 했던가? 초행길이들 아니든 확실하지 않은 위치는 반드시 확인해두고 가는 경로 또한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능사일 것이다. 소태동에서 출발 화순을 걸쳐 4차선 국도를 시원하게 달린다. 사평을 지나 벌교를 향해 한참을 달린다. "이길이 아닌가벼!" "유마사 가는길 맞는디." "선두가 찬찬히 가야하는디" 궁시렁 궁시렁 동복 유천리 쪽이라는 전화를 받고서야 길을 고쳐 잡는다. 후에 가시는 분들을 위해 길을 올린다. 화순에서 벌교방향으로 달리다 동복(정확히는 구암)으로 빠지는 JC로 나와 22번 국도를 타고 주암방향으로 달린다. 동복터널을 지나면 오른쪽에 저수지가 보이는데 저수지 끝쯤에 유천리 돌비석이 보인다. 우회전해서 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달리면 모후산 등산로 이정표가 보인다. 반대편 주암호 쪽에서 유마사를 통해 올라오는 길이 있으나, 이번 산행은 야유회를 겸했기 때문에 유천리 계곡쪽으로 잡은 듯 하다.
모후산은 섬진7지맥의 한 봉우리로 백아산의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동복천을 앞에 두고 멈춰선 곳이다. 이 산은 광주 무등산과 순천시 조계산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마사, 주암호, 사평폭포 등의 명소가 곳곳에 있고, 항상 푸른 계곡물이 넘쳐 있어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려인삼 시배지이기도 하다. 서하당 김성원하면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식영정을 지은 이가 서하당이다. 그 후 정철의 후손들이 인수하여 내려오고 있기는 하지만 서하당이 장인 임억령을 위하여 짓은 것이라 한다.
유천리 계곡은 한참 공사중이다. 홍수에 대비하여 댐을 막고 정비하느라 북새통이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계곡은 규모에 비해 너무나 한산하다. 우리에게 잘된 일이다. 하지만 정비가 되고 나면, 내년엔 오고자해도 엄두도 못낼 것이다. 물보다 사람으로 꽉 차지 않겠는가!
도착하자 마자 짐을 풀고 산행을 준비한다.
유천리 계곡 중간쯤부터 시작하다 보니 정상까지의 거리가 대략 3KM정도이다. 유마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맞나는 고개가 용문재이고,정상까지 50분거리이니 대략 3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한 코스이다.
(위 사진은 산행과는 무관하다. 그냥 도착 기념샷이다.)
4명이 선발대로 앞서가고, 후발대는 지리산 종주를 같이 했던 무등골 회장님, 초담님, 보훈님, 수애님, 초담님 그리고 필자다. 말이 좋아 후발대지 저질 체력에 온갖 해찰을 부려가며 가니, 지리상 종주의 슬로건 "사부작 사부작"이 오늘 산행에도 딱 들어 맞는다.
한참을 올라가니 햇살님이 선발대를 놓치고 하산중이다. 오늘따라 고전중인 수애님과 보조를 맞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용문재에 도착하니 산악회 등 등산객이 많다. 아마도 유마사쪽에서 주차하고 올라오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렵사리 매고 온 캔맥주 하나를 마시고 고개를 돌리니 일행들이 한참 앞서가고 있다.
오르막만 계속되는 용문재까지의 길과는 달리 정상까지는 아기자기한 봉우리 세개와 능선을 따라 오른다.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은 산행이다. 이러한 산세 덕에 모후산이라 불리는 듯 싶다.
얼마쯤 올랐을까 앞서가던 초담님이 발걸음 멈추고 펼쳐지는 광경을 감상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를 모자삼아 펼쳐지는 유마사와 주암호의 풍경이 장관이다.
달려 정상 앞 봉우리에 서서 서쪽을 보니 무등산이 한걸음이다. 중봉에 송신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이 참 경이로울 뿐이다. 어느 봉우리에 오르더라도 생각지 못한 산들이 내 이웃처럼 한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계곡에서는 점심때 맞춰 하산하라는 무전이 극성이다. 어차피 산행팀 신경 안쓰고 드실 분들의 괜한 친절이 기분 나쁘지 않다. 이것이 세상사는 인심일 터. 정상에 오르니 중간에 만났던 진주 산악회 팀들이 점심이 한창이다. 무등골 회장님이 챙기신 김밥에, 계란에, 아이스팩에 담아 온 맥주를 꺼내 만찬을 했다. 정상에 오르니 주암호, 동복호 특히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고도 918M 모후산은 그렇게 어머니의 품처럼 우리를 반겨 주는 듯 했다.
산 아래에서 기다리는 일행들을 위해 서둘어 하산을 하니, 닭백숙, 삽겹살에 진수성찬이다. 이런 신선놀음을 잊은지 몇년째던가? 왠만한 계곡은 취사를 할 수 없게 된 탓도 있겠지만,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게 때문이 아닐까 한다.
돌아오는 길 주점에서 한잔 더 기울이고 집에 들어오니 늦은 밤이다.
하지만, 월요일 출근이 두렵지 않은 산행이었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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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명상(瞑想) 원문보기 글쓴이: 고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