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 운영하는 봄그늘 협동조합
“마음을 보듬어 어둠 속에서 봄빛을 찾는 시간”
서울대입구역 인근 그레이프라운지, 휴식과 활기를 띤 문화의 공간 3층에 조금은 특별한 방이 있다. 그곳은 빛 한 점 없는, 그야말로 칠흑의 공간이다. 그러나 손님에게 그 어둠은 포근함으로 여겨질 뿐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시각장애인 마음보듬사의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를 운영 중인 봄그늘 협동조합(이하 봄그늘)의 조은기 대표를 만났다.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는 이든비즈플러스 강남점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Q.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사범대에서 불어교육학과를 전공하며 봄그늘의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는 조은기입니다. 팀원으로 활동하던 중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해보고 싶은 마음에 자원했고, 만장일치로 대표가 되었어요. 내부 규정상 임기가 2년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전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처럼 전공 분야에 개의치 않고 사회공헌에 충실하고자 모인 인원이 많습니다. 초심을 되새기며 함께 노력한 덕분에 마음보듬 프로젝트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봄그늘은 상담 접수와 행정 관리 등의 업무를 맡은 여섯 명의 매니저와 저희 서비스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시는 열 분의 시각장애인 마음보듬사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중 세 분은 아직은 예비 마음보듬사인데, 정식 활동을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서비스를 기획하고 실행한 지 3년차인데, 그동안 함께하는 인원이 늘고, 장애인고용공단과 개발원에서 사업 가능성을 인정받아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되었으며,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가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많은 반향을 이끌어낸 점이 보람되고 기쁩니다.
Q. 아이디어 구상 및 실행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시작은 소셜벤처경영학회 인액터스의 ‘봄그늘팀’입니다. 비즈니스로 사회공헌을 실현한다는 취지에 맞게 프로젝트 선정 회의를 하던 중 두 가지 문제가 제시되었어요. 시각장애인의 직업이 상당히 한정적이라는 것과 스트레스를 겪거나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런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시각장애인분들과 함께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데는 성별과 나이는 물론, 보이지 않는다는 장애 또한 제약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을 통해 5명의 시각장애인분들을 소개받고 공간을 임대해 본격적으로 서비스 진행을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 명칭인 ‘봄그늘’은 그늘진 내담자분들의 마음에 봄을 선물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시각장애인분들을 봄의 눈으로 보게 한다는 이중적인 뜻을 담고 있어요.
Q. 다른 심리상담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A. 우선 50분 동안 완전한 암막환경 속에서 1:1로 대화를 나눈다는 점입니다. 어둠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타인의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고, 상담사에게 분석당하는 듯한 느낌에 심리상담을 꺼렸던 분들도 편하게 참여할 수 있어요. 마음보듬사와 내담자 모두 별칭을 사용해서 신원 노출 염려도 최대한 줄였습니다. 홈페이지로 상담 예약을 받는데 다른 심리상담에 비해 비용이 경제적이죠.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는 전문 심리상담과 또래상담의 중간 형태에 가까워요. 문제 해결과 극복에 중점을 두는 대신 고민의 답은 자신 안에 있다는 말처럼 공감과 경청을 통해 감정의 순화를 돕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력합니다. 내담자의 마음 속에 있는 해결의 실마리가 빛을 볼 수 있게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셈입니다.
Q. 아쉬운 점이나 힘든 부분이 있다면요.
A. 구성원 다수가 학생이기 때문에 운영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게 가장 아쉽습니다. 각자 스케줄이 있어서 서울대입구점은 월, 목~금 3회, 강남점은 월~토 저녁으로 대화 시간을 잡고 있거든요. 받을 수 있는 예약에 한계가 있어서 이용자분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게 어려울 때가 있어요. 수익적인 문제도 있고요. 그런 점을 만회하고자 온라인 대화 서비스를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되면 현장감과 몰입도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PC통신으로 익명성은 물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상담의 라포르(rapport) 형성과 친밀도를 유지시켜주지는 않아요. 저희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의 장점은 편리함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위로와 힐링이니까요. 상담 접수를 진행하며 이용자분들의 고민 유형을 간단하게 카테고리별로 분류해 받고 있는데, 취업과 업무 스트레스, 가치관,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가 가장 많더라고요. 그런 고민이나 우울감이 마음보듬사와의 대화 후 조금이나마 풀리는 모습, “나를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다”와 같은 후기를 접할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시각장애인 마음보듬사분들도 이 일을 통해 자신을 긍정하며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Q. 마음보듬사가 되기 위한 자격이나 요건이 있을까요.
A. 마음보듬사는 기수별로 모집하는데 2기 차 모집까지 진행된 상황입니다. 정기적으로 공고를 내기보다 인력 충원을 요할 때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지원을 얻어 접수를 받아요. 특별한 자격 조건은 없지만 동료상담 경험이 있다면 마음보듬사라는 직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고, 서툴거나 어려운 것도 하다 보면 나아지죠. 하지만 그 밑바탕에 의지나 열정이 없다면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공감하려는 자세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면이 마음보듬사의 가장 큰 자질이라고 봐요.
Q. 블라인드 마음보듬을 통해 바꾸고 싶은 변화를 소개해주세요.
A. 차츰 인지도가 쌓이다 보니 이용자분들의 문의와 함께 마음보듬사에 관심을 갖인 시각장애인분들에게서도 질문 전화가 오곤 합니다. 그때마다 앞으로도 더 분발해서 ‘멘탈 헬스케어’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가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기업이나 단체 등이 마음보듬사를 멘탈 헬스케어 담당 인력으로 고용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시각장애인의 진출 직업이 늘어난다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식개선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해요. 장애인은 도움을 받는 존재만이 아니라는 것, 그들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 그런 인식이 대중화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블라인드(blind)’가 시각장애인이란 의미보다 어둠 속에서의 공감, 사람 대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위로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시각장애인분들도 블라인드 마음보듬의 사례를 통해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길 희망합니다. 봄그늘은 지속적으로 내담자와 마음보듬사, 그리고 사회 전반에 힐링을 주는 서비스가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봄그늘 블라인드 마음보듬 대화 서비스 안내
장소: 서울대입구 그레이프라운지 / 강남 서초구 이든비즈플러스
운영: 서울대입구점 월, 목, 금 / 강남점 월~토
예약 및 문의: 홈페이지 http://www.maeumbodeum.com
신혜령 기자
* 본 기사는 국정 152호에 실린 글의 초고 원본입니다. 실제 기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주력 기자님과 주무관님의 가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