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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과 문경새재
경상북도 문경지방은 명산의 고장입니다. 우리국토의 대동맥인 백두대간은 이 문경지방을 거의 S자 형태로 지나갑니다. 대미산에서 남하하던 백두대간은 포함산에서 하늘재로 내려앉은 후 월항삼봉·부봉·마폐봉을 지나 조령(제3관문)으로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깃대봉·신선암봉·조령산을 거쳐 이화령을 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문경지방은 백두대간상에 위치한 산만해도 조령산·부봉·주흘산 등을 포함하여 모두 16개이며, 백두대간 주변의 산만해도 운달산·천주산 등 16개에 달합니다.
문경(聞慶)은 그 말뜻을 풀이해 보면 경사스러운 일을 듣는다는 말입니다. 옛날 과거급제를 위해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오가던 영남 선비들이 고향에 좋은 소식을 듣게 한다는 동네입니다. 문경새재 길은 남쪽의 선비들이 가장 많이 한양으로 가던 주된 길목이었는데, 그 이유는 추풍령 길을 이용하면 과거에 낙방한다는 징크스가 있었던 반면, 죽령 길은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산세가 워낙 험준해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조령(鳥嶺)"(우리말로는 "새재")의 문경새재 길은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로 흐르는 조령천을 따라 조성된 길을 말하는 데, 제1관문에서부터 제3관문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장소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닐고 싶은 산책로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영남(嶺南)지방이라 할 때의 영남이란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조령(鳥嶺)을 기준으로 영(嶺)의 남쪽에 있다하여 부른 이름입니다.
가까워진 문경
2005년 4월 24일 일요일 아침, 38명의 등산객을 태우고 서울 지하철 양재역을 출발한 관광버스(M산악회 주관)가 중부내륙고속도를 타고 오다가 문경새재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오니 순식간에 주흘산의 스카이라인이 바라보입니다.
지금까지는 서울에서 문경으로 오기 위해서는 충주에서 3번 국도로 갈아타고 남하해 이화령터널을 통과하는 길을 주로 이용하였으나, 이 구간의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처음으로 이 길을 달려보니 이제는 문경도 3시간 거리 내에 위치한 가까운 이웃이 되었습니다(여주 휴게소에서 정차한 30분을 감안하면 실제로 약 두 시간거리입니다).
철저한 산불감시활동
문경새재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린(09:43) 등산객들은 문경새재도립공원 매표소를 통과합니다. 오른편에는 여러 종류의 장승이 세워져 있는데 입구에는 장승의 유래와 전설을 자세하게 설명한 안내문이 있습니다.
영남 제1관(주흘관)
바로 앞쪽에 있는 영남 제1관(주흘관)이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남대문처럼 생긴 주흘관의 통로를 빠져나가 산행을 위해 오른쪽으로 접어듭니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의 나이 지긋한 산림감시원은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후미가 올 때까지 모두 서서 기다리게 하므로 사람들이 항의하자 이분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요즈음은 산불경방기간이라 개방된 등산로라고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당부사항이 있는데 입산하는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말해야지 개별적으로 일일이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오."
그리고는 산행책임자에게 인적사항과 전화번호를 기록하게 하고는 등산객들 중 불(라이터 또는 성냥)과 담배를 소지한 사람은 보관했다가 하산시에 되찾아 가라고 합니다. 공공의 적인 산불예방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의 노고에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여궁폭포
호젓한 산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니 왼쪽으로는 혜국사로 올라가는 길인데 우리는 여궁폭포로 가기 위해 거의 직진하여 앞으로 나갑니다. 조그만 다리를 건널 즈음 일행 중의 한 명이 다리에 쥐가 났는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오늘 하루가 걱정됩니다.
오솔길로 나아가니 물이 쾅쾅 쏟아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여궁폭포인데 위의 하늘이 보일 정도로 갈라진 바위틈사이로 20m 높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궁폭포는 오른쪽 능선의 단애와 왼쪽 능선의 단애의 판석 같은 절벽이 서로 엇물린 곳에서 물이 수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신비스러움을 느낍니다.
꼬깔봉으로 가는 길
여궁폭포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혜국사로 가는 길이지만 우리들은 고깔봉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릅니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우회하던 등산로는 다시 왼쪽의 급사면을 치고 한참동안 오릅니다.
초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 두 명이 보호자도 없이 산행에 동참했는데 부드러운 길을 잘 걷던 이들도 이곳에서는 매우 힘들어합니다. 이 등산로는 주흘산의 남릉이라는 꼬깔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등산로가 아니어서 길이 매우 희미하고 또 경사도 무척 심해 어린이가 오르기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덜길을 지나자 비로소 부드러운 길이 나옵니다. 능선을 지나 바위봉우리 오른쪽 사면을 치고 오르니 가느다란 로프가 걸려 있습니다. 가볍게 로프구간을 벗어난 후 오른쪽은 벼랑바위로 된 구간을 통과하는 데 비로소 맞은 편 조령산의 마루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른쪽은 절벽이지만 등산로는 이외로 매우 좋습니다.
다시 바위봉우리 왼쪽으로 돌아 능선에 붙으니 오른쪽으로 전망이 트이는 곳에 다다릅니다. 양면이 절벽인 바위능선을 지나 급경사의 내리막에는 친절하게도 가이드가 서서 사람들이 하산하는 길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높이는 얼마 안되지만 바위의 생긴 모습이 발 디딜 틈이 없어 하산하는 요령을 알려주지 않으면 통과하기가 힘든 곳입니다.
이런 곳이야말로 보조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야 할 곳입니다만 없는 게 흠입니다. TV를 시청하다가 채널을 돌리고 싶을 때 꼭 필요하여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거실의 리모콘과 같습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전혀 밧줄이 필요 없는 곳에도 설치된 경우가 허다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응달 길은 아직도 미끄럽습니다. 이런 미끄러운 길을 따라 능선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에 젖은 육신을 날아갈 듯 해 줍니다. 조망이 트이는 전망대에서 가느다란 로프가 걸려 있는 내리막을 지나니 산길은 다시 부드러워 지는 데, 고도가 높아져서인지 지금까지 간간이 보이던 진달래도 이미 자취를 감추고 주변의 숲 속은 겨울처럼 황량함 그대로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계절은 벌써 봄이 되었으나 이곳 산 속에서 봄을 느끼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늘꼭대기로 솟은 나뭇가지에만 잎새가 돋아나려고 할 뿐 나무 등걸과 줄기는 아직도 겨울옷을 입은 채로 있고, 대지에도 풀 한 포기 볼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합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12분만에 드디어 꼬깔봉(해발 1,080m) 능선에 도착합니다(11:55).
꼬깔봉은 멀리서 보면 흡사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서 일명 관봉(冠峰)이라고도 하는데, 문경온천방향에서 바라보면 왼쪽에 삼각형처럼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이며, 오른쪽 끝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주흘산 주봉입니다. 이 두 개의 봉우리를 멀리서 보면 꼭 기와지붕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주흘산을 상징하는 마루금으로서 처음 보는 사람도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남쪽이 절벽의 바위로 구성되어 있는 꼬깔봉에 서니 북쪽으로는 주흘산의 주봉과 영봉이 힘차게 솟아 있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가는 조령산 능선의 모습이 아련하며, 동쪽으로는 문경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꼬깔봉에서 바라본 주흘산 주봉
주흘산 주봉(1,075m)
꼬깔봉에서 주흘산 주봉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의 바위 절벽을 따라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길은 매우 부드럽습니다. 한참 가다가 팔부 능선으로 길이 이어지는 데 꽃잎이 매우 작은 샛노란 노랑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노랑제비꽃
드디어 혜국사 방면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자 오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지금까지는 M산악회 회원들만의 산행이었지요. 등산로 옆에는 새싹을 틔워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식물이 단연 눈에 들어오고 부지런한 놈들은 이미 크게 자라났습니다.
깎아지른 바위로 된 주흘산 주봉으로 가는 길목에 간간이 바위절벽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2관문에서 꽃밭서들을 거쳐 올라오는 등산로와 다시 길이 합쳐지더니 이제는 주봉으로 연결됩니다. 약 3년 6개월만에 주흘산 주봉에 다시 서니 정말로 감개무량합니다(12:40).
주흘산 주봉으로가면서 뒤돌아본 꼬깔봉
주흘산(主屹山)은 "우두머리의 의연한 산"이란 뜻인데 정상에는 화강암으로 된 튼튼한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꼬깔봉이 절벽 위에 솟아있고 북쪽으로는 이름 모를 바위산이 주변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주흘산 정상표석
뒤돌아본 꼬깔봉
주흘산 영봉(1,106m)
주봉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배낭을 내려놓고 간단하게 행동식을 꺼내 요기를 합니다. 사람들은 야채와 된장 그리고 김치 등 진수성찬을 펼쳐놓고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필자는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행동식만 먹어도 충분하므로 도시락을 싸 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봉에서 영봉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등산객들은 제1관문 또는 제2관문에서 주흘산 주봉에 올랐다가 곧장 하산하기 때문입니다.
북쪽의 경관을 잘 조망할 수 있는 능선에 도착하자 날씨가 좋은 탓에 저 멀리 월악산의 영봉과 중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섭니다.
월악산 조망
웅장한 월악산
주흘영봉에는 그 전에 있던 볼품 없는 돌무덤은 말끔히 치워지고 대신 조그만 크기의 영봉표석이 세워져 있어 보기에도 좋습니다(13:22).
주흘영봉에서 뒤돌아본 주흘산 주봉
백두대간길과 만나는 945봉
주흘영봉에서 오늘 두 번째 산행목표인 부봉(釜峰)으로 가기 위해 북쪽의 능선길을 따라 갑니다. 좌측사면을 돌아 다시 능선에 오르니 오늘 산행 중 월악산의 조망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 뒤로 보이는 월악산의 영봉은 주변 산세에 비추어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입니다. 월악산과 더불어 주변에 보이는 산들은 월항삼봉, 포암산, 희양산, 대미산 그리고 저 멀리 소백산의 산세도 보일 정도이지만 산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이들 산 이름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함을 한탄합니다.
월악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월악산의 위용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월악산
월악산 전망대를 지나 밧줄구간을 가볍게 통과한 후 북쪽 사면을 따라 가다가 떡시루처럼 생긴 바위를 보며 지나갑니다. 주흘영봉에서 출발한지 약 40분만에 945봉에 도착합니다(14:00).
백두대간길인 945봉
945봉은 월항삼봉에서 월항재를 지나 남하하던 백두대간이 다시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 갈림길의 백두대간길입니다. 따라서 필자가 서론부분에 주흘산이 백두대간상에 위치한 산이라고 소개했는데("문경명산가이드" 홈페이지 참조) 엄격한 의미에서 주흘산이 백두대간 길에 소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흘산은 945봉에서 남쪽으로 크게 능선을 빚은 곳에 위치합니다. 이 능선은 주흘영봉과 주봉을 일으키고 꼬깔봉(남봉)에서 솟구쳤다가 문경시내로 서서히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이정표를 보면 지나온 주흘산까지는 2.6km(1시간 30분), 북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하늘재까지는 3.2km(1시간 30분), 제3관문까지는 4.7km(3시간) 그리고 부봉(제6봉)까지는 1.3km(1시간 40분)입니다.
945봉에서 가이드 2명과 함께 도착한 후미그룹을 만나니 이제는 후미그룹이 무려 12∼3명에 달합니다.
밧줄과 암릉의 싸움-부봉(935m)
부봉(釜峰)은 문경새재길에서 보면 북쪽 방향 오른 쪽으로 바라보이는 거대한 바위봉우리입니다. 부봉은 동쪽의 1봉부터 서쪽의 6봉까지 모두 여섯 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2봉의 높이가 가장 높아 통상 이를 정상이라고 합니다.
945봉에서 이제는 백두대간길을 따라 갑니다. 소나무를 배경으로 조령산의 마루금이 선명하게 보이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분 좋게 진행합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제법 평탄한 길이 이어져 역시 백두대간길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부봉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조령산 마루금
곧이어 나타나는 험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기에 하는 말입니다. 절벽의 바위사면에 수평으로 난 등산로는 안전시설인 로프가 없었더라면 통과하기가 불가능할 지경인데 정말로 조심해야 할 난구간입니다.
오금이 저려올 정도의 아찔한 구간을 통과하면서 절벽사이의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소나무와 등산객들이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비록 후미그룹이라고는 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험한 길을 잘 통과합니다. 카메라를 꺼내 전원을 켜고 사진 한 장 찍는 사이에 일행이 저만치 도망치니, 이곳에서의 풍경을 카메라렌즈가 아니라 그냥 필자의 가슴에 담아 둘 뿐입니다.
백두대간과 부봉 갈림길
이제 백두대간길과 분기되는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합니다(14:29). 지금부터 백두대간길은 북서쪽의 마폐봉(마패봉)을 향하여 달아나고 우리들은 고역이 시작되는 제1봉 오르막길로 들어섭니다. 이정표에는 제1봉까지는 500m거리에 20분이 소요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 쉽지 않은 세 개의 로프를 연이어 잡고 오른 제1봉(916m)에는 신기할 정도로 묘지 1기가 잠자고 있습니다(14:37).
부봉 제1봉 정상 이정표
제1봉의 마지막 밧줄을 잡고 오르는 사람들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용을 써서인지 20분이 아니라 불과 8분만에 오른 것입니다. 묘는 벌초도 잘 되어 있고 봉분도 오똑한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성묘를 계속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망자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생각을 했는지 정말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정상에는 제1봉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남쪽의 전망이 매우 좋습니다.
제1봉을 넘어가는 등로에는 비박을 할 수 있는 안성맞춤인 바위굴이 있습니다. 다시 내리막으로 오니 시멘트로 포장된 공터가 나오는 데 헬기장을 표시하는 H자도 없는 것으로 보아 헬기장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를 지나 밧줄을 잡고 하산한 후 다시 한 봉우리를 넘어가는 데 전망도 별로 없고 사람들도 쉬지 않고 진행을 계속해 별로 관심도 두지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이 제2봉으로 해발이 가장 높은 935m입니다).
이 2봉을 내려선 지점의 능선에는 미륵바위(부처바위)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길 바쁜 사람들이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앞길만 보고 걷는다면 이런 장관도 놓치기 십상입니다. 마침 필자와 보조를 맞춘 한 등산객이 사진을 찍으려 해서 필자도 얼른 카메라를 꺼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지 그 모습이 부처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 형체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미륵바위를 지나 길고 굵은 로프를 잡고 힘들게 오르니 제3봉(911m)입니다(14:50). 거대한 너럭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정상에는 고사목 한 그루가 중앙에 버티고 서 있는 가운데 사방의 조망은 한마디로 압권입니다. 남서쪽으로는 조령산의 산줄기가 굽이쳐 보이고 북쪽으로는 월악산의 영봉이 더욱 가까이 다가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야할 바위봉우리를 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이를 두고 이름입니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은 눈 녹듯 살아집니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 바위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등 저마다 쉬며 감상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입니다.
제3봉에서 고사목과 조령산을 배경으로
제 3봉에서 바라본 조령산
제3봉에서 바라본 월악산
이런 곳에서는 정말 자리를 뜨기가 싫습니다. 그러나 가이드는 시간이 많이 늦어질 것 같으니 빨리 가자고 독려합니다.
"오늘은 10분간 휴식을 취했으니 다음에 또 오면 그때는 20분을 드리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가만히 있을 필자가 아닙니다.
"앞으로 죽기 전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는데 주변의 경관을 조금 더 감상하고 떠납시다."
그러나 책임감이 투철한 우리의 남성가이드는 시간이 지체되는 것에만 자꾸 신경이 쓰이는 듯 다시금 재촉합니다. 하는 수 없이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쉬움을 남긴 채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립니다.
조망이 제일 좋은 3봉을 내려와 제4봉(924m)을 오르는 길에도 어김없이 로프가 기다립니다. 4봉의 봉우리에서 두 개의 바위사이로 조성된 길을 따라 빠져 나오는 데 급경사 내리막에는 오늘 산행 중 가장 긴 15m 길이의 로프가 걸려 있습니다. 이를 통과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소요됩니다.
4봉 하산길의 긴 로프구간(하산 후 올려다 본 모습)
5봉(916m)을 오르는 길에도 세 개의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고 내리막길에도 긴 로프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구간입니다. 5봉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자바위의 형상도 인지하지 못한 채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오늘 수많은 로프구간을 통과했습니다.
금년 한해 동안 타야할 로프를 하루동안에 다 탄 기분입니다. 평소 바위 타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바위 그 자체는 물론 환상적인 조망도 즐길 수 있어 금상첨화(錦上添花)입니다. 필자는 물론 언제나 안전한 산행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통사람이지만 오늘의 경험이 바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2관문으로 가는 길
6봉(919m)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15:29) 제2관문까지는 2.5km를 더 가야 합니다. 거대한 바위덩어리인 6봉을 오르는 길은 로프대신에 철제계단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므로 비록 다리는 아파도 오르내림은 마음 편안하겠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어 모두들 하산을 서두릅니다(산행 후 자료를 보니 철계단을 오른 다음에도 긴 로프 구간이 더 있다고 합니다).
제6봉 갈림길 이정표
부봉 산행의 특징은 일단 제1봉에 진입하였다면 앞으로 진행하거나 후퇴할 수는 있어도 탈출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에 부봉의 악명 높은(?) 명성을 이미 듣고 오는 등산객들 중 중간에 탈출을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이는 기우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늘 백두대간 갈림길인 945봉에서 6봉 갈림길까지 오는 동안 다른 산악회원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산악회는 주흘산의 주봉과 영봉만을 답사할 뿐 부봉까지는 산행코스에 넣지 않습니다. 두 개의 산을 종주 할 경우 시간도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등산로가 험해 초보자가 있을 때에는 안전을 보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2관문으로 하산하는 길은 처음에는 좋은 전망을 선사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조망도 없는 급경사의 사토길이 오랫동안 계속됩니다. 로프가 걸려 있는 바윗길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런 길도 통과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팔과 다리가 쉴 틈을 전혀 주지 않는 피곤한 길을 부지런히 내려오니 드디어 길이 넓고 평탄한 등산로와 만납니다.
제2관문으로 하산하며 바라본 조령산
시원한 소나무그늘과 산죽 밭을 통과하고 나니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데 바로 조령천이 흐르는 문경새재길이 잡목사이로 보여 이제는 고생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었다고 좋아합니다.
발을 씻을 여유도 없이
조령천에는 수정처럼 맑은 물이 바위로 된 계곡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산행을 하느라고 땀도 많이 흘렸고 또 발도 매우 피로해 먼저 도착한 몇 명은 신발을 벗고 소위 탁족(濯足)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본 무척 깐깐한 가이드가 짜증난 목소리로 등산객들을 나무랍니다.
"이미 하산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발을 씻으면서 지체하면 어떻게 합니까?"
산행출발 전 산악회 측은 6시간을 주면서 오후 4시까지 하산을 완료하라고 했지만 시계바늘은 벌써 4시 반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이에 필자도 가이드에게 항의를 합니다.
"원래 주흘산과 부봉 연계종주산행에 6시간으로는 선두만 가능할 뿐 후미는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7시간 이상은 주어야 하는 데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지 이제 와서 그러면 안되지요. 먼저 하산해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갑시다."
가이드가 하는 말이 틀인 것은 아니지만 이 산악회는 산행시간을 선두기준으로 책정해 두고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간에 탈출로를 이용토록 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러나 오늘 산행에는 주흘영봉에서 한 번 탈출로가 있었을 뿐 산행코스의 구조상 탈출로가 없었기에 선두보다 후미가 다소 늦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후미 그룹도 한 두 명이 아니고 약 3분의 1정도이었기에 그렇게 목장의 가축 몰이하듯 등산객을 몰아 세우는 것은 가이드가 잘 못 판단한 것입니다.
필자도 땀이 이마에서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건을 매고 모자를 썼지만 그래도 흘러내린 땀이 눈가로 스며들어 눈이 따가웠으므로 급히 고양이식 세수를 하고는 다시 배낭을 둘러맵니다.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문경새재
문경새재 물 박달나무
홍두깨 방맹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맹이 팔자 좋아
큰애기 손질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 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우리의 선조들이 위에 적은『문경새재의 민요』를 부르며 넘었던 이 길을 필자는 배낭을 메고 축 늘어진 채 터벅터벅 걷습니다.
새재의 부봉산행 안내표석
부봉 산행을 알리는 안내표석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시(詩)가 새겨진 비석군이 나오고 이어서 조령 제2관문인 조곡관에 도착합니다. 이를 통과하자 높이가 25m에 이른다는 3단으로 된 「조곡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선사합니다. 물레방아를 지나가니 산불조심을 알리는「산불됴심」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보입니다. 조선 후기에 세웠다고 추정되는 이 비석에는 순수한 한글이 새겨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영남 제2관(조곡관)
조곡폭포
산불됴심비
이어서 지나가는 길손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한 두 개씩 쌓은 「소원성취탑」을 뒤로하면, 신·구 경상감사가 사무를 인계인수한 장소라는「교귀정(交龜亭)」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어 운치를 더해 주고 있고, 우리 조상들이 기름을 짤 때 사용했음직한 바위에는「지름틀 바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지름'이라는 말은 '기름'이라는 말의 경상도식 표현입니다.
소원성취탑
교귀정
지름틀 바위
「KBS사극 촬영장」이 오른편에 위치해 있지만 그냥 지나치는 데 촬영관리사무소에 못 미쳐「발 씻는 곳」이라는 장소를 만들어 놓은 점이 특이합니다. 새재길의 중간에 원두막처럼 생긴 쉼터가 더러 있었지만 한 번 걸터 앉아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였는데 이제 탁족하는 곳을 지나치려니 자꾸만 양발을 벗고 싶어집니다.
KBS촬영장
이 유혹을 뿌리치고 나오니 약수터입니다. 튼튼한 콘크리트로 만든 약수터엔 수도꼭지를 달아 두어 운치는 없지만 이를 돌리니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바닥을 드러낸 빈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는 비석군을 지나 아침에 통과하였던 조령제1관(주흘관)에 다다릅니다. 왼쪽에는「경북 100주년 타임캡슐광장」이라는 표석이 보입니다.
영남제1관(주흘관)
걷기에 좋은 황토 길이지만 두 개의 산행을 한 아마추어 등산객에게는 고역입니다.「장승」과「문경새재비」를 카메라에 담고는 매표소 입구에 있는「문경새재박물관」안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급히 찍고 나옵니다.「선비의 상」을 추가로 확보한 후 부지런히 주차장으로 오니 산악회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중입니다(17:08). 오늘 산행에 7시간 25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장 승
문경새재비
문경새재 박물관
선비의 상
산악회장에게 오늘 힘든 산행이었다고 했더니 선두도 거의 6시간 반이 걸렸다고 합니다. 오늘의 산행코스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주차장/매표소/제1관문/여궁폭포/꼬깔봉/주흘산주봉/주흘산영봉/945봉(대간 갈림길)/삼거리(대간 갈림길)/제1봉∼제5봉/제2관문/제1관문/주차장입니다.
아쉽지만 보람찬 산행
선두가 6시간 반이 걸린 산행을 후미그룹이 7시간 반만에 완료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사실상 오늘 산행을 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습니다. 꼬깔봉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주흘산 주봉에서 요기를 하고, 월악산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945봉과 부봉 제1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최고의 전망대인 부봉 제3봉에서 10분간을 쉬고, 문경새재길에 도착해 세수를 한 것이 전부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2001년도에 이곳에 홀로 와서 1박 2일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첫날은 KBS촬영장을 둘러본 후 조령 제1관문(주흘관)에서 2관문(조곡관)을 거쳐 3관문(조령관)까지 왕복하며 새재길의 역사적인 전설들을 꼼꼼하게 읽고 또 옛길을 직접 걸어보면서 한가로이 하루를 보냈고, 이튿날은 KBS촬영장을 지나 혜국사와 주흘산 주봉 및 영봉을 답사하고 다시 주봉으로 되돌아와 여궁폭포 방향으로 하산하였습니다.
오늘은 너무나 서둘러 산행을 하는 바람에 이미 올랐던 주봉과 영봉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부봉의 아기자기한 산세를 감상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러나 주흘산 일원에서 가장 험준한 코스라는 부봉을 무사히 종주한 것은 바위능선과 로프에 대한 담력을 키워준 좋은 경험이었기에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달리는 버스 창유리를 통해 바라본 주흘산의 위용(왼쪽이 꼬깔봉, 오른쪽이 주봉)
「문경새재 도립공원」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주흘산과 조령산 그리고 부봉을 포함한 백두대간 길을 답사할 수 있고, 일반인들은 KBS촬영장과 문경새재 길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도립공원이 남녀노소 누구나 사계절 즐겨 찾는 명소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이곳을 한번 찾은 사람들은 금방 깨달을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