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1.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롬 4:1~8
*제목; 로마교회에 보낸 사도바울의 편지(7) 믿음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 이야기
1. 믿음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이야기
믿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허락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믿음에 대해 매우 많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믿습니다!’(지적고백, believe)라고 하면 믿음일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래 신앙을 한 분들이라도 실제로 믿음의 모습과 삶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마 7:21)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참된 믿음이 아니면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믿음은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분명히 기억하셔야 천국 입구에서 거절되는 낭패를 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입으로만 주님을 부르는 것도 믿음이 아니요, 많은 선한 일과 영적인 일을 행해도 아버지의 뜻을 받아 하지 않는 것도 소용없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불법을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구원받는 믿음입니까?
사도바울의 이야기대로는(지난 주일) 첫째, 내 자랑이 없어지는 것, “나의 나된 것을 오로지 주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째, 그래서 더욱 말씀을 지키려 애를 쓰는 것이 믿음입니다.
셋째, 입으로 지식으로 믿는 것(believe)이 아니라, 믿는 것 안에 거하는 것(believe in) 즉, 믿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2. 믿음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 이야기
오늘은 믿음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를 하는 날입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 앞에서 걱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참된 믿음이 아니라 거짓된 믿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도 많이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롬 3~4장’을 걸쳐 진정한 구원받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결국 주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 믿음을 믿는 것(구원파 이단)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구원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 즉,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 17:3’을 봅시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믿음과 구원(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여기서 하는 것은 지식적인 앎(believe)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헬,기네스코/ 히,야다)는 부부지간의 앎(believe in)을 이야기합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모든 것, 비밀스럽고 부끄러운 모든 것을 다 경험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부부지간의 관계성처럼 예수님과 관계의 깊이를 가지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다음, 믿음이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히 12:2’입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여기서 바라보는 것은 한 번씩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헬, 압호라오’는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저것 기웃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삶의 희노애락 속에서 우리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라보는 대로 살게 되고 완성된다고 하셨으니(바라봄의 법칙), 이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믿음은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엡 3:17’입니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7)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영접하여 드리고, 늘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코람데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
오늘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믿음을 설명합니다.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엡 3:17)
믿음은 신약의 이야기인 걸로 알고 있지만, 믿음은 구약에서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시조와 출발점으로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그를 의롭게 여기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의로웠습니까? 아닙니다. 아내 사라를 죽음의 위기 앞에서 두 번이나 팔아넘긴 사람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결정(엉뚱한 곳에서 자식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역사를 어렵게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부족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게 여기신 이유는 구약에서도 딱 하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었고, 하나님만 바라보았고, 하나님 안에 거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창 15:6’을 봅시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녀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창 15:4~5)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다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 말씀(약속)은 자동적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모든 말씀이 믿어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에 드는 말씀을 먼저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힘도 없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을 때, 말씀이 믿어지고, 그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중음식점에 가면 이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무엇을 넣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먹기가 주저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먹습니다. 어머니의 음식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만드신 어머니를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한 아프리카 선교사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한 가정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7살짜리 아들과 함께 아프리카 선교를 갔습니다. 처음 정착했던 집(교회) 앞에 큰 나무가 있었고, 아들은 그 나무를 오르내리며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날도 동일하게 그 나무에서 놀고 있던 아들을 보고 아버지가 소리를 쳤습니다.
빨리 바닥에 엎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빨리 기어서 나오라고 말합니다. 아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소리치기에 무조건 따라 합니다.
어느 정도를 기었을 때, 아버지는 또 소리칩니다. 이제 일어서서 달려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일어서서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그러고 돌아보니, 나무 위에 5m가 넘는 뱀이 아들을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뱀이 있는 지도 몰랐지만, 아버지가 소리칠 때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따랐더니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약합니다. 믿음은 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강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모든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 하나님(우리 예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여, 모든 것을 이기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첫댓글 믿음이란 우리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것이요, 그 주님의 내 삶의 주인이요 힘과 능력되심을 믿는 것이요, 그 주님을 붙잡을 때 우리가 비로소 강한 주님의 은혜를 경험케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백성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