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비옥한 김제평야를 지나온 들바람과 서해를 건너 변산을 힘겹게 넘은 바닷바람이 뒤섞여 오히려 잠잠한 곳,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그곳엔 주곡 중심의 유기농법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의 시간은 우리 시골의 1960년대에 정지해 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제초제를 쓰지 않아 일품이 배나 드는데도 벌써 햇수로 10년이다. 그렇다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비싼 값에 팔기보다는 자급자족을 위한 것이다. 재배 작물도 우리 쌀과 밀, 보리 등 주곡 위주고 수수 콩 고추 고구마 등 먹을거리로 쓸 만한 온갖 작물과 채소를 기른다. 토종 씨앗을 구하기 어려워 겨울엔 강원 산골이나 전남 섬지역, 멀리는 중국 연변까지 찾아간다. 경운기나 탈곡기 같은 농기계도 웬만하면 안 쓰고 인력과 가축 등 원시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농사만이 아니다. 직접 기른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하고 나면 미리 받아놓은 쌀뜨물로 그릇을 씻는다. 기름기까지 깨끗하게 닦인다고 자랑이다. 나무로 군불을 지피는 흙집 벽 안에는 빈 페트병을 집어넣었다. 쓰레기를 재활용하려는 생각에서였는데 의외로 방열·방음 효과가 뛰어나단다. 뒷간엔 전등이 달려 있지 않고 볼일이 끝난 뒤에는 왕겨를 끼얹어 냄새를 없애고 훗날 거름으로 요긴하게 쓴다. TV는 안 보고, 신문을 구독한 지는 얼마 안 됐다. 최근엔 밤송이, 쑥, 결명자, 양파 껍질 등을 이용한 천연염색도 하고 있다. 철저한 실력주의와 스피드만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 ‘세상 바깥’을 자처하며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넉넉히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생태공동체 ‘변산공동체학교’의 식구들이다.
변산공동체에는 10가구 50여명이 모여 산다. 물론 이 인원이 모두 한 곳에 기거하며 공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해 분가한 식구들은 한 해 농사일정과 하루 작업계획을 각자 세울 정도로 자율적으로 생활한다. 이들을 변산공동체라는 울타리로 한데 엮는 것은 시공간의 공유가 아니다. 느슨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태공동체로서의 원칙과 규율이 그들을 강하게 결속하고 있다.
귀농을 염두에 두고 적당한 곳을 찾다가 이곳에 온 지 1년쯤 된 정다운(29)씨는 변산공동체를 ‘밥상공동체’라고 말한다. 식사 때는 분가한 식구들도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메뉴 선택과 식사 준비는 모든 식구가 순서를 정해 놓고 한 주 단위로 돌아가며 담당한다.
어떤 이는 일주일 내내 아침으로 고구마를 내놓아 식구들의 공분을 사기도 하는 등 음식에 대한 철학과 솜씨가 제각각이지만 이 원칙이 깨진 적은 없다.
설거지는 각자의 몫. 많을 때 수십명씩 찾아오는 손님들도 예외는 아니다. 공동체 생활 초기에는 징을 울려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식사를 해야 했지만, 요즘엔 융통성을 발휘해 밥 먹기 싫은 이는 안 먹어도 된다. 또 작업 때나 회의 때 막걸리를 냉면 그릇에 담아 돌려 마신다. 이틀에 두 말짜리 막걸리 한 통 정도를 마시는데, 이영(39)씨는 “농부에게 막걸리는 새참 개념”이라고 말한다.
‘울력’(공동작업)을 제외하고 각자 일을 찾아 하던 식구들이 다시 한데 모이는 시간은 저녁식사 후 작업회의 때다. 작업회의는 하루 동안의 작업 성과를 점검하고 다음날 작업계획과 기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문제들을 논의한다. 회의 주관은 공동체 고참 중에 관록과 냉철함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신혜경씨가 맡고 있다.
기자가 도착한 그날 작업회의 안건은 마을에 새로 비게 된 집에 누가 들어갈 것이냐였다. 집주인은 공동체에서 관리해주길 원하고, 공동체 역시 ‘지역공동체’ 실현을 위해 빈집 확보가 필요했다. 문제는 공동체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된 은실(35)씨가 그 집에 들어가길 원한다는 것이다. 초기에 비해 공동체가 개인의 자율성을 상당 부분 인정해주고 있지만, 최소한 1년은 공동체 생활을 겪어야 한다는 의견과 1년이라는 명시된 원칙이 있었냐며 바뀐 현실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딪쳤다. 결국 이 안건 처리는 유보됐다.
변산공동체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초기 공동경작과 엄격한 규율 등 ‘공동체’에 놓였던 중심이 서서히 자급경제와 유기농법 등 ‘생태’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유기농만으로는 자급자족이 어려워 변산공동체에서는 직접 재배한 콩과 보리, 고구마 이외에 솔밭 냉암소에서 만든 백초술과 모과 하늘타리 구절초 탱자 등을 발효·숙성시킨 효소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자급자족과 유기농을 통한 생태공동체 실현’이라는 그들의 꿈마저 바랜 것 같지는 않다. 6년 전 이곳에 들어와 만난 이한(35)씨와 결혼한 김숙현(33)씨는 “우리 아이 마루가 자라 자기 앞가림을 할 때쯤이면 지금보다는 이 사회가 덜 삭막할 것”이라며 “변산공동체가 사회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대안적인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학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태공동체는 경쟁과 획일, 익명성, 비인간성을 초래한 거대 소비사회의 대안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한 자급자족 소규모 자치사회를 의미한다. 초기 공동체가 기원전 6세기 불교의 승가공동체를 비롯해 기독교 초대교회공동체, 청교도, 19세기 셰이커공동체, 후터파 공동체 등과 같이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폐쇄적 성격을 띠었다면, 최근의 공동체는 환경운동과 결합한 개방형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 생태공동체는 일부 종교 공동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설립됐다. 특히 생태계의 위기와 함께 97년 IMF 금융위기로 찾아든 정치·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은 생태공동체 시대를 활짝 연 직접적인 계기였다. 도시 실업자를 중심으로 한 ‘귀농 운동’과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학교 운동’, 도시생활의 삭막함을 벗어던지려는 전원주택 만들기, 무너지는 농촌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마을 만들기’ 등이 결합된 다양한 형태의 생태공동체가 전개되고 있다.
이 중 유기농산물이라는 먹을거리를 통해 생태 위기를 극복하려는 공동체로는 전남 장성의 한마음공동체, 강원 원주의 호저생협, 전북 부안의 한울공동체, 전국 단위의 정농회 등이 대표적이다. 먹을거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태주의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곳에 정착해 생활과 생산활동 영역을 의도적으로 바꿔 가려는 형태로는 경남 함양의 두레마을, 경기 화성의 산안마을, 전북 진안의 이랑둥지, 경기 양주의 한삶회 등이 있다.
이처럼 헌신적인 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뤄진 계획공동체와는 달리 충남 홍성의 문당리와 부산 물말골 마을처럼 기존의 농촌이나 산촌을 생태지향적으로 변모시키는 움직임도 있다. 농촌 살리기를 목표로 96년 창립된 사단법인 전국귀농운동본부는 개별적 귀농의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전북 무주의 진도리 생태마을처럼 생태공동체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