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나비의 꿈
하늘나리
<<어,어마나!...>> 여름철에 걸어 두었던 커튼을 씻으려고 내리우던 진희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움츠렸다. 고정된 커튼 구석쪽고리를 벗기니 언제 들어왔는지 탈피를 하다만 커다란 나비 한 마리가 박제품처럼 커튼에 붙어 있었다. 막 우화되다만 나비의 투명한 비단 같은 검은 날개에는 유난히 큰 빨간점이 박혀 있었다. 그 무슨 한을 두고 감지 못한 눈처럼 뚫어져라 바라보는듯해서 진희는 섬뜩함을 어쩔 수 없었다. 나비는 다치면 금시라도 폭싹 바스라질것처럼 말라 있었으나 형체만은 뚜렸하였다.
번데기를 찢고 드러낸 까만날개 끝은 명주천으로 된 노란 레스를 단것처럼 가?하게 배렬되여 있었다. 나래만 펼치면 퍼그나 화려한 나비일것 같았다
. 진희가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정씨네는 서울변두리 전원주택에서 살았다. . 록지 면적이 꽤나 넓었는데 기이한 나무들과 숲으로 꾸며져 작은 공원을 방불케 했다 여름철에는 제법 매미 울음소리도 들리고 부리고운 터새들도 날아와 우짖다가 가군한다. 그래서일가 정씨네 나무 숲과 화단에는 개나리, 앵초꽃 피는 봄부터 여름내내 가을까지 나비들이 나풀나풀 날아옜다.
나비는 예쁜 곤충이다. 나비가 대칭된 나래를 활짝 펼치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나비의 전생은 털부숭이 번데기이다 하늘을 훨훨 날아예는 자유로움과 화려한 나비로 살기위해서는 몇번이고 그 털부숭이 껍질을 벗어 버려야했다. 그래서 나비의 아름다움은 <<벗는다>>는 속성에 있나보다. 숲속에서나 탈피해야 할 나비가 어떻게 숲을 떠나 진희네 집 여름 카텐에서 우화를 꿈꾸었을가 번데기를 찢고 나온 나비는 왜 그 눈부신 나래를 펼치지 못하고 죽었을가?! 털부숭이 번데기라는 고치속에서 어두운 과거를 벗어 내치는데 지친 몸뚱이를 추스리지 못해서일가 아니면 우화되는 그 순간에야 현실이라는 커다란 벽에 갇혀 날아 갈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박제되기를 원해서일가?!
진희가 청심환을 먹어야 할만치 화들짝 놀라며 시때없이 바락바락 악쓰는 주인집 정씨의 소란스러운 전화를 건네 받은것은 카텐을 내려 박제품처럼 돼버린 나비를 떼여 낼 때였다.
<<진희야! 빨리 서둘러라. 니 엄마 쓰러졌다…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퍼뜩 오너라…이 모진것아!...>>
진희엄마가 일하는 모텔사장님의 게사니 목청 같은 소리로 다급하게 걸어온 전화였다.
3년전 진희는 엄마와 대판으로 싸우고 갈라진후 여태껏 전화도 가물에 콩나듯 별반하지 않고 지내왔다. 아니, 안했다는게 더 적절할것이다. 서너번 엄마와 통화했지만 그것은 다 엄마가 먼저 걸어왔기에 할수 없이 받은 전화였다.
<<마,마마지막이라니?!... >>
진희는 등곬이 오싹해 나며 온몸에 식은 땀이 돋았다. .
<<서…,설마 …어, 어, 엄마가? …>>
3년전, 슬프게 우는 엄마를 을지로3가 지하철 8번 입구에 내치고 떠날 때 엄마는 승차권을 쥔 진희손을 꼭잡고 거의나 애원에 가깝게 말했었다.
<< 진희야, 가지 말어.응? 다신 너 한테 돈 말 안 할게. 내가 너한테 돈말 할때는 내 목숨이 종치는 날이다. 죽는 날…>>
그때 진희는 엄마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주,주,죽는다 하믄 뭐,뭐 내가 겁먹을줄 아우…그,그, 그렇게 내 돈 마구 써버릴거면 조,조, 종 치던지 때려부수던지 어,어, 엄마 맘대루 하우!!…>>
그때 진희 눈에 비친 엄마는 죽음과 상관이 없었다. 진희는 손에든 카텐을 아무렇게나 꿍져 위생실 바닥에 처박아 놓고 허둥댔다. 말이 씨가 된다고 3년전에 내뱉은 말이 엄마를 죽음에로 내몬 것 같아 진희는 가슴이 컥 막히며 목에서 겨불내가 났다.
<<주,주,죽으라고 한 말은 아,아,아닌데…>>
주인집 정씨가 독오른 고추처럼 파랗게 독을 쓰며 진희를 불러 세웠다.
<<무슨 여자가 일을 이따위로 해. 이게 얼마나 비싼 카텐인데…>>
진희는 대꾸하지 않았다. 정씨는 또 온종일 트집을 잡고 진희를 들들 볶을 셈이다 륙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바람나 회사의 새파란 비서년을 차고 딴 살림 차린 남편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정씨는 종종 정원사 아저씨나 진희에게 풀어대군 했다. 애매한 뚜꺼비 떡돌에 치인다고나 할가 온종일 부려먹는 종노릇도 부족하여 덤으로 얻어먹는 주인녀편네의 어거지였다.
<<아니, 휴식일도 아닌데 어딜 가려구그래?! 오늘 김치 담그고 집안을 대청소를 해야 하지않느냐? >>
진희는 대꾸하지 않았다. 정씨는 늘 묻는 말에 절반은 잘라먹고 하는 진희가 괘씸하고 미련스러워 바락 악청을 뽑았다.
<<어디서 온 전환데, 말을 해야지, 말을. …배추는 언제 사 올란가…>>
진희는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않았다. 이시각 정씨 말은 철저한 무시를 당했다는게 적절했다. 정씨는 독오른 뱀처럼 목을 빳빳이 세우고 진희를 잡아 먹을듯이 노려봤다.
<<아니, 니 까짓게 뭔데 날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거야? 무슨 전환데 말도 하지않구 그래 어이구 속터져! 초상이라두 났어?...>>
초상이라도 났는가고 악을 쓰며 소리지르는 정씨를 진희는 목이라도 쳐죽이고 싶었다. 진희는 화가나서 물먹는 금붕어 마냥 입만 꿈벅꿈벅해댔다.
<<그렇게 눈치가 발바닥이구야 온전히 돈이나 벌겠어?! 어째 짤리구 싶어 환장했어?...>>
그제야 진희는 한 입안 가득문 울음을 피를 토하듯 뱉어냈다.
<<어, 엄마가 주, 주, 죽어요. 어,어 ,엄마가…사,사람이 죽는다구요!...>>
<<이크... 왜?..왜?!…>>
정씨가 내뱉은 신경질이 다분한 기다란 “왜”자를 등뒤에 달고 진희는 종주먹을 쥐고 불난강변에 덴소 뛰듯 큰 길로 뛰여갔다. . 이럴때 정씨가 자가용승용차로라도 태워다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진희의 꽃 같은 생각이였다. 그 자리에서 진희가 죽는대도 정씨는 자가용승용차에 태워주지않을것이다. 큰길까지 헐레벌떡거리며 달려 나왔으나 노란 머리수건을 동인 사람들에 의해 길이 막혀 끝이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진희는 그곳에서 3천여명의 외국인 로동자들이 집회를한다던 뉴스가 떠올랐다.
며칠전 주인정씨의 눈을 피해 진희도 참가한적이 있는 그런 집회였다. 한 외국인 로동자가 반년 나마 로임을 받지못하고 차별시당하다가 짤리우자 억울해서 자살한 사건으로 인기된 행사였다.
<<그래 한바탕 뒤집어놓는거다 맨날 외국 사람이라고 차별하구 사기치구 짐승처럼 취급하니…동포니, 교포니 뭐니 떠들어 쳐두 나아진건 쥐뿔두 없잖아?!...>>
진희는 다급한 마음에 사람들 속을 꿰질러 빨간 불이 켜진 신호등을 무시한채 건널목 차도에 들어섰다. 엄마가 지금쯤은 그 모텔 옥탑방에서 혼자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마음에 눈에 헛거미가 지며 노란 머리수건들이 나비처럼 눈앞에서 얼른댔다. 하얗게 작열하는 태양의 직사광을 받으며 진희는 종주먹을 부르쥐고 지하철을 향해 달렸다 잘 박제된 수많은 나비떼가 뒤통수에 매달린듯한 감각이였다.
<<주, 주, 죽지마, 제, 제,제발…죽지마…어, 어, 엄마…>>
죽기내기로 지하철을 향해 달리는 진희는 일찍 추한 번데기를 찢고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던 한마리 나비를 보는것 같았다.
진희 엄마는 20년전에 한국에 왔다 그러니 그것은 진희가 열살때였다 진희 기억에 마흔두살을 잡고 한국비행기에 오르던 엄마는 잔잔한 나비 무늬가 진 노란 원피스를 입고있었다. 진희 손을 잡고 함께 배웅 나온 진희 아버지는 아내 출국을 빌미로 며칠째 마셔라 부어라하며 술독에 퍼질러 살더니 희멀건 두부자루 같이 부은 얼굴로 떠나는 아내를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 출국 심사가 끝나고 엄마가 진희에게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가라며 손짓하고 사라질 때 진희는 비행장 대합실 큰 창문에서 탈피하는 한마리의 노란 나비를 보았었다
말뚝에다 군모만 씌워놔도 눈먼 처녀들이 환장하여 시집간다고 들뜨던 세월이 있었다. 한 동네에서 천년만년 살것처럼 진희 엄마 아니면 죽고 못산다던 성분좋은 금철이가 군대에 가더니 입당하느라고 부농의 딸인 진희엄마와는 결혼 할수없다는 최후 통첩을 보내왔다. 진희엄마는 석달남아 뒤고방에 처박혀 내처 울기만 하다가 하루는 폭탄 같은 선언을 했다. 온 동네에서 제일 째지게 가난해 장가는 못들었지만 별이 없는 군모를 항상 쓰고 다니는 제대군인 수만이한테 시집갈거라고말이다. 희멀끔한 허우대에 걸맞게 제대군인 간판을 건데다 말끔하고 청빈한 가정 배경은 그 누구도 업신 여기지 못하게했다. 거기에다 수만이는 도시 월급쟁이는 아니여도 공사기업인 감자국수가공 공장에 출근했다 일년에 반년밖에 출근못해도 오전짜리 월급쟁이한테라도 시집가서 농촌을 벗어나려는 진희 엄마에게는 땡 잡은 셈이다. 수만이는 로처녀 부농성분에서 구제한다고 공공연히 떠들며 왼심을 썼다.
잔칫날, 누구의 발상인지는 모르나 함에다 호미 두자루에 나란히 빨간댕기 파란댕기를 나비 모양으로 접어매서 모주석저작 다섯권과 함께 보내왔었다. 진희 외할머니는 실망한 나머지 입을 하ㅡ벌리고 트렁크 속에 들어있는 나비댕기를 맨 두 자루 호미짝만 막연한 눈길로 들려다 보았다. 함을보려 모여들었던 친척들이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함속에 낫을 넣어 보내는 집도 있다면서 그래두 잔칫날에 시퍼런 날이선 낫을 함속에 넣기보다 호미를 나란히 넣어서 다정스러워 보인다며 설레발을 쳐주었다. 누가 뭐라고 찧고 까부르고해도 진희엄마는 개의치 않았다.
<<두고 보라지 … 잘 살거야. 잘 살아 볼거야 …>>
가난하지만 사회에 떳떳이 나설수 있는 남편을 만났으니 성분 좋은 애들이나 주렁주렁 한 축구팀되게 낳아 보란듯이 사회에 진출시키겠다는것이 진희엄마의 꿈이였다. 진희 엄마는 자신의 삶을 갈라내는 아픔을 감지하면서도 그 지긋지긋한 부농울타리에서 벗어나고파 아까운 청춘을 “제물”로 바쳤다 진희외할머니는 함박꽃이 쇠(소)똥무지에 꽂혔다고 한숨을 지었다.
진희엄마는 시집가서 욕심대로 아이가 생기는 족족 잘된 무우 뽑듯 줄레줄레 낳았다 맨위로 딸을 낳고 줄줄이 두 아들을 낳더니 막내 진희때에는 희한하게도 오누이 쌍둥이를 낳았다. 쌍둥이를 낳은지 이태만에 도거리 농사가 시작됐다. 만사에 셈평좋은 수만이는 향 감자국수 가공 공장이 문을 닫아버리자 도거리 세월에도 제 한몸 편한대로 그럭저럭 안해 뒤꽁무늬에 딸려 세월을 축내가며 대책없이 살았다. 진희네는 촌에서 제일 가난한 집으로 셈평이 나있었다. 진희는 6.1절날 집체무를 출 때 학교에서 단체로 신으라는 흰 무용신을 못 신어 검열에도 참가 못하고 서럽게 울었다. 무지무지 영광이라던 수만이의 군모가 색바래고 낡아빠져 쓰지않은지 오래되고 가난마저 아득바득 따라붙어 떨어지지않아 진희엄마는 그때 문패를 잘못찾은 사람처럼 자기의 삶에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
<< 후! 개떡 같은 내 팔자….>>
늘 앓음 자랑에다 몸을 춰세운다며 보약까지 달고 사는 진희 할머니는 언제나 듣기싫은노래 3절까지 부르는 식으로 고시랑 거렸다.
<<기왕에 쓰는 약인데 묻은김에 한제 더 지어 먹었으믄 …>>
진희엄마는 그때마다 울컥해났다. 해마다.여름내 풀임으로 키운 돼지 세 마리를 시어머니 약에 다 날리는데도 시어머니는 그렇게 약 타령만했다. 시집 잘가서 팔자 늘어지게 사는 딸들과는 약에 대한 말을 말을 입끝에 번지지도 않으면서 진희엄마 듣는데서는 노래의 후렴처럼 달고 있었다. 그럴때면 딸들의 돈은 아까워서 못쓰겠고 돼지 잘 키우는 억척스러운 며느리가 돈 마련하라는 소리같아 진희 엄마는 목구멍으로 넘어간 밥알이 곤두설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후, 날래 죽어야지. 인젠 석매칸 (석마) 당나귀 신세만두 못하니… 어이구, 내 허리야…>>
그런 시어머니 넉두리가 터진 날이면 남편은 어김없이 살림밑천으로 갓 사놓은 새끼돼지라도 장에 메고가 팔아서 약을 지어 왔다.
진희 언니가 대학 가던해 큰오빠는 현성 중점 고중에 진학했고 작은 오빠는 중학교에 들어 갔으며 진희네 쌍둥이는 소학교3학년생이 되였다. 할머니와 진희아버지는 큰 언니더러 대학을 포기하고 동생들 뒤 바라지하라고 했으나 언니는 울고불고 단식한다며 밥도 먹지않았다. 엄마는 리자돈 맡아다 언니의 학비며 생활비며를 갖추어보냈다. 그러는 엄마를 보며 진희 아버지는 버럭버럭 소리질렀다.
<< 그 많은 리자돈 어떻게 갚자구 똥머리 크게 꿔들여?...>>
<<아니, 어시들이 두눈이 퍼렇게 살아서 그래 대학에 붙은애를 못 보낸다는게 말이나 되우? 당신 오늘부터 삯일하던지 삼륜차로 짐실이 하던지 아무 일이나 시작하우…>>
<<뭐라?!, 나더러 삼륜차를 끌라구? 젠장, 말라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두 그일을 안한다 아니 못한다!!!...>>
<<못하믄? 어쩔텐데, 당장 고중 떠날 애는 어쩌구…>>
<<그러게 큰애를 보내지 않으믄 다 해결 될 일을 가지구 우기더니… 내가 알게 뭐야! 궁리 좋은 당신이 끝을 봐야지!...>>
<<그것두 말이라구 하우? 어시라는게…>>
그해 진희 엄마는 친정식구들의 담보로 8만원 리자돈에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떠났다. 달마다 리자돈 갚으며 죽기내기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큰딸과 큰아들을 대학생으로 키웠다. 진희엄마가 숨돌릴 여유를 찾았다 싶었을때 작은 오빠가 대학을 마치고 대부금을 맡아 무슨 회사를 차리고 삐까 번쩍하게 산다더니 얼마 안가 백수가 되였다. 진희엄마가 둘째아들의 대부금 까지 갚아주고나니 집 떠난지 십년 세월이 되였다.. 엄마가 집 떠난후 앓는 할머니 시중과 집살림살이를 도맡다싶이한 진희는 공부실력이 그닥지 않아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무렵, 진희와 쌍둥이인 남동생은 남달이 공부를 잘하여 상해 어느 명문대학에 입학했다.하여 진희 엄마의 자랑으로됐지만 진희는 엄마에게 또 고생문이 열렸음을 알았다.
<<추, 추, 출세는 무슨, 개떡 같은 출세. 다 지, 지, 지들이 좋은 노릇이지…추, 추, 출세? 그게 다 엄마한테는 고, 고, 고생문 터진게지… >>
진희 엄마는 대학 진학을 포기한 진희를 한국에 데려다.가 함께 모텔일을 하게했다. 진희는 모텔일이 싫어서 친구 명자가 다니는 전자회사에 가고 싶었지만 휴식날 일당으로 음식점 배달일을 나갔던 엄마가 차 사고로 허리 수술을 한데서 그럴수도 없었다. 엄마 또한 다른 자식들보다 마음이 모질지못하고 일은 잘하지만 한심하게 말을 더듬는 진희를 사람많은 회사일에 보내고 싶지않았다. 둘이 힘을 모으니 그래도 돈은 모아졌다. .꼬박 7년세월을 진희는 엄마와 같이 쌍둥이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가 될때까지 을지로 3가에 있는 모텔에서 일했다. 방 서른다섯개에다 주인집 뒤치닥거리까지 모녀가 맡아했다. 매일 방들을 청소하고 수십번씩 이불 개이고 새 손님을 받을 때마다 일 여덟가지씩되는 비품을 정리하여 넣고 주름살 하나 없이 네모반듯이 빳빳하게 풀먹인 듯이 해야만하는 침대 정리에 모녀는 열손톱이 닳아 늘 피 터졌다. 모텔 옥상 빨래줄에는 항상 모녀가 씻어 널어놓은 깃발처럼 날리는 하얀 침대보들이 숲을 방불케했다.
형제들끼리는 말을 더듬고 대학공부도 못한 진희를 별볼일 없는 동생 누나쯤으로 취급하지만 진희는 그래도 오빠 언니 동생에게 컴푸터며 핸드폰이며 하는것들을 사 주었다. 진희엄마는 어린 나이에 일찍 헴이 들어 집안의 무거운 생활고를 함께 감당해주는 딸이 대견스럽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엄마에게 진희 돈까지 있는줄 아는 식구들은 집안의 어려운 크고작은 돈쓸 일들은 의례 엄마와 진희가 하는 것으로 알았다. 진희가 스물 일곱살 나던해 진희 엄마는 륙십이 다 됐다
3년전, 진희는 언니와 큰 오빠가 아파트 사는데 돈 보내자는 엄마와 난생처음으로 대판 다투었다 첫 다툼 치고는 너무도 요란스러웠다.
<<어,엄마, 나두 인젠 스,스,스물 일곱살인데 엄마는 어쩜 내 걱정은 누,누,눈곱 만치두 안하우? 나두 인젠 시,시,시집두 가야지 않소? 열살부터 식구들 소,소,손발이되여 시,시,시중들었으믄 됐지 이제 나더러 더,더 어쩌라는거우?>>
<< 진희야, 큰 오빠는 우리 집 장손이다 이후 엄마, 아빠두 늙으면 다 큰오빠 시름이 아니겠니? 그러니 집이야 마련해 주어야지…>>
<<아,아,안되우, 어, 어, 엄마, 인제부터는 내 월급은 나를 주,주,주우 …나와 같이 한국에 온 명자는 연길에다 배,배,백평두 넘는 집 사,사,사구 장식까지 다했다는데 나는 이,이,이게 뭐요? 두 주먹만 남았으니… 어디 그뿐인줄 아우?…명자 엄마는 명자 이름으루 보,보,보험에두 들었다우 명자는 이다음 늙은면 새,새,생활비 근심두 걱정없다는데…>>
<<니 큰오빠 집만 사면 한시름 더는데 우리 한 일년만 더 고생하자 응? 그 다음엔 니 집사구…>>
<<그,그, 다음에? 마,마,말이사 고,고,곶감이지. 또 둘째오빠 막내 동생이 있잖수?? 자,자,잔치해 주구 집 사,사,사주구 …. 그 다음에는 조카들이 학교가구 끝이 어,어,없잖아유 …천하 별일이 있어두 인제 부터 내 돈은 내가 거,거,건사할테요. 어,어,엄마한테 도,도,돈을 맡겨두니 계속 언니, 오빠, 도,도,동생 시중만 하니 나는 언제 내 돈을 모,모으란 말이요?!>
<<니 큰올케가 비실비실 한데다 애가 둘씩이나 되니 그까짓 선생로임으루 언제 제집 장만하겠니? 그리구 언니가 집 살 때, 둘째오빠 대부금 갚을때 도와 주었으니 큰 오빠두 도와 주어야 형제간에 말썽 없을거 아니니?>>
<<그,그,그럼 내 집 사,사살때는 누가 도와 주,주,줄건데 …어,어,언니는 내 도,도,돈을 주,주,주지두 않으니 짤라 머,머,먹은게 아나구 뭐,뭐,뭐요 나 인젠 더는 모,모,못하겠소 나도 할만큼 해,해,했단말이요! 그렇게 죽을때까지 도와 주,주,주고 시,시,싶으믄 엄마 혼자하우. 나 건드리지 마,마,말구. 나 저,저,정말 힘드우. 뼈 빠지게 일해두 나,나,난 모은 돈 없잖수? 내 치,치, 친구들은 그, 금가락지 목걸이두 있는데 난 하,하나두 없잖수? 일만 하다나니…>>
<< 그렇게 말하믄 나두 할 말이 없다… 진희야, 딱 이번뿐이야 응? 이다음 돈을 많이 벌면 네 마음대로 다 사라 … >>
그날 진희는 큰 오빠에게 그냥 돈 보내겠다며 은행으로 나서는 엄마 에게 화가나서 엄마와 함께 하던 모텔일을 때려 치우고 명자엄마가 집으로 돌아가며 내놓은 가사도우미 자리로 정씨댁에 옮겼다. 엄마와 함께 일하지 않는다고 언니는 비싼 국제 전화비 팔아가며 진희를 달랬지만 암소 곧달음 같은 진희 고집을 꺽지 못했다. 큰오빠는 엄마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진희를 용서 안한다고 다 책임지라고 으름장을 놓아도 진희는 코방귀를 뀌였다
<<흥…엄마 도,도, 돈은 지들이 다 쓰면서 내 내가 왜 책임져야 하,하,하는데… 일이 새,새,생기면 지들 탓이지 내가 뭘 잘못해서…>>
3년동안 진희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지난 설에는 엄마한테 가 한 이틀 보내려다가 언니 전화를 받고는 화가 치밀어 가지 않았다. 큰 오빠네 집 살 때 엄마는 친구들 한테서까지 돈을 드텨 보냈다고 하더니 그무렵에는 작은 오빠가 자가용승용차를 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엄마가 돈지갑을 빡빡 긁어 부쳐 보냈다는 것이다.
<<미,미,미친것들, 지,지랄하구 자,자빠졌네 어떻게 버,번돈인데…아예 엄마 등골을 빼먹으려구 자,작정 했구만…>>
벌렁거리는 속을 다잡지 못해 진희는 엄마더러 고향에 돌아가라고 전화통에 대고 고함치자 엄마는 돌아가자해도 비행기 표값를 살 돈이 없어 문제라고했다. 그 소리에 억이막혀 진희는 아예 소식을 끊어 버렸다. 엄마가 또 자기와 돈을 달라고 할것만 같아서였다.
<<후유!..부,부,불쌍한 우리 엄마 … 제 죽을 줄도 모르고 …>>
며칠 전에 진희는 명자엄마를 만났었다. 자식들 덕에 제주도 유람을 갔다 오는 걸음이라는 명자엄마는 동지팥죽의 새알심 만한 금가락지 낀 손을 홰홰 내저으며 자식들 자랑을 했다. 혈색 좋은 얼굴에 한껏 분칠하고 커피색 물을 들여 덩그렇게 멋을 내 얹은 뒤머리에는 커다란 나비핀이 보란듯이 꽂혀 있었다. 탈피한 나비의 화려한 날개짓 같은 그 노란 나비핀을 보면서 진희는 엄마의 뼈마디 툭,툭 불거진 맨 손가락과 흰머리 섞인 재빛나는 뽀글 머리를 떠올렸다. 그러자 마음 한구석이 뻥 구멍이 뚫리며 시려 났다.
<<후, 아들 딸들이 무,무더기루 대학생이믄 뭐라나…우리 어,엄마는 남산타워에도 모,못,가봤는데…>> 진희와 함께 일하는 동안 엄마는 딸을 데리고 외식 한번 안 하고 주인집에서 해주는 김치국에 매달려 살며 지독하게도 돈을 모았다. 손님들이 먹다가 두고간 족발이라도 있으면 엄마는 건사하여 먹었고 손님이 벗어 놓고간 양말마저 씻어서 신었다. 모텔 사장님은 자기도 한심한 구두쇠면서도 진희엄마를 내내 <<지독한 년 파리가 좁쌀물고 날아가면 동지섣달에도 맨발로 부산까지 쫓아갈거여>> 라며 도리질을 했다.
진희는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며 떠 받들리우던 언니가 미웠고 장남이라 고 으시대는 큰 오빠가 괘씸했으며 세상 똑똑한척을 혼자 하는 둘째 오빠가 얄미웠고 아직도 박사훈지 먼지 하고 있는 막내동생을 한바탕 정신들게 패주고 싶었다. 인젠 돌아가서 미워할수조차 없는 할머니가 야속했고 아직도 엄마 손을 바라고 사는 사지 멀쩡한 아버지가 멍청스럽기만 했다. 그 동안 엄마가 불쌍하여 함께 생고생하며 뒤치닥 거리를 한 일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 엄마는 형제간에 가족끼리 그러면 안된다고 말끝마다 달고 살았지만 정작 진희일에는 누구 하나 나서주지 않았다. 진희는3년전에 엄마가 상해에 사는 언니에게 자기 신랑감 부탁하던 일을 잊지 않고있다.
첫댓글 온집식구가 왜 다 그모양이람? 부모사랑이란 뭔가 사색하게 되네요. 곤혹한 운명의 진희엄마... 감찰맛나게 써내려 온 글 즐감했습니다. 다음글 기대합니다.
시색을 불러주는 좋은글에 머무르다 갑니다 감명깊게 읽었어요 즐거운 시간되세요
부모사랑을 실감하는 좋은글 즐감하였어요
꿈이 없으면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꿈도 없습니다.
나비의 꿈 정화된 현실의 반영 가슴깊이 소용돌이 침니다.하늘나리님 부디 명작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