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행 6 자이뿌르 편
영화를 보며
인도영화를 보았다. 미남미녀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스토리가 단순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주인공들의 용모는 낯설게 백인이었다. 인도는 원래 다양한 종족이 모여사는 다인종 국가다. 그렇다고 해도 온전히 피부가 흰 백인은 거의 보지 못한다.
BC 1500년전 쯤부터 침입해 온 아리아인은 현재 유럽인종과 같은 백인 계통이다. 그들은 살색이 검은 드라비다인이었던 원주민을 평정한 다음 지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하여 바루나라는 신분제도를 만들어내는데 이 바루나라는 뜻은 색(色)을 의미한다고 한다. 바루나는 후에 카스트제도의 바탕이 되는데 카스트제도란 우리가 알고있다시피 브라만(사제), 크샤트리아(왕족, 무사), 바이샤(평민), 수드라(노예)등 크게 네가지로 나뉘는 신분제도를 말한다. 지금도 인도에는 피부색이 흰 쪽이 고귀하고 혈통이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남아있는데 이것은 바루나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힌두교가 신분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분제도에 힌두교가 동화된 것이라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길에서는 보기 어려운 백인이었다. 피부가 검은 배우들은 대개 하인이거나 조연배우였다. 여기서는 인기배우가 되려면 피부부터 희고 볼 일이다. 아리안계 혈통이 아니라면 주연배우도 되기 어렵겠다.
영화 속의 미남미녀 주인공은 인도의 갖가지 아름다운 풍경에서 사랑을 나누고 즐거워한다. 인도에서는 거의 뮤지컬 영화이다. 아무 때나 텔레비전을 틀어도 노래와 춤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늘 볼 수 있다. 영화 주인공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으리으리한 저택,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벌이는 사랑놀이, 거기에 인도의 가난이나 궁핍은 없다. 가난에 찌들은 국민에게 영화는 대리만족을 주는가?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들이 우습다. 인도에서 영화는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연간 영화 제작 편수가 세계2위일 만큼 영화 왕국이라고 한다.
알고보면 한국의 6.70년대 영화도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국민은 가난에 찌들고 사회는 독재정치로 암울했지만 영화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소위 트로이카라 불리던 미녀배우들이 청춘만세를 부르거나 연애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그때 우리의 삶과 유리된 영화에 불만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사랑놀이를 화제로 삼을망정 조금도 이상해 하지 않았다. 그 시절 영화는 국민의 손쉬운 오락이었고 위안이었는지도 몰랐다. 한국영화가 가장 흥행이 잘되던 시절도 그때였다.
나는 75루피(2100원)를 주고 1등석인 다이아몬드석 좌석표를 구입해서 영화를 관람했다. 극장안은 에어컨도 잘 나오고 우리나라 못지않게 시설도 좋았다. 사람들도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였고 옷차림도 말쑥했다. 관람료의 금액으로 보아 가난한 서민은 이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세시간이 되는 영화는 관람 도중에 휴식시간이 있었다. 로비에는 푹신한 쇼파도 있고 간식을 파는 가게도 있어서 나는 커피와 과자와 만두같이 생긴 것을 사서 먹었는데 역시 너무 달고 맛도 별로 였다. 영화관람이 끝난 건 9시가 좀 넘어서였다.
밖으로 나오니 아수라장이었다. 극장 앞에 세워놓은 자가용들은 저마다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리고 승객을 태우려는 릭샤왈라들의 호객행위가 시끄럽고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더운 날씨 탓에 밤에 더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이 혼란스러운 거리를 S씨와 나는 같이 악을 쓰면서 릭샤왈라와 억척스레 40루피로 흥정을 했다. 그리고 어두운 거리를 요란하게 내달리는 릭샤를 타고 시내를 누볐다. 릭샤에 내리면서 100루피짜리를 줬더니 20루피만 거슬러준다. 각자 40루피씩 내야 한단다. 이런 엉터리! 애초에 40루피로 흥정했는데 따로 받아야 한다고 부득부득 우긴다. 사실은 40루피도 현지인보다 다소 비싼 값이다.
이곳의 릭샤들은 매번 이런 식이다. 가격도 손가락으로 표시해서 확인을 해야한다. 두 여자가 릭샤왈라 손에 있는 100루피를 강제로 뺏고 싸운 뒤에 각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60루피를 주자 투덜대면서 ‘에이, 짜빠니!’ 하면서 가버린다. 우리가 일본인인줄 알았나보다. 여기서는 일본인을 짜빠니라고 부른다. 재패니스(Japenes)의 인도식 발음이다. 아마도 “부자나라이면서 구두쇠!”라고 했을 것 같다.
“야! 우리가 부자나라에서 왔으면 니네가 마냥 바가지를 씌워도 되냐. 못된 것들!”
나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릭샤와 싸우는 것도 어쩐지 일종의 놀이같았다. s씨와 나는 키득거리면서 호텔로 들어갔다.
첫댓글 어느 글에선가 읽었는데, 인도 영화는 다 해피 앤딩이라면서요? 그래서 결말 즈음에 두 남녀가 만난다든가 해피앤드 조짐이 조이면 당연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다 나간다면서요? 진짜 결말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