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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46> 가상칠언(架上七言)-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산자와 죽은자, 사후세계, 둘째사망, 낙원과 음부, 지옥과 천국, 스올, 이데아, 로고스
1. 말씀배경
■ 가상칠언 마지막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 오늘 말씀은 죽음 이후에 그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 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 영혼(헬, 프뉴마), 손(헬, 케이라스)
① “부탁하다”는 헬라어 “파라티테마이”(현재 중간태)로 “곁에두다, 맡기다“의 뜻입니다.
② ”숨지다“는 헬라어 ”에크프네오“로 떠나다의 ”에크“와 숨쉬다, 바람을 불다의 뜻인 ”프네오“의 합성어로 ”숨이 떠나다, 호흡이 그치다“의 의미입니다.
과거형으로 되어 있어서 완전히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는 다시 호흡이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숨을 내 쉬었다는 것은 확실이 살아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성경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 호흡이 있는 자가 산자이며, 호흡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 의학적으로는 심장이 멈추어야 죽었다고 하지만, 성경적으로는 호흡이 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호흡에는 육적인 호흡, 영적인 호흡이 있습니다.
육적인 호흡이 끊어진 것은 몸이 죽은 것입니다. 영적인 호흡이 끊어진 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살아 움직이지만 하나님을 떠나 있는 인생은 살아 있으나 영적 호흡이 끊어진 죽은 자인 것입니다.
→ 영적인 호흡은 영혼의 호흡입니다. 몸은 죽어도 영혼의 호흡을 하는 자가 죽어서도 산 자인 것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영적 호흡을 하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이미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다 죽어 스올에 있지만 산 자로 있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간증> 제가 바울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저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는데, 부활하신 주님의 호흡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새벽 2시쯤 되었는데, 자고 있는데 무슨 바람소리 같은 것이 들렸는데, 제 입으로 ”하나님의 호흡“이라 하면서 깨어났습니다. 그 소리를 입으로 표현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호흡하시면서 지금 우리교회에 계시고 성령의 바람으로 계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길을 걸었지만 떡을 뗄 때까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그동안은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잘 몰랐습니다(눅 24: 13-35)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 알지 못했지만, 저는 귀가 가리워져 주님의 호흡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주님이 우리교회 계십니다. 호흡을 하시면서 말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도 호흡을 하시면서 살아계십니다.
이 호흡 소리를 모두가 느끼시길 바랍니다.
2. 우리들이 이 땅에 살면서 영적 호흡이 있는 산 자로 있을 때, 죽어서도 그 영혼 상태가 호흡이 있는 산 자의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 인간이 어떻게 될까? 하고 오래동안 질문을 해왔지만, 아직도 그 답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철학자들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예언적인 작품이 있는데,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들은 이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답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 어떤이는 자살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힘든 삶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맙니다. 죽은 이후 그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자살하면 대부분 더 혹독한 고통이 있는 지옥에 갈 것입니다.
작은 고통 피하려다가 더 큰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 힌두교는 여전히 윤회설을 믿고 있습니다. 불교도 이에 영향를 받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다시 사람이나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다시 무언가로 태어날 수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지구 인구가 계속 증가해 왔으며 짐승도 게속 증가되었는데 모순이 있습니다. 그러니 윤회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 이슬람 같은 종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천국과 지옥은 있다고 하나, 모순된 교리들이 많습니다.
이 땅에서는 술을 금하고 있는데 (코란 5:90-91), 천국에서는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다고 하고요 (코란 56:18). 더구나 천국의 술은 먹어도 안 취한다고 하네요. 이 땅에서는 불법 성행위를 금하고 있는데, 천국에서는 여러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과 마음껏 논다고 합니다(코란 56:35). 무함마드가 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말하기를 정력이 100배나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성에 대하여 말하기도 부끄러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 잘못된 교리로 이 땅에서 장가 못가고 가난한 소망이 없는 청년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하는 것입니다. 이상한 천국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3. 성경은 죽음 이후에 대한 삶이 분명히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들이 죽으면 그 영혼육이 완전히 소멸되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혼의 상태로 다른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① 구약성경에서는 사람들이 죽으면 “스올”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 원문에서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구분된 단어가 없고, 죽은 자 모두가 가는 곳이 “스올”(히, 쉐올)입니다.
이 단어를 유대 랍비들은 헬라어로 “하데스”(陰府-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로 번역을 했습니다 (70인역).
→ 야곱도 자신이 죽으면 갈 곳이 스올이라고 하였고(창 37:35 ; 42:38), 의로운 욥도 죽으면 스올로 내려간다고 하였고(욥 14:13 ; 17:13~16), 다윗도 죽으면 갈 곳이 스올이라고 하였습니다(시편 18:4,5 ; 30:3). 그러니까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두가 죽으면 가는 곳입니다. 이것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스올은 저 세상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곳에서도 영적인 호흡을 하는 산 자가 있고, 영적 호흡이 없는 죽은 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같은 땅에 살면서 영적으로 죽은 자와 산 자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산자는 하나님과 함께 영적 교통을 하면서 기쁨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죽은 자는 영적 교제가 끊어져 고통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② 원래는 인간들이 죽으면 육신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영혼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이게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입니다.
그러나, 많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서 결국에는 마귀와 그 사자들이 들어가는 영원한 불 (헬, 퓌르 토 아이오니온)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은 계20:14절에 있는 불못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③ 중요한 것은 예수님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그 영혼이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요 1:14, 3:16, 18, 요일 4:9).
자녀가 된 자들이 영적으로 산 자들입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까?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갈라디아서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성령을 받고 거듭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됩니다.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는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 반대로 악한 영을 따르면 자녀가 아닙니다. 이들은 그 영이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산 자로 살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에덴동산과 같이 기쁨을 누리게 되고 죽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요? 영혼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되어야 그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길 수 있습니다. 나의 영혼을 옆집 아저씨한테 맡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④ 사람이 죽으면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베드로전서 4: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여기서 산 자는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은 자이며, 죽은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이기도 하고, 주님 재림하실 때는 현재 살아있는 자와 이미 죽은 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재판관이십니다 (약 4:12)
그러므로 죽으면 끝이 나는게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후에 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 주님 다시 오신 이후에는 하나님의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유황 불못에 들어가 둘째 사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0:14-15). 이것이 최종심판입니다.
흰 보좌는 공의로운 심판의 보좌입니다. 조금도 잘못된 판결을 하지 않고 그가 행한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양과 염소로 구분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염소는 지옥입니다.
[마태복음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타작마당에서 알갱이와 쭉정이를 골라내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알곡은 곳간에 곧 천국에,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곡 지옥이란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양과 염소, 쭉정이와 알갱이를 마치 검사처럼 구분해 놓으시면 성부 하나님께서는 흰 보좌에서 마치 판사처럼 판결을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 그러므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합니다. 그분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몸만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⑤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는 영혼의 때가 다가옵니다. 그때에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때에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 영혼을 위하여 영혼의 양식을 먹고 성령의 이끌림대로 살아야 합니다.
⑥ 죽으면 그 영혼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기에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망을 이기는 종교입니다.
[호세아 13: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죽음은 좌절이요, 절망의 순간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음 앞에서 당당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시대에 원형경기장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사자의 밥이되기도 했습니다. 화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수백 명이 동시에 십자가형으로 죽기도 했습니다. 톱으로 몸을 썰어도 그의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히 11:35-38)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 우리나라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은 신사참배 반대로 두 번이나 감옥에 들어갔고 해방으로 석방되었으나, 6.25 사변이 터져 자신의 두 아들은 여수.순천반란 사건 때에 총살을 당했고, 자신도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하여 순교를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신사참배 반대로 감옥에서 고문으로 48세의 나이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죽음도 그들의 신앙을 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안장로교회 주승중 목사님은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입니다.
천국이 너무 분명하고 확실하니까 이런 순교가 가능한 것잊니다.
→ 다른 종교들은 누군가가 죽인다고 하면 다 개종할 것입니다. 왜요, 생명이 없고,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4. 죽음 이후의 세계는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 영원한 영계의 차원입니다.
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3차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4차원 이상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혼도 그 중 하나입니다. 천국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운행되어지고 돌아가는 그 원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들은 이 정도는 깨달았습니다. 플라톤의 경우, 3차원인 “현상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이데아”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데아”라는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로서 자연이 순환되고 계절이 반복되고 우주만물을 운행하고 유지하는 원리와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토아학파에서 주장하는 “로고스” 개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존재의 원리, 모든 지배하는 원리를 작동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사도요한은 그 보이지 않는 로고스가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가 곧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 1:1-4)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빛이 있으니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생성되고 산다는 것입니다.
→ 물속에 있는 잠자리의 애벌레는 더 높은 차원인 날아 다니는 세계가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차원이 다르니 낮은 차원에 있는 사람은 높은 차원의 세계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3차원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죽음 이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영의 세계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도 영의 세계입니다. 안 보인다고 없다고 하면 그는 여전히 3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높은 차원을 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미련한 지혜와 지식에 빠지면 안됩니다. 자기의 지혜로 천국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전 1:21). 그래서 오히려 미련하고 문벌이 좋지 않는 자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고전 1:26)
② 육의 몸이 있으면 영의 몸도 있는 것입니다. (고전 15:44)
[고린도전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씨앗의 한 알갱이만 보면 안됩니다. 그 알갱이가 썩어져 나무로 자라듯이 씨를 통하여 또 다른 차원인 나무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도 그런데 하물며 인간이 죽으면 그냥 없어지겠습니까? 누에나 나방, 매미도 이런 차원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새로운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③ 이 높은 차원은 마치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비밀과 같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세계를 잘 모릅니다. 비밀이신 예수님도 천국도 잘 모릅니다.
그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은 영이신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지혜를 주셔야 아는 것입니다. 영의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서 2: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래서 이 높은 차원의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입니다.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이 보화처럼 감추어져 있습니다.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골로새서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알기 때문에, 엄청난 지혜자가 된 것입니다.
철학자들도 모르는 지혜를 가졌고, 구원의 길도 알게 되고, 인생의 여러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믿는 80세 할머니도 철학자가 대답하지 못하는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비밀이신 예수를 믿으면 천국간다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쉬운 대답을 아직 철학자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다른 종교에서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답은 성경에 있으며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 이 비밀과 지혜되시는 예수님을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보고자 해도 보지 못하고, 듣고자 해도 듣지 못한 것입니다 (마 13:17).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보고 듣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④ 스데반의 죽음은 믿는 우리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더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행 6:15, 7:54-60).
■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의 한 분인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할 때에 성경은 그의 죽음에 대하여 잔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죽은 순간에 하늘이 열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할 수 있었고, 죽은 순간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두가지 말씀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고 자는 것 같은 얼굴은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죽음의 순간 두려움이 없고 이런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영혼이 자는 것처럼 하나님께 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
우리들의 육체의 장막이 무너지면, 새로운 영혼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 질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부활체, 신령한 몸을 입고 영생, 영벌에 들어갈 것입니다.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 영혼을 주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육신대로 살면 안됩니다. 육적인 것만 추구하면 안됩니다.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육신의 온갖 쾌락을 즐기며 그 영혼을 망가뜨리면 마귀와 그 사자가 들어가는 지옥에 가게 됩니다.
→ 하나님은 우리들이게 생명과 사망 중에서 택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신명기 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우리가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가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천국가는 길은 좁은 문이요,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길을 피하고 넓은 길, 넓은 문으로 가고자 합니다 (마 7:13-14). 그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으리 길로 가셔서 우리들의 영혼이 주님의 손에 맡겨지는 축복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