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형(李時炯) │선마을 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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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기질과 잘 맞았던 박대통령의 감성 안녕하십니까? 이시형 입니다. 제 이야기보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더 들었더라면 좀 더 실감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습니다. 제가 이제 강연을 맡았으니까……. 제가 이 강연 준비를 하는데 우리 집 머슴아가 뒤에서 넘겨다보더니 “아버지 감성적 리더라는 말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거의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제목을 붙였지.” 우리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만 ‘ 박정희!’ 그러면 굉장히 강성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긴 모습도 그러시고 더구나 군인이라는 캐릭터가 흔들리지 않는 강건한 이미지인데 어떻게 정신과의사가 감성적이라는 표현을 썼느냐? 사실 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강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감성적인 우리 국민성과 정말 잘 맞았다’ 이것이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결론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제가 사회정신의학을 전공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도대체 어떤 국민이기에 그리도 강성 대통령이 잘 맞을 수 있었느냐 하는 당시 배경부터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5·16혁명이 일어나던 아침에 저는 공군중위로 상주에 징병검사를 하러 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아침에 떨리는 목소리로 방송이 흘러나오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60년대 후반 미국유학 시절, 제가 다니던 대학의 국제식당에 가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이 어디냐?” 이렇게 묻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Where is Korea ?”. 그러나 88올림픽 이후에는 도대체 “What is Korean?”, 즉 “도대체 한국인라는 인종은 어떤 인종이냐” 하는 질문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질문들이 나온 배경은 여러분들이 잘 이해를 할 것입니다. 조용한 나라가, 지도를 펴도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아세아의 용이라고 하니까 세계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미국유학을 간 그 시절엔 우리는 세발자전거도 옳게 만들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늘은 무역 강국으로 부상을 했으니 이런 기적 같은 일들로 인해 세계 사람들이 “What is Korean?”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신명을 불태워야 잘 하는 한국인의 특성 한국은 불가사의한 점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이 나라의 지도층들이시니까 그런 걸 많이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자동차 수출을 하면서 교통사고도 세계에서 최고입니다. 또 IT 강국으로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으면서도 길에는 쇠몽둥이와 죽창을 가지고 경찰을 찌르는…….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세계에 이런 일은 없습니다. 또 얼마 전에 끝난 쌍용차동차의 비극만 하더라도 IT 강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88올림픽 때와 월드컵 때, 시청광장에 30~40만이 운집을 하고 한 달 넘게 흥분하고 떠들었지만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휴지 한 장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세계 시민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세계 비엔나 분석학회에 제가 강사로 초대되어서 갔었는데 전부 묻는 말이 “What is Korean?”, “도대체 한국인이라는 인종이 어떤 인종이냐?” 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잠시뿐이었습니다. 세계 사람들이 물러 나가자 아주 딴판으로 바뀌었습니다. 교통질서도 엉망이 됩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정말 멋지게 잘 합니다. 또 어떤 때는 ‘핫바지’, ‘엽전’, ‘할 수 없다’, 이런 자조적인 탄식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제일 피부로 느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은 난리체질입니다. 저는 그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잘 나갈 때는 잘 안됩니다. 오히려 시끄러울 때 잘하는 아주 묘한 나라라 생각합니다. 요즘 나라가 완전히 문 닫을 것처럼 엄살을 떨고 하더니 사상 최고 수출에, 세계 경제가 완전히 바닥권인데도 우리는 벌써 벗어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사가 붙어도 그렇습니다. 완전히 공장 문을 닫아야 정신을 차립니다. 그리고 굉장히 빨리 일어나요. 망하기도 잘하고 흥하기도 잘하고, 또 우리나라 주가 폭락이 제일 심하다고 합니다. 신나면 잘하지만 못할 땐 정말 못하는 참 묘한 한국적인 기질, 이런 것들이 어떤 리더를 요구를 하게 되느냐 하는 정신의학적 배경을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20세기 산업사회는 어떻게 보면 경쟁의 사회였습니다. 먹느냐 먹히느냐 그런 경쟁사회, 그때는 정말 ‘High-tech Age’ 였습니다. 고급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고급제품을 많이 빨리 만들어서 많이 파는 나라들이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21세기는 아직 새벽이지만 어떻게 보면 하이테크가 아닌 ‘High Touch’,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 시대입니다. 얼마 전 홍사덕 씨가 재미있는 칼럼을 썼습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녹음테이프가 제일 질이 좋고 고급입니다. 세계시장에서 “가장 좋은 녹음테이프 주십시오.” 그러면 한국 녹음테이프 줍니다. ‘High Tech’죠. 고급기술이 없으면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가가치가 얼마 안 됩니다. 돈 천 원 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수미 가 노래를 한 곡 실으면 이 테이프가 당장 오천 원으로 껑충 뜁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제는 그냥 ‘High tech’가 아니라 ‘High touch’가 같이 가야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지성이나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우리 한국은 원래 그런 감성적인 체질이었습니다. 5천 년 이래로 그래 왔습니다. 단군도 무당이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5천 년 동안 조선반도는 무속적인 기질, 종교적인 배경이 어떻든 조선민족은 무속적인 심성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수출이 된 게 5천 년 역사의 처음입니다. 한류열풍이라는 이름으로……. 그 한류가 뭐냐?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것이 왜 한국에만 있느냐? 그것은 우리가 무교적인 기질을 타고 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난 월드컵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한 달 동안 완전히 환희의 절정이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모두가 빨간 옷을 입고 온 국민이 무당인 걸 전 세계에 자랑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세기는 남성과 젊은이의 시대였습니다. 21세기는 여성과 시니어의 시대, 100세까지 건강하게……. 제가 홍천에 선마을을 지은 것도 그렇습니다.
좌뇌형 하이테크 시대를 석권했던 우뇌형 한국인의 유연성 20세기는 동적인, 빨리 많이, 이런 시대였지만 이제는 천천히 차분한, 인간적인 냄새가 나도록 가야 되겠다, 그게 바로 여성의 시대고 시니어의 시대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뇌는 양반구로 되어 있습니다. 좌뇌와 우뇌가 기능이 다릅니다. 좌뇌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또 판단을 하더라도 언어적인 이런 사고를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상당히 우뇌형입니다. 우뇌형은 감성적이고, 직감적이고, 합리적이기보다는 비합리적이고 또 사고를 하더라도 이미지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한국 사람의 특징입니다. 어떻게 보면 20세기는 이게 좌뇌형 사회고 21세기는 이제 우뇌형 사회다, 최근에 일본의 사회과학자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일본의 국민성은 철저하게 좌뇌로 산다는 것입니다. 80%가 일본은 좌뇌형 국민들입니다. 좌뇌형은 20세기 산업사회에 잘 맞습니다. 딱 정해진 규격대로 이거 해라 하면 딱 앉아가지고 군소리 하나 없이 잘하는 것이 일본 국민입니다. 교통질서도 정확하게 지키고 회사에 충성을 다하고……. 그것이 20세기형 산업사회에 잘 맞았습니다. 21세기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사회가 온 겁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녹음테이프만 잘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노래도 잘 불러야 하는 문화가 접목이 돼야 하는데 이것이 일본의 한계다, 이렇게 사회과학자들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좌뇌형 그러면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 영국, 캐나다, 독일 이런 나라들입니다. 미국은 워낙 인종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좌뇌형도 많고 우뇌형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대체로 우뇌형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은 원래 우뇌적인 성향이라 지난 산업사회는 우뇌형 가지고는 될 수가 없었습니다. 좌뇌형이 아니면 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럼 ‘도대체 그런 대충대충 하는 이미지로 어떻게 산업사회 좌뇌형 하이테크에 우리가 이만큼 따라갈 수 있었느냐?’ 거기에 대한 말씀을 잠시 드리려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첫째는 이미지적인 사고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미지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척 보면 알아요. 우리가 그런 말하지 않습니까? 척 보면 삼천 리. 우리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대충대충하는 것이 한국 사람의 특징입니다. 대충하고 제멋대로 하고 이게 참 묘합니다. 말도 그렇고요. 여러분 가령 이미지적인 사고란 이렇습니다. ‘아, 저 여자 참 근사하다.’ 이게 메시지에요. 이름도 성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게 우뇌가 먼저입니다. 그 다음에 좀 사귀다보니까 이 여자가 속이 비좁고 못됐다. 이건 좌뇌적인 판단입니다. 항상 무슨 판단할 때 우뇌가 먼저고 다음이 좌뇌입니다. ‘이 옷이 근사하다’ 우뇌적인 겁니다. 다음에 가까이 가서 값도 물어보고, 브랜드도 보고, 내 주머니 계산도 하고 살까 말까 이거는 좌뇌적인 판단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우뇌와 좌뇌가 아주 쉽게 이해가 되는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굉장히 우뇌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본사람들은 빵집에 가도 찹쌀모찌 2개, 앙고빵 3개, 이렇게 주문을 합니다. 틀림없잖아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야, 뭐 먹을 만큼 가지고 와봐라’ 또 ‘알아서 가지고 오너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또 종업원도 알아서 가지고 와요. 어떻게 알고…….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은 왜 앙고빵만 가지고 왔나’하는 생각이 들어도 그냥 먹어요. 제가 말한 것도 있어서 그렇겠지만……. 이게 한국 사람입니다. 굉장히 유연성이 많고 융통성이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상황, 세계 어디에 떨어뜨려 놓아도 잘 적응해 나가는 이유가 이런 이미지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우리의 장점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그렇습니다만 동구권 중앙아시아에 가면 솔직히 ‘고려인들’하면 잘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아주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잘사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적응력은 놀랍기만 합니다. 제가 부산에서 택시를 탔는데 여동생 집을 갈 참이었습니다. “이 동네 한양아파트를 아십니까?” “예, 알다마다요.” “가시지요.” 이 사람이 밤이라 제 얼굴을 못 봤던지 “선생님 부산 사람 아니지요?” “와요?” 부산 사람들은 절대로 어디를 가자는 말을 안 한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알고 가는가요?”하니까 떡하니 타고 “쭉~ 가보입시더.” 이렇게 말한다는 겁니! 다. 부산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은 뭐든지 대충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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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능가하는 한국인의 Brain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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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어떻게 일본상품이 세계적인 명품이 되고 세계 시장를 석권했느냐, 그것은 ‘Japanese garden’ 덕분이다.” 저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Japanese garden’은 세계 어디든 다 있습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정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해놨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일본은 정말 이렇게 정성 들여서 잘 만드는구나, ‘Japanese garden’ 이라는 이미지가 세계 사람들에게는 첫째 예쁘고 정성을 들이고 after service를 잘한다, 이런 이미지가 굉장히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 정원은 거기에 비해서 대충대충, 자연석 듬성듬성 놔 놓고 이런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은 자연스러운 것이 미고 일본은 인공적인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선백자 고려청자, 그것도 바닥을 보면 아주 엉망입니다. 그러나 일본 것은 정말 저 밑바닥까지 정교하게 잘 만들어 놨습니다. 그러나 그게 지겨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입니다. 다이묘가 “자연스럽게 뭐 하나 만들어 봐라”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만들 수 없습니다. 대충대충 만드는 건 한국이죠. 여러분 잘 아시는 심수관 14대가 이천도자기에 옹기를 배우러 왔는데 큰 옹기에 난초 치는 게 잘 안 되는 겁니다. 우리 도공들이 지나가면서 심심해서 쓱 그려놓은 건데 일본사람들은 이게 안 된다는 겁니다. 잘 그리려고 하다보니까 달달달 떨려 가지고 난이 잘 안 그려진답니다. 한국과 일본은 ‘Brain mode’가 아주 다르고 두 나라가 이해하기 힘든 점이 ‘Brain’을 사용하는 ‘mode’가 아주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산업스파이’로서 그만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 사람을 따라 올 사람이 없습니다. 척 보면 압니다. 사진 찍듯이 이미지로 딱 찍어버리니까……. 여러분 루브르박물관을 들어가서 한 시간 만에 구경 마치고 나오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한국 사람밖에 없습니다. 쓱 들어가서 척 모나리자 보고 다른 것 몇 개보고 사진 찍고 나면 끝나버립니다. 좌뇌형 사회는 설명서 보고 대조해 보느라 보통 일본 사람들은 루브르박물관 가면 3일 티켓을 끊습니다. 우리는 오전이면 끝나버립니다. 이런 것들이 한국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미지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민족이었다면 오늘의 발전된 한국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나하나, 여기는 뭐가 있고 저기는 뭐가 있고 ‘word by word’……. 이런 민족이었다면 40년 동안에 그런 기적은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천재들이 쓰는 브레인이 이미지적인 사고입니다. 척 보면 알아야 됩니다. 하나하나 따져가지고 어디 뭐가 있는지 파악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넉넉하고 대충대충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농촌에 교통신호가 왜 필요합니까? 바지저고리도 넉넉하게 완전히 프리사이즈입니다. 짧은 사람 긴사람 뭐 대님만 매면 다 맞게 되어 있습니다. 007가방에는 사과도 안 들어가지만 우리는 보자기만 펴면 호박도 싸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정말 넉넉합니다. 지난번에 섬마을에 김치를 담그는데 외국대사관 부인들이 많이 오셨어요. 김치 만드는 법을 배우겠다고……. 그런데 recipe가 없습니다. 그 세계적인 명품이……. 적당량을 넣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미치는 겁니다. 어떻게 적당량을……. 여러분 맥도널드 햄버거는 로마에서 먹으나 소련에서 먹으나 맛이 똑같습니다. 몇 그램, 몇 도, 몇 분, 딱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적당량을 넣어라, 없으면 안 넣고 대충대충 그러니까 김치 맛이 ! 卉燻떪 다릅니다. 어떤 김치 맛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 독이 다르고 저 독이 다르고 이렇게 다양한 정말 세계적으로 명품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치의 recipe가 없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인의 특징이고 ‘앞으로 21세기를 어떻게 우리가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답이 바로 여기에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잘 올 수도 있었고 여러분들이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국민들의 이런 심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원을 그려도 손으로 쓱 그립니다. 굉장히 간단합니다. 좌뇌형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컴퍼스를 가지고 정확하게 그립니다. 우리 양궁선수들이 지금도 세계를 제패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양궁은 90미터밖에 안되지만 국궁은 150미터입니다. 과녁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기도 국궁 훈수들이 더러 계시리라 생각이 드는데……. 그 150미터 과녁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대충 하늘 한 번 쓱 보고 침 한 번 발라서 쏘면 그게 맞는 겁니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동이족이라고 부릅니다. 동쪽의 야만족, 오랑케 ‘夷’자가 활궁(弓)자에 큰대(大)자입니다. 동쪽에 갔더니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이 많더라, 중국 사람들이 활 잘 쏘는 것을 시기를 해서 동이족이다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골프 역사가 얼마나 됐습니까? 그 짧은 시일에 우리 아이들이 요즘 세계를 석권을 할 기세에 있습니다. 골프라는 것이 정확하게 칩니까? 대충 산 너머 강 너머 치고 이게 골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면밀하지가 않습니다. 대충대충 보고 비슷하면 건너갑니다. 일본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은 돌다리도 두드려 가면서 건너갑니다. 우리는 비슷하게 생겼어도 건너가는 겁니다. 그러다가 무너지고 빠지기도 했지만……. 일본은 91년부터 지금까지 불황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해마다 무역흑자 때문에 고민을 해야 했던 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우리는 지난 IMF 때도 제일 빨리 회복을 했습니다. 한국의 저력이 무엇이 어떻게 됐기에 이럴 수 있느냐?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은 부자망상이 있습니다. 쓰는 건 잘 씁니다. 일본은 거지망상입니다. 일본은 돈을 쓰지 않습니다. 한 푼 가지고 달달 떨다가 결국은 쓰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그래서 일본 사회과학자들은 제일 부러운 것이 한! 사람들 돈 잘 쓰는 겁니다. 일본은 쓰지를 않으니까 국내시장이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91년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불황입니다. 최근에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일본 사회과학자들의 견해입니다. 동대문시장이 상징하는 우뇌형 한국인의 창조성 우리는 대충대충, 팁도 탁 집히는 대로 그냥 뿌려 버려야 돼요. 팁 주면서 헤아려 가지고 그러면 째째해……. 이게 아까우면 안에서 헤아렸다가 탁 뽑아야죠. 미국에 가 보시면 거지에게 동냥을 주고도 잔돈을 찾아갑니다. 10$ 주고 가령 8$을 가지고 갑니다. 우리는 안 주면 안 줬지 거지에게 동냥주고 잔돈 찾아가는 사람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정확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비슷하면 하는 직감이 작용합니다. 우리는 유연성과 융통성과 임기응변이 발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난리체질, 질서도 없고 엉망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럴 때 한국 사람들이 가장 장기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동대문시장 상가가 가장 경제가 어려웠던 90년 말에 많이 생겼습니다. 두타, 밀리오레, 프레야 여기에 2만7천개 점포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리포트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선생님들 들어보셨을 텐데 저는 정신의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동대문시장에 우리 한국의 미래가 있다’ 제가 그렇게 진단해서 거기를 자주 가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이 옷이 좋다. 이게 밀라노시장에 나왔다.’ 그러면 내일 오후에 동대문시장에 가보시면 이보다 더 값싸고 더 멋있고 더 질 좋은 것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게 동대문시장입니다. 척 보고 저거 되겠다 하는 직감입니다. ‘Intuition’을 우리가 많이 씁니다. 직감적으로 우리가 시작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짜고 염색하고 기획하고 만들고 이래서 풀어놓는……. 일본은 나라에 비해서 또 국력에 비해서는 패션이 없습니다. 독일, 영국, 캐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좌뇌형 사회는 패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거 하나 만드는데 석 달이 걸립니다. 시장 조사하고 분석하고 뭐하고 이래가지고 만들어 놓으면 동대문 시장에서 한 판 다해 먹고 끝나버렸습니다. 패션이라는 것은 계절 싸움이고 시간 싸움입니다. 그러니까 좌뇌형 사회처럼 신중하게 면밀하게 검토하고 이랬다가는 될 수가 없습니다. 지난 40년, 한국인은 직감을 사용하고 또 이미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천재적인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동대문 시장은 세계 패션의 중심가이고 거기는 60%가 학사출신입니다. 4개국 언어는 기본입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소련어 이래야지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 큰 쇼핑몰이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그런 쇼핑몰은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외국 기자들이 보고 깜짝 놀라는 겁니다. 한국인의 동력이 거기에 있습니다. 요즘 고층빌딩은 한국 사람이 아니면 짓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세계의 유명한 하늘 높이 올라가는 스카이 빌딩, 소위 ‘High rise’의 설계자는 전부 한국 사람입니다. 왜? 이면적인 사고나 공간 파악력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저 공중에 눈을 감고 턱 보면 그게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High rise 빌딩을 설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서울 디자인올림픽이 10월에 3! 斂 열립니다. 저는 매년 디자인 페어를 구경하러 갑니다. 왜? 우리 한국은 앞으로는 이 방향밖에는 없다, 패션디자인, 이게 이제 한국의 중심이다, 우리 뇌과학적으로 우리 뇌가 구조적으로 그렇게 돼있는 겁니다. 제가 이번에 디자인올림픽 하는데 ‘왜 한국인이 디자인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이 있느냐?’ 하는 뇌과학적인 분석에 대해서 강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디자인 없으면 장사가 되지 않는 이런 시대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착화됩니다. 기독교도 서구사람들은 교리공부를 정말 열심히 합니다. 머리를 믿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러나 우리는 가슴으로 믿는 겁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불교, 성경 공부를 정말 진지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옛날 우리 엄마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엄마 같으면 절에도 가시고, 성당에도 가시고, 교회에도 가시고, 나무 보고도 절하고, 강 보고도 절하고, 바위 보고도 절하고 내가 ! 瀏눼求. “엄마 어디 왔다 갔다 하지 마라. 예수님 부처님 정신없겠다. 한 쪽에만 가야지 왜 그렇게 왔다 갔다 그러냐.” 구박을 하는데 내가 우리 엄마보고 ‘막가파’라고 합니다. “야야 어디든 용하면 되지 그런 거 가릴 게 어디 있냐?” 우리 엄마는 전혀 가리지 않습니다. 엄마 말씀처럼 아무 데나 가고 용하면 됩니다. 엄마 생각에……. 우리 한국 사람들 종교도 감성으로 믿는 겁니다. 느낌으로 좋으면 가는 거예요. 아까 제가 한류열풍이라는 이야기를 잠시 했지만 요즘 젊은 학자들은 신라 박혁거세도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원시사회는 전부 무당이 통치를 했습니다. 지배계급이었습니다. 무당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기가 올라야 합니다. 신기만 오르면 무당은 정말 도끼 위에서도 춤을 추고 저도 봤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저게 가능하냐, 도저히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 작은 나라에서 더구나 북쪽이 막혀버리고 지도에도 보이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올 수가 있었느냐? 사실은 무교적인 심성이 바탕에 있었다, 그걸 부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좌뇌적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참고로 ‘난 아무래도 우뇌형인 것 같다’하는 선생님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네 상당히 많습니다. ‘좌뇌형 같다’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좌뇌형인 분도 더러는 있습니다. 또 뇌가 없는 분들도 더러 있는 것 같은데……. 뇌가 없는 사람은 아니고 사실은 어느 쪽인지 잘 모르는……. 어떻게 보면 우뇌형 같고 어떻게 보면 좌뇌형 같고 어느 쪽인지 잘 모르는 거죠. 양뇌형이다, ‘brain mode’가 그렇습니다. 한국인들은 좌뇌형도 있고 양뇌형도 있지만 한국 사회 전체를 보면 완전히 우뇌형입니다. 왜? 우리 한국사회는 일단 바람이 확 불면 완전히 그쪽으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Minority가 소리를 못내는 아주 묘한 것이 우리한국의 풍토입니다. 우리가 우동집에 가서도 분명히 한 명이 주동하면 열 명이 전부 우동인데 한 사람이 자장면 시키면 별나다는 겁니다. 구박을 받게 되죠. 싫어도 우동을 먹게 되는 것이 한국입니다. 어떤 때는 열린우리당으로 우르르 갔다가 그 다음엔 한나라당으로 우르르 갔다가 또 다음엔 어느 당으로 갈지 모르죠. 이런 것이 우리 한국사회이죠. 우리는 모든 것이 우뇌적이고, 감성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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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형 사상과 교육이 양산한 양뇌형의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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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결론은 이렇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대충대충 자기 멋대로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20세기 산업사회는 정확해야 되는데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었느냐? 아마 선생님들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조선 500년 동안 유교적인 교육을 배웠습니다. 유교라는 것은 철저하게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교리입니다. 우리 선비들은 웃지도 않았습니다. 아까 회장님 말씀하신대로 우리 박정희 대통령도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선비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됩니다. 철저하게 머리로만 가지고 산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좌뇌형……. 이것이 우리조선 500년 유교입니다. 여러분 요즘 우리는 컴퓨터가 있지만 세종대왕이 만약에 한글을 안 만들었다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세종대왕도 철저하게 좌뇌형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한글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근세 100년의 학교 역사가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19세기 말, 20세기 들어오면서 서당을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소위 명문 고등학교는 대개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그 당시에는 처음에는 네덜란드, 그 다음에 독일, 영국이 모델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정책이 ‘아시아를 벗어나서 유럽으로 들어간다.’ 이런 정책이었으니까 우리는 해방 전까지는 어떻게 보면 유럽, 일본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해방 후부터 미국식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식 교육이 또 철저하게 좌뇌형 교육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 학교 교육은 좌뇌형 교육입니다. 최근에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틀은 좌뇌형 교육입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또 원래 그런 겁니다. 싫어도 가르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20세기 산업사회는 삼각체제였습니다. 즉 유럽대륙은 서구의 몇몇 나라들이고 미주대! 珦 미국입니다. 그 다음 아시아는 단연 일본이었습니다. 이런 삼각체제를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생각을 하고 믿고 우리는 그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서 노력을 했었습니다. 많이 따라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첨단을 달리는 선진국교육을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가만히 안방에 앉아서 배울 기회가 있었던 겁니다. 역사적으로 생각해 보면 정말 재수 없는 일이었습니다만 ‘우리 뇌과학이라는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기회였다’ 그런 사실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는 원래 우뇌적입니다. 이미지적으로 대충 직! ㉶構 판단하고 직감으로 덤비고 굉장히 빠르고 다이나믹합니다. 그런데 필요하면 우리는 좌뇌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의미입니다. 우뇌적인 이미지적으로 판단을 하고 그다음에 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좌뇌도 같이 따라갑니다. 우리는 ‘양칼잡이’입니다. 지구상에 이런 민족이 많지가 않습니다. ‘양칼잡이’이고 우뇌적이면서 필요하면 좌뇌를 쓸 수 있는 교육을 우리는 지난 600년 특히 지난 100년을 배웠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 누구냐? 대부분 사람들은 유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뇌과학자들은 한국입니다. 한국이 세계 제일 우수합니다. 2등이 일본입니다. 유태가 3등이고 독일이 4등입니다. 이게 왜 이러냐? 첫째 우리는 뇌과학적으로 양뇌형이라는 겁니다. ‘양칼잡이’예요. 쌍권총이니까 권총 하나와는 싸움이 안 되는 겁니다. 거기다 우리가 이루어놓은 증거가 있습니! 다. 세발자전거도 못 만들던 나라, 전쟁이 휩쓸고 간 그 폐허 위에서 지하자원 하나 없는 이 작은 나라가 세계 10위권에 들어가고……. 얼마 전에 사천에 갔더니 하늘에 비행기가 까맣게 날아다녀요. 왜 이렇게 날아다니나……. 텍사스농장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것이 사천에서 만든 ‘Made in Korea’ 비행기라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증거가 있는 것 아닙니까? 명명백백한 증거. 이 지구 역사상! GNP가 30여 년 만에 300배 뛴 나라가 없습니다. 불행히도 지난 10년 동안에는 경제가 주춤거렸습니다. 우리가 그 동력으로 올라갔다면 벌써 3만 불 고지를 넘어갔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리더가 누구냐?’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러니까 ‘우리는 양뇌형이라는 사실,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우수하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확한 방향제시와 비전으로 한국인의 무속기질에 불을 붙인 박대통령
군사혁명이 일어났던 시대적 상황은 제가 길게 설명을 안 해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폐허와 굶주림과 실업자, 정부는 너무 물러빠졌고, 사회는 온통 부정부패 또 국민들은 거의 의욕상실입니다. 국민들이 일할 의욕을 잃어버리면 나라가 망합니다. 동구권이 망한 이유가 에토스(ETHOS)의 상실이었습니다. 이럴 때 군중심리가 어떻게 돼가느냐 하면 누군가가 강력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게 군중심리의 특징입니다. 왜?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날 통제해 줬으면 좋겠어…….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심리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나쁜 사람이 나타나면 굉장히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북도 군사정권입니다. 뭐가 다릅니까? 그러나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 누군가 강력한 힘이, 누군가가 차라리 이래라 저래라 시켜주기를 기다리는 이런 상황에서 리더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혼란스러운 나라를 누가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되느냐? 그때 등장한 것이 군사정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때도 이념적인 면에서는 군사혁명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념적으로는 비판이 많고 또 그게 있는 것이 나라가 건전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 대중은 이념보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이게 군중심리의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부패를 척결, 이것은 대중의 정서를 잘 읽고 또 정말 잘살아보자는 것, 그때 박정희라는 이 시대적인 리더십이라는 것은……. 첫째는 방향제시가 정확했습니다.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넘보고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삼성의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등 위대한 기업가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박정희 를 기업가로 평가를 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만큼 100년을 내다보고 설계를 했던 기업가는 없다’ 저는 그렇게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날 기억하십니까? 어느 야당 당수는 기중기 앞에 드러누웠습니다. 나중에 그 양! 訃 대통령이 되긴 했습니다만……. 100년을 내다보고 누가 뭐라도 해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리더십이 그때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강성 이미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감성적인 국민들에게 리더가 될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때는 한국의 리더십은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방향제시를 정확히 해야 됩니다. 이렇게 나가면 우리는 잘살 수 있다. 그 다음에 비전이 필수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63년도인가 64년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 여러분 힘드시죠?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배고픈 백성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호소는 없습니다. 어떤 종교적인 신념보다도 배고파 죽겠는데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 주겠다니 우리 국민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신뢰성. 뭔가 우리는 저 양반 말만 들으면 될 것 같은 희망, 의욕상실을 경험해야 했던 그런 혼란의 시대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강성 이미지의 지도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방향제시가 정확하고 비전이 정확했고 잘 살아보자는 것이 주효했다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은 국민을 신명나게 만든 “나라 무당” 이제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고속도로도 뚫어야 되고, 공장도 지어야 되고, 조선공장도 자동차도 만들어야 되는데, 여러분 그래서 참 비굴하지만 한·일 회담을 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너무 급해서 돈을 너무 적게 받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투자라는 것은 시기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지만 언제 투자를 해야 되는가 ? 그래 투자를 해 가지고 GNP가 400배가 올라갔으니까 400배로 계산해야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너무 단순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계산한 겁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 그때는 정말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서독에 우리 간호사도 보내고 광부도 보냈습니다. 제 셋째 동생도 그때 서독에 광부로 갔습니다. 동생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잡지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에 갔습니다. 서독의 간호사는 우리 병원의 간호사와 전혀 다릅니다. 정말 힘든 일을 해야 합니다. 너무 힘드니까 그! 【 외국서 수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서독의 광부도 그렇지 않습니까? 잘못 무너지면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여러분 저는 국민들에게 항상 그럽니다. 요즈음 가난한 나라에서 오는 근로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한테 설에 떡국이라도 따뜻이 끓여 줘야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소위 3D 업종에 취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 힘든 일들을 외국 근로자들이 메워주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그 나라 대통령이 와서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자기 국민들을 보는 가슴이 어떻겠습니까? 서독을 방문한 박대통령이 간호사, 광부들을 모아 놓고 위로를 합니다. “여러분 미안! 합니다.” 그리곤 한 마디를 못합니다. 목이 메어 가지고 완전히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말에 의하면 그때 그 광경을 지켜본 서독 수상이 “야, 저런 민족, 저런 지도자라면 우리가 돈을 떼어도 좋다.” 유명한 ‘서독차관’이라는 것이 그래서 태어났다는 그런 이야기도……. 제가 너무 감성적인 해석인지 몰라도 그게 절대로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정말 우리 박정희 대통령은 참 감성적인 리더였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러니까 좌뇌형 감성 리 더가 우뇌형 강성 국민과 절묘하게, 그때 시대적 상황이 맞았죠. 만약에 요즘 누가 군사혁명을 하겠다면 정말 어림없는 일이죠. 정말 ‘시대가 낳은 지도자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의 일할 의욕에 불을 붙인 분입니다. 신기에 불을 붙인 분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신명만 나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란 큰 무당이 나타났다, ‘나라무당’입니다. 국민들의 신기에 불을 붙이고 ‘우리도 할 수 있다’하는 희망을 심어줬던 게 60년대 우리 한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무당’, 큰무당이 나타나서 국민들의 일할 신기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신명만 나면 우리 한국 사람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천부적인 우뇌적인 면을 타고 났고 필요하면 좌뇌가 같이 거들고 그리고 신기에 불을 지른 리더가 나타났고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다 그런 것이 제 정신과적인 해석입니다. 정말 우리는 그때 죽어라고 일을 했습니다. 밤낮이 없습니다. 저는 그 버릇이 지금도 남아있어 가지고 지금도 하루에 16시간 일을 합니다. 습관이 그렇습니다. 제 비서가 석 달을 못갑니다. 다 뻗어가지고……. 지금 데리고 있! 는 비서도 못하겠다고 그럽니다 ... 왜? 내가 365일 쉬는 날이 없고 하루 16시간 일하니까 비서가 뻗어 버립니다. 이게 아마 그때 60년대 젊은 청년장교로서 맞이했던 5·16혁명의 감격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사회정신의학을 공부를 하면서 돌이켜보니까 정말 ‘한강의 기적’이 이렇게 해서 가능했구나, 어떻게 보면 우리에겐 절묘하게 큰무당이 나타났고 또 정말 국가적인 리더가 나타나서 우리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서, 제 하는 일에만 정신이 없어서, 말을 잘 못 했는데……. 여러분 그 분의 뜻을 기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건 하나의 교과서입니다. 꼭 좀 전해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건투를 빌고 여러분들이 건강하시고 행복하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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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주제에 대한 박정웅의 체험
1960년대 말 1군 사령부가 있는 원주에 주한 마군사고문단 (KMAG) 1군 지대인 Camp Long이라는 그리 크지않은 미군 부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부대에서 미 군사 고문단 요원들과 한국군 지휘관들과 협력업무를 담당하는 연락 장교로 근무했었습니다. 이 부대에도 약 100여명 내외의 카투사 장병들이 미군 사병들하고 함께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솔하는 한국군 장교 중대장 직이 있었습니다. 마침 공석이었던 이자리가 마땅한 후임이 없어서 단기 장교로 제대를 얼마 안남겨 놓은 제가 약 1년 남짓 카투사 중대장 직을 수행했었습니다.
미군은 한국군에 비해 월등히 예산이 풍부해서 우리가 상상도 할 수없는 군 복지 시설을 가지고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웬만한 규모의 부대에는 Craft Shop이라는 일종의 교양/취미 교실이 있어서 장교와 사병들이 일과 후 여가 시간에 사진, 그림, 도자기, 조각,목공 및 금속DIY, 각 분야의 공예와 교양 프로그램을 상당한 수준의 시설과 미국 본토에서 채용한 미국인 전문가를 파견, 상주시켜서 지도 강사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주둔 미국 군인들은 오후 5시면 일과가 끝나고 복장도 민간복으로 갈아입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됩니다. 대개 20대 초반인 이들이 갖는 정서적 문제는 가족을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겪는 심각한 향수병과 이를 해소하기위해 여가 시간을 영외 한국 유흥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자주 과도한 음주, 불식 간에 한국 민간인들과의 마찰과 불화, 그리고 무었보다도 성병 감염 등이 커다란 문제가 되어 지휘관들이 늘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 시설의 취지가 바로 이러한 미군! 들이 건전하게 여가를 선용하고 훌륭한 취미들을 습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군인들의 이러한 시설 이용을 많이하게끔 동기 부여를 위하여 월별 또는 분기별 특정 분야를 정하여 강의, 실습지도 등의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특히 사병들은 철저한 계급위계 질서와 명령제계가 지배하는 군 생활에 있어서 근무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외면하며 가능하면 일단 군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하는게 공통된 심리입니다. 그래서 일단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지휘부는 참가 인원을 높이기 위해 여러 면으로 독려를 하게됩니다. 이런 때 그래도 미군 사병들은 순순히 응하는 편인데 문제는 한국군인 카투사들입니다. 한미 협정에 의해 미군에 배속된 카투사들은 급료와 PX 이용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의무, 교육, 의식주와 병영생활에 있어서 미군과 동등한 처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프로그램에 카투사들도 참여시키게 규정이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카투사들이 강제 사항은 아닌 이런 프로그램 참여를 기피하는데는 나름대로 동정이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것은 통역이 없! 는 상황에서 언어 소통입니다. 요즘은 카투사들이 일정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춘 병력을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지만 그 당시에는 군 생활에서 일종의 선호, 혜택으로 여겨지는 카투사 선발에 있어서 형평을 기한다는 취지에서 기초 훈련을 마친 다음 무작위로 선발해서 미군에 배속 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학력자는 드물고 개중에는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마쳤거나 겨우 문맹을 면한 교육 수준의 병력이 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부에 참여인원 보고를 해야되는 미군 중대장은 카투사들의 참여를 위해 카투사 중대장인 저에게 당연히 닥달을 하게되었습니다. 저는 카투사들에게 " 잘 알아듣지 못해도 카투사의 위신과 중대장인 내 체면을 생각해서 제발 참가해 달라 " 회유 반 애원 반으로 프로그램에 겨우 카투사 머리수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프로그램은 약 6 주간의 사진 강좌였습니다. 미국인 강사의 강의에는 당연히 사진관련 전문 용어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진의 입문과 관련된 " 심도, 구면 수차, 색 수차, 평면 수차, 필림 감도, 촛점 거리, 현상, 정착 ----" 용어를 쓰는데 평생 사진기를 만져본 일도 없는 사람이 거! 반인 판에 한국말로 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갈 터인데 하물며 영어로야 --- 안타깝지만 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카투사들의 수강 자세는 지루해서 몸을 꼬고, 잡담을하거나 시시덕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해 비해 일단 참가한 미군 병사들은 질문도 하고 메모도 하며 사못 수강 자세가 진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저는 함께 참가하는 동료 미군 장교들 보기가 민망했지만 속으로 " 니들은 한국말을 아니 ?'를 되뇌며 그저 자리를 지켜주는 카투사들을 고마워 했습다. 비지니스에서도 그렇드시 미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슨 계획을 시행하면 그냥 끝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결과를 측정하는데 군대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더욱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 프로그램도 강의와 시연 후에 카메라를 빌려주어 영외에 나가 실습촬영을 하고 시설의 암실에서 인화를 한 다음 각기 "작품" 들을 심사해서 우수 작품들에 대해 동기 부여! 차원에서 부대장인 고문단장인 장군명의의 시상을 하게 되어있었습니다. 瀏굘 바로 이부분에서 기가맥힐 일이 일어났습니다. 1, 2, 3등 모두가 카투사들 작품에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알아 듣지는 못해도 잡담 사이 중대장 시선을 의식해 간간히 어깨너머로 보고 눈치와 눈썰미로 때려잡은 것이 저희들 말로 강의를 듣고 열심히 필기도 하며 배운 미군동료들을 간단히 압도해버린 것이었지요. 미군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이리 꼬고 저리 꼬고 했지만 저는 우쭐했지요 "그 것봐라, 이 것이 한국 사람이다. 니들 두고 봐라 !" 하며.
그후 제가 사회에 나와 7-80년대에 전경련 국제 담당 임원으로 있으면서 당시 고 정 주영 회장이 한국측 대표로 주도했던 한.아세안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측 사무국장 역할을 겸임 했었습니다. 그때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시 경제부처 장관들이나 고위인사들을 만나는 사석에서 그들은 " 정부 프로그램으로 한국에가서 새마을 운동도 배워왔고 여러가지 수출 진흥 등 경제 발전 정책을 공부하고 왔지만 우리 나라에와서는 그 게 안되는데 그 이유가 뭐냐 ?"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그들에게 그 걸 설명하자면 아무래도 한국인의 근면정신, 고유의 열정과 숭문 사상이 어�고 등- 한국사람들의 자랑이 포함되게 되고, 또 매번 그럴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나는 " 당신들은 자원도 많고 상하의 나라니까 일하기 싫으면 한잠 자고 나서 배고프면 사방에 배를 채울! 식물도 많지만 한국은 형편이 아주 다릅니다. 한국 사람들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덜 잘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여름에는 온도가 30도가 넘는 경우가있고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도 내려가서 일년에 한번은 거의 열기에 익었다가 한번은 냉동이 되어서 자연히 쌩쌩해지고 긴장하고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라는 농담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도 다소 씁슬한 미소를 지으며 공감하는듯 했습니다. 이럴 때 한편으로는 우리의 남다른 저력과 함께 젊은 장교시절에 체험한 우리 카투사 장병들의 일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사람 빼놓고는 자본, 기술, 경험, 시장 등 모든 조건이 척박하기 이를데 없던 황무지에서 단기간에 이룩한 오늘날 세계 적 위상의 우리의 반도체, 자동차, 조선, IT기술 등의 발전의 밑 바탕에는 이러한 DNA가 작동하고있기때문이라는 생각에 흐믓해하면서 말입니다.
2009. 10. 21. 박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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