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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26 조동화의 인생서신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추억을 먹고 살지요.
추억이란 잊어버리려 해도 잊을 수 없어 평생토록 꺼내보고 꺼내 보는 마음속의 일기장이여.
친구들이 어연간에 70고개를 넘어 추억을 꺼내보며, 천천히 나이들어 가야지요.
70고개를 넘어가다 보니 친구들이 어둠속에 잠자고 있는지 은둔하여 보이질 않네요.
김호균회장님이 수차례 서울에 올라오라 하는데 하루하루 보내는 일이 무슨일이 그렇게 있는지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지.
손녀딸을 집에서 봐주고 있는데 19월째가 되어 내손만 잡아 댕기니 어디가지도 못하고 손녀만 보고 있다오.
늦둥이 손녀딸이 귀엽기도 하고 이쁘기도 하지.
김호균회장님 한번 짬을 내어 만나보자구.
조동화의 벗님들이 60대,70대,80대로 분포되여 있는데 60대에 저세상으로 간 친구들도 몇 명 되고 70대도 몇 명되지요.
뭐 인생 저세상 가는데 순서가 있는거여.
먼저 저세상가면 저세상 선배되는거지.
60,70,80 개뿔이나 거기서 거긴거여.
하늘만이 가는 순서를 정하는거여.
순서 없는 인생 즐겁고 행복하자구.
내말 잘 알아 들어야 혀.
이건희가 돈이 없어 저세상가고, 세계의 억만장자 스티븐잡스가 56세의 나이에 죽은줄 아는겨.
돈이란 버는것도 중요하지만, 은행에 있는 돈은 내돈 아닌거 알지.
써야 내돈인거야.
황혼의 나이에 자신을 위하여 돈을 쓸줄도 알고 베풀줄도 알아야 현명한 인생이라고 말해주는거여.
친구들이 몸 건강을 잘 관리하여 건강히 활동하는 벗님들의 무궁한 행운을 기원합니다.
이세월 이 나이에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만한 나이지요.
우리세월은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 행복한 것, 맛있는 것, 추억할 것, 배려할것을 좇아 삶을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이여.
엇그제는 내 아우가 형님 점심이나 합시다 하길래 그리하자 해서 어느식당에 들어갔는데, 마침 동서 딸 내외가 들어와 음식을 시키더라고 그래서 조동화는 얼른 카운터에 가서 동서 딸 내외 음식값까지 계산했지요.
이것이 황혼인생의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유한한 인생길 후회가 없어야지요.
나의 건강관리는 땀으로 몸의 독소를 배설하는거여.
녹음의 계절 6월은 걷는일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여.
만경강 둘레길도 걷고 산도 걷고 흔근하게 땀흘리게 두발만능자가용으로 걷는거여.
조동화의 벗님들!
모두가 순서없이 떠나가는 삶에 좋은생각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자구.
김구선생의 어록을 옮겨봅니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삶의 여정 좋은 꿈꾸며 행복하자구.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여.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즐거운 시간 되소서.
사소한일에 감사를 느끼며,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황혼의 시절에
귀감이 가는 글 몇구절 올림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여.
70대 전후의 우리 인생
꽃다운 젊은 날들 돌아보면 굽이굽이 눈물겨운 가시밭길
그 길고도 험난했던 고난(苦難)의 세월(歲月)을
당신은 어떻게 살아 왔는지요?
지금은 무심(無心)한 세월의 파도 때문에 밀려
육신(肉身)은 이미 여기 저기 성한대 하나 없고
주변의 아까운 지인(知人)들은 하나 둘씩
불귀(不歸)의 객(客)으로 사라지고 있는 이 때
정신(精神)은 자꾸만 혼미(昏迷)해가는 황혼(黃昏)길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세월 잘 견디며 자식(子息)들 잘 길러
부모(父母)의 의무(義務) 다하고 무거운 발걸음 이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얽매인 삶 다 풀어 놓고
잃어 버렸던 내 인생(人生) 다시 찾아
남은 세월(歲月) 후회(後悔)없이 살다 갑시다.
인생(人生) 나이 70을 넘으면 이성(異性)의 벽이 허물어지고
가는 시간(時間), 가는 순서(順序) 다 없으니
남녀(男女) 구분 없이 부담 없는 좋은 친구만나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로
하고 싶은 취미(趣味)생활 즐기면서
남은 인생 후회(後悔)없이 즐겁게 살다 가요
한 많은 이 세상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훌쩍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것 하나 없는 빈손이요.
동행(同行)해줄 사람 하나 없으니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다 쓰고 쥐꼬리만큼 남은 돈 있으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다 쓰고 행여라도 사랑 때문에
가슴에 묻어둔 아픔이 남아 있다면 미련 없이 다 떨쳐버리고
" 당신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얘기 할 수 있는 친구 만나
남은 인생(人生) 건강(健康)하게 후회(後悔)없이 살다 갑시다...
-옮긴 글-
인생은 두 번은 살지 못한다..
누가 그럽디다
인생을 나이별로
구분을 해보면..
10대 때는,
부모님이 가는 곳은 무조건 좋아라
따라 나섰던 나이..
인생은 신기했습니다
20대 때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엇을 하던
어디를 가던 그냥 좋았던 나이..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흠모하는
연보랏빛 마음 인생은 무지개였습니다
30대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행선지를 묻지 않았던 나이..
인생은 데이트였습니다
40대 때는,
어디 한번 가려면 애들 챙겨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로 걸리적거리는 게 많지만
꼭 한번 가보고 말겠다고 다짐했던 나이..
인생은 해외여행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50대 때는,
종착역이 얼마나 남았나
놓고 내리는 물건 없나 이것저것
살피는 나이..
인생은 가차여행 같습니다
60대 때는,
어딜 가도 유서깊은 역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이..
인생은 고적답사 여행 같습니다
70대 때는,
나이, 학벌, 재력, 외모 등
아무것도 상관없이
어릴적 동무를 만나면 무조건
반가운 나이..
인생은 수학여행입니다.
80대 때는,
이때는 누굴 찿아 나서기 보다는
언제쯤 누가 찿아올까?
기다려지는 나이..
인생은 추억 여행입니다.
드문나이 90대 때는,
지금 누굴 기다리십니까? 아니면
어딜 가시려 합니까?
아무도 오지 않고 갈 데도 없는 나이..
인생은 시간 여행입니다
인생이란,
가는 승차권은 있어도
오는 승차권이 없으니 한장만
손에 쥐고 떠나는
단 한번 뿐인 여행입니다.
인생은 되돌아오는 길이 없습니다.
인생은 다시 라는 말이 없습니다.
소풍(逍風)이라는 단어(單語)가 아주 정겹게 느껴지는 하루 어느 시인(詩人)의 시(詩)귀처럼
나 소풍 끝내고 돌아가리라! 우리 인생 삶이 별겁니까? 돈 좋아하다가, 사랑 좋아 하다가, 인생 끝 장면(場面)은 그렇게 끝이 난다니까요!!..
<詩庭 박태훈의 해학이 있는 아침 중에서>
백범 김구선생의 인생 조언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백범 김구선생의 인생 조언===
“귀천”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 놀다가 구름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국립철도학교 전수부3기생 김호균회장님!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하여 모임을 열지 못해왔는데, 금년에는 모임을 갖어야지요.
유영식수석부회장님도 사무국장생각에 소식을 주었으면 감사하겠읍니다.
다들 은둔세월 보내느라 몇 명이나 얼굴들 볼지는 모르나, 사무국장 조동화는 동기생들의 의견을 좇아, 가을이나 정기총회를 추진했으면 하는 생각이요.
건강관리 잘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1970년에 철도에 부임후 세월의 노를 저으며 지내왔던 파란 만장 했던 세월들!
홍안의 시절 부푼 희망을 안고 철도에 부임한지가 엊그제 같건만 모두가 정년퇴직을 하고, 세월의 여정 속 이제는 새로운 인생의 지평에서 취미생활과 여가선용으로 건강관리와, 즐거운 인생을 살아갑시다.
한국철도 말만들어도 설레이는 언어!
우리들 모든 것이 베어 있었던 철도였었지요!!
달리고 달려온 시간을 추억해보니 60-70k/h 굼뱅이처럼 기어 오르던 열차가 우리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철도의 모든분야에서 철도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며 KTX 300k/h 위용을 이룩한 그들이 국립철도학교 전수부3기생 아니었던가?
젊었던 청춘도 석양에 기울고 황혼이 시간된 것은 자연의 이치 아닌가?
자랑으로 여기며 즐겁고 재미있게 황혼세월을 노래 해야혀.
조성곤은 전수부3기생으로 철도와 인연을 맺고 10여년 철도에 근무하다가 교육계로 전근후 서울대학교 행정처장으로 퇴직하여, 철도와의 인연을 못 잊고 동기생 옛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을 보고 철길인연은 깊고 깊은것이구나 생각되여지내.
역무과 출신 이재수는 아직도 몸이 건강하여 동해남부선 장사역 LTE-R전력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자랑스럽구먼.
퇴직후 다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바쁜데, 일을 한다는 것은 신성하고 자랑스러운거여.
조동화는 국립철도학교 시절 실습시 이재수동기생과 찍은 사진한장이 남아 있는데, 익산인근 동부건설 공사현장에서 일을 한다던 이재수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네그랴.
이재수친구 건강하여라 일 잘하그라 행복하여라.
인생사 세월을 어찌할고 나이 먹지 않했으면 좋으련만 천하장사도 흘러가는 세월을 막지 못했으니 국립철도학교 전수부3기생 입사동기생님 마음 비우고 건강을 우선으로 흐르는 세월을 더디가게 소식 전하며 지냅시다.
인생의 삶이란 모두가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지만 건강100세 시대에 천상의 나라로 먼저간 동기생이 한사람씩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무상이 느껴지는 군요.
세월의 수레바퀴속에 돌아올수 없는 옛시절, 세세년년 추억의 만남을 위해 건강합시다.
<김호균회장님 지난 세월을 회고 있구먼.
인생이란 추억을 먹고 나이들어 가는거여.
경산출신 김호균 대구기관차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고, 조동화는 목포기관차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지.
목포에서 호남선열차를 운행시 서대전에서 근무가 종료하면 대전합숙에 입사, 그당시 대구에서 올라오는 호균이를 합숙에서 만나는거야.
아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잘있나. 근무잘하나. 만나서 반갑데이.
기억이 생생하구나.
호균이 친구는 근무에 충실하여 철도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수송안전실장 인력개발원장 서울청장 부산청장을 역임했지.
이쪽의 순천쪽에 와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면 동기생들로 부터 환영을 많이 받았을것인디 그런일이 없이 지나가 버렸네.
호균아 조동화가 기관사로 근무할때 서울역에서 무궁화호 객차 1량을 증결하는 입환과정시 탈선사고가 발생했었는데 무마한 일도 있었제.
철도에 근무하면서 지나고 보니 아쉽기도 하고 추억에 묻으며 건강하시고 행운이 깃들기를 소망하오.>
<좌측이 이재수동기생이여!
이재수동기생과 조동화는 국립철도학교 시절 중앙선 동차열차 실습시 추억의 사진이 남았다.
그후 40년 철도에 근무하는 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
모두가 바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하느라 옛친구 만나지 못했네.
인생이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재수친구 자랑스러운 저 뺏지만 차고 있으면 열차를 이용하여 어디든 갈수 있었던 추억어린 시절이 있었지.
재수야 나이들면 그시절의 추억이 그리운거야.>
<노련한 철도의 전사 이재수동기생의 현재여!
동해남부선 장사역 LTE-R전력공사 현장에서 재수친구가 카톡에 올린사진이다.
재수야 철도에서 일하는것이 몸에 베여 보약이 되었는지 옛모습 그대로구나.
군산출신 이재수!
친구들이 70대가 되더니 아무리 은둔기라고 하지만 방구석에 쳐 박혀 있는지 보이질 않는디 카톡으로 얼굴 보여주어 고맙구나.>
<고사곤 한규남 조동화 이재수 20살 젊은이로구먼. 여기가 진관사 같은데.................
옛추억을 찾아 진관사가 가까운곳에 있으면 한번 답사하고 싶지만.....................
규남이 사곤이는 저세상 사람이 되였고..................
한규남얘기를 하자면 조동화와 국민학교동창생이고 나 살던마을의 와룡아가씨와 결혼후 1년만에 저세상으로 떠나갔다오.
재수야 폼이 뭣지다.
그시절이 다시올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천하를 다 주고 싶은 마음일세.>
<규남이 이놈의시끼 뭐가 바빠 저세상으로 일찍 갔는가.
야 이놈아 얼마나 좋은 세상인디.
편리한 스마트폰 세상 맛도 못보고....
규남이 학구열도 대단해 와룡역 근무하며 야간대학도 다니고.............
규남아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즐겁게 살다 가야 하는디 일찍 갔느냐.
야 이놈아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빨라 너 하늘나라 간지도 50년세월이 흘러 갔구나.
규남아 여름방학때 임상리 너의 집에도 방문하여 와룡친구 왔다고 너의 어머니가 많이 반겨 해주시었는데............꿈과 같은 추억이었네.
저세상에서는 행복한 시간 보내시구려.>
<길조의 기운을 나타내는
상서로운 동물 아름다운 공작새를 감상해 봅시다.
공작새는 덕을 상징하며, 복되고 좋은일이 생긴다고 하네요.
조동화는 자연의 절경도 좋아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새 공작새를 감상하며 아름다움을 느끼며 눈을 즐겁게 하지요.
꼭 동물원에 가지 않아도 화면으로 볼수 있어 스마트폰 IT세상에 감사하는거여.
즐겁게 살자. 감사하며 살자. 이것이 조동화의 신조여!
내눈에 감사하는거여. 내눈이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공작새를 감상할수 없제. 기왕 사는 인생 감사하며 살아야지.>
인도의 국조 공작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작새의 정확한 명칭은 '인도공작(Indian Blue Peafowl)' 입니다. 인도가 원산지인 이 인도공작은 화려한 꼬리 깃털을 주요한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데,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공작새의 깃털이 힘, 건강, 권위를 상징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옛 선조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공작새의 생활 습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청록빛에 화려한 무늬의 깃털을 가진 수컷 공작새들은 짝짓기 시기가 되면 경쟁적으로 암컷을 향해 구애를 펼칩니다. 수컷이 깃털을 뽐내는 모습을 지켜본 암컷은 그 중 깃이 가장 길고 화려한 수컷을 짝짓기 대상으로 선택합니다. 깃털이 화려하고 무늬가 선명하다는 것은 그만큼 수컷 공작새가 강하며, 생존능력이 좋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17년경부터 약 200여 년간 인도를 통치해온 마우리아 왕국은 공작을 상징으로 삼았던 최초의 나라였습니다. '마우리아'는 '공작'이라는 뜻으로, 이 왕국의 선조가 정원에서 공작을 관리하던 관리인이었던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또한 인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자인 브리슈니 부족의 크리슈나 왕자는 언제나 공작 깃털이 꼽혀있는 머리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리슈나는 훗날 목축과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었는데, 후대에 전해지는 그림이나 이야기 속에서 크리슈나는 늘 공작 깃털로 만든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 인드라 또한 공작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인드라는 공작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공작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신입니다. 이처럼 공작새는 역사와 신화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함께 해 왔으며 인도의 문화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인도의 여러 신화는 공작새가 힘과 번영을 의미하는 새이자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새로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인도의 왕들은 자신의 권위를 보이기 위해 대대로 정원에 공작새를 길렀으며, 수컷의 깃털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짝짓기 시기가 되면 귀한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공작새를 구경했습니다. 공작새는 왕족을 중심으로 일반 국민들의 생활에까지 밀접하게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길에서 공작새가 보이면 절대 해치지 않고 먹이를 주어 보살폈습니다. 또한 천이나 장식물에 공작새의 깃털 모양을 그려넣으며 공작새의 아름다움을 찬양했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1960년대에 이르러 공작새는 비로소 인도의 국조로 공식 지정되었고 '인도공작'이라는 본래의 명칭에 맞게 현재는 인도의 가장 유명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흰 공작의 아름다운 자태 자바공작(P. muticus)과 인도공작(P. cristatus)의 두 종류가 있다. 자바공작의 수컷은 날개길이 약 55cm, 꽁지길이 약 60cm이다. 몸빛깔은 녹색이고 목덜미는 파란색을 띤다. 머리 위에는 끝이 뾰족한 꽃술 모양 장식깃이 곧게 서 있으며 얼굴은 잿빛이 도는 흰색이다. 암컷은 약간 작고 온몸이 갈색빛을 띠고 있다. 번식기가 되면 수컷은 동그란 무늬가 있는 윗꽁지덮깃을 부채모양으로 벌리면서 암컷에게 구애행동을 한다. 보통 이 깃털을 꽁지깃으로 생각하나 본래의 꽁지깃은 그 밑에 있다. 인도공작은 자바공작보다 약간 작다. 날개길이는 약 50cm이며 꽁지깃도 짧다. 머리의 장식깃은 부채모양이고 비녀를 꽂은 모양과도 비슷하다. 수컷의 목은 새파랗고 등은 청동색이다. 암컷은 온몸이 갈색을 띠며 수컷보다 약간 작은 편이다. 인도공작의 개량종으로 온몸이 흰 백공작과 수컷의 날개만 검은 공작도 있으나 근래에는 드물다. 인도공작은 인도의 나라새이기도 하다.두 종류 모두 밀림의 물가에서 나무열매와 벌레 따위를 먹으며 산다. 둥지는 땅 위에 잔가지나 풀을 모아서 만들고, 6∼10개의 흰색 알을 낳아 암컷이 품는다. 새끼는 약 24일 만에 부화하며 부화하는 즉시 걸을 수 있다. 유럽에서는 옛날부터 고기 맛이 매우 좋아 고급 요리에 사용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아름다운 자태의 공작새
공작새는 꿩과(Phasianidae)에 딸린 조류.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꼬리 날개는 정확하게 말하면 꼬리 날개가 아니라 그 윗부분에 있는 상미통(上尾筒)이 늘어난 것으로 구애행동에 필요한 신체구조이다
공작새는 수컷만이 꼬리를 부채처럼 펴서 암컷에게 교신할 수 있다
공작은 날기도 좋아하며 길고 화려한 털을 나부끼면서 제법 멀리까지 날아간다
수컷은 아름다운 꼬리 날개를 펴고 암컷에게 사랑을 전한다 나무가 많은 숲속에서 살며, 먹이를 구하는 일과 잠자는 행위는 언제나 일정한 곳에서 행하는 습성이 있다.
<공작새는 꿩 科(Phasianidae)에 속하는 새로, 몇 종(種)의 화려한 조류깃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생김새가 꿩과 비슷하나 몸집은 더 크다.
공작(peacock)은 꼬리가 무거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지 못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공작도 분명 새이다.
공작은 저녁에 지붕이나 나무에 안식처를 찾기 위해 날아다니며 또한 많은 천적들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장소로 옮겨 다니기도 한다
공작새는 우리가 흔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동물이다.
공작새의 가늘고 긴 깃털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공작새를 좋아하지만 공작새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공작새를 좋아하지만 공작새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조동화는 날이면 날마다 바쁘지 않은 날이 없구나.
내가살던 고향 와룡 동네 죽마고우 세가족이 6/25 군산에서 만났다.
죽마고우들도 젊은 세월 다 보내고 황혼의 시절을 맞이했구먼.
누가 나이 먹으라고 했어.
고향 산천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안식처이기에 죽마고우 만나면 그냥 좋은거여.
시골의 고향은 수백년동안 선조들이 조상대대로 살았던 삶의 터전이었지만 지금은 외지인이 상당히 들어와 고향의 향수가 많이 퇴색한 느낌이나, 죽마고우의 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요.
외지인들이 들어와 땅값도 많이 올려놓고 경제환경이 많이 좋아지긴 했구먼.
직살나게 일만 하다가 최재근선배가 저세상사람이 되었고, 나보다 댓살 적은 병곤아저씨도 하늘나라 가버리고 사람의 운명이란 알수가 없도다.
한승일형님도 치매 증세가 있어 운전하던 차도 반납하고 농사일도 않는다 하니 적당히 몸 보살피며 농사일을 했으면 하오.
사람이란 태어나고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곳 고향은 황혼의 계절이 되면 고향의 풀냄세를 그리워하고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것이지.
정구형도 와룡을 자주 찾는다 하는디 고향의 흙냄세 맡으러 오겠지.
고향의 한용 죽마고우여!
누구 눈치보며 살 나이 아니여.
내말 명심혀.
인생 70 넘으면 가는순서가 없는거여.
농촌일이 바쁘기도 하지만 너무 일에 매몰되지 말고 쉬어가면서 천천히 하길 바래.
하루종일 밭이서 일한다고 누가 내인생 살아주는거 아니여.
술도 먹고 싶으면 술도 먹고 쉬고 싶으면 쉬고 그렇게 하여야 혀.
일도 쭐이고 쉬면서 일하그라.
알었는가.
70고개를 넘어서 인생이라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얐지.
우리세월은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 행복한 것, 맛있는 것, 추억할 것, 배려할것을 좇아 삶을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이여
동화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데, 새들중 제일 아름다운 공작새가 덕을 상징하며 복되고 좋은일(길조) 생긴다고 하여 바탕화면 여러 공작새를 감상하고 즐거움 느꼈으면 하네.
무엇보다도 오늘 입이 즐거웠도다.
군산 “원조수원성” 돼지갈비 맛이 좋드라고....
좋은장소에서 유사를 주관한 병창아저씨에게 감사해야 하지.
소고기 비싸기만 하고 몸에도 좋을것이 없으니 돼지고기나 오리가 괜찮을 것 것여.
다음 만나는 날은 농사일 끝나고 늦은 가을에나 만났으면 혀.
농촌곡식은 이번에 내린비로 해갈은 된 것 같고, 여름의 문턱에 접어들어 더위가 찾아와 여름을 지낼일이 걱정인디
건강관리 잘하고 집안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나이다.
그리하고 말이여.
군산에서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와룡 고향산천에 들리여 한용이 내려주고 우리묘역에 도착하니, 병희아저씨 아주머니가 둘째아들 권일이가 저녁에 온다고 반찬꺼리 사러 김제간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거여.
집안 아주머니여서 애경사에 꼭 참석하여 나와는 정이 많았지.
오랜만에 만나뵈여 반가워서 한참을 정류소 의자에 앉아 안부얘기를 나누었지.
아들 셋에 딸 둘을 두었는데 객지 나가서 다들 경제적으로 성공해, 하루는 사위가 들리여, 아이고 장모님(85세) 시골에서 혼자 사시니라고 외롭고 적적하시다고 하며, 서울로 올라가서 같이 삽시다. 제안을 하고,
몇일후 사위는 처남 남매들과 상의하여 십시일반 돈을 걷어 서울에 별도로 장모님 살곳을 마련하였다.
병희 아주머니는 몇일 고민 끝에 사위의 고마운 마음을 뿌리칠수 없어 가재도구를 챙기여 서울로 올라 가시었다.
한열흘간은 사위식구 아들식구들과 매일 점심도 같이 사먹고 구경도 같이하고 좋았는데 하루 하루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 고민을 했다는거야. 이렇게 살면 않되는데 시골의 흙냄세 풀냄세 맡으며 집안의 채소도 가꾸고 동네사람들과 얼굴 마주치며 한가한 내 삶이 최고로 행복하다는 판단을 하고, 큰아들 권영이를 불러 야 시골내려가야것다 복잡한 서울 떠난다 하고 혼자 요강단지만 가지고 열차로 26일만에 서울생활 정리하고 내려 왔대야.
나머지 살림살이는 나중에 차로 싣고왔다고 혀.
인간의 삶이 뭐야.
내가 살던곳의 사람들 냄세가 풍기는 곳 그곳이 살만한 곳 아니겠어.
내고향 김제 와룡은 이런곳이제.
흙냄세 풀냄세 마음이 설레이는 말 와룡이여.
우리산에 들리여 내가 심은 참외 열 개와 토마토 10개는 금년 가뭄으로 수확을 할수 없을 것 같여.
호박도 심었는디 호박은 생명력이 잘 살고 있드라고.
호박은 씨로 많이 심어놓아 몇 개라도 따 먹을 것 같소이다.
고향의 향수를 죽마고우 만나 느껴본 오늘 즐거운 시간은 또 흘러갔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네.
천천히 세월 낚는법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오.
고향의 죽마고우여!
몸관리 잘하여 아프지 말고 행복하시구려.
죽마고우여!
감사했어 행복했어 즐거웠어.
조동화가 표현할수 있는 아름다운 말이제.
감사한 마음으로 편한한 하루 하루 보내길 빌고 무궁한 행복이 찾아오길 기원하겠오.
<정읍 이평 창동리 후송마을 어귀에 조현 변호사시험 수석합격 프랭카드가 걸려있다.
2022년 변호사시험에서 1712명중 1등으로 합격했다니 영광스럽고 장한 일이다.
사법고시가 없어지고 변호사시험으로 제도가 바뀌었으니 말하자면 사법고시 1등으로 합격한거여.
조현변호사는 김제조씨로 조찬종의 손녀딸이다.
조동화와 같은 김제조씨 가문으로서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
김제조씨는 김제 월촌이 주요 세거지로 김제 이문안 마을에 가면 집집마다 김제조씨문폐가 달려 있다.
김제조씨의 시조 조연벽할아버지의 묘역은 김제 월촌에 계시다.
조연벽은 800년전 1231년 고려때 상장군으로 몽고군을 섬멸하여 벽성군(옛 김제지명)으로 봉해져 김제조(金堤趙)의 성씨를 부여 받아 전국에 2만여명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씨족사회로 나라에 공적을 세우면 왕이 성씨를 부여해 주는 관습이었다.
그래서 김제조씨는 조연벽을 시조로 모시여, 본관이 김제가 되고 김제를 중심으로 세파가 이어졌다.
조현변호사는 상장군 조연벽 시조의 25세손이다.
조찬종님은 조성곤의 부친이시며 십수년전에 하늘나라로 가시었으나, 손녀딸이 변호사시험에 수석합격했다고 김제조씨(金堤趙氏) 가문을 빛내주여 즐거워 하시리라.
조성곤의 둘째아우 딸이다. 그러니까 조성곤의 친 조카이지요.
수재가 나왔구먼.
법조계에서도 훌륭한 인재가 나왔다고 난리가 났겠지요.
25세된 수석으로 합격한 변호사 조현은 법조계의 부조리와 타협하지 말고, 오직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정의로운 법조인이 되소서.
김제조씨 조동화의 소망이지요.
이평에서도 인재가 나왔다고 떠들썩하겠지요.>
梨坪面百年史(이평면백년사) 발간 축하
자랑스러운 정읍 이평면민들이 합심하여 "이평면백년사"가 빛을 보게 되였다니 솔직히 부럽네요.
이러한 향토사랑을 추진한 이평인들에게 대단한 잠재력을 느낌니다.
시간과 돈이 하나되여 결실을 맺었겠지요.
梨坪面百年史 제작 비용 무려 2억여원이나 들어갔다 하는데 누가 어떻게 조달했을까?
별걸 다 걱정하고 있네.
정읍시에서 보조 받고 면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했으리라.
<정읍 이평!
조동화의 친구 조성곤이 태어나고 조상의 뿌리가 있는곳이다.
유서깊은 이평은 먼 옛날 들판까지 배가 드나들었다해서 배들이라 불리었는데 한자로 쓰면 이평( 梨坪)이 된다.
이평면 직원들과 이평면민들이 합심하여 4년여의 노력 끝에 자랑스럽고 빛나는 이평면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기록하여 후세들에게 남기고자 800여쪽에 이르는 이평면100년사(梨坪面百年史)를 발간했네요.
梨坪面百年史는 8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커다란 존재감과 중후한 무게감까지 느껴지는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에 길이 남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친구 조성곤은 4부를 기증 받아 조동화에게 1부를 주어 감사히 받았는데, 방대한 梨坪面百年史 책자가 욕심이 나네요.
사실 면단위에서 800페이지에 이르는 책이 내용 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소장의 가치가 되도록 제작했네요.
이평면에 뿌리를 둔 이평면민에 축하를 드립니다.
이평면이 고향인 사람들은 자부심을 느낄만 하네요.
梨坪面百年史가 2022년 2월에 출간하고 , 이평면민과 경향각지의 이평이 고향인 사람들에게 이제 배부하다 보니 책자도 부족할것 같네요.
"梨坪面百年史" 발간에 참여한 많은 관계자분들도 보람을 느낄것 같소이다.
"梨坪面百年史" 발간을 진두지휘한 강한석면장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나이다.
"梨坪面百年史" 발간을 계기로 이평인들의 애향심이 꽃피기를 바라나이다.
동학농민혁명사가 상세히 기록되여 한국의 한국 민주주의 역사가 이평에서 시작된 느낌이 드네요.
민초들의 삶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곳 이평.
민주주의가 태동한 역사의 현장 이평.
동학농민군은 백산에 호남창의대장소를 설치하고 격문을 사방에 띠워 뜻있는 백성들의 궐기를 촉하여 황토현전투가 이루어져 승리를 이끌었다.
사팔통문 격문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격문(檄文)
우리가 의(義)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蒼生)을 도탄(塗炭)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의 위에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貪虐)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강폭(强暴)한 도적(盜賊)의 무리를 쫓아 내몰고자 함이라. 양반(兩班)과 부호(富豪)의 앞에서 고통을 받는 민중과 방백 수령의 밑에서 굴욕(屈辱)을 받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 이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돌이키지 못하리라.
갑오 3월 일 호남창의대장소 재백산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잘 몰랐던 조동화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을 이제사 알게되여 솔직이 부끄러운 마음이여.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에서 광주5.18까지 수많은 민초들이 숨져 갔다.
이명박 대통령 시켜 놓았더니 국가돈 도둑질하여 해외에다가 자원개발한다고 얼마를 빼돌렸는가?
지금 감옥에 있지만 도둑놈 석방하면 않되야.
인자는 민초들 일어나면 않되야.
동학농민혁명도 수많은 민초들이 숨져 갔지.
조동화는 이제사 민초들의 명복을 비나이다.
시간을 내여 동학농민혁역사의 현장을 다시 찾아 두루두루 보아야지.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함'은 행동이 아닌 습관으로 만들어진다 했다.
탁월할것도 없는 조동화는 알고싶은 습관으로 인간의 삶의 현장을 찾고 찾아간다.>
<이평창동리 후송마을 전경이 이평면백년사에 실려있다.
후송마을은 "조현변호사"의 할아버지 조찬종님께서 살던고장이다.
마을의 유래 설명속에서 마을이장 조동필이 활동을 많이 한것 같은데 경력이 대단하구먼.>
6/26 처형아들 집들이에 참석했다.
전주근교 300여평의 대지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하기 위해 집을 지어 이사했다.
금택조카는 59세 나보다 14살 연하이다.
금택조카야!
질부(조카며느리) 편하게 해주고, 텃밭은 잘가꾸어 이모부 채소도 주었으면 한다.
아이들 서재도 잘 꾸며 놓고 손님 맞이방도 별도로 해놓아 이상적으로 잘 지어 놓았구나.
골동품도 수집 해놓아 손님맞이방이 더욱 돋보이고, 프로잭트만 설치하면 가족영화관으로 사용할수 있겠더라.
이모부가 시골에서 가져온 불무가 집에 있는데, 다음에 올 때 가지고 올터이니 수집장에 진열해 놓아라.
이모부가 보관중인 불무는 이모부가 어린시절 부엌에서 맵져 땔 때 돌리던 추억이 깃든 불무란다.
풍경있는 전원주택 잘 가꾸어 넓은 곳에서 꿈을 펼치거라.
금택조카도 나이들어가는 세월에 건강관리 잘하고 행복하여라.
<오랜만에 조카사위와 기념사진을 남기었네.
나보다 13년 적은 정경환 조카사위는 대형차 운전시 졸음운전하면 않되야.
어려운 세파를 잘 뚫고 하는일이 잘되기를 빌며 가정의 행복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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