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 속의 화로 외풍센 방에 온기를 일으키던 화로 하나 이건 중요한
살림도구 였다. 불지핀 방구들 아렛목은 따뜻 해도 홋거풀 문종이 바른 여닫이
문은 겨울 추위를 이겨내지 못했다..들락 날락 하는 아이들 의 출입 으로 들어
오는 바람을 이기려고 할아버지 들이 품에 안다 싶이 하시던 화로...
화롯가에서 구워 먹을 밤 은 커녕 한해동안 몇차례 맛을 볼동 말동 한 곳 의흥
에서 자란 우리라 남들이 말하는 화로에 밤 구워 먹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다.
조상들은 나락.보리.밀.콩종류.수수종류.옥수수종류,기장.조.등과 채소가 농사가
농사의 전부 였 어니 밤을 보는 것은 명절이 아니면 불가능 했다.
한겨울 간식은 밀,콩,보리쌀,볶은것 하고 무,배추뿌리, 가 간식의 대종이고 간간
이 엿 이나 땅콩 도 있었구나..고구마는 대구에서 들여와 귀한 물건이 였고, 대신
감자 가 있었지. 어쩐 연고인지 의흥지방 은 과수원에서 배와 사과 복숭아 는 있
었으나 우리 어릴적에는 고구마 는 제배 되지 않았다..
8,15 는 그렇다 치고 6,25 이후 에는 땔감조차 부족해서 불기조차 미미한 구들바닥
에 삿자리 깔고 아궁이에서 담아낸 하나가득 화롯불. 가를 형제들이 둘러 앉아 손
내밀고 오순도순 예기하던 정답던 그 불기. 얼어터진 손과 동상든 발가락이 가려 워도
이 화롯가는 언제나 정이 흐르로 예기가 흘렀다..
밥이 들어오고 찌개가 들어오고 국이 들어오고..두리반 에 식구가 둘러 앉았고 화로
에는 된장투가리 가 올려지고 어쩌다 장날이 지나면 꽁치 갈치 고등어 찌개도 올려
지고..그 보글 데는 국물을 땀 흘리며 떠 먹든 그 화로가 의 맛. 아침이 지나면 불도
사그라 지고 젯불 속에 불씨 담아두고 꼭꼭 다지던 불 주걱..
아렛목 에 발넣고 엄마는 바느질 을 시작하며 양말은 아이들도 깁고 어른은 조선옷
마름하고 손질하고 동전달고 화로에 꽂아둔 인두로 주름을 잡고 펴기도 하시던 어머니
그날밤 호롱불 아래 서 국어책 읽고 있어면 못다한 손질을 밤에도 이어가시던 어머니
그 때 그 화로는 우리 삶에 애환을 함게한 벗 이기도 했다.
침 바른 손가락 으로 인두의 온도를 측정 하는 모습을 이제는 영영 못볼것 같구나..
이 화로는 가족사이의 소통을 도우는 매게가 되고 무릎을 맛데고 또는 포개고 앉아 손
들을 내밀고 얼굴을 맞데로 연싸움 자치기 얼음타기 등등 의 일상속 의 이야기지만.
이를 통해 형제 우애를 키워 왔던 것 이다.
각자의 방이 따로 있지 못하던 시절 이야기를 통해 말하는 법을 익히고 우애를 강조
하거나 가르치지 않아도 형제의 소중함을 몸으로 가르치던 화롯불..오해도 갈등도
그 자리에서 풀어지고 서로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 주던 배려를 배운곳 도 화롯가 였다.
아무리 작은 상처 라도 화롯가에 앉으면 금방 나타나서 아픈지 슬픈지 를 알았다.
6.25로 집이 폭격맞아 불타버리고 감춰둔 놋 화로도 녹아 없어지고 고철 쇳덩이로
시커멓고 둥근 화로를 만들기 시작했지. 전란을 피한 마을에 는 놋 화로 와 질그릇
화로 등이 있었으나 폭격맞은 우리마을(의흥읍내) 은 쇠 화로 뿐 이 였나 싶다.
둥글고 큰 것, 동그랗고 작은 것. 형편이 안되면 께진 옹가지도 화로 였다.
어느날 “덤바우”집 에 가니 아침식사 중이라 동그란 쇠 화로에 꽁치 찌진 것이
올라와 보글 보글 하고 덤바우 할매. 여동생 ㅇ선.ㅇ놈. ㅇ수. 엄마 아버지 두리기
밥상 에 둘어앉아 훌훌 대던 그 모습이 내 평생 잊혀 지지 않는 그림이요 사람 사는
참 모습인 상 싶다..그리고 그 할매가 좋아하시던 봉초랑..아..아..아
운행어른(정태 할아버지) 장죽 화로에 묻어두고 혈색 좋으신 얼굴로 천자문 갈쳐 주
시고 내 이름과 동생들 이름도 지어 주셨다. 이 어른 장죽과 갓.탕근.마고자. 조끼.
두루마기. 미투리. 특징있는 큰 기침 소리 역시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며 모습이고
아무말 없으셔도 행색에서 근엄 함이 묻어 나던 그 시절 그 모습이여..
청년으로 들어설 즈음 딱골에서 동그란 화로 하나 놓고 “광록”“승봉”모여 앉아
정담 하며 때 묻지 않은 꿈 을 나누던 일이 어제 같은데 이 두친구 모두 이세상 사람
이 아니다...아~·! 그시절 이여 세월따라 흘러가 버리고 지금 사그라 드는 화롯불
같은 신세가 되었어도 실감이 나지 않는 다..
한참후 연탄이 나기 전 까지..그 연령 대의 사람이면 화로에 얽힌 소중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 없으리라..화로는 열을 전해주는 역할 보다는 마음을 담아 전하던 매게체 이다
사람들이 일찍 저세상 가니 환갑 잔치도 걸게 치루던 시절 이 화롯불은 우리 삶의 일
부분 으로 모든 기쁨 즐거움 그리고 애환을 소롯이 나누던 상징 물 같은 것 이다.
소통의 매개였던 화로, 뒤짐어 엎어면 모자처럼 생긴 무쇠화로 이 화로는 골동품으로
변해 가도 있다. 인두를 만지는 여인내 도 사라지고 화로를 벗삼아 바느질 하는 모습
은 영영 볼 수 없을 것 이다. 더구나 불씨를 담아 보관하던 화로의 용도는 폐기 되었다.
우리 크던 시절 물건인 화로가 이제는 “박물관”전시 품 이 되었구나.
이제는 한집안 식구조차 얼굴을 마주하기 어렵고 제 각각 다른 방향으로 앉아 있는 시대
자식 부모 간에도 형제 간 에 도 사생활이 감춰진 자기방 으로 들어가서 서로 말을 붙이기
도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형제 우애를 가르친다마는 과연 얼마나 먹혀
들어 갈런지... 가족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얼굴마주 하던 그 시절 이여..
화로가 피차의 소통의 내개가 되었음을 우리만 아는 시대다..지금 아무리 이야기 해 봤자
알아 듣지 못하는 젊음 들이다.눈 빛만 보아도 마음을 읽어내던 그 시절은 화로와 더불어
전설이 되어 버렸다.아무리 둘러 봐도 TV 라는 물건 앞이고..화로을 대신할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가족은 있어나 가족의 언어 를 나눌 화롯가 같은 곳은 없다.
집이 아무리 호화찬란 한들 소용이 무엇인가..마음을 전할 장소와 대상이 없다면
가족이 무슨 소용인가..나의 마음을 들어줄 가족이 없다는 것은 정말 외롭고 쓸쓸
한 삶이다. 그레서 화로가 그립다. 이제 화로가 아닌 전기난로 라도 좋다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 하다.
흩어지기만 하는 가족들 이들의 마음을 덮혀줄 “화로”를 만들어야 할 때다.
다같이 웃어며 피차를 위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진다면 정은 더 커질 것이다.
피차 양보하고 피차 배려 하게 하는 화롯가 가 있다면 지금 같은 왕따, 자살, 이런
문제도 줄어 들 것 이다..
텅빈 화로를 보면서 잃어버린 화롯가 인심을 생각 한다. 불을 쬐는 것 보다 먼저
불씨 를 간직 하던 것이 화로 였고 묻어둔 불씨 끄집어 내어 북대기에 싸서 후 후
불 일으키던 화로 처럼 소중한 역할 을 담당 할 인사도 기다려 진다. 나름데로 사는
인생이 지만 불씨를 품은 특출한 인 물이 기다려 진다.
불씨 담은 화로처럼 보이는 것은 제 같으나 그 속에는 없어서 안될 불 을 품은 사람
모두가 겉으로 용광로 처럼 펄펄 끓어 올라도 그 것 이 거짓 이 였음을 우리는 안다.
매체을 열면 모두가 내가 제일이요 다..제 속으로 숨는 불덩이는 보기 더물다..
잃어져 가는 화롯가 와 제속의 불씨를 생각 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