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왠지 짜증스럽고 누군가에게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마음이 부어 있엇다.
어쩌면 그 누구라는게 내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지나쳐 스스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고해 성사를 보러 갔었는데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심술나 돌아서 나오기도 했다.
결국은 다시 돌아가 맨 마지막으로 성사를 보았다.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고 용기를 내시라는 젊은 신부님의 말씀이 순간 주님의 위로처럼 가슴에 와 닿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어딘가 떠나고 싶었고 마침 1박2일의 성탄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어 무조건 여행을 가보자고 나섰다.
벌써 오래 전부터 향목이 사는 단양 어상천에 가보고 싶었기에 그쪽으로 길을 잡았다.
향목은 단양에서 동면을 준비하는지 부산집을 비우고 있는 것 같아 가면 만나겠지 싶어 미리 연락도 하지 않았다.
단양팔경을 제대로 보려면 여름철이 좋겠지만 황량한 산과 얼어붙은 남한강의 겨울 풍경도 그런대로 볼 만 했다.
우선 단양관광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근처에 콘도가 생기면서 손님이 줄었는지 숙박료가 주중에는 2인 조식 포함 5만원이란다.
방에 들어가보니 남한강이 내다뵈어 전망이 좋고 시설도 깨끗하고 고급스러웠다.
아침 식사는 부페였는데 한식과 양식 두 종류로 조촐해도 꽤 괜찮고 맛있었다.
저렴하게 이용힐 수 있어 우린 좋지만 숙박객이 우리 포함해서 5쌍 남짓하던데 이렇게 해서 운영이 될까 또 남 걱정하는 버릇이 나온다. 성탄절 당일엔 예약 손님이 꽉 찼다고 하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나중에라도 다시 와서 쉬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어상천은 북단양쪽에 있어 호텔에서는 20분 이상 산길을 꼬불꼬불 달려야 한다.
남한강의 물고기가 위로 올라오는 마을이라고 어상천이라 이름 붙였다는데 옛날에는 개천에 고기가 넘쳐 반찬이 없으면 할머니가 잠깐 개천에 나가 미꾸라지 한소쿠리 잡아다 추어탕을 끓여주시곤 하셨단다.
내가 상상한 것 보다 더 오지라 향목을 만나자 마자 이런 십승지에 사는 줄 몰랐다고 인사를 했다.
폐끼치지 않으려고 저녁은 집근처 음식점에서 내가 대접하자고 마음 먹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외식을 할 만한 식당도 없어 본의 아니게 향목을 귀찮게 만들었다. 뭐든지 제 손으로 가꾸고 만들어 먹을 수 밖에 없는 시골 생활이 향목은 싫지 않은 모양이다. 우선 내놓은 국화차부터 시작해 김치, 청국장, 고추 다대기 등등 모두 향목표이다. 그곳 아줌마들한테 배웠다는 고추 다대기는 생전 처음 맛보는 건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 매운 걸 잘 못먹는 나도 자꾸 손이 가는 거였다.
향목은 적과의 동침이라 했지만 남편과 얼굴이 둥글둥글 남매처럼 닮아가는 걸 보니 완전 동지가 된 것 같다.
아무래나 두 사람 걱정 근심없이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너무 보기 좋고 기뻣다.
돌아올 때 굳이 이것 저것 싸준다고 애를 쓰니 고마운 마음에 염치 불구 다 받아 왔다.
맛있는 것만 잔뜩 얻어 먹고 그냥 통을 떼어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괜찮단다.
전에 시댁에 다녀올 때마다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주었는데 향목이가 마치 엄니같은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찡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엔 맛있는 것 많이 싸가지고 갈테니 먹고 싶은 거 다 주문하라고 했다.
성탄 밤미사에 참석하러 단양 성당에 갔다.
지은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아주 작은 성당이었는데 신자수가 500명이나 될까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반 이상이 노인들인데다 본당 신부님마저 파파 할아버지라 성서도 더듬더듬 읽어 내려 가시는 거다.
그런데 강론을 하실 때는 의외로 힘이 있고 재미있으셨다. 오늘 밤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는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는 영원한 하느님, 평화의 군왕 말하자면 우리에게 든든한 백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다함께 차차차 하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행복 전도사라는 개그맨처럼 우리는 행복한 겁니다를 외치는데 할아버지 신부님이 어찌나 천진스럽게 보이던지 저절로 웃음이 났다. 행복하다고 말해보니 정말 내가 참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베들레헴을 찾아 주님을 경배했던 삼왕처럼 내 자신 낯선 작은 마을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 감개무량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보낸 성탄전야 중에 가장 특별하고 은혜로운 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성탄에도 외진 시골 마을의 작고 작은 성당에 가서 지내고 싶다.
그땐 산타처럼 그곳 아이들에게 한보따리 선물도 준비해 가야겠다.
첫댓글 언제나 든든한 하나님의 빽이 느티나무님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멋진 성탄절 여행이 부러워요
언제 나도 느티나무님처럼 해 볼 수 있을까... 샘 통만 납니다.
성탄 특송을 부르셨다면서 박수도 많이 받으셨겠어요.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을텐데 웬 샘을 부리시나요? 욕심쟁이 와바라님.
누구든 무엇이든 늘 베풀고 살려는 느티나무님이기에, 여행을 통해, 것도 성탄을 안고 떠난 여행을 통해 얻은 기쁨은 분명 아기예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부럽당
이유없이 쎔통 부리고 싶을때 있잖아요 누구나...그런데 공기좋은 동네가셔서 마음의 치유를 하고 하고 오셨으니 다행이네요.. 그것도 향목표!..인가봐요..ㅎㅎ
집에 인터넷을 끊어놓아서 지금에사 봅니다. 그동안 친구에 너무 궁했던모양이라. 이튼날에는 막 기운이 나데. 암튼 무지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