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4년 4월5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안녕! 풍전여관
심재휘
한 번만이라도 다시 들어가 잠들고 싶은 방이 있다
경포 바닷가 솔숲에
내가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면 미리 불어주는 바람 속에
풍전여관이 있다
신고 버렸던 평생의 신발들은 다 기억할 수가 없고
그때그때 신발들의 소리는 조금씩 다 달랐지만
언제나 잊을 수 없는 풍전여관은 늘 맨발의 풍전여관
맹세를 버리지 않는다 해도 돌아올 사랑이 아니라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어서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베이는
어쩌자고 풍전여관은 거기에 있나
젊음은 묵힐 수 없도록 쉬 낡고
추억은 더디 식어서 더욱 오래 쓸쓸하고
그러니까 나는 한때 풍전여관에서 살았던 거다
지금은 없는 풍전여관
♦ ㅡㅡㅡㅡㅡ 시간은 아픈 기억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일까? 행복한 순간, 사랑의 경험, 성취감, 그리고 따뜻한 인연들만 있었던 건 아닌데 왜 추억은 아름답게 기억되는 걸까? 지나는 줄도 모른 채 보내버린 시절,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젊음의 순간들, 이제는 추억 속에만 남은 인연들은 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 찾은 곳에서 예전모습 그대로인 대상을 만났을 때의 감회는 또 얼마나 뭉클할까?
‘젊음은 묵힐 수 없도록 쉬 낡고. 추억은 더디 식어서 더욱 오래 쓸쓸하고’
지금은 없는 풍전여관,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베이는 이는 서로의 맹세를 버리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없었던 연인이었을까, 강릉이 고향인 시인에게 남다른 추억인 경포 바닷가 솔숲처럼, 세월이 흘렀어도 잊히지 않는 추억의 장소와, 함께 어울렸던 인연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