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자만할 뻔했다
김 진 영
남편은 내가 만든 음식이 최고로 맛있다고 한다. 데이트할 때 만들어서 가을 소풍하러 갔는데, 그때 먹은 샌드위치가 맛있었는지 지인들이 와이프 음식 중 최고로 맛있는 게 무엇인지 질문하면 늘 샌드위치라고 한다. 잘 먹은 것이 기분은 좋았지만 무언가 자존심을 살짝 건드렸다.
왜, 샌드위치 한 가지일까? 그렇다. 결혼 전 건강식 만든다고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게, 물로 채소를 볶거나, 다른 재료들은 대부분 삶거나 구운 거였다. 남편 자신도 건강하게 먹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 왔다. 근처에 사는 언니가 맛을 보더니 맹탕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짜게 먹었다고 하는데, 저만 생각한 거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 아무래도 요리를 배워야겠다. 우선, 요리의 기본이라는 한식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필기시험은 접수하고 일주일 정도 공부했다. 공통 문제가 많다는 말을 듣고 한식과 양식을 같이 접수했는데, 한식 책으로 양식까지 붙어서 신기했다.
실기는 서른 가지가 넘는 요리법을 외우는 것도 문제였지만, 칼질이 너무 무서웠다. 거기다 생선 손질은 처음이라 심장까지 쿵쾅거렸다. 맨손으로 만져지는 생선 비늘의 거슬거슬한 촉감은 소름 돋도록 싫었다. 얼었다 녹은 동태의 퀭한 눈알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학원에서 요리 결과물 평가는 늘 하위권이었다. 채를 썬 채소, 고기의 모양이 참 자유분방하다. 모두 일정한 길이와 두께여야 하지만 하나라도 같은 모양이 없다. 양파는 왜 이렇게 눈이 매운지 자꾸만 사연 있는 사람처럼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고기는 정육점에서 기계로 썰어주거나 두께 맞춰주는데 포 떠서 썰란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처음으로 만진 생선과 육류의 만남이었다.
실기 시험 날이 다가왔다. 시작 전부터 종이에 손을 베였다. 지혈은 되었지만, 괜히 손가락에 신경이 쓰였다. 시험 시작 후 오이를 잘라보니 오이가 썩어 있다. 조용히 손을 들고 감독관에서 재료 교체를 요청하였다. 결국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못하게 나왔다.
시험 발표가 있던 날, 강사 선생님이 결과를 보라고 한다. 불합격을 예상하며 확인하는 순간 ‘합격’이란 글자가 적혀있다. 60점 이상이면 합격인데 75점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점수이다. 그렇게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시작으로 양식 조리사, 중식 조리사, 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떡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께 맛있는 떡을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며느리가 어설프게 만든 ‘찹쌀 파이’조차도 좋아하신다. 그 마음이 크게 느껴져서 떡 제조 기능사도 도전해서 단번에 취득했다. 명절 때 만들어 가니 떡집 해도 되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제 빵순이와 빵돌이인 우리 부부를 위해서 제과기능사와 제빵기능사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제과를 준비하며 만든 간식은 남편 회사 동료들과 함께 먹으라고 간식으로 준비해 주었다. 여느 때라면 과일 정도였지만, 달콤하게 구운 과자류는 휴식 시간을 더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더 좋은 재료와 변형 레시피를 이용하여 하나씩 포장하자 그이는 해맑은 미소로 바라본다. 다음날 으쓱해서 당신 어깨 올라갔냐고 물으니 내가 쿠키를 만들기 전부터 이미 올라갔는데 회사 천장을 뚫을 기세였다고 한다. 제과기능사도 단번에 합격했다.
제빵은 제과보다 합격률이 높으니 더 쉽게 합격할 것만 같다. 반죽 성형도 잘 되어서 늘 기세등등했다. 시험 날이 너무 기다려진다. 이번에도 단번에 합격하고 그 소식을 전하면 그이는 나보다 더 기뻐할 게 분명하다.
기다리던 시험 날이다. 시험 항목은 ‘호밀빵’이었다. 계량도 성공했고 반죽 온도도 딱 맞다. 이 모든 하나하나가 내게 합격이라 외치며 합격 도장을 찍어 주는 것만 같다. 오븐에서 빵을 꺼냈다. 내 눈을 의심했다. 빵은 옆으로 빈듯하게 누워 옆구리를 긁고 있고, 빵과 빵이 붙어 있어서 열이 고르게 전달되지 않아서 크기는 다 다르다. 그렇게 제빵 첫 번째 시험은 불합격이란 도장을 찍어야 했다.
두 번째 시험에는 ‘버터롤’이 나왔다. 이번에도 계량과 반죽 온도 모두 잘 맞췄다. 이번엔 너무 파이팅 넘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24개의 빵을 성형했다. 모양이 하나가 이상하지만 작은 빵은 구우면 모양이 곧잘 나왔기에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구웠다. 오븐에서 나오는 순간. 번데기 모양이어야 할 버터롤 중 하나가 소라 빵 모양이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시험도 54점으로 불합격했다. 쉽게 봤던 건데, 어떤 사람은 여섯 번 넘게 도전해서 붙었다기에 ‘그렇게까지?’라며 생각했던 터였다. 난 더 오래 시험을 칠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실기 연습도 레시피 공부도 싫어졌다.
시험 당일 아침이 밝아왔다. 머리 옆에서 심장 뛰는 소리에 맞춰 두통이 느껴졌다. 남편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하다. 그는 하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멈춰도 된다며 토닥여 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격증 시험을 치는 이유는 즐거움을 위한 것인데 방향이 틀어져 버렸다.
어떻게 보면 그이는 더 즐겁게 빵을 만든다. 행복한 얼굴로 말이다. 빵을 좋아하지만 먹으면 가려워하는 아내를 위해서 유튜브와 두꺼운 책을 사서 공부하며 빵을 만들어 주었다.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재료로 맛있게 만들지 고민하는 반려자의 모습을 바라보면 발효가 잘된 반죽처럼 마음이 포슬포슬하게 부풀어져 간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빵이지만 모든 순간을 안아주듯 마음 담아 빵을 만들어 주었다. 모양은 투박하지만, 그를 닮은 포근한 사랑이 느껴지는 빵이다. 그렇게 만들던 과정이 생각난다. 그는 스트레스가 아닌 사랑과 기대로 만들었다.
시험 날 남편은 왕복 3시간 거리를 차로 태워다 주었다. 운전하는 옆지기의 모습 속에서도 금방 만든 식빵처럼 나를 향한 따끈따끈한 사랑이 느껴진다. 시험이 끝날 동안 영화를 보고 온다며 자신이 기다리는 것을 미안해하지 말라고 한다. 이번 세 번째 제빵 시험에는 옥수수식빵이 나왔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아 합격 여부는 알 수 없다.
자격증 시험에는 실패했는지 모르겠지만, 실패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감히 쉽게 잣대질하지 말라고 하고, 비록 여러 번 넘어졌을지언정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끝까지 도전한 사람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나의 우연한 성공으로 자만하지 말라고 나직이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