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김장을 담근다. 추운 날씨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인 채소를 겨우내 발효시킨 김치를 먹어야 하는 한국인이다. 김치의 역사는 고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김치를 가르키는 순수 우리말은 딤치(지) 또는 짐치(지)였다. 부엌의 음식 문명사에는 언어의 긴 변천 과정도 함께 묻어 있다.
김치는 배추 등 채소의 아삭한 풍미, 깔끔한 맛의 소금 간, 중독성 강한 향신료인 고추, 더불어 젓갈의 감칠맛이 어우러진다. 익었을 땐 젖산의 시큼한 맛까지 난다. 이 발효가 겉절이인 일본의 기무치와 다른 점이다. 담근 김치에서는 발효 효소 덕분에 생겨난 아미노산이 젖산균의 먹이가 되고, 이 젖산균이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한다. 젖산균이 다시 몸속 소화 효소의 분비를 촉진하고 비타민 함량을 높여주며 발암 물질까지 제거한다.
속이 꽉 찬 호배추는 근세기 쯤에 중국 산둥에서 건너왔다. 그래서 산둥과 가까운 개성의 배추를 으뜸으로 쳤다. 토종 배추는 잎사귀가 더 무성하지만 속대가 드센 편이다. 배추보다 갖이나 무 등 주변에 흔한 채소로 김장을 담궜다. 질 좋은 무는 한양의 동대문 밖, 뚝섬 근처에서 많이 재배됐다. 설렁탕 등 고기 탕국엔 ‘서울 깍두기’가 제격이라고 여기는 이유다.
김치라는 단어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유래된 게 아니라 선조들이 딤치(dhim-chi^), 짐치(jim-chi^)라고 일컫던 우리말이다. 치 또는 지(chi^)라는 접미어는 짠지, 묵은지 등처럼 절여서 숙성시킨 채소를 뜻한다. 이는 재야 언어학계에서 눈길을 끄는 한 원로 학자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말이 기원전 인도아리안 어족으로 분류되는 산스크리트어, 특히 그 원형인 ‘실담어’와 비슷하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우리말이 드넓은 유라시아 일대에서 원시 인류가 쓰던 고어(古語)라는 것이다. 반면 지금 세계 학계는 우리말을 ‘알타이 어족이긴 한데 뿌리를 알 수 없는 언어’로 분류하고 있다.
이 원로 학자는 불교를 연구하기 위해 옛 실담어를 공부하다 1786년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의 총독이자 언어학자였던 윌리엄 존스(1746~1794년)가 편찬한 ‘옥스포드 산스크리트-영어 대사전’을 접한다. 존스는 라틴어와 영어의 뿌리라고 믿었던 실담어를 인도 노인들의 구술과 연구를 통해 하나하나 채록하고 영어식으로 발음과 뜻을 기록했다. 물론 그는 당시 동방의 조용한 나라였던 조선의 말은 몰랐다.
그런데 300년 뒤 우리 원로 학자가 이 사전을 참조해 ‘실담어-영어-한국어’ 순서로 단어를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옛 실담어가 발음은 물론 뜻마저 우리말과 비슷한 것이다. 그가 발견한 단어가 수백여 개에 이른다. 이는 앞으로 학계에서 정식으로 논제로 삼아 파헤칠 부분이라고 본다.
아무튼 존스는 대사전에서 딤치 또는 짐치에 대해 ‘무 등과 같은 채소’, ‘양념으로 버무린 양배추(cabbage)’ 등이라고 적고 있다. 김치의 특성인 발효에 대해선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또 우리 민요에도 등장하는 도라지는 도라디(doradi^) 또는 도라지(doraji^)라 표기하고 ‘채소의 한 종류’ 또는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옥스퍼드 교수이기도 한 그가 수십 개 세계어를 구사한 천재라고 하지만, 매우 낯설은 언어를 채록하다 보면 어설픈 기록도 남길 수 있다. 그는 이밥을 니바라(niva^ra)라고 적은 뒤 ‘야생 쌀’이라고 했다. 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찹쌀과 상대적 개념의 한자어 이(異)밥’이라고 했던 게 아니다. 본래 우리말이 니(이)밥인 것이다.
단오라는 말은 더욱 놀랍다. 옥스포드 대사전은 다누(dha^nu)라고 표기한 뒤 그 뜻을 ‘말 타기, 활쏘기, 씨름하기, 달리기, 헤엄치기 등을 하는 날’로 적었다. 따라서 단오는 중국에서 유래된 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축제 또는 체육대회인 것이다. 특히 존스는 참조 표시(cf.)를 한 뒤 아프리카 탄자니아 말에도 다누(dhanu)라는 단어가 있는데, 사냥을 뜻한다고 하면서도 정확한 어원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나 고대 인도는 인도양을 접하고 있는 탄자니아 지역을 식민지로 삼은 적이 있다. 따라서 인도에서 쓰던 단오 등 산스크리트어가 아프리카로 전해진 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단오를 한국인의 대축제로 삼아야 한다.
우리말과 비슷한 세계 언어의 흔적은 지구촌 곳곳에 더 있다. 카자흐스탄 등의 스탄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당시 경음화 표시인 ‘ㅅ’을 덧붙인 ‘ㅅ당’으로 지금의 땅을 뜻한다. 카자흐스탄은 카자흐 족의 땅이다. 또 북미 인디언이나 중미의 옛 아즈텍 문명 언어에는 아시끼(asikki)가 ‘a boy(사내아이)’를 뜻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인도 남부를 갔을 때 ‘아빠, 엄마, 누나’ 등의 현지인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한두 가지의 추론만 내세워 그들 모두가 한국인과 한 핏줄이라는 일부 학자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선사시대 인류의 옛말을 지금도 거의 유일하게 한국어로 쓰고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문화와 관습은 지리적으로 항아리형 반도에 들어오면 잘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말은 현대적 사고 체계로 보면 비논리적인 원시 언어여서 솔직히 영어나 중국어에 비해 배우기가 무척 까다롭다. 문법 책보다는 생활 속에서 익혀야 한다. 그렇지만 이후에 등장한 한글은 최고 수준의 논리적 문자라 외국인 다문화가족도 일주일만 배우면 우리 글을 쉽게 읽고 쓸 줄 안다. 김치와 우리말에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긴 역사가 담겼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1207500034#csidx8a77e2d6b1518758e90440d37773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