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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김 예주
1.성막 만들기를 했는데 모세 시대에 성막은 왜(뭘 하려고) 만들었을까요?
-하나님을 만나려고(회-막, 성막, 성전)
2.하나님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교제(=구원)
-죄 사함(=구원)
3.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이 무엇인가요?(cf에베소서1장)
-거룩하고 흠 없는 백성을 창조해서
-그 백성들과 교제 하고 찬양을 받기 위함(통치)=(구원)
-성경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고 그 나라를 건설하는 방식은
-율법과 성전으로 함. (창조=첫 창조+새 창조의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
4.이 일을 위해 시청각교육이 필요 했을 것임.
-율법
-성막
-제사장
5.결론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나라’와 ‘구원’은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나라란 무엇인가'와 '구원이란 어떤 것인가'는 동일)
왜 이 두 단어가 같은 의미인지를 푸는 것이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시청각 교재를 통해 배운 바로는 나와 예수가 교제를 하는 것으로 '성전'
이 지어지는데 이 관계 맺기는 내가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인
것을 믿고(알고)내 의지로 충분히 비용 계산을 한 후, 천국을 뚫고 들어
가는 방식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천국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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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물이 많이 모아진 곳을 '바다'라 한다. 영어로는 'sea'라 하고 중국
말로는 '海'라 한다. 즉 서로 다른 표현을 통해 동일한 사물과 사건을 표시
한다. '사랑 Love愛'라는 말도 그렇다. 인간이 상징적 존재라는 특징이 단지
이 정도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맥과 상황에 따라 또 다른 의미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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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기 때문이다.'내가 너를 사랑 한다'라는 말도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 말을 아내가 딸에게, 남편이 아내
에게 한다면 일반적인 의미로 들리지만, 결혼한 남자가 미혼인 여자에게 이
말을 한다면 다른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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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어떤 사물과 사건을 표현하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상징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세계적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i)의 말대로
"언어는 단지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급기야 언어로 우리의
사고를 만들어 내고 나아가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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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잘못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를 만들어 내고 잘못된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성경은 변증학자 버나드 램(Bernard Ram)이 말한
대로 "상징으로 가득한 것이요, 상징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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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어린양이다'는 이 말은 신·구약 전체의 문맥을
알지 못하고는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어 버리는 우스운 뜻이 된다.
'성전'의 의미는 상징적이면서 예언적이다. 만약 신·구약 성경을 구속사적 관련
성 없이 구약 따로 신약 따로 본다면, 신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본래 전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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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뜻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만약 구약만을 기준으로 성경
을 본다면, 우리는 모두 이스라엘인이 되어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에 가야 할 것이다. 구약은
그런 면에서 모형, 상징, 예언이라는 차원의 구속사적 시각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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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성전'이란 용어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성전'의 의미를 구약 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하나밖에 없던 성전은 훼파된 지 오래
되었고 그 성전은 아직도 재건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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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교회 안에서 예배당이 성전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사용되고 있다.
성전은 모형 적, 상징적, 예언적 의미에서 볼 때만 그 뜻을 가진다.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임마누엘이다. 그러기에 유대인은 성전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열정은 바로 성전
이 하나님이 계신 집이요, 나아가서 하나님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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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사람이 지은 제한된 장소가 어찌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겠는가? 구약의 학개서를 인용해 예배당을 짓자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성전을 짓도록 한 학개 예언자의 말은 구약 적 시각에서 한 말이지 신약
적으로 예배당을 지으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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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선지자가 한 말은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말로서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전의 모형 적, 상징적 의미와 함께
예언적 의미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즉 성전은 예언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신약을 사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구약의 성전이 신약의 예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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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모형 적 의미와 함께 예언적 의미가 없다면, 신약을 사는 우리에게
성전은 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 많은 종교들 가운데 웅장한 성전
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신·구약이 말하는 성전은 그들이 말하는 성전과
전혀 다른 것이다. 신약의 눈으로 볼 때에야 구약의 성전의 의미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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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 하시고 "이 성전을 헐라(요 2:19)" 하실 때
유대인들에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이
말로 인해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예배당 건물은 결코 '성전'
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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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8~9장에서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유대 적 기독
교인들을 상대로 쓴 책이다. 그들은 아직도 구약의 문자에 너무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 히브리서를 기록한 것이다. 히브리서
9장 1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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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첫째, 손으로 짓지 아니한, 즉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장막이다. 둘째,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다. 여기 장막은
성막(성전)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성전이신데 그 성전은 손으로 짓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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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첫 창조에 속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더 크고 완전한 성전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인가! 놀라운 점진적 계시요 구약의 성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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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는 함부로 예배당을 감히 성전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어찌 사람이 지은 집이 성전일 수
있겠는가! 나아가서, 만약 건물이 성전이 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구속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당시 성전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십자가에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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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셨는데, 우리가 예배당을 성전이라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성전은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
한 곳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 땅에는 어찌 그리 성전이 많은가. 다시 말
하거니와 이것은 성전 모독, 즉 진정한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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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뿐만 아니라 이단이다. 구약에서 성전을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예언이다. 그러므로 결코 예배당 건물을 성전
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예배당을 '성전, 성전' 하다 보니 성도들이 예배당에서
목사가 제사장인 줄 알게 되고 '제단'이라는 말이 별 생각 없이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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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이라는 말도 그렇다. 어찌 목사가 제사장인가. 지금 어디에 제단이
있는가. 심지어 제단이 법궤이고 여자는 제단 위에 올라갈 수 없다느니 하는
경우까지 이르고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건물은 성전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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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왔으니 교회에서 '성가대'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성가'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찬양, 찬송'이라는 말은 300번 이상 나온다. 음악을 분류할 때나 민요,
동요, 성가라고 쓴다. 그러므로 찬양대라고 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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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물'은 교회 론의 오류다
다음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구구하게 어느 신학자들의
이름을 들추어 내지 않더라도,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성도들의 모임
(congregation)이다. 사도바울이 기록한 것처럼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가 성전이다(고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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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조직체(organization)가 아니라 하나님을 모
시고 사는 성도들의 유기체(organism)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회의 기능은 무엇인가? 다양한 시각에서 말할 수 있겠지
만 예배(kerygma)가 있고, 교육(didache)이 있고, 봉사(diakonia)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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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koinonia)가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성도들의 모임이요, 교회의 기능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
에서 성전은 교회라 말할 수 있고 교회를 성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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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이 건물일 수 없는 것과 같이 교회 또한 건물일 수 없다. 교회를 건물로
생각한다면 교회 론에 대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교회=건물'이란 도식은 교회
의 할 일이 건물 짓는 일이 되어 버리는 오류에 빠지게 되고, 실제로 예배당
짓는 일을 한국에서는 교회의 가장 큰 일 중 하나라 생각해 버리는 게 엄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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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다. 교회 론적인 오류 때문에 교회가 예배당인 줄 알고 예배당 짓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지 않는가. 동양 철학자인 김 용옥 교수는 그의 책에서
한국교회를 '나와라, 돈 내라, 집 짓자'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김 용옥 교수가 한 말이니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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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김 용옥 교수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찬송가의 어느 구절처럼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하나님나라)이요 교회이다. 교회
는 빌레몬의 집일 수 있고, 마가의 다락방일 수 있고, 초가삼간일 수도 있고,
가건물일 수도 있고, 학교 강당일 수도 있고, 비닐하우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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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말은 예배당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건물이 필요하면 그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 또 지어야 한다. 필자도 평생에 아담한 예배당을
짓고 싶은 마음이 있다. 형편이 허락하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
하게 예배당을 짓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예배당을 성전이라 하고 성전을
지으면 복을 받는다는 비성경적인 말로 예배 당을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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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보다는 '교회당'이라 부르자
지금까지 필자는 구약의 성전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며, 그래서 스데반은 광야의 이스라엘을
'광야교회'라 했다. 그리고 교회가 단지 건물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살펴
보았다. 필자는 지금까지 예배당이라는 말을 써 왔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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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과연 교회가 모이는 곳을 '예배당'이라 하는
것이 좋은가? 한국교회가 이 땅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금부터 80여 년 전만
해도 성도들이 모인 곳을 회당이라 했다. 그리고 50여 년 전만 해도 예배당이
라는 말은 보편적으로 쓰는 용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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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60~70년대에 순복음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예배당을 성전이라 하기
시작했다. 그 후 한국교회에 예배당이 성전이라는 말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때부터 건물 중심의 성장주의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과연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를 예배당이라 해야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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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이라는 말보다 '교회당'이라 해야 교회 론 적 측면에서 바르다고 본다.
교회는 예배와 교육, 봉사, 교제 등 다양한 측면이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예배당'이란 말은 교회가 예배만 드리는 곳이라는 면만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다. 물론 예배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그러나 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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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역할을 고려해 볼 때 '교회당'이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필자는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에 대하여 '뭐 그렇게 까다롭게 할 필요가
있느냐?' '그동안 쓰던 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는 등의 반응을 많이 들어
왔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미 지적한 대로 신학적, 실천적인 면에서 언
어 사용의 오용으로 발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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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말대로, 언어는 단지 사물과 사건의 기호가 아니라 언어 자체는
사고를 만들어 내고 나아가 행동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는가? 그럴듯한 말로, 관행이라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신 성전과 교회를 모독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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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특별히 목회자는 성경적인 바른 언어를 가르치고
실천해야 하는 데 보다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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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만들기 준비 물
그룹 별로( 4-5명)성막 기물(사진)을 주고 지정된 사물을 지점토를 통해 만든다.
(1)개별 성전 기물
a.번제단
b.등대
c.분향단
d.떡 상
e.법궤
(2)종합 청사진
a.번제단 부두막
b.물두멍, 부삽,제물(송아지 인형)
c.성막 부스(텐트)
d.휘장+2,고운 모래
2023.3.12.sun.김 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