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일 주님 공현 대축일
♧♣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빛을 향해 모든 민족들의 임금들이 오리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이사 60,2-3)
마태오는 동방에서 온 세 박사들이1)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친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2)
그러나 정작 가까이 있는 헤로데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뵙지 못할 뿐 아니라 그분을 없애려
하거나 무시합니다.
별빛을 따라 온 사람들은 베틀레헴으로 향하고 그들이 기다리던 우주의 주인을 만납니다.
이렇게 해서 아기 예수님은 공적으로 당신 탄생을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동방에서 온 세 박사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아기 예수님께 봉헌합니다.
이 세 현자들처럼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손에 값진 보물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 보다 값진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보통 선물, 예물이라고 하면 돈으로 계산해서 비싸고 값진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세 박사들의 예물, 황금, 유향, 몰약은 세상의 가치로 따져도 사실 비싼 것입니다.
복음은 세 박사들이 꿈에 헤로데에게 들리지 말고 직접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가라시는
하느님 말씀을 전합니다.
최민순 신부님 시 처럼3) 우리는 값진 황금도 유향도 몰약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세 박사들이 별빛만 바라보며 그 먼 길을 온 수고를 본받아 우리도 정성어린 선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시편에서 저자는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제물은 살찐 양이나 소가 아니라 가난과 고통으로
으깨어진 삶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하고 꺾인 마음이라고 했습니다.4)
추운 베틀레헴 들판에서 밤샘을 하던 가난한 목동들처럼, 별빛만을 따라 이방인으로서 먼 길의
외로움과 지친 몸으로 달려온 세 박사처럼, 우리는 때로 지치고 내세울 것도 없는 삶을 살며
아기 예수님을 뵙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는 공정한 판결을 내리시고 힘없고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즈카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승리의 메시아, 나귀를 타고 오시는 겸손한 메시아를
노래한 것입니다. 오늘 전례의 화답송도 노래합니다.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72,10-11)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 시대의 성취를 노래하였는데 아기 예수님은 세 박사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불쌍하고 소외된 이들, 병들고 어둠에 갇히고 폭행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화답송인 시편이 그분에 대해서 노래합니다.5)
정작 예루살렘의 왕이나 율법학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으신 아기 예수님이시지만 들판의 별빛을
따라 먼 길을 왔을 세 박사에 의해서 세상에 메시아로 알려지십니다.
우리 모두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비록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아니더라도 예언자들과 시편이
노래하는 어둠과 소외된 이웃을 위해 탄생하시는 구세주를 정성을 다해 우리자신을 봉헌하며
경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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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태오가 전하는 동방의 세 박사에 대해서 정확히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도 밝혀 지지 않는다. 초대 교회에서는 동방의 현자로, 3세기 초에는 아라비아, 페리시아, 인도의 왕으로 격상하기도 했다. 교부 떼르뚤리아누스(Tertullianus ad 150-240)는 우리말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고 번역했지만 희랍어 원문은 ‘마고이 μάγοι(μάγος 복수)인데 그 뜻은 ‘마술사’, ‘점성술사’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몇 군데에서 ‘임금들’의 방문(이사 60,3; 시편 68,29; 시편 72,10)이라는 표현에 영향을 받아 일부 번역에서는 ‘박사’를 ‘왕’으로 표기했다. 여기에 맞추어 옛 전례서에는 ‘삼왕래조(三王來朝)’대축일이라고도 했었다. 마로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이 세 박사에 대한 설명이 있다.
2) 아기 예수님께 바친 예물이 황금, 유향, 몰약으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세명으로 보고 있다. 몇몇 영어 번역에는 왕(kings)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옛날 가톨릭에서는 공현축일을 '삼왕래조축일(三王來朝祝日)'라고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왕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표기하며 성인들로 모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황금을 바친 멜키오르(Melchior), 유향을 바친 발타사르(Balthasar), 몰약을 바친 가스파르(Caspar)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것입니다. 기원 후 5세기 경에 복음희랍어원문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세 명의 인물이 ‘멜키오르’, ‘카스파르’, ‘발다사르’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전통이 되기는 했지만 사실 정확한 근거를 찾기는 힘들다. 시리아나 아르메니아, 에디오피아 정교회에서는 박사들의 이름을 전혀 다르게 제시하는데 셋이라기고 하지만 또 다르게는 열두 명이라고도 한다.
3) 최민순 신부님의 ‘받으시옵소서’라는 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아니더라도 여기 육신이 있습니다. 영혼이 있습니다. 본시 없던 나 손수지어 있게 하시고 죽었던 나 몸소 살려 주셨으니 받으시옵소서. 님으로 말미암은 이 목숨 이 사랑 오직 당신 것이오니 도로 받으시옵소서. 갈마드는 세월에 삶이 바로 고달팠고 어리석던 탐욕에 마음은 흐렸을 망정 님이 주신 목숨이야 늙을 줄이 있으리까. 심어주신 사랑이야 금갈 줄이 있으리이까. 받으시옵소서 받으시옵소서. 당신 것을 도로 받으시옵소서. 가난한 채 더러운 채. 이대로 나를 바쳐 드리옴은 오로지 님을 향한 굳게 믿음이오라. 전능하신 자비 안에 이 몸이 안겨질 때 주홍 같은 나의 죄 눈같이 희어 지리이다. 진흙 같은 이 마음이 수궁처럼 빛나리이다.
4) “당신께서는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시편 51,18-19)
5)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시편 72,12-13) 초대 그리스도교에서부터 이 시편을 이사야(11,1-5), 즈카리야(9,9)가 예언한 메시아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이해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