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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즉시 써야 하는데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좀 진이 빠졌어요.
왜냐하면 길고 여러 곳을 다녀온 동유럽 발칸 기행문, 12일 분을 먼저 써야 할 것 같아 그것 완성하고
또 쓰려니 팔도 아프고...
그래서 천천히 썼 봤어요.
박강남 회장님, 김영숙 시인님, 홍재인 시인님께서 아직 수정도 안 된 글을 하도 재미있게 보셔서 여기에 올려놓습니다.
나라의 역사나 유적의 역사나 이런 것들을 더 넣으면 좋은데 그런 것보다는 순수한 우리들만의 여행,그 기분을 살리기 위해 가이드 설명도 꼭 필요한 부분만, 유적의 내력도 이해해야 할 부문만 필요한 것을 인터넷과 또 몇 곳은 이의영 시인님의 글도 좀 인용했습니다.
재미있게 보세요. 새록새록 여행 기분 나실 겁니다. 틀린 글자 있고, 문장 어눌한 부분 있어도 이해하시고요.
혹 옮겨 가실 분을 위하여 파일도 올리고 그냥 읽으실 분을 위하여 멍석도 깝니다.
환상의 하롱베이와 역사의 거구 앙코르왓에 가다
-글핀샘 글벗 모임 첫 해외나들이(2013.4.4~4.9-4박 6일)
글핀샘이 근 3년을 열심히 돈을 모아 떠나는 첫 해외 나들이다. 아쉽게도 고문 김용언 선생님과 이인복 선생님 조규수 선생님이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참여 인원은 8명, 박강남 홍재인 이명진 이복자 김영숙 현성희 박희철 이의영 회원이다.
지난 2월 말에 나는 우리 남매들과 남편과 베트남을 다녀왔다. 그러나 휴일이라 교통이 많이 막히고 비오는 날씨여서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다. 한 달 만에 또 가는 곳이어서 날씨가 좋아 멋진 하롱베이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기도했다.
또 하나 걱정 되는 것은 발의 통증이다. 물론 만반의 약을 준비하고 떠나지만 제발 통증이 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인천에서 9시 5분 비행기라서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6시 35분에 공항 미팅이다. 도농역에서 리무진을 바로 타도 되는데 이명진 시인 남편이 도농역에서 픽업, 모두 구리 롯데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김영숙 나 이명진 시인이 먼저 나오고 박강남 시인과 홍재인 시인, 박희철 시인이 차례로 나와 합류하여 함께 5시 25분에 승차, 공항으로 출발했다.
7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따라가는 가이드는 무뚝뚝한 남자 가이드다. 도와주는 것도 별로 없이 우리가 짐을 부치고 나머지 시간에 필요한 사람은 환전을 하고 로밍을 하고 보딩을 했다. 출발부터 재미있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니 이번 여행도 예감이 좋다.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인원은 25명이란다.
첫날(4월 4일 목요일)
베트남 비행기 ZA2012에 올라 5시간 30분을 비행하여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다. 내리자 곧바로 끼얹히는 더위, 장난이 아니었다. 전날까지 좀 선선했다는 데 갑자기 더워졌단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예쁜 꽃이 핀 나무와 열대림의 나무, 꼭 시멘트를 바른 듯한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공항은 아주 작았다. 공항 건물이라기보다 커다란 주택 같은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그래도 다른 나라, 베트남으로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검색을 철저하게 했다.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땀이 줄줄, 더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검색을 한 후, 건물 안을 통과하여 타고 온 비행기에 올랐다. 약 두 시간을 날아 베트남 하노이공항으로 가야 한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하나투어 피켓을 든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중년의 노련한 여자 가이드였다. 김현숙 가이드다. 하노이에 도착해서야 어떤 분들이 우리 일행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 8명과 5명의 친구 팀과 6명의 가족 팀과 중고생 두 명의 가족 4명, 부부 팀 2쌍이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또박또박 설명을 잘 해 주었다. 홍강 안쪽에 있는 하노이는 리 타이 또 황제 때 최초로 수도로 지정 되어 1010년 가까이 베트남의 수도 역할을 다하고 있는 도시란다. 민망 황제 때인 1831년부터 하노이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식민지 지배 기간에는 동칸의 수도, 1945년 9월 2일 호치민에 의해 독립이 선포된 후에는 북부 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 되고 사회주의로 통일 된 1976년부터 현재까지는 베트남 수도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시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2월에 만났던 그 길과 건물들과 집들이다. 하노이는 이제 막 현대화로 치닫는 발전의 모습과 좀 초라하고 구차한 외지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다. 시내는 높은 빌딩이 있고, 좀 가다가 붉은 물이 흐르는 홍강도 보이고, 또 조금 지나자 파도 모양의 커다란 건물이 나타나고……. 똑 같은 형태의 정면 면적을 가진, 뒤로는 길고 삐죽하고, 아래층은 우중충해 보이는 2, 3층의 집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그런 모습이다. 물이 많은 나라여서 아래층은 습기가 많아 기거하기 어렵다고 한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은 등도 신통치 않아 어두컴컴하고……. 도로는 차보다 오토바이가 너무 많아 복잡하다. 재미있는 도시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논마다 사람들이 모를 심기 바빴는데 그 모들이 한 달 사이에 푸르게 자라 있었다. 논들이 푸름으로 가득하다. 신기했다.
1. 수상 인형극
첫 여행의 관람은 인형극, 바로 도착한 곳은 수상 인형 극장이었다. 노천극장이었다. 먼저 왔을 때는 하롱베이의 큰 극장 안에서 보긴 했으나 자막도 설명도 순서지조차도 없어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곳 공연은 그래도 우리 말 순서지를 주었다. 그러나 나라의 이름을 건 공연이라면 여행객에게 좀 더 성의가 있었으면 싶었다. 극장 왼편으로 인형극에 맞추어 공연할 악단이 먼저 나왔다. 악기를 연주하며 가냘픈 듯 구성진 목소리(쩌우 가수)로 먼저 노래를 불렀다.
가슴까지 찬 물 위에서 하는 인형극으로, 오리 두 마리가 나오고, 소를 탄 아이와 나비가 등장하고, 소 두 마리가 등장하고, 낚시꾼이 나와 고기를 낚고, 아이들(인형)이 나와 춤을 추고……. 홍강 유역의 농민들이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농사가 끝나면 연못이나 호수에서 로이누억이라는 인형을 만들어 공연했다고 한다. 모두가 익살스러운 연출이었다. 어딘가 좀 싱거운, 덜 재미있는 단순한 놀이의 느낌을 주는 공연이었다.
저녁은 삼겹살이었다. 베트남은 싱싱한 상추쌈이 아주 좋았다. 고기도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 추가까지 했다. 추가분은 이의영 시인이 쐈다.
저녁을 먹고 첫 투숙은 호화 호텔, 5성급 CROWNE PLAZA 호텔이었다. 룸메이트는 이의영 박희철, 김영숙 현성희, 박강남 이명진, 홍재인 이복자로 구성 되었다. 우리는 첫날이므로 추억을 남기기로 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맥주집으로 향했다. 호텔 왼편에서 길을 건너면 커다란 호프집이 었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가운데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러나 주문하려니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일단 기본 땅콩이 나왔다. 이 나라 땅콩은 자잘했는데 의외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어렵게, 어렵게 닭고기샐러드와 야채샐러드를 주문하고 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베트남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 건배를 하고 모처럼 해방 된 기분으로 마음껏 환담과 농담을 하며 웃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맥주를 즐기는 것 같았다. 여자는 없고 남자들뿐이었다. 이 나라는 여자들이 주로 노동을 하고 남자들은 노는 편이란다. 불공평이다. 안주를 네 접시나 시키고 맥주도 꽤 마셨는데 17달러다. 겨우 2만 원 정도라니 참 싸다. 우리나라 값으로 따지면 15만 원은 된단다. 박희철 시인이 쐈다. 근 두 시간을 놀다 건널목도 위반해 가며 호텔로 들어갔다. 도중에 웃음과 더불어 여러 장의 사진도 찍었다. 여행 첫날 기분은 만점이었다. 단잠을 잤다.
둘째 날, 5일 금요일
호텔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하롱베이로 이동한다. 약 3시간 30분을 달려야 한다.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다. 달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물이 많은 나라임이 확인 된다. 산도 없고 들판 곳곳에 호수 같은 물웅덩이가 있고 마른 논은 전혀 없다. 푸른 논이 이어진다. 이 나라가 쌀 수출국임을 말해 준다.
베트남은 납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로 북쪽은 홍강, 남쪽은 메콩강이 흐르는 나라란다. 하노이, 호치민, 하이퐁, 다낭, 컨토성 5개의 직할시와 59개의 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인구는 9천만 명이고 평균 연령이 27.5세라고 한다. 발전의 가능성이 큰 나라란다.
또 하나 묘지가 특이하다. 도로에 가까운 것은 이해가 가지만 논 한 가운데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물웅덩이에 무덤이라, 우리나라라면 시신이 썩지 않아 후손 망한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묘지가 클수록 있는 집이란다.
가다가 이베쎄(ABC)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렀는데 이곳이 지난 번 왔을 때 들러서 다람쥐똥 커피를 샀던 곳이다. 화장실만 사용하고 올 때 들른다고 했다.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영화‘인도차이나’와 로빈 윌리엄스의 ‘굿모닝 베트남’의 촬영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하노이 동쪽에 위치한 하롱베이는 미려한 장관으로 유명하다.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전체 국토 중 1553 평방킬로미터를 차지한단다. 3000개 이상의 섬들이 보여주는 장관은 스펙타클 그 자체이다. ‘하롱’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용이 바다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무리의 용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내뱉은 보석들이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내용을 극화한 인형극 건국 신화는 먼저 왔을 때 극장에서 봤었다. 건국신화 수상 인형극은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단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바다의 신 용과 산의 신 선녀가 만나 100개의 알을 낳았는데 아들 50명은 아버지를 따라 바다로 가고, 나머지 아들 50명은 산으로 갔단다. 산으로 간 아들 중에 서 베트남 초대왕이 되었단다. 믿거나 말거나다.
하롱베이 내의 석회 천궁동굴과 티톱섬 전망대, 스피드보트를 타고 007 영화 촬영소 항루원을 보는 것이 오늘 주 관광이다.
1. 하롱베이 유람
우리만 탈 수 있는 전용 배가 준비 되었다. 배가 항을 출발하자 서서히 나타나는 섬들의 모습,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그림 같이 떠 있는 배들과 어우러진 섬들의 모습이 신비스럽고 웅장하면서도 예쁘다.
이만하면 최상급의 날씨란다. 이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바위섬들! 꿈에 그리던 바위들이다. 매스컴에서 워낙 많이 접했던 곳이지만 실제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번에 와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던 섬들이 웅장하게 다가오고, 또 다가오고 한 장의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기암괴석의 바위섬들, 겹겹이 다가드는 수많은 섬들에 감탄을 하며 푸른 바다를 가르며 어디를 찍어도 그냥 엽서다. 무아지경이다.
얼마나 달리다 보니 눈에 익숙한 쌍둥이 바위가 훅 다가왔다. 이 바위는 베트남 돈에 들어 있는 바위다. 또 얼마 달리다 보니 키스 바위가 나타났다. 떨어져 있던 바위가 어느 지점에서 키스하는 형태로 겹치는 묘미, 신기했다. 어찌 다가오는 바위들을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 바위들의 이름은 다 있을까, 있으면 어떤 이름일까? 너무나 많이 나타나는 바위들을 찍다보니 메모리가 부족할 것 같았다. 좀 수를 줄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하는 왕코르왓이 또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많이 찍기로 했다. 언제 또 이 만큼 잘 보이는 하롱베이를 만나겠는가! 메모리가 모자라면 핸드폰으로 찍을 대비를 하여 핸드폰의 사진도 싹 비우고 왔다.
얼마나 구경을 했을까, 점심을 먹으란다. 배 안에서 먹는 싱싱한 회! 이것은 가이드가 직접 사서 하는 요리란다. 푸짐했다. 싱싱한 상추와 함께 먹는 맛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회를 좋아하는 나는 맛있게 먹었다.
2. 석회동굴
또 얼마나 섬 숲을 헤치고 달려 도착한 곳은 석회 동굴(승솟동굴)이었다. 배에서 내리면 입구에는 길 아래 배에서 음료수, 과일, 회 등을 파는 상인들을 많이 만난다. 두 번째 보는 동굴이긴 하나 지난번엔 우중에 본 곳이므로 이번엔 상세히 보기로 했다. 조명을 받아 멋있는 모습의 석주, 석순, 종유석 등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아쉬운 것은 이 동굴의 모든 것은 활동을 멈춘, 죽은 동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훼손 없이 보존 되어 자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감탄이었다. 나와서 아래 눈앞으로 펼쳐 보이는 섬들과 경관을 많이 찍었다. 바위틈의 고목 사이로 펼쳐지는 풍경이 환상이다. 계단을 내려 와 배로 가는 산책로 옆 바위에는 신기한 열대 식물들이 많았다.
3. 항루원
또 얼마를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항루원으로 가기 위해 보트를 갈아타는 곳이다. 구명조끼도 입었다. 배 아래는 치어들이 새까맣게 떼 지어 놀고 있었다. 보트를 타고 007 촬영지로 가야 하는데, 기분을 위해 스피드를 내며 일부러 일렁인 보트 때문에 넘어질 뻔한 홍재인 시인이 많이 놀랐다. 겁이 많은 홍재인 시인, 이제 스피드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보트를 타고 커다란 입구 구멍을 들어섰다. 입구는 컴컴한 통로로 천정은 기암괴석이 머리에 닿을 듯 드리워져 있다. 이곳은 원숭이를 봐야 한다. 먼저 왔을 때는 우중이라도 원숭이가 많아 바나나를 주며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에 따라 원숭이들도 이동을 한단다. 아무리 살펴도 없다. 바깥으로 이동했단다. 까마득하게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들, 둥그런 모형의 바위들이 둘러져 있어 마치 호수 같은 푸른 바다를 한 바퀴 돌고 입구를 나오자 바깥에서 원숭이들을 만난 관광객들이 있었다. 아마 바나나를 던져 주며 원숭이와 놀고 있으리라.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손도 흔들었다. 화답해 주는 아름다움, 좋았다.
4. 티톱섬
점점 더 커지는 바위섬들을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 도착한 곳은 티톱섬이다. 티톱섬은 소련의 우주비행사 티톱의 이름을 딴 섬이란다. 티톱은 호치민이 소련에 있을 당시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 은혜를 잊지 않고 호치민이 권력을 잡은 후 티톱을 초청하여 이 섬에 데려왔다. 이 섬의 정상에 올라 환상적인 풍경에 반한 티톱은 호치민에게 섬을 달라고 했지만, 공산주의이기 때문에 개인소유가 불가하다하여 대신 섬의 이름을 티톱섬이라 정하였다 한다.
전망대까지는 400여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꼭대기까지 가파른 돌계단인데 중간쯤 전망대에서 보는 경관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커다란 푸른 솜을 훅훅 던져 놓은 듯, 다 다른 얼굴로 둥둥 물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섬들! 꼭대기에 올라가자 땀이 비오 듯했다.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에 더위가 싹 사라졌다. 하늘과 바다와 섬과 배와 햇살의 조화, 경이로움에 할 말을 잊는다. 사이사이 하얀 배가 그림같이 떠다닌다. 기념사진도 찍었다.
티톱섬을 끝으로 돌아오는 배는 빠르게 곧장 달렸다. 근 한 시간을 달리는 사이 배 안에서는 기념품 판매가 이루어졌다. 모두들 베트남에서 유명하다는 진주를 많이 샀다. 나는 진주 목걸이와 물방울들에게 줄 반지 8개를 샀다. 현성희 시인으로부터 거울도 선물 받았다. 아침에 떠난 배가 돌아올 때는 해가 서쪽에서 눈부시게 떨어지고 있었다. 꼬박 하루를 하롱베이 구석구석,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가이드에게 재래시장과 야시장 두 곳 중 우리는 야시장을 볼 것을 요구했다. 지난 여행 때의 재래시장은 더럽고 냄새 때문에 다닐 수가 없었다. 또 구경할 것도 없었다. 재래시장보다 훨씬 좋았다.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팔찌 두 개를 사고 부채를 사기로 했다. 다섯 개를 이의영 시인의 입심으로 2000원씩에 샀다. 많이들 샀다. 가이드 말로는 이곳은 가짜가 많음을 감안하고 구매하란다. 집집마다 물건은 거의 같은 것들이었다. 이명진 시인과 현성희 시인이 늦게 오는 바람에 많이 기다렸다.
그러다 사고 난 걸 알았다. 이의영 시인의 지갑이 없어졌다. 분명히 잠바 속에 지갑이 있었단다. 의자 밑도 찾아보고, 샀던 장소에 가 물어 봐도 모른단다. 순식간에 도둑맞았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지갑을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말을 실감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국으로 전화해 일단 카드 정지부터 하셨다. 이미 자리 때문에도 그렇고 일행 중에 ‘시인이면 다냐’는 둥 우리를 곱씹는 사람들이 있어 심기가 불편한데 일이 생겼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하나투어 전용 식당에서 뷔페식 저녁식사를 했다. 바깥에서 구워주는 조개와 새우가 맛있었다. 와인도 한 잔씩 했다. 오늘도 박희철 시인이 쐈다.
발맛사지를 했다. 지난번 맛사지도 발 통증에 많은 도움이 있었다. 이번에도 정성을 다하는 친구를 만나 팁도 이천 원을 더 주었다. 아픈 발이 염려 되었으나 아주 좋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갔다. 5성급 HALONG PLAZA 호텔이다 이번엔 하롱베이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역시 멋있는 호텔이다. 앞 정원에는 꽃과 나무가 멋지게 가꾸어져 있었다. 왼편으로는 하롱베이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로비가 큰 유리문인데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다 유리를 받아버렸다. 무지 아팠다. 저녁이 되자 얼굴에 푸른 멍이 잡히기 시작했다. 하롱베이의 선물이다. 빨리 사라져야 할 텐데…….
셋째 날 4월 6일 토요일
아침에 호텔식 후 다시 버스를 타고 하노이로 간다. 하노이 시내를 구경하는 날이다. 하노이 구경 후 비행기로 캄보디아로 가는 날이어서 짐을 다 싸서 차에 올랐다.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차창 밖으로 결혼식 광경이 눈에 많이 띄었다. 길이인가 보다.
하노이로 가는 도중에 기념품 매장에 들렀다. 나는 이번에도 헤즐럿 향 다람쥐똥 커피를 샀다. 지난번에 액세서리 통과 장식품을 샀기 때문에 이번은 살 것이 없다. 이곳은 노니 차도 마시고 살 수 있고 짝퉁 스포츠 옷과 가방도 많다. 건과류를 사람들이 많이 산다.
공사 중인 도로여서 시간이 거릴 수 있다고 했으나 토요일이어서 많이 막히지 않았다. 부지런히 달려 하노이로 도착했다.
하노이는 호수와 늪이 많은 지역으로 집은 폭이 3m, 길이 10m로 딱 붙여 짓고 옆에는 창이 없고 칠도 하지 않는단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의 지배를 천년 받았고 그 후 100년간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9년간의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1975년 적화통일을 이루었다. 1976년 7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미국이 지면서 여러 가지 금수, 엠바고 정책을 써서 어려움이 많았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중국을 모델로 한 자본주의가 들어왔단다. 미국과의 전쟁 때 우리나라에서 파견 군대에 의해 탄생 된 라이따이한들이 많으며, 많은 문제거리라 한다. 우리 남편도 파견군이었는데…….
호치민은 베트남의 위대한 영도자이다. 검소하고 청렴했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출장을 가도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단다. 죽으면서도 장례도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화장을 하라고 했단다. 그러나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 받아 유언과는 달리 방부제 처리를 해 유리관에 넣어 현재의 호치민 묘소에 안치했단다.
1. 하노이 시장 구경 (씨클로 옵션)
지난번에 했던 것과 똑같이 씨클로를 타고 하노이 시내 시장을 구경하는 것이다. 한 대에 네 명씩 타고 골목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인데 매연 때문에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한다. 김영숙 선생님과 나란히 앉았다. 하노이 시장은 옷 파는 거리, 안경 파는 거리, 문구 파는 거리 등 물건 별로 가게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간간이 베트남 특유의 모습인, 여인이 저울 같이 생긴 기구를 어깨에 메고 과일이나 물건을 파는 모습도 보인다. 나는 두 번째 보는 광경이라 먼저보다 덜 신기했다. 먼지 속에 거리에서 술 먹는 사람, 음식 먹는 사람, 하노이의 생활 현실을, 시장 문화를 다 견학 할 수 있다. 그래도 재미있게 사진도 많이 찍었다. 시장을 약 40분을 돌고 나와 호안키엠 호수를 한 바퀴 돈 다음 내린다.
2. 호안키엠 호수
호안키엠 호수는 호수의 신에게 받은 검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서 검을 돌려주려고 하자 호수 밑에서 거북이 올라와 검을 물고 갔다고 한다. 검을 돌려준다는 뜻을 가진 호안키엠 호수는 아침에는 상쾌한 바람이 물고 낮에는 시원한 나무그늘이 있고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곳이란다.
호수 한 가운데는 유서가 깊은 듯 작은 성처럼 생긴 건물이 있다. 호수를 빙 둘러 고목이 많은데 물 쪽으로 기운 나무들이 많고 연인인 듯 사람들이 그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꽃도 많이 심어 놓았고 지구본 모양의 조각, 책 모양의 조각 등 독특한 조각품도 있었다. 지난번에는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들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볼 수 없었다. 맨 끝 쪽에는 지난번 남매들이 단체로 들어가 커피를 마신 카페도 보였다. 씨푸드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베트남은 공공기관은 노란 색 건물이란다. 학교도 그렇단다. 공산주의 국가여서 사유 재산인정이 안 되므로 은행에 넣는 것보다 개인이 돈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아 집집마다 금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란다. 숨은 돈이 많다는 얘기다.
3. 바딘광장(호치민 묘 앞 광장)
베트남 남북통일에 일생을 바친 영웅 호치민이 잠들어 있는 묘 앞의 광장이며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단다. 기념일이면 많은 베트남인들이 참배하러 오는 곳이란다. 광장은 넓었다. 호치민 묘는 네모난 건물로, 네모기둥이 둘러져 있었고 맨 위에 호치민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문 앞에는 근위병이 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드넓은 광장이 시멘트 바닥이라 황막한 느낌이 들었다.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걸어 나오는 길 후문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보았다. 절도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딘광장을 오른편으로 끼고 돌아 조금 더 간 곳은 일주문이었다.
4. 일주문(한 기둥 사원)
한 개의 기둥위에 세워진 사원이라 하여 일주문이라고 한단다.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 된 사원이고 하노이를 상징하는 곳이란다.
작은 호수 위에 둥그런 기둥 하나로 세워진 정자 모양의 사원이다. 정자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나는 궁금하여 한 바퀴 돌아보았다. 커다란 나무 밑에 조그만 부처를 모셔 놓은 곳도 있고, 조금 더 가자 똑같은 형태의 신을 모셔 놓은 듯한 탑도 있었다. 음산했다.
앞 쪽에는 계단이 있어 올라가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주문 앞에는 기념품을 파는 곳도 있었다.
버스로 가는 길에는 진분홍 꽃나무가 담을 이룬 아름다운 집이 있었다.
점심은 베트남을 대표한다는 음식, 분자 정식을 먹었다. 숯불돼지불고기를 야채 및 상추에 싸서 쌀국수 면과 함께 느억맘이라는 베트남 전통 멸치젓갈로 만든 특유의 소스에 담갔다 먹는 음식이다.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쌀 국수여서 아주 맛있게 많이 먹었다.
나와서 잠깐 들른 곳은 히노끼 판매장이었다. 히노끼는 선물을 받아 써 본 경험이 있어 그 효능을 안다. 치약과 비누를 샀다. 또 한 곳 상황버섯 매장에도 들렀는데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상황버섯 매장은 지난번 남매관광 때도 들렀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하노이 공항으로 갔다. ZA0316비행기에 올랐다. 한 시간 50분을 날아 이제 다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가는 것이다.
또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나다. 분명히 비행기까지 입고 들어 와 벗어놓은 잠바가 없어졌다. 비행기 이륙 직전에 발견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승무원에게 이야기를 하고 승차길을 되짚어 가 보았다. 없었다.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비행기 탑승 도중 장갑을 벗어 잠바 주머니에 넣었기 때문에 없어져도 안에서 생긴 일이다. 돌아와 자리에 앉는데 뒷좌석에 앉은 남자가 잠바를 주는 것이다. 일행 학생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느라 의자에 걸쳐놓은 잠바가 뒤로 넘어간 모양이다. 일단 비싼 잠바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 난리를 치는 동안 왜 빨리 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뒤에서 솔솔 들려오는 이야기는 익숙한 말투다. 내릴 즈음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내 고향 강릉이란다. 한마디 싫은 소리를 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비행기에서 해지는 하늘을 보며 도착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웠다. 짐을 찾는 사이 아까 강릉 일행을 만났다. 친구들끼리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왔단다. 아내 중에는 여고 후배도 있었다. 휴! 잘 다니라고 오히려 격려를 해 주었다. 이 일로 또 일행 중 그 여자들의 불평이 있었단다.
차에서 내려 저녁 식사를 했다 오늘은 ‘경복궁’이라는 하나투어전용 한식당이다. 불고기 정식이다. 맛있었다. 역시 넉넉한 상추쌈이 좋았다.
오늘은 ANGKOR ERA 호텔이다. 역시 좋은 호텔이다. 로비도 넓고 고급스러웠다. 가이드가 선물을 한 보따리씩 주었다. 예쁜 초와 물통 넣는 그물과 면 머풀러와 티셔츠와 방당 과일 한 바구니씩을 주었다. 대단한 선물이었다. 역시 하나투어였다.
넷째 날 4월 7일 일요일
오늘은 좀 일찍 서둘러야 하는 날이다. 앙코르왓을 구경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앙코르왓 은 툭툭이 투어를 해야 한단다. 너무 규모가 방대하여 툭툭이를를 타지 않으면 불가능하단다. 오토바이 뒤에 의자를 매단 차이다.
아침에 앙코르왓으로 가면서 보는 캄보디아의 거리는 베트남과는 사뭇 달랐다. 깨끗하고 집들도 커 보였다. 민주주의 국가의 이미지리라.
우리가 탄 툭툭이 운전사의 등 뒤 번호가 3685였다. 젊은 청년이다. 이의영 선생님과 탔다. 역시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했다. 툭툭이를 타고 조금 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평범한 숲을 달렸다. 얼마를 달리자 독특한 나무들이 보였다. 가지가 둥글게 휜 나무들이 있었다. 비쩍 마른 흰 개와 검은 개도 보였다.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호수였다. 아마 저 호수가 인공으로 만든 호수이리라. 호수를 지나 한참을 또 달리자 무너지다 만 앙코르왓의 유적이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 튼튼하게 생긴, 간간이 무너진 돌담을 따라 나타나는 출입문, 탑 같은 유적은 이미 압도적이었다. 무너지고 있는 꺼먼 탑, 문 위에는 인자한 부처의 얼굴이 있었다.
1. 타프롬 사원
타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사원이란다. ‘브라만 조상’이라는 어원을 품고 있으며 일명 밀림사원이라고도 한단다. 영화 ‘툼레이더’ 촬영지이기도 하다.
툭툭이에서 내려 처음 관람하는 곳이다. 문 입구에는 설명 표지가 있었다. 가는 도중 허리 높이만큼 솟아 오른 개미집도 보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은 나무의 기둥 하단에 까맣게 패인 곳이 있었다. 가이드가 그곳을 문지르더니 불을 붙였다. 불기름으로 쓰는 자단나무(이행나무)란다.
거대한 나무들이 압도적으로 서 있고 조금 들어가자 입구의 벽은 황색 흙벽돌이었다. 불반죽을 한 홍토란다. 그 벽돌이 신기하여 손바닥을 대 보았다. 불기운은 없고 싸늘했다. 몇 개의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문을 통과하고 들어가자 사진으로만 봤던 거대한 나무뿌리가 담을 뒤덮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튀어 나왔다. 그런데 아직도 저렇게 살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직도 든든하게 성의 담을 부여잡고 죽어서도 놓지 않을 듯 당당하게 서 있다. 위에는 새 잎을 무성하게 피우고…….쳐다보면 까마득 하늘에 닿아 있는 나무! 거대한 근육으로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나무! 한 군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앙코르왓은 일부분이라니 얼마나 방대한 유적인가? 앙코르왓뿐만 아니라 이미 이곳부터 불가사의다. 어떤 방에 이르자 온 벽면이 구멍이었다. 그 곳에 모두 보석이 막혀 있었는데 다 없어지고 딱 한 곳만 남아 있단다.
또 어떤 곳에 이르자 가이드가 벽에 붙어 서서 가슴을 치라고 했다. 아, 울림소리! 가슴을 때리는 소리가 떵떵 울렸다. 통곡의 방이란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가 그리워 통곡하며 울었던 방이란다. 어마어마한 나무가 휘감고 있는 곳을 또 지나고 커다란 나무, 사이에 부처가 들어 있었다. 신기했다. 좀 더 가자 지금까지 본 나무는 아무것도 아닌 듯 뱀 모양의 뿌리를 하고, 집 한 채를 삼키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대단했다. 곳곳에서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방을 만날 수 있었다.
돌아보고 나오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곧바로 우리나라 음악, 아리랑을 연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 앙코르톰
나와 다시 툭툭이를 타고 이른 곳은 앙코르톰이다.
앙코르톰도 역시 12세기에 자야바르만 7세가 만든 곳으로 ‘거대한 도시’란 어원을 품고 있는 크메르시대 최고의 도읍지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대단했다. 난간처럼 죽 늘어선, 목 잘린 돌 조각들이 압도적으로 길 양쪽에 배열되어 있었다. 이 신들은 악신으로 ‘아수라’라고 한단다. 통과하는 문은 모두 사면이 거대한 부처로 부조된, 검고 웅장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문이다. 이 곳 남문 이름이 크레앙이란다.
나무 계단, 옆에는 커다란 코끼리 조각이 있고……. 코끼리 조각이 있어 코끼리 테라스라고 한단다. 코끼리 테라스 위로 올라서자 양 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앙코르 톰은 방대하기를 말할 수 없었다. 대칭으로 보이는 양쪽 경관을 사진으로 찍었다. 좀 더 들어가자 조그만 연못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곳은 목욕탕이란다. 그러고 보니 둥글게 패인 돌 모양, 사람이 앉는 엉덩이 모양이 보였다.
다시 따라 들어간 곳은 레퍼왕 테라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이었다.
레퍼왕은 문둥병이 걸린 왕인데, 레퍼왕 테라스는 자야바르만 7세가 만든 것으로 불교에 바탕을 둔 건축이란다. 이 사원에는 레퍼왕이 문둥병을 시작하여 심하게 앓는 과정을 새긴 부조 조각상이 벽면마다 가득 차 있다. 미로처럼 생긴 통로 벽면 60여m에 걸쳐있고, 레퍼왕 테라스 상단에 올라가면 문둥병을 앓았던 레퍼왕 석상을 만날 수 있는데 이것은 모조상이고 진품은 프놈펜 국립 박물관에 있단다.
레퍼왕이 문둥병에 걸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레퍼왕은 상당히 득의양양하고 자신이 넘치는 왕이었는데 그런 왕에게 한 신하가 유독 인사를 하지 않고 거만하게 굴어 분노한 왕이 그를 목을 베어 죽이고 그 신하가 죽으면서 왕을 저주하며 왕에게 침을 내 뱉았는데 그 침을 맞은 얼굴에서부터 문둥병이 시작되었다고도 하며, 다른 이야기로는 그 신하의 목을 짜를 때 튄 피가 몸에 묻어 문둥병이 되었다고도 한단다.
테라스 벽면에는 고통의 과정 즉 문둥병의 시초의 모습, 코가 문드러진 모습, 얼굴이 망가진 모습, 손발이 문드러진 모습, 몸이 삭아가는 모습 등 벽면마다 섬세하게 부조되어, 고불고불 계속 이어지고 있다. 끝 벽에서 위로 올라가자 문둥이 왕 (레퍼왕) 동상이 있었는데 주황색 가사를 두르고 있었다. 가이드가 옷을 들춰 보이는데 동상의 아랫도리에 거시기가 없었다. 불행이었다.
너무 덥고 힘들었다. 오늘 날씨가 39도란다. 헉헉! 가이드가 코코넛을 사 주었다. 두 사람이 한 통씩 꿀처럼 맛있게 먹었다. 나는 홍 시인과 사이좋게 사진을 찍으며 나누어 먹었다.
3. 바푸욘 사원
다시 툭툭이를 타고 무슨 사원인지, 거대한 사원을 돌며 눈으로만 보고 지나 바푸욘(바이욘) 사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 여기에서도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붉은 옷을 입고 앉아 연주하는데 크메르 루즈와의 전쟁 때 지뢰에 손이나 발을 다친 사람들이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로부터 아리랑을 배워 연주를 한단다. 찡했다. 거대한 문을 통과하여 들어서자 벽 부조 조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푸욘 사원은 앙코르톰이 지어지기 이전 11세기에 건립 된 힌두교 사원이었다. ‘바푸욘’이란 ‘숨긴 아이’란 뜻인데 크메르 왕과 샴 왕에 관한 전설 때문에 붙은 이름이란다. 두 왕은 형제였는데 샴 왕이 자신의 왕자를 크메르 왕에 맡기자 모략으로 오해하여 샴의 왕자를 죽이고 말았다. 분노한 샴 왕이 크메르 왕국과 전쟁을 벌이려 하자 이 소식을 들은 크메르 왕의 왕비가 샴 왕이 자신의 아들을 해칠까 두려워 아들을 숨겼다는 데서 비롯되었단다.
크메르 군과 샴 (참)군의 전투 장면, 크메르 사람들의 생활 모습, 가족이 함께 전쟁터로 가는 장면,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에게 자라를 주는 장면, 중국인들의 모습, 춤추는 모습, 요리하는 모습, 아기 받는 모습, 이 잡는 모습, 야자열매 따 먹는 원숭이, 나무 잎 뜯어 먹는 코끼리, 등 벽 전체가 섬세한 부도로 되어 있었다. 찬찬이 보면 당시의 생활상을 다 알 수 있는 부조여서 대충 보지 말고 꼭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앙코르를 이해하려면 이 그림을 유심히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조금 더 가자 불뚝 솟은 돌이 있었는데 남근이라고 했다. 시바신의 성기 ‘링가’이고 그 아래는 ‘요니’라고 했다. 나도 만져 보았다.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자 산처럼 나타나는 문과 그 위로 조각 되어 있는 탑의 사면에 조각된, 미소 짓는 부처의 인자한 얼굴! 거대한 부처다. 거대한 부처 숲이다. 부처가 즐비한 바위 계곡에 들어 온 느낌이었다. 쳐다볼수록 어떻게 이런 형태의 유적이 탄생할 수 있을까? 입만 벌어졌다. 탑 하나도 사진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규모의 거대함!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그 깊은 계곡을 꿈에 홀린 듯 구경하고 빠져 나왔다.
4. 즉위식 장소
가이드가 언덕으로 안내했다. 왕 즉위식 장소가 산꼭대기에 있단다. 땀이 비 오듯 했다. 한 20분 언덕을 올라야 한다고 했다. 걷기 힘든 사람들은 아래에 있고 몇 사람만 올랐다. 나는 이의영 시인과 박강남 시인과 함께 올랐다. 덥지만 않으면 너무 좋은 산책길인데……. 야생화도 있었다. 도착하고도 계단을 70개 정도 올랐다. 숨이 막혔다. 그러나 꼭대기에 오르자 가슴이 탁 트이는 곳이었다. 가운데 거대한 문, 제단이 있고 사면팔방으로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즉위를 하면 세상을 호령하고 남을 듯했다. 거대했다. 한 바퀴를 돌아 감상하고 내려올 때는 중간 중간 지름길을 탔다. 내려오니 다 가고 몇 남지 않았다. 이의영 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셨다. 이것으로 오전 일정은 끝났다.
점심은 고베 일식 철판 요리였다. 넓은 철판에 두 명의 여자 요리사가 자료를 직접 가지고 와 요리를 해서 나눠주는 것이었다. 빠른 동작으로 신속하고 청결하게 해 냈다. 맛있게 먹었다. 먼저 철판에 고기를 구워 주고, 계란 지단을 붙이고 야채를 볶아 섞고 거기에 밥을 볶아 주었다. 아주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 팁도 주었다.
이제 진짜 봐야 할 곳, 앙코르왓으로 간다.
5.앙코르왓
씨엠립에 있는 앙코르왓은 수리아바르만 2세가 만든 사원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서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세계 최대의 석조사원이다.
‘씨암’은 태국을 이르는 말로 태국에 의해 점령되었던 곳을 의미한단다. ‘앙코르’는 왕도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단다. 당시의 크메르 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과 합일 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신과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앙코르왓도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란다. 도읍을 둘러싼 성벽은 한 변이 4km에 달한다니 그 규모를 집작할 수가 없을 정도다.
앙코르왓은 출입증이 있어야 한다. 즉석에서 사진을 찍고 그 증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지장이 있단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어 놓았다.
가는 도중 커다란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잠깐 쉬었다. 신부 신랑이 촬영하러 온 모습이 보였다. 함께 출발하여 커다란 호수를 가로 지르는 통로(무지개다리)를 가다가 가이드는 신혼 팀에 끼어 사진을 찍는 여유도 보여 주었다.
앙코르왓은 물위에 떠 있는 사원이란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헤저드가 있고 그 위에 다리가 있는데, 망각의 강, 다시 말하면 아이리스란다.
양쪽에는 커다란 호수에 물이 가득했다. 가까이 다다르자 입구 양쪽에 발가락 일곱 개인 커다란 코브라 모양의 돌 조각이 있었다.
문 입구부터 설명이 시작 되었다. 여인상에 대한 설명이었다. 바로 압사라다. 힌두교 신화와 불교 신화에 나오는 구름과 물의 여자 요정이란다. 영어로는 천상의 님프, 선녀 등으로 번역한단다. 섬세한 조각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옆쪽의 듬직한 남성 조각에 대한 설명도 했다. 사람들이 건강을 기원하며 발등을 만져 반질반질했다.
그곳을 지나 들어서자 저 멀리 탑이 뾰족뾰족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지나온 호수보다 더 먼 거리를 걸었다. 도중에 가이드가 통로 아래로 걷기 시작했다. 나무를 성명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나무는 오를 수 있는 장치를 한, 긴 장대가 매달려 있고, 어떤 나무는 껍질이 칼 모양인데 단단하여 진짜로 칼로 썼단다. 만져 보니 칼이다. 신기했다. 가운데 통로 옆으로도 유적은 여럿 있었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르니 아까처럼 코브라 모양의 돌조각이 있고 그 문을 통과하자 탑이 더 가까이 나타났다. 가운데 호수 건너 멀리 보이는 앙코르왓은 대단했다. 호수 가까이 가자 가이드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탑이 열 개가 다 보이는 곳이란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엽서다.
푸른 천막으로 가리고 수리중인 곳을 지나자 회랑 벽이 보였다. 긴 벽에는 섬세한 부조가 꽉 차 있었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면, 말의 모습, 칼과 창을 쓰는 모습 등 끝없이 이어졌다. 그런 회랑 벽을 몇을 통과하자 와, 나타나는 거대한 건물! 입이 덕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역사만큼의 세월 동안 때를 입어 시꺼먼 몸으로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앙코르왓!
회랑 안으로 들어가자 나타나는 거대한 3층 건물! 중앙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이곳도 힘든 사람은 회랑 앞에 그냥 있고 볼 사람만 올랐다. 3층에서 내려다보는 회랑의 규모는 대단했다. 한 부분만 보아도 이 정도니 전부는 얼마나 방대할까? 이런 사원이 100여개 발견 되었다고 하니……. 계단을 올라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면 코너에 거대한 탑이 넷 있고 가운데는 목욕탕이 있고, 네 신전의 가운데는 신이 모셔져 있고, 모든 회랑과 방의 문은 돌 창살이 있고…….
그 거대한 중앙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황홀이다.
돌아 나와 마지막으로 가이드가 설명한 곳은 네모기둥 앞에서였다. 많은 글씨가 새겨진 기둥이다. 모든 앙코르왓의 기록은 이 기둥에 다 새겨져 있다고 했다. 가이드가 핸드폰을 바닥의 네모 모형 대리석에 올려놓았다. 천정의 각이 얼마나 정교한지 아래 핸드폰에 그대로 반사 되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그렇게 앙코르앗 관람을 마치고 저녁은 꼬레 가든에서 한식을 먹었다.
식사 후에 가이드가 외국인 거리로 안내했다. 맥주를 한잔씩 쏘겠다고 했다. 우리가 간 호프집은 시장의 멋진 야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2층, 바깥으로 자리 잡았다. 호화로운 거리였다. 두어 잔씩 마시고 황홀한 밤을 보냈다. 즐거웠다. 더 먹은 것은 박강남 회장이 쐈다.
호텔에 들어와 두 남자 방에 다시 모여 선물 받은 과일을 깎아 먹으며 환담을 나누었다. 돌아가며 노래도 불렀다. 마음 털어 놓고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도 다 같이 부르며 캄보디아의 밤을 정겹고 뜨겁게 보냈다.
다섯째 날 4월 8일 월요일
아침 식사 후 홍재인 샘과 바깥을 나가 보았다. 이 호텔에 수영장이 있었다. 나도 수영복을 준비했지만 수영할 시간은 없었다. 호텔 앞은 독특하게 꾸며진 연못이 아주 예쁘게 있었고, 둥근 모양의 다리 아래는 부레옥잠도 있고 물고기도 있고, 난간에도 예쁜 꽃도 심어 놓았다. 앞에는 성 같은 건물도 있었다. 옆으로 가자 낮게 열린 코코넛이 있어 잡고 사진도 찍고, 예쁜 야생화 꽃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난도 많았다. 한국으로 가야 하는 날이니 큰 가방에 넣어야 할 것은 넣고, 짐을 아주 꾸려 나왔다.
1. 왓트마이
이제 왓트마이(작은 킬링필드)를 구경 간다. 입구는 독특하게 꾸며진 묘지들이 있었다. 작은 것이 아니라 큰 규모의 묘였다. 들어서자 탑처럼 생긴 곳에 꽉 차 있는 유골들! 처참했다. 게시판에는 당시의 처참한 장면, 생생한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드릴로 머리를 뚫는 광경, 아이를 집어 던져 총을 쏘는 장면, 그 외도 비참한 것이 많았다. 듣기만 하던 킬링필드!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실감했다. 옆에는 커다란 망고 나무가 맛있게 생긴 망고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나오면서 유난히 노랗게 눈을 유혹했던 가로수, 노란 꽃을 가까이 찍을 수 있었다.
점심은 압살라 민속 쇼를 보며 뷔페를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보는 쇼는 그런대로 소박한 전통 춤으로 아주 인상 깊었다. 맛있게 먹었다. 커다란 식당으로 사람들도 많았다.
2. 트레샵 호수(빈민촌)
동양 최대의 호수로 캄보디아인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메콩강이 황토 흙을 실어나르는 까닭에 탁한 황토색을 띄지만 해질녘 황금색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지역, 특성상 가옥도 이에 맞게 독특한 형태로 지어져 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는 광경은 비참했다. 잘 사는 동네를 지나자 나타나는 비민촌은 을씨년스러웠다. 쓰레기 천지이고, 아래층에는 그물 속에 빈둥빈둥 잠자거나 노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은 가느다란 나무기둥으로 세워지고 2층이긴 한데 금방 쓰러질 것만 같고, 2층 방바닥은 구멍이 숭숭 보이고, 세간은 없어 보이고……. 그랬다. 가이드는 천성적으로 게을러 못사는 사람들이니 아이들이 돈 달라고 하면 주지 말라고 했다. 차라리 먹는 것을 주란다.
버스를 타고 내리 강기슭으로 갔다. 메콩강을 유람하는 것이다. 그런데 입구부터 불쌍한 아이들이 보였다. 배에서 관광객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린 아이들이다. 나는 남은 초콜릿을 한 아이에게 몽땅 다 주었다. 낚아채듯 가져가더니 나누어 먹는 게 아니라 혼자 움켜쥐고 있었다. 잘 못했다. 나누어 줄 걸.
배가 붉은 물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가자 우리나라 다일교회에서 나무로 배를 만들어 주는 곳이 있었다. 밥퍼 목사, 최일도 목사님의 선행을 여기서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눈뜨고 차마 못 볼 것은 어린 아이가 목에 뱀을 두르고 배에 다가와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면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모습, 너무 불쌍해 보였다. 한번 찍으면 천 원을 달란다. 그것도 여기저기 경쟁이었다. 조금 가다 보니 고기를 잡는 사람도 보였다. 이런 물에 고기가 있을까? 얼마를 달려가자 멀리 수상 가옥들이 보였다. 베트남 난민들이 모여 이룬 수상촌이란다. 물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주유소도 있고, 목공소도 있었다. 없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곳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휘돌아 나왔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아까 보았던 빈민촌을 착잡한 마음으로 둘러보며 나왔다. 왜 사람들이 캄보디아로 선교를 많이 오는가? 생각하게 했다.
3. 박쥐공원
오늘은 공연을 보는 날인데 시간이 넉넉하여 가이드는 우리를 박쥐공원으로 안내했다. 커다란 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박쥐가 다닥다닥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몰려들어 지금은 저렇게 많아졌단다. 세 나무 정도는 까맣다. 똥 냄새도 고약했다. 홍재인 이명진 박강남 시인과 나는 공원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돌다가 선행을 하는 교사를 만나 학교 건립 기금도 조금 했다. 공원 가운데는 분수도 있고 해태 비슷한 조각도 있고 벤치도 있고 꽃도 아름답게 심어져 있었다. 특이한 하얀색 나무꽃도 있었다. 우리는 앉아 이야기도 하고 시진도 찍었다.
또 시간이 남아 멋진 카페로 들어갔다. 근사한 곳이었다. 이번 가이드는 세련 곳으로 안내를 잘하는 편이었다.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내가 쏘았다.
나와 잠깐 들른 곳은 라텍스 매장이었다. 역시 사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4. 민속 쇼 공연
이제 마지막으로 캄보디아 민속 쇼를 보면 이번 여행은 끝이다. 안 가겠다는 분도 있었으나 나는 가기로 했다. 공연은 의외로 화려했다. 특히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공연 되어 기분이 좋았다. 싸이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가수임을 실감했다. 쇼는 각 나라의 특징이 들어있는 음악을 공연 하는 형식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아리랑으로 부채춤이 공연 되었다. 멋있었다. 캄보디아는 음식점에서 보았던, 등 뒤에 커다란 날개를 달고 추는 춤이었다. 공연 도중 개그가 있었는데, 점박이 분장의 바보스런 남자가 혀를 낼름거리며 얼마나 웃기는지 모두가 배꼽잡고 웃었다. 기대 이상이어서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끝으로 버스에 올라 씨엠립 공항으로 달렸다. 일직 짐을 부치고 시간이 많이 남아여유 있었다. 우리는 11시 30분 비행기를 탄다. 깊은 밤이므로 넉넉한 시간에 면세점 구경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5시간 20분을 날아 한국행이다.
여섯째 날 4월 9일 화요일
아침 여섯 시 5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공항에서 뭘 먹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배가 불러 그냥 헤어지기로 했다. 글핀샘의 첫 번째 해외여행, 감동적이고 성공적이었다. 더 돈독한 사이로 끈끈하게 묶이는 좋은 여행이었다. 좀 더웠지만 좋은 날씨에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마친 여행, 다음을 대비하여 또 통장을 만들기로 했다. 이 아름다운 추억, 우리는 영원히 간직하며 결속의 무기로 삼을 것이다. 글핀샘이여 영원하라!
201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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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고 또 봐도 넘넘 좋아요^^^여행을 함으로서 우리는 우리는 한 핏줄 모두가 B형 모두가 한 핏줄 누가 출혈을 해도 문제없어요 모두다 헌혈 할 수가 있어요 ㅎㅎㅎ모두모두 B형 다 나눌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한 우리 글핀샘 형제입니다 ㅎㅎ
선생님을 기행문을 읽으며 함께 가지 못함을 정말 죄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꼭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 했습니다. 나의 신께서 저의 소망을 들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올려주신 사진을 먼저 보고 나서 기행문을 읽으니까 저도 마치 여행을 하고 있는듯 화화적인 요소가 팍팍 느껴집니다. 수상인형극을 보면서 용머리를 잡으려고 손을 뻗어보는 나, 땀을 흘리며 올라간 왕의 즉위식 장소에서 세상을 향해 호령하는 나의 모습 등과 하롱베이 유람선에서 바위섬들으로며 기암괴석에 놀라 모두 훔쳐다 한강변에 놓고 관광지로 만드록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떠올려 봅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하고요. 환상에 빠져서
행복감에 젖어 있는 모습...ㅎㅎㅎㅎ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재미있습니다. 기행문을 읽으니 다시 한 번 여행하는 기분이엇구요.
그날 저녁 카페에서 맥주 마시던 추억이 제일로 기억에 남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