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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소망을 심는 교회
(시 71:5-14) “[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7]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8]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9]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10] 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11]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 [12]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3]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실로 다사다난 했던 2020년도가 번개같이 지났습니다. 코로나 19 전염병이 해를 시작하면서 해를 마치기까지 멈추지 않고 기승을 부리더니 급기야는 그동안 세상에서 겪지 못한 것을 경험 하게 한 지난해였습니다.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인한 신조어들이 대거 등장하였습니다.
크로나 불루(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을 뜻하는 말) 또한 '코로난가'(조금만 아파도 코로나에 걸린 것인지 의심을 하는 단어) 집콕 족, '집관'(집에서 영화관람), '산스장'(산+헬스장), '공스장'(공원+헬스장), 상상코로나(코로나바이러스감염염려증) 등이 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한 행렬, 사회적 거리두기, 온라인 수업, 비대면 예배, 5인 이상 모임금지로 인한 경제적 손실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 한해였습니다. 이로 인해 삶에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소상공인들, 직장을 잃어 일할 자리가 없는 사람들, 생활고의 어려움에 낙심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소망입니다.
열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지면 불이 들어오지 않듯이 성도의 삶 속에 소망이 없으면 암담합니다. 답답합니다. 만사가 괴롭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빈부귀천을 물론하고 소망 중에서 그 날 그 날 지나가되 소망의 줄이 끊어지면 낙오자가 되고 패배자가 됩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습니다. 다만 그에게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의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를 수 있습니다.
다소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건강, 물질, 자녀, 사람 관계 등 다소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을 품길 원하십니다.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있든지 소망을 품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죽음에 이를 때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절망하는 세상이 아니라 소망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올 한 해는 세상을 향하여 삶에 소망을 심는 교회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에 소망을 심는 교회의 성도가 되려면,
1. 주는 나의 소망이십니다.(5-6)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성경에서 누누이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을 주 여호와로 부르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주되심,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그분을 섬기는 종임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신명인 ‘아도나이’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 ‘나의 주’로 직역되는 ‘아도나이’는 하나님은 시인의 주인이시며 시인은 자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 속에 있는 종 혹은 소유물임을 나타낸다. 또 뒤이어 나오는 ‘여호와’ 로 번역된 ‘예흐위’ 는 ‘예흐와’의 변형으로 ‘예흐 와’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며 시인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옥스포드 원어사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요한복음1장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소유하신 절대주권자이십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참된 주인은 하나님이시란 것을 완전히 깨닫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소유물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고 주관하시는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하나님이 주인이고, 내 인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람의 불행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할 때부터였습니다. 주인이 아니면서도 주인이 되어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가려고 할 때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지배하고 다스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세밀히 돌보시고 모든 필요를 사랑으로 공급하시는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얻기 위해 부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주인 삼고 그 주인의 사랑과 보호 속에 살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신앙이 매우 좋고 선정을 베풀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종종 궁궐을 빠져나가서 서민들과 사귀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한번은 믿음이 좋은 한 사람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여왕은 그 사람과 함께 신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중에 그의 믿음에 감동을 받은 여왕은 “당신을 찾은 손님 중에 가장 고귀한 분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왕은 그 사람이 “예수님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을 기대했는데 전혀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나의 가장 귀한 손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여왕 폐하이십니다. 제 생애 최고의 손님이십니다.” 그러자 실망한 빅토리아 여왕은 “당신을 찾아 주신 최고의 손님은 예수님이 아닐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왕 폐하, 예수님께서는 결코 손님이 아니십니다. 제 주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집에 처음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저는 그 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정말로 가슴이 뭉클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의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주인 노릇한 것을 회개시키고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께 나의 보좌를 드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나의 보좌를 드리고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의 통치와 인도를 받겠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는 것을 보여주시며,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고, 잃어버린 천국을 되찾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를 구원하는 놀라운 기적을 낳게 되며,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하신 모든 복을 받게 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이 처한 참담한 상황 속에서 이런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주변을 보면 온통 절망뿐입니다. 목숨조차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가 지하고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으며 고백합니다. 5절.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my hope)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오직 하나님만이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믿었지만 정말 그렇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는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인생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신이 인생 주인 되어 살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혼란한 세상이 되는 가 모릅니다. 성도 된 우리는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2. 주를 찬송함과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7-9)
“[7]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8]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9]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성도가 하나님이 누구 신 줄 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라 하였습니다.
먼저 주를 찬송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송을 적극적으로 권면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극히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괴로워도 우리가 할 일은 여전히 찬송하는 일입니다. 여전히 찬송할 수 있음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광 돌리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찬송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찬송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찬송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목사님의 명령도 아니고, 리더자의 말도 아니며, 예배인도자의 권면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찬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목적,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찬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그분을 찬송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명령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으며 달란트나 은사나 은혜가 아닙니다.
찬송은 어떤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나이도, 재능도, 부와 명예와 어떠한 치장도 찬양을 제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은 우리에게 의무이지만 또한 우리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를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하여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를 아들로 인정하시고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자격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자격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 치심을 받은 자"라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이 자격증은 선물로 받았습니다.
성도에게는 불신자들이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게도 하시고, 감동도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찬송으로 참 행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을 보게 하심으로 자연히 찬송은 따라옵니다.
그래서 천국은 죄도 없고, 어두움도 없고, 슬픔도 없고, 걱정 두려움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당연히 피조물에게서는 찬송만이 있을 뿐입니다. 호흡이 있는 동안 마음껏 주를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주께 영광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환난이나 어려움을 많이 당하지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만 복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받을 영광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들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못된 짓을 하게 만들고,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성도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없습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 주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 참으로 많이 전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년 말 시상식을 보면 시상을 받은 연예인, 연기자, 가수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라고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대중 앞에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신앙고백입니다.
신앙은 실천입니다. 그리고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고백은 보이는 신앙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리는 일은 하루 종일 계속 해야 할입니다. 주를 찬송함과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3.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10-14)
“[10] 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11]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 [12]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3]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세상 일이 어렵고 힘듭니다. 쉽게 풀리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시대이며 의인의 고난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원수들은 호시탐탐 우리를 무너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인들이 낙담합니다. 소망을 잃습니다.
본문에서 주인공은 악한 사람들, 불의한 사람들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는 자기 힘으로 그 함정에서 빠져 나올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그를 대적하는 자들은 '이제 저 사람은 끝장났다. 하나님도 그를 도와주지 않기로 작정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는 우리 손에서 못 빠져 나올 거야.'라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사람의 본성이 작용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마구 불러 대면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 장면이 바로 시편71편의 배경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이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르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을 중간 중간에 하고 있습니다. 8절에.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중함에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 하리이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주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는 주님을 찬송하는 찬송이 하루 종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내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 차고 넘칩니다. '어쩌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입니다.
14절에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비록 내 형편은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나는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 때문에 나는 주님을 더욱더 찬송할 것입니다. 형편이 어떻게 되든 간에 상관없이 나는 주님을 찬송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성도 된 모든 이들에게 도전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곳곳에서 어려운 중에 오히려 더욱 더욱 찬송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42편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낙망과 불안이 닥칠 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찬송하였습니다.
찬송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시 22편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찬송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 때 낙심과 좌절이 찾아올 때 영적으로 환경적으로 침체 될 때도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시편 42편에 고라 자손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의 찬송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낙심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그리고 칼이 살을 뚫고 뼈를 찌르는 아픔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파도가 그의 인생을 두드리며 고통과 환난의 폭포가 그의 머리를 내리 칠 때에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직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찬성하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찬양하는 인생들의 문을 여시고 형통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찬송하기를 원합니다. 고난과 아픔 중에 있습니까? 인생에 뜻하지 않은 질병을 만나 고통 중에 있습니까? 마음에 낙심이 있고 낙망하는 중에 있습니까? 살아가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러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지금은 오직 주님을 찬송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본분이요, 목적입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가 주님을 찬양해야 됩니다.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1. 주는 나의 소망이십니다.(5-6)
2. 주를 찬송함과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7-9)
3.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10-14)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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