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라기의 노래 | 신명옥
나뭇가지에 은빛날개와 긴 꼬리깃털을 가진 새가 보였다 나는 밤새
별빛을 마신 탑의 계단을 올라갔다
새는 물빛 돌기가 촘촘한 꽃잎에 부리를 비비고 노래를 부른다 따라
부르자 가슴을 들어올리며 부리를 더 크게 연다 목청껏 노래를 부르다
어두워지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날아갔다
해마다 다른 새가 날아왔지만 언제나 같은 새로 보였다 새들이 별로
돌아가면 나도 목울대를 닫고 계단을 내려와 성도를 따라 네 개의 바퀴
를 밀며 가는 별들을 본다
나도 먼 별로 돌아갈 새, 이듬해 날아온 새들에게 돌아간 새들의 얘
기를 들려준다면 거문고별의 백색광들이 어두운 하늘을 밝힐 것이다
스핑크스의 문 ㅣ 신명옥
다른 세계의 입구를 찾기 위해선
뱀머리 괴물에게 사자의 이빨과
검독수리의 깃털과 코뿔소의 뿔을 주어야 한대
수정알 속에 숨겨진 별의 지도를 찾아나섰어
달빛이 희미한 거리를 헤매다
등대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불빛이 비치는 곳에 다섯 개의 교차점을 가진
마법지도가 그려져 있었지
빛의 마을에서 푸른수염노인이 걸고 있는
사자의 이빨을 찾아냈을 때
나는 황금팔찌와 바꾸었어
사막의 남쪽에서 바위절벽에 걸린
검독수리의 암갈색 깃털을 쥐었을 때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는 걸 느꼈지
북쪽 도시에서 거대한 교각에 매달린
코뿔소의 뿔을 보았을 때는
다른 세계의 문이 눈앞에 어른거렸어
사다리를 올라가 뿔을 구한 후
나는 사막의 서쪽을 향해 쉬지 않고 걸었지
돌문 앞에 사자의 이빨과
독수리의 깃털과 코뿔소의 뿔을 얹어놓자
괴물은 타원의 문을 열고 한 권의 책을 내 주었어
텅 빈 페이지뿐이었지만
길이 캄캄할 때마다 펼쳐보곤 해
백지위로 걸어가는 이상한 문자들이
사막의 낙타들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미로같은 길들이 잠깐씩
열리고 닫힐 때마다 다른 세계의 입구가 보여
신명옥
2006년《현대시》로 등단.
sappou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