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의회의 승인 없이 세금을 거두고 청교도를 탄압하였습니다.
1628년 의회는 왕에게 권리청원서를 제출하여 의회의 동의없이 과세하지
말 것이며 함부로 사람을 구속하지 말 것을 청하였습니다.
왕은 급한 재정을 지원받기 위해 권리청원서에 일단 서명을 하였지만
그 다음해 부터 11년간 의회를 소집하지 않고 단독으로 국정운영을
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청교도를 박해하는 법률을 선포했지요.
따라서 수백 명의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떠났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도 영국국교회를 강요 했어요.
스코틀랜드는 청교도신앙이 대세였는데 명령을 거부하자 전쟁을 선포했지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니까 그는 11년만에 다시 의회를 소집했어요.
마침내 의회에 모인 의원들은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려고 했어요.
화가 난 찰스 1세는 병사들을 보내어 그에게 적대적인 5명의 청교도 의원들을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이 일은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왕에게 등을 돌리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왕은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있는 북쪽으로 도망치고 런던은 청교도 의원들이
장악했지요.
이제 영국은 내전 상태가 되었습니다.
왕당파와 의회파로 나뉘어 6년 동안이나 전쟁을 했습니다.
전쟁 수행을 위해 의회파가 군대를 만들었는데 군대를 지휘한 사람은 올리버
크롬웰입니다.
그는 열렬한 청교도 신자이며 그의 군대는 최신식 무기를 구비하여 철기군이라
불리었습니다.
첫댓글 찰스 1세는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명령한 제임스 1세의 둘째 아들 입니다.
아버지 제임스 1세는 왕권은 신이 부여한 것이라는 왕권 신수설을 주장하며 의회와
갈등을 빚었는데 찰스 1세는 아버지 보다 더 완강하게 왕권신수설을 신봉했습니다.
제임스 1세가 청교도들을 박해한 것은 유명한데 그의 박해를 통해서 미국이 탄생됩니
다............
이 전쟁에는 스코틀랜드 사람들까지 의회파에 합세하여 왕당파가 훨씬 불리해졌습니다.
더이상 갈곳이 없었던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로 도망을 갔는데 스코틀랜드가 사로잡아서
40만 파운드의 몸값을 받고 의회파에 넘겼습니다.
크롬웰은 철기군을 이끌고 의회로 쳐들어 가서 왕에게 동정적인 의원들을 모두
끌어내고 찰스 1세를 국가 반란죄로 기소했습니다.
법정은 찰스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며 사흘 후 단두대로 끌고가 처형했습니다.
이 사건을 청교도 혁명이라 합니다.
이제 영국은 왕이 없는 공화정이 되었고 크롬웰에 의한 독재가 시작됩니다
기독사를 보면 항상 종교집단과 정치집단의 대립을 통해서 새로운 물길이 나듯이 새로운 노선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청교도가 경건주의 신앙노선을 견지 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런 청교도를 다른 개혁진영(칼빈주의)에서는 율법주의로 보는 측면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또 그런 측면이 실제 있을 수도 있겠구요.
무슨 주의라고 말하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도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 위해서 지나치게 확대하거나 미화하거나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청교도 신앙과 형제회 노선을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었는데, 위 본문은 매우 비판적인 관점에서 서술했기에 과연 그러한가? 해서 가져온 글이었습니다.
저 마다의 주장에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잘 분별해서 교회의 말씀기준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청교도 신앙에 대해서는 공부해 가는 중입니다.
성경도 않 읽는 곳에서 종교생활하다
성경은 물론이고
원어성경사전을 들춰보기까지 하며
기독교 역사까지 듣게 되니 귀가 호강입니다
그것도 오해없이 해석까지 해 주시니 신앙의 균형을 잡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로 갈수 있도록 도우시는 형제들이 참 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