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 월대(月臺)의 석견(石犬) [국보순례 - 4]
명작(名作)이라고 불리는 예술작품의 공통점 중 하나는 디테일(detail)이 치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위대한 건축가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미즈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는 "신(神)은 디테일 속에 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경복궁 건축은 과연 명작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섬세하고 다양한 디테일들이 곳곳에 있다.
그중 하나가 근정전 월대(月臺·궁전이나 누각 앞에 세워놓은 섬돌)의 돌짐승 조각이다.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 근정전 월대에는 사방으로 돌계단이 나 있고 그 난간 기둥머리에는 모두 세 종류의 석상(石像)이 배치되어 있다.
하나는 사방을 지키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의 사신상(四神像)이고, 또 하나는 방위(方位)와 시각을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상이며, 나머지 하나는 서수(瑞獸)상이다. 이 돌조각들로 인하여 기하학적 선과 면으로 구성된 차가운 월대에 자못 생기가 감돌고, 사신상의 공간 관념과 십이지상의 시간 관념이 이 공간의 치세적(治世的) 의미를 강조해 준다. 그런데 월대 남쪽 아래위 모서리의 돌출된 멍엣돌(모서리의 돌판을 받치는 쐐기돌) 네 곳에는 또 다른 한 쌍의 짐승이 아주 재미있게 조각되어 있다.
암수 한 쌍이 분명한데 몸은 밀착해 있으면서 딴청을 부리듯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어미에게 바짝 매달려 있는 새끼까지 표현되어 있어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한다. 이 석상에 대하여는 아직 정확히 고증된 바 없지만 유득공(柳得恭)은 〈춘성유기(春城遊記)〉에서 '석견(石犬)'이라고 하며 전해지는 전설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 유득공 (柳得恭 조선 후기의 실학자)1749(영조 25)~?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법으로 중국에서 문물을 수입하여 산업진흥에 힘쓸 것을 주장한 북학파 실학자이다. 또한 발해사를 한국사의 체계 안에서 파악·연구했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혜보(惠甫)·혜풍(惠風), 호는 영재(?齋). 아버지는 진사(進士) 관(璉)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가 되었으며 포천·제천·양근 등의 군수를 지냈다. 외직에 있으면서도 검서의 직함을 가져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서이수(徐理修) 등과 함께 4검서라고 불렸다. 첨지중추부사에 승진한 뒤 만년에 풍천부사를 지낸 바 있으나, 죽은 해는 명확하지 않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규장각검서로 있었기 때문에 궁중에 비치된 국내외의 자료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저서를 남겼다. 그는 한국사의 독자적인 발전과 체계화를 위해 역사연구 대상을 확대했다. 〈발해고 渤海考〉에서 한반도 중심의 역사서술 입장을 벗어나서 고구려의 옛 땅인 요동(遼東)과 만주 일대를 민족사의 무대로 파악했으며 고구려의 역사 전통을 강조했다. 또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이를 한국사의 체계 안에 포함시켜야 함을 주장했고, 신라와 발해가 병존했던 시기를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로 파악했다. 〈발해고〉는 군고(君考)·신고(臣考) 등 9고(考)로 되어 있으나 권(卷)도 나누지 않은 단권(單卷)의 간략한 내용으로 되어 있고, 내용도 세밀히 검토하면 잘못 기술된 부분이 많아 학문적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발해사를 최초로 체계화시키고 이를 한국사의 체계 안에서 파악하려는 이론의 제시와 그 의도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하여 주체의식의 확립에 노력하던 실학파의 학풍이 엿보인다. 또한 〈이십일도회고시 二十一都懷古詩〉는 단군조선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이 세운 21개 도읍지의 전도(奠都) 및 번영을 읊은 43편의 회고시로서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민족의 주체의식을 되새겨보려는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경도잡지 京都雜志〉는 조선시대 서울의 생활과 풍속을 전하고 있는 민속학 연구의 필독서이다. 그밖의 저서로 〈영재집〉·〈고운당필기 古芸堂筆記〉·〈앙엽기 ?葉記〉·〈사군지 四郡志〉 등이 있다.
▲ 유득공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근정전 월대 모서리에는 암수 석견이 있는데 암컷은 새끼 한 마리를 안고 있다. 무학대사는 이 석견은 남쪽 왜구를 향해 짖고 있는 것이고, 개가 늙으면 대를 이어가라고 새끼를 표현해 넣은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 근정전 기단 동남쪽 모서리의 석견. 앞가슴에 새끼가 매달려 있다
유득공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럼에도 임진왜란의 화(禍)를 면치 못했으니 그렇다면 이 석견의 죄란 말이냐"며, "다만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 모름지기 믿을 것은 못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석견에 주목하는 것은 근정전이라는 엄숙한 공간에 이처럼 해학적인 조각상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경복궁 건축의 디테일은 치밀하고 여유롭다는 점 때문이다.[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사] |
출처: 석굴암 원문보기 글쓴이: 어둠속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