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공성사표를 받고(이충렬, 실베스테르, 전기작가)
대림 시기가 시작될 즈음 구역장님을 통해 판공성사 표를 받았습니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줄줄이 고해하고 참회할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성사표 아래에 “이번 판공성사가 은총의 성사가 되기를 빕니다”라는 문구를 보자 용기가 생기면서, 얼마 전에 본 두 편의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지난 11월 30일에 개봉된 ‘탄생’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에는 신부님이 안 계시거나 만나기 힘들었던 박해 시대 신자들이 고해성사의 기회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경기도 용인의 은이공소 교우촌에 오시자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줄을 길게 섰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을 모시고 온 복사가 신부님께서 오래 머무실 수 없으니 3분 안에 고해를 마쳐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당시 신자들은 지은 죄를 모두 고해해야 영혼이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신부님께서 안 계시던 시절에 지은 큰 죄뿐 아니라 작은 죄까지도 모두 고해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탄생’에 등장하는 모방 신부님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효과적으로 보게 하려고 성사의 요령과 문답표를 한문과 한글로 번역하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떠올린 영화는 12월 말에 개봉할 예정인 ‘이태석’입니다. 얼마 전 시사회를 통해 미리 볼 기회를 얻었는데, 이 영화에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6년 남수단 톤즈 인근 마을의 공소 뒤편 벌판에서 의자 두 개를 놓고 고해성사를 봤던 소년과 소녀가 당시의 고해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13살이었던 소년은 그 전날 자신이 두드리던 북을 말없이 가져간 친구와 싸운 일이 마음에 걸려 그 일을 고해했는데 “이태석 신부님께서 기도하는 방법과 하느님을 마음속에 기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라고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이태석 신부님께 고해했던 소녀는 이제 아이 엄마가 되었지만, 당시 미사에 입고 갔던 옷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며 보여주는데 정말 사진의 옷과 같은 옷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고해하던 사진을 보니까 가슴이 계속 뜁니다. 왜냐하면, 신부님을 만나면서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거든요. 신부님께서는 아버지처럼 좋은 얘기도 해주셔서, 신부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면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신부님을 통해 위로받던 어린 영혼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오히려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는 놀라운 변화가 바로 ‘은총의 성사’의 힘이 아닐까요? 그날 멀리서 고해성사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셨던 대전교구 박진홍 신부님께서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이고, 사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개해주는 역할을 한다”라며 당시를 회상하셨습니다. 저는 이 두 영화 덕분에 어느 때보다 판공성사 은총을 가득히 받았고, 이 은총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힘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