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爲의 특징
돌고 돌아가는 세상의 바퀴
끊임없이 과녁을 바꾸며 돌아가네.
화난 사람은 그것을 비참함이라 부르고
바보들은 그것을 게임이라 부르네. - 니체
1. 道德經 37章 - 無爲
道常無爲 而無不爲 도상무위 이무불위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무명지박 부역장무욕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의역: 道는 만물의 내면에 깃든 오묘한 이치에 따라 항상 無爲로 행하 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만약 道를 만들어낸 빅뱅이전의 응축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조화를 이룰 것이라. 그 과정에 作爲가 개입되면, 나는 천지를 창조했던 無名의 樸으로 다스 릴 것이다. 무명지박은 언제나 무욕으로 다스리며 욕심을 부리지 않기에 靜하며 그 이치에 따라 천하는 스스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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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빅뱅 이후에 펼쳐진 道가 만들어낸 一의 특징을 살피는 중이다. 道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과정이다. 지금부터는 道에 버금가는 無爲에 대해 살펴보자. 81章 전체에 골고루 펼쳐있는 無爲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아무리 無爲를 느껴보려고 해도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無爲는 인간의 행위에 없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는 실행이 불가능하기에 그 정체를 모르고 잠시 느낀다 해도 체감정도가 너무 낮은 어떤 것이다. 이런 이유로 老子는 67章에서 我道大 似不肖(아도대 사불초) 라고 한탄하였다.
우리는 무위와 무위자연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老子가 주장하는 無爲라고 보기에 부족하다. 道를 따르고 지키는 것을 德이라 하였으니 德을 행하는 것을 無爲라 해도 문제가 없다. 道의 정체는 위에서 정리하였고 빅뱅 이후 펼쳐진 一의 움직임을 이해해야 德을 행하며 그 행위가 無爲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無爲는 만물 내면에 깃들어 生氣를 부여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다. 다만, 無爲는 인간이 할 수 없는 방식이기에 아무리 행하려 해도 어렵다. 道德經에 無爲를 설명하는 표현들이 넘쳐나도 해석조차 어려운 이유가 바로 無爲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제1部에서 양자물리학, 시공간, 열과 중력, 무와 대칭 개념들을 정리했던 이유가 道와 無爲의 정체를 미리 이해해보자는 취지였다. 인간은 알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에 인간을 제외하고 과연 어떤 존재가 행할 수 있는지 후보들의 정체를 살폈던 것이다.
전지전능한 神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간단하지만, 老子는 神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道와 無爲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들이 바로 양자물리학, 시공간, 열과 중력, 무와 대칭에 대한 개념들이다. 인터넷에서 발췌한 무위에 대한 설명들이다.
-무위는 자유자재(自由自在)하고, 사물의 실상과 합일로 얻는 원만성이다.
-무위는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려는 방법이며, 세상을 다스리는 법이다.
-무위는 만물을 생성케 하는 근원으로 태극의 개념과도 만난다.
-무위는 사물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무위는 자연법칙에 따라 행위하고 인위적인 작위를 하지 않는다.
-여러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존재.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초월하는 常住.
-열반(涅槃)의 이명(異名)으로 사용된다.
-무위는 생멸변화가 없는 모든 법의 진실 체이다.
-생주이멸의 변천이 없는 진리, 열반, 진여, 법성과 같은 뜻이다.
-인위 없이 자신의 내재한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상기 내용을 읽어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德을 행하는 것이 無爲인데 德은 道를 따른다. 道는 一을 만들어냈기에 德과 一은 동일한 것인지 다른 것인지도 헛갈린다. 무위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道를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면 一도, 德도, 無爲도 모두 道가 낳은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 중에서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초월하는 常住를 “움직임이 없는 존재나 상황”으로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움직임이 없는 존재는 아무리 위대해도 무의미하다. 죽어 生氣가 없기 때문이다. 老子가 빅뱅 이전에 有物混成, 周行不殆라고 표현해야만 했던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道를 이해하는 과정에 반드시 주의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無爲의 반대말은 有爲, 人爲다. 인위는 어떤 상태일까? 간단한 방식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丁(중력)--------壬(중도)----癸(척력) = 有物混成, 樸, 谷神, 周行不殆
물질, 利己-------중심------정신, 利他
빅뱅 이전 3개가 뒤섞여 움직이지만 균형이 깨진 상태는 아니다. 우주가 폭발하고 극히 미세하게 三者의 불균형이 생겨났고 대략 100억 년이 지난 시점에 물질계가 생겨났다. 인간도 중력이 만들어낸 物質이자 利己다. 따라서 인간본성은 利己를 기본으로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중도를 지킬 수 없다. 따라서 人爲는 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로 억지스럽지 않지만 老子는 利己에서 고통이 생겨난다고 본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어쩌면 無爲이고, 어쩌면 有爲인 것이다. 老子는 無爲로 행하라고 한다. 無爲는 무엇인가? 道가 만들어낸 자식이다. 道는 무엇인가? 利己가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지만 有物混成으로 뒤죽박죽 끊임없이 움직이는 어떤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답해야 한다. 인간은 과연 無爲를 행할 수 있는가? 도를 따를 수 있는가? 정리하면 人爲는 丁壬癸 균형이 조금 틀어지고 중력(丁)쪽으로 욕망이 강해진 상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항상 간택하고 고통 받고 번뇌에 빠진다. 老子는 무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道常無爲而無不爲(도상무위 이무불위)
도는 언제나 무위로 행함에도 이루지 못함이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常은 生滅變化를 초월한 존재일지라도 반드시 움직이고 변한다. 움직임은 반드시 변화를 만들지만, 본질은 절대로 변함이 없는 것이 常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아무런 장애 없이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道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데 이루지 못함이 없다. 또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도 않지만 자연스럽게 해낸다. 이것이 계속 설명하는 道沖, 冲氣以爲和, 無有入無間이며 無爲의 정체다. 움직임과 변화를 본질로 하지만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이루어내는 존재. 神이라 부르지 않는 이상, 그렇게 행하는 존재를 찾아야만 하는데 그 후보들이 원자, 시공간, 열과 중력, 無와 대칭이다. 老子는 이런 존재들을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無爲와 道에 닿아있는 것은 분명하다. 명리의 표현으로는 생기를 퍼트리려는 癸가 바로 無爲이다.
정리하면, 老子의 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목적이나 의도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어떤 것이다. 예로, 138억년 동안 우주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그러하였다. 노자는 이렇게 스스로 그러하게 만드는 존재를 무위로 보는 것이다.
無爲와 인간 의지는 상이한데 色界를 살기에 육체와 물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無爲와 人爲 사이의 간극 때문에 번뇌와 고통이 생겨난다.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만약 (道, 無爲를) 지킬 수만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조화를 이룰 것이라. 이 표현은 이미 32章에서 살펴보았다. 왕이 만물을 다스린다고 표현하지만, 老子의 생각은 侯王이 없는 문장이었을 것이다. 왕이 무슨 재주로 만물을 다스릴 것인가? 황당할 따름이다. 樸, 谷神, 道, 無爲가 만물에 스며들어 自化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문구를 若能守之 萬物將自化로 바꾸면 극히 자연스럽다.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스스로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 作爲가 개입되면, 나는 無名의 樸으로 진압할 것이다. 無爲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인위가 개입되면 樸으로 제압할 것이라. 無名之樸의 樸은 빅뱅 이전의 우주본질이다. 老子의 표현을 바꿔보면, 樸의 道로 모든 것은 이루지만 인간이 작위로 행하려 한다면 반드시 벌을 가할 것이다. 老子가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무위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無名之朴 夫亦將無欲(무명지박 부역장무욕)
무명지박은 반드시 무욕으로 다스릴 것이다. 無欲은 無爲다. 인간의 작위가 생겨나면 樸으로 제압할 것인데 無欲으로 이루어지며 근본을 벗어나지 않는다. 化而欲作의 행위를 무위로 돌려놓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표현은 無爲로 다스려지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도 결과적으로는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不欲以靜 天下將自定(불욕이정 천하장자정)
욕심을 부리지 않기에 靜하며, 천하는 스스로 정해질 것이다. 靜과 安은 빅뱅 이전에 나오던 용어들이다. 세상이 흐트러지면 무위로 바르게 다스릴 것이며 다시 정상적으로 운용될 것이다.
萬物變遷無定態 세상만물은 변하여 정해진 형태가 없으니,
一身閑適自隨時 이 한 몸 한적하게 스스로 때를 따를 뿐이라.
年來漸省經營力 최근에는 경영하는 힘이 점점 약해지니,
長對靑山不賦詩 청산을 오래 마주하면서도 한 편의 시도 짓지 못하네.
- 이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