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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Giuseppe Verdi 1813-1901 Rigoletto in Mantova 2010 Rigoletto: Placido Domingo Gilda: Julia Novikova Duca di Mantova: Vittorio Grigolo Sparafucile: Ruggero Raimondi Conductor: Zubin Mehta RAI Orchestra 2010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이런 노래 아시죠? 원래 이탈리아어 가사에서는 ‘깃털’이었는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 ‘갈대’가 되었네요. 이 ‘여자의 마음’(La donna è mobile)이라는 아리아는 아주 가볍고 명랑하게 들리지만, 이 노래가 들어 있는 오페라 <리골레토>는 베르디의 여러 걸작 오페라 가운데서도 가장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한 작품입니다.
만토바 공작의 궁정 광대 리골레토는 젊은 공작의 호색적인 성격을 부추겨 궁정 귀족들의 부인이나 딸을 농락하게 하면서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숨겨두고 곱게 기르던 자신의 딸마저 공작이 유혹해 겁탈하자 분노한 그는 자객을 시켜 공작을 죽이려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리골레토의 딸 질다는 사랑하는 공작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칼에 대신 뛰어들고, 리골레토는 자루에 든 공작의 시신을 강에 버리려다가 그것이 공작이 아닌 자기 딸임을 알게 됩니다. 농락당한 딸의 명예를 위해 싸우다 리골레토에게 조롱을 당한 귀족이 그에게 퍼부은 저주가 실현된 것입니다. 검열 때문에 제목과 주인공이 달라진 오페라 그러나 오페라 무대 위에서 왕의 암살을 보여주는 일은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불가능했습니다. 원작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대본가 피아베가 미리 다 삭제했는데도, 그 무렵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검열 당국은 이 대본에 ‘혁명적’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당연히 공연 허가는 받을 수 없었지요. 고민하던 베르디는 누군가의 조언을 얻어 원작의 무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궁정은 이탈리아 만토바 궁정으로 둔갑했답니다. 어디선가 대가 끊겨 베르디 시대에는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게 된 이 만토바 공작의 가문이 오페라 무대에 오른 것이죠. 실재하지도 않는 이 공작을 비난하는 일에 대해서는 검열관들도 별 말이 없었습니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제목도 원래 ‘저주’(La Maledizione)라고 붙였지만 검열 당국과의 마찰 때문에 결국 주인공의 이름을 따 ‘리골레토’로 바꿔야 했습니다. ‘저주’라는 제목이 훨씬 더 관객을 끌 것 같았지만 말입니다.
경박한 테너, 순수한 소프라노, 극적인 바리톤 베르디의 여러 오페라가 그러하듯 <리골레토>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세 명의 핵심인물이 있습니다. 테너 주인공인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에게 베르디는 경쾌하고 표피적인 음악을 만들어 주었습니다(‘이 여자나 저 여자나 Questa o quella’ ‘여자의 마음’ 등).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 주인공인 돈 조반니의 노래들이 그러하듯, 공작의 아리아들은 유려하고 매혹적이지만 별 깊이가 없습니다. 소프라노 주인공인 10대 처녀 질다의 노래는 세상과 단절되어 새장에 갇혀 사는 듯한 그의 삶에 걸맞게 순수하고 단조롭지만, 공작과의 사랑을 경험하고 난 뒤로 아버지 리골레토와 함께 부르는 2중창은 소녀에서 여인으로 하루밤새 성숙한 질다의 변모를 음악으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질다 역의 소프라노는 벨칸토 스타일의 아리아 ‘사랑스런 그 이름 Caro nome’과 격정적이고 극적인 ‘복수의 이중창 Si, vendetta’을 동시에 다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젊고 매력 있는 소프라노와 테너에 가려져 바리톤 주인공 리골레토의 비중이 약해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 오페라의 타이틀 롤인 리골레토는 이 격정의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존재인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가장 깊이 있고 에너지 넘치는 가창을 들려주는 배역이기 때문입니다(‘가신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Cortigiani, vil razza dannata’). 주인공이 꼽추라는 장애를 지녔다는 설정 자체가 세상에 대한 그의 분노와 저항을 암시하는데요, 자신을 인간으로 존중해주지 않는 공작과 귀족들을 향해 리골레토는 “내가 사악하다면 그건 다 너희들이 못돼먹어서다”라고 독백합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질다의 죽음은 사랑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아닙니다. 질다는 꼭 첫사랑에 눈이 멀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에 절망한 나머지 어른이 되는 문턱에서 삶을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젊은 시절에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어야 했던 베르디의 깊은 우울이 이 드라마 속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도 역시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다시 ‘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면요, 베르디는 초연 전날까지 테너 가수에게 이 곡을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부르지 말라고 해놓고 꼭꼭 숨겨두었답니다. 마침내 공연 당일, 무대에서 테너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자 이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반한 관객들은 오페라가 끝난 뒤 다들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갔고, 이 노래는 다음날 당장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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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 오페라 3막에서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이 마달레나에게 수작을 걸면서 부르는 아리아
Luciano Pavarotti -La Donna e Mobile - 여자의 마음
DUCA: La donna e mobile |
공작 여자의 마음은 |
* 역시 파바로티가 부르는 <이여자나 저여자나,Questa o quella>, 오페라 1막 1장에서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이 체프라노 백작 부인에게 작업을 걸면서 부르는 아리아
Questa o Quella - 이 여자나, 저 여자나 ;1막 1장
Questa o quella per me pari sono |
이 여자나 저 여자나 |
Caro nome che Caro nome che il mio cor-그리운 그 이름 (질다의 아리아) ;1막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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