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정보의 전달 매개체로 인류문명을 밝혀온 종이의 퇴조가 확연히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연말마다 선배, 어른들에게 보내려고 연하장을 고르던 게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속지 쓰고 겉봉 쓰고 우체국 찾아가서 우표 붙여 보내던 편지가 책상머리에서 몇 초 만에 전달되는 이메일로 대체된 지 오랩니다. 종이 신문을 보지 않는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갑니다. 아기의 돌 사진 앨범도 CD나 이메일 첨부파일로 날아옵니다. 종이로 된 책을 보다가 전자책으로 바꾸어 보는 독서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타임 머신(Time Machine)’이라는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타임 머신을 타고 수십만 년 후의 미래 세계로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거기서 인류가 제 문명을 지키지 못하고 지하 괴물의 제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고는 절망합니다. 도서관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이 먼지로 사라지는 암담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물론 종이가 없어지고 종이 책이 사리진다고 해서 인류의 문명이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닐 겁니다. 종이의 역할이나 효용은 아직도 인간 생활에서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를 담는 그릇으로서 종이의 기능은 IT 신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그 수명이 다해 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종이 매체는 갈수록 빠른 속도로 전자 매체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특히 방송에 이어 등장한 인터넷 미디어의 발전 속도와 파급 효과는 무서울 정도입니다.
지하철이건 버스건 출퇴근 시간에 신문을 펼치고 앉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이 DMB폰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뉴스를 듣거나 아니면 MP3 등 또 다른 전자기기로 음악을 즐깁니다. 지하철과 길거리 풍경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종이를 매개체로 한 미디어의 앞날은 암담해 보입니다. 나라 안팎에서 종이 신문, 잡지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종이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국내 언론사들의 재정은 악화일로라고 합니다. 한때 가장 짭짤한 현금장사라며 앞 다투어 창간했던 스포츠연예 전문지들조차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오래전 근무했던 신문사의 현역 후배를 만났더니 요즘 광고매출이 한창 때의 반의 반 토막이라며 죽을상을 지었습니다. 스포츠연예지들의 몰락에 기여했던 무료신문들도 맥을 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때 45개국에서 17개 언어로 수백만 부의 출판을 자랑하던 세계 최대의 월간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가 지난해 8월 22억 달러(한화 약 2조6천억 원)의 빚에 못 이겨 파산보호신청을 냈습니다. 그 후로 「다이제스트」는 독자의 구미에 맞는 보다 현실적인 내용으로 변신을 꾀하며 회생에 안간힘을 쓰고 있답니다.
「타임(TIME)」과 쌍벽을 이루던 77년 역사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가 지난해에만 2,800만 달러(한화 약 330억 원)의 적자를 내고 지난달 초 ‘부채+1달러’로 워싱턴 포스트에서 음향기기 제조업자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이 모두가 전자 매체의 위세에 밀려 판매부수는 줄고 광고수입은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종이 매체의 전성기에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일입니다.
최근 인터넷 포털의 언론 기능이 대폭적으로 강화되면서 더욱 종이 신문들을 벼랑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업체인 야후, 구글이 뉴스 경쟁을 펼치는가 하면 국내의 네이버도 직접 취재기자들을 고용하고 뉴스를 생산해 그나마 헐값으로 뉴스 콘텐츠를 팔아온 기존 언론사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항해 국내의 몇몇 신문들이 자체 뉴스 검색엔진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는 종이 신문 구독자에게는 온라인 뉴스를 무제한 이용토록 하고, 온라인 독자에게는 별도 구독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더 타임스(The Times)」「더 선(The Sun)」「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등을 보유한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도 인터넷판 신문을 유료화한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뉴스를 생산하는 고임금 인력의 인건비나 종이 매체를 배달하는 고비용 물류비를 감당할 만한 수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진 변화와 발전에 비하면 종이 매체는 어쩌면 터무니없이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영화를 누려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럽에서는 로마시대, 동양에선 당나라 때에 시작됐다는 원시형태의 관보는 제쳐두고라도 이미 1600년대에 주간지, 1700년대에 일간지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더 타임스」의 전신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Daily Universal Register)」가 창간된 게 1785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이 창간된 게 1896년 4월 7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영화를 누렸으니 이제 그만 다른 매체의 권세에 밀린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합니다. 그 동안 납 활자, 종이 원고를 없애며 제작 공정의 기계화, 전산화에 힘을 기울였지만 방송, 인터넷 매체의 발전 속도에는 역불급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종이 신문이라는 형태가 아니라 그 종이 신문에 담아온 정신일 것입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전하고, 사물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고, 보다 나은 세상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언론의 역할과 사명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 신문을 발행해온 언론사가 종이라는 그릇, 종이 신문이라는 매체에만 매달린다면 멍청한 일입니다. 애써 만들어낸 콘텐츠를 담아 전달하기에 보다 효율적인 그릇을 찾아내야 합니다. 단수의 채널, 매체로 부족하다면 상호보완적인 복수의 채널, 매체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겠지요.
종이 신문 발행 언론사의 타 매체 확보나 진출에 대해 취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일부 부정적인 태도나 과도한 규제는 터무니없는 짓으로 보입니다. 과거 종이 신문의 영향력에 휘둘린 데 대한 옹졸한 앙갚음이거나, 여론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무모함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매체의 수용자(需用者)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언론이 사회 발전에 필요한 요소라면 당연히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두려워해야 할 게 있다면 그건 공룡 언론의 출현이 아니라 사이비 언론의 출현일 것입니다.
미디어의 진화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 TV가 끝이 아니듯 지금 우리 앞에 선보인 인터넷 매체의 모습도 미디어 변화의 끝이 아닐 것입니다. 변화의 중간에 서서 미리 미디어를 형태로 규정짓고 규제하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져야 할 것은 그릇의 모양이 아니라 음식의 내용이어야 합니다. 미디어의 형태가 아니라 그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콘텐츠의 정확성, 신뢰성, 건전성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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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 그래도 휘발유 냄새 나는 종이신문이 더 좋던데요. 구석구석 볼 수 있고, 사진도 크게 보이고...^^
여하튼 종이신문이 위험하긴 해요. 책도 마찬가지고. 책은 특히 우리나라가 유독 심한 것 같고..
이 시가 문득 생각나더군요.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함 직접 시를 써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