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와 노을, 그리고 바다 위에 뜬 무지개를 한 시간, 한 순간에 바라본 곳이 있다.
포항 바다.
그 바다의 청천연한 색과 노을을 배경으로 뜬 무지개는
한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포항은 내 고향이기도 하다.
유년기를 바다를 보면서 보내지는 않았지만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시내로 나와 살아가기 시작하며
'포항'은 '바다'라는 단어를 떼고서는 생각할수 없는 도시라는 것을 알게됐다.
아이에게 내가 자란 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
산업과 공업적인 면모를 끼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이 곳을.
노을 지는 무렵, 포항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내가 포항을 떠나고 나서 만들어진 '포항 운하관'에 먼저 들렀다.
사실 포항 운하나, 이를 상징하는 운하관을 만들때 꽤나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하지만
정작 만들고나서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들리는, 명소로 자리잡았다고.
포항 운하가 있는 동빈내항은 고대국가나 삼국시대가 거론되는 것 처럼 아주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정확히 역사적 가치가 기록된 지점은 1917년 정도다.
1962년 정식 개항한 동빈내항은 포항의 송도와 죽도, 해도, 상도, 대도동이란 5개의 섬 사이로
현상강과 영일만 바닷물이 만나는 아름다운 항구였다.
1968년 포스코가 건립되며 홍수예방을 위해 형산강 뚝을 만들게 되어 1974년에는 부족한 택지난을 해소키 위해
구획정리 시 부득이하게 물길을 막게 되었다고.
이처럼 동빈내항은 한때 포항을 대표하는 항구로서 자리매김했지만,
물길이 막히게 되며 물이 오염되는 등의 문제로 인해 한동안 외면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분을 개선시키기 위해 민선 4기 박승호 포항시장의 공약으로
동빈내항의 일부구간을 뚫어 운하로 만든 것이 바로 포항운하다.
<포항운하관 바닥에서 만날 수 있는 트릭 아트>
<포항 운하관 아래 마련된 옛 풍경을 간직한 느린 우체통>
포항 운하관에 들어서면
포항의 자랑인 포스코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보고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풍경이다.
공장이라서 별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할 사람도 많지만
그 규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 위압감과 함께 나름 적지않은 숭고미도 함께 느껴진다.
인간의 발전은 '철기 시대'부터 시작됐다고 하던가.
그 시대가 저문 지금까지도 '철'은 인간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다.
포스코에서 생산된 철로 만든 많은 자동차, 자전거...그리고 전봇대와 건물들...
이곳 포항을 비롯해 우리나라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것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한가로이 포항운하에 딸린 부둣길을 산책하는 시민들과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즐기는 시민들의 조화가 새삼 긴 역사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운하관으로 올라가다보니, 색색으로 물든 작은 크루즈들이 운하를 드나든다.
작은 크루즈를 타고 포항 바다를 한바퀴 도는 코스도 다른 지역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라고.
주간에는 1만 5000원, 야간에는 1만 8000원 정도에 이용이 가능하며
포항시민과 경주시민, 울산시민 등은 주간 이용권에서 약 3000원에서 5000원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24개월 미만의 아이는 무료다.
운하관에는 카페 등이 마련돼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커피도 한잔 즐길 수 있다.
T I P
포항크루즈 예약 사이트 http://www.pohangcruise.kr/www/
평일 매 정시 출발
주말 수시로 출발
승선권 발권 시간 주간 오전 10시~오후 4시 50분
야간 오후 5시~5시 45분
본격적으로 운하관 안을 걸어본다.
짭짤한 바닷내음이 코 끝을 스치고
내륙에서는 잘 보기힘든 다양한 층의 구름들이 푸른 하늘 곳곳에 장식돼 있다.
포항은 해양성 기후라 생각보다 날씨를 종잡을 수 없는데
종종 비가 오기도 하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도 하니 여행객들은 여벌옷과 함께 우산을 겸비하는 것도 좋다.
운이 좋으면 비를 맞으면서
멀리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운하관 벽에는 '이주자의 벽'이란 글이 적혀있다.
2013년 11월 2일, 40년간 막혀있던 동빈내항이 운하를 통해 '운하도시'라는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면서
수십년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을 흔쾌히 내어준 827세대, 2225명의 이주자들의 이름을
잊지않고 소중히 한명한명 적어두었다.
운하관에 올라 바라보는 포항의 독특한 풍경이 이채롭다.
바다에 마련된 간이 부두에는 갈매기가 옹기종기 모여있고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포스코가 우뚝 자리잡고 있다.
작은 아이와 할머니로 보이는 시민이 부둣가 사이에서 갈매기를 쳐다보고 있는 이 풍경이 참 평화롭게 다가온다.
운하관 안에는 '포항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근현대 사진전도 개최되고 있어
학습의 장을 마련함과 함께 볼거리를 더한다.
또한 운하관 상부에는 커피를 마시며 쉴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마치 동남아시아에 온 것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원두막이라
기분이 묘하다.
이 원두막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름답게 내려앉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코타키나발루에 여행간듯한 느낌을 한 '1분정도' 받게 된다.
놀라운 풍경은 그 다음 펼쳐진다.
포스코 너머로 큰 배들이 떠있고
그리고 멀리서 바다에서 떠오른 무지개가 두 눈에 들어온 것.
희귀한 풍경이라 넋을 놓고 바라본다.
까악까악 나르는 갈매기와 방파재 사이에 뜬 색색의 배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무지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이런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함께 간 가족들도 이 풍경을 조용히, 말없이 바라본다.
이 시간, 이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 풍경을 보는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지개가 바다에서 사라질 무렵, 본격적으로 노을도 붉게 내려앉는다.
아직 개발되지 못한 송도의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붉은 노을이 지는 풍경은
현재 신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무척 정겹고 따뜻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포항운하는 길게 이어진다.
걸어서 보기에는 힘들지만 곳곳에 엘리베이터가 마련돼있어 시민편의성을 높였다.
예전에 물길이 막혀있었을때는 악취와 함께 아무런 생물도 살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비교적 깨끗해진 물에 다양한 물고기가 살아서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언젠가 크루즈를 타고 이 곳을 한바퀴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운하 근처에 앉아서 멍하니- 풍경을 바라본다.
바다가 있는 도시는 참 다양한 풍경을 안고 있구나.
이 곳에서 살아갔을때는 몰랐던 사실이
이 곳을 떠나 살아가며 새삼 새롭고 귀한 사실로 다가온다.
이 계절의 마지막 향기를 내고 있는 장미가
물결에 노을빛을 받아 유독 청초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