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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4:16]
몇 년 전 한 방송 매체에서 3.1절이 무슨 날인지 어린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중학생 아이들에게 3.1절, 3.1운동을 읽어보라고 하자 삼점일절, 삼점일운동이라고 읽었습니다.
이것은 삼점일절이 아니라 '삼일절'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3.1절은 무슨 날일까요?
많은 분들이 이날은 일제 강점기 중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날로 알고 계십니다.
이 날은 우리의 민족운동 중에 가장 구심점이 되었던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족 운동은 3.1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10년 ~ 1945년은 일제강점기로 나라를 잃고 내 나라 말을 잃고 이름을 잃고 살았던
시기입니다. 이 35년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의 것을 일본으로부터 다시 찾기 위하여
치열하게 투쟁하였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3.1절 운동이었습니다.
3.1절은 무장 투쟁이 아니었고 평화적 만세 시위였습니다.
이 운동이 왜 이리 중요한 것일까요?
국외적으로 그 당시는 외교독립론이 대세였습니다. 1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이었고 약소
민족을 침략하는 행위를 하지 말자며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어린 학생이었던 송계백은 적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2.8선언문을 모자에 숨기고 들어와
독립운동가에게 보여주었고, 우리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평화적 만세 운동인
3.1운동을 준비하였습니다.
3.1운동은 어린 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기다려도 오기로 한 어른들이
오지 않자 한 학생이 연단으로 올라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준비된 태극기와 선언서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모여든 사람 모두가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했습니다.
그러자 헌병들은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며 무자비하게 살상을 했습니다.
3.1운동의 영웅은 군중 모두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관순 열사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 1학년 이었고 지금으로 따지면 중고등학생 정도였습니다.
만세 소리가 학교 담장 밖에서 들리자 본인도 만세를 외치려고 나가고자 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나를 짓밟고 나가거라”며 위험한 곳으로 가는 것을 막고자 했으나
유관순 열사는 “선생님 죄송합니다. 나라를 살려야겠습니다”고 말하고 담을 넘어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파고다 공원의 만세운동 행렬에서부터 3월 5일 서울역과 종로의 만세 집회 이후 일제는 전국의
학교 문을 닫았고,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던 그녀는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에게 덜커덩거리는 기차소리는 ‘조선독립 조선독립’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녀는 천안의 교회에 모인 어른들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내놓고 서울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하며 만세운동을 촉구했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어른들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향인 용두리의 매봉교회는 전 교인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거사일은 아우내 장터의 장이 서는 음력 3월1일 (양력 4월1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면내 어른들과 교회, 학교를 찾아 다니며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했고 밤이면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날 장터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녀는 장터 한가운데의 쌀섬 위에
올라가서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 돼 온갖 압제와 설움을 참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독립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 만세 소리가 천지울렸습니다.
일본 헌병들이 달려 왔지만 만세 행렬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헌병들은 마구 칼을 휘둘렀습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3,000여명.. 49명이 죽었고
부상을 입은 사람은 부지기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당당하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꽃다운 청춘을 제물로 바친 순교자요
순국 열사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사랑과 교회 사랑으로 불탔던 신앙의 딸이었고 민족 사랑과 나라 사랑으로
불탔던 애국의 딸이었습니다.
유관순은 1902년 천안군 병천 마을(아우네 마을)에서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숙부가 매봉교회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기독교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늘 자녀들을 붙들고
‘열심히 공부해 민족의 일꾼이 돼야 한다’며 기도했습니다.
유관순은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잠들었을 때 기도실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가난한 친구에게 자기가 먹을 점심을 주고 자기는 점심을 먹지 않고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매사에 적극적이며 친구들과 좋은 교우관계를 가졌고 봉사정신이 강했습니다.
14세가 되던 해 서울의 이화학당 3학년에 편입하면서 유관순의 신앙과 민족애는 더욱 뜨거워졌고
이화학당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에게 '조선의 막달라 마리아’가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으로 유관순은 체포됐습니다. 재판정에서 검사가 “조센진 너 까짓게 무슨
독립이냐”라고 비아냥거리자 유관순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내 나라에서 내 땅에서 만세 시위를 하는 것이 무슨 죄요? 오히려 죄없는 사람을 침략하고
강제로 억압하는 당신들이 죄입니다.”
재판장을 오히려 꾸짖으며 검사의 어깨를 쳤고 이로 인해 함께 재판 받던 사람 중 가장 무거운
7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유관순이 마지막으로 수감된 곳은 서대문 형무소였습니다. 그녀는 옥중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 때마다 매를 맞았지만 굽히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독립선언서를 온몸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독방에 갇혀 100가지에 달하는 수많은 고문을 당하시다가 출소를 앞두고 고문 후유증으로
내장이 다 파열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유관순 누나의 나이 18세였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나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을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가녀리고 어린 19세 소녀가 이런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온 몸이 찢기고 더럽혀져
그 시신마저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 버려 졌습니다.
죄명은 오직 하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것..
그녀의 유해는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일제가 이곳을 군용지로 개발하면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고, 유관순이 다니던 충남 천안용두리의 매봉교회는 만세운동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불태워졌으나 해방 뒤 재건, ‘유관순 기념 교회’로 지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을 386세대라고 합니다. 3.1절을 모르고, 8.15 광복절을 모르고, 6.25 사변을 모르는
세대를 의미합니다. 오늘은 그냥 휴일이 아니며 나라의 보호 아래서 편히 살수 있는 오늘이 그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21:3~4]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모세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고, 사도 바울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들은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겪었던 때마다 한 손에는 성경을 쥐고, 또 다른 한 손에는
태극기를 붙잡고 이 나라를 이끌고 한민족을 지켰습니다.
고당 조만식, 우남 이승만, 월남 이상재, 남강 이승훈, 도산 안창호 등 여러 민족의 선각자들,
민족의 사표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19세기 말 개화의 과정과 일제 치하에서 독립하는 과정 중에 성경이 한글로 번역이 됨으로써
교회는 한글 깨우치기 교실을 운영하여 문맹퇴치 사업과 한글 대중화에 기여하였습니다.
찬송가는 교회에서만 불리는 것이 아니라 개화의 물결을 타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찬송가의 곡조에 나라 사랑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가사를 붙인 노래를
만들어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기독교 정신으로 피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 시편 23편으로 올려드리는 대한민국을 살리는 기도문
여호와는 대한민국의 목자시니 대한민국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대한민국을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대한민국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대한민국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대한민국과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대한민국을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대한민국의 원수의 목전에서 대한민국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대한민국의
머리에 부으셨으니 대한민국의 잔이 넘치나이다
대한민국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대한민국을 따르리니 대한민국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의 눈물을 씻겨주시고 주님의 흘리신
십자가 보혈로 죄의 종이었던 저희를 자유케 하시고 죽음과 절망의 쇠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시니 감사합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외면한채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기를 주님 사랑하기보다 더하고 있사오니, 우리 민족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상한 이 땅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예수님의 향기로
진동하는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우리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평화와 사랑이 풍성한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130년전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생명의 씨앗이 되어 대한민국이 복음화 되게 하셨사오니
세계선교의 마무리를 위해 쓰임 받는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온 국민들이 혼란스러운 정치, 사회 현실에 낙담하지 않게 하시고 대한민국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 민족의 앞날을 주님께 맡겨 드리오니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 민족의 주인이시요 우리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3분의 기적' 밴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