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 2,19-22; 요한 20,24-29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입니다. 복음에서 토마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공동 번역과 200주년 기념 성서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번역했는데요, 저는 이것이 더 나은 번역인 것 같아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뵈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렇게 거리감 있게 말씀드릴 것 같지는 않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외칠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 말씀을 서품 성구로 하려고 했는데요, 동창 박제준 토마 신부가, 자기가 할 거라고, 저더러 ‘딴 거 하라’길래, ‘둘이 성구가 같아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했지만, 토마의 것을 토마에게 양보하고 저는 다른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박제준 신부와 토마 사도의 성격이 비슷한 것 같은데요, 박 토마 신부도 매우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이라, 박 토마가 아니라,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적토마가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는데요, 도고성당에서 적토마처럼 열심히 사목하고 계신 신부님께 축일 인사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되살리러 가실 때 토마 사도는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는 동료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만 보아도 매우 다혈질적인 성격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직접 뵙자, 토마 사도는 모든 의심을 내 던지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구약 성경은 하느님을 ‘야훼’ 또는 ‘엘로힘’이라고 불렀는데, 두 단어가 함께 나올 때에는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번역합니다. 시편 35장(23절)에 “엘로힘, 야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이시여”라고 번역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여러 칭호가 등장합니다. 랍비, 메시아, 예언자, 이스라엘의 왕, 하느님의 아들 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최고의 칭호는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드린 “주님”인데요, 이를 능가하는 것이 토마 사도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입니다. 토마 사도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부르던 그 말을 사용함으로써, 예수님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5)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 이전의 상태로, 다시 말씀이신 분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인성이, 천지창조 이전의 말씀처럼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의 인성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과 옆구리에 상처를 갖고 부활하심으로써, 부활 후에도 당신께서 참으로 사람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함으로써, 토마 사도는, ‘참으로 사람이신 당신께서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하느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14)는 요한복음 1장의 신비가 여기서 완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 사도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믿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씀하신 다른 구절은 엘리사벳이 성모님께 한 인사에 등장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예수님께서는 토마 사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의 모범은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인 에페소서는 우리를 세 가지로 표현하는데, 첫째 우리는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둘째,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부활하신 후 토마 사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앞에도 여전히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말씀의 전례 때 독서와 복음을 들은 후 “주님의 말씀입니다.”라는 말에 대해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라고 응답함으로써, 주님께서 말씀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 주셨음을 찬미합니다.
또한 성체와 성혈을 축성한 후 “신앙의 신비여”라는 말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답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성체와 성혈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이 고백이 참된 고백이 되도록,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두치오, 성 토마스의 의심, 1308년
출처: File:The-Maesta-Altarpiece-The-Incredulity-of-Saint-Thomas-1461 Duccio.jpg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