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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1)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왜 중요한가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의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올해를 '신앙의 해'(2012년 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로 선포했다. 현대 교회가 처해 있는 심각한 신앙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발맞춰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허약한 신앙'으로 진단하고 "신앙의 해가 신앙의 기초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한 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앙이란 하느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다. 하느님 초대를 듣기 위해서는 말씀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진다. 이름은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 그 사람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친분을 계속 유지하든 관계를 끊든 결정하게 된다. 어떤 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불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그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알려주지 못한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소극적 자세를 보인다. 또 "신앙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자녀들 신앙은 본인이 성장한 후에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된 신앙인은 다른 이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 후 상대방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기회를 줄 수 있다. 하느님을 모르기에 설명도 해주지 못하고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참 좋은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참 좋으신 하느님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원의(願意)가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을 믿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하느님 상(像)을 만들어 놓고 나만 챙겨주길 바란다. 이런 경우에 하느님은 재물만을 관장하는 신(神) 혹은 건강만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이런 믿음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역사를 이끄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고작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부분만 담당하는 분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기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떠나는 일까지 생긴다.
하느님은 우리 소원을 다 이뤄주시지 않더라도 결국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올바로 알아보고 올바로 믿을 수 있을까?
하느님은 먼저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됐다. 이처럼 당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계시(啓示)'라고 하는데 하느님 계시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이루신 업적들과 말씀들을 통해 밝혀진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에 관한 영원한 증거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고 천상적 구원의 길을 터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원조들이 타락한 후에는 구속(救贖)을 약속하시어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 주셨고, 선업에 항구하며 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끊임없이 인류를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성조들을 통하여, 그 뒤에는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 민족을 가르치시고 당신만이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이시요 섭리의 아버지이시며 정의의 판관이심을 알도록 하셨고, 약속된 구세주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계시헌장」 3항). "하느님께서는 마지막 이 시대에 와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계시헌장」 4항).
이처럼 구원의 역사 안에 드러난 하느님 계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된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특별히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명시적으로 계시가 전해진다.
성경은 하느님 계시가 성령의 감도(感導)로 글로 담겨 표현되고 보존된 것이다.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의 방식으로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고 역사 안에 나타나신 그분의 현존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인류 구원을 약속했다는 의미에서 '계약(契約)'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옛 계약'인 구약(舊約)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새로워진 계약인 신약(新約)으로 구분된다.
구약에는 구원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온 인류의 구원을 세심하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시어, 언약을 맡기시려고 특별한 배려로 당신 백성을 뽑으셨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고(창세 15,18 참조)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셔서(탈출 24,8 참조), 몸소 당신의 것으로 삼으신 백성에게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당신을 참되고 살아계신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시는지 그 방법을 이스라엘이 체험하게 하시고, 하느님께서 친히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그 방법을 날로 더 깊고 더 분명하게 깨달아 만백성에게 더욱 널리 알리게 하셨습니다"(시편 21[22],28-29: 95[96],1-3: 이사 2,1-4: 예레 3,17 참조). (「계시헌장」 14항)
신약 안에서 구약은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된다. "때가 찼을 때(갈라 4,4 참조)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요한 1,14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고, 행적과 말씀으로 당신의 아버지와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며, 죽음과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과 성령의 파견으로 당신의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홀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신(요한 6,68 참조) 그분께서는 땅에서 높이 들리시어 모든 이를 당신 자신에게 이끄셨습니다(요한 12,32 참조). 그러나 이 신비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일으키고, 교회를 불러 모으도록 성령 안에서 계시되었습니다"(에페 3,4-6 참조). (「계시헌장」 17항)
이처럼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려주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느님께 올바로 응답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5-16).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적은 단순히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서 만족과 행복이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 충만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서 불행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느님 계명을 따르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면 손해보고 희생해야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남보다 더 희생하고 용서하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스트레스가 많을까. 오히려 이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좋아한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이 가진 재물과 지위가 부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선하고 겸손하며 희생하는 사람, 바로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가치관의 혼란과 이기적 윤리관으로 문란해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익을 위해서 자기만 옳다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게 잘 살아가는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찾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욕심과 불완전함으로 얼룩지지 않은 참된 이치이자 참된 도리, 즉 '진리(眞理)'다. 진리는 불변한다. 완전하고 전능한 존재이신 하느님 뜻과 가르침이 바로 진리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재물과 지위,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직 하느님께 받게 될 영원한 생명만이 행복이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평화신문, 2013년 1월 20일, 안향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서울대교구 사목국 · 평화신문 공동기획 '신앙의 해 -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연재를 시작하며
신앙 기초 다져 신앙생활 기쁨 재발견
용비어천가 둘째 장은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로 시작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에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린다는 이 말은 기초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다.
주님도 당신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루카 6,48)고 이르셨다.
평화신문은 신앙의 해(2012년 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 개막 100일(18일)을 기해 서울대교구 사목국과 함께 '신앙의 해-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라는 대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이 공동기획은 교회 공동체와 신앙인들이 겪는 위기는 바로 신앙의 기초가 약한 데 원인이 있다는 진단에 따라 그 기초를 튼튼히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신앙 위기는 기초가 허술한 탓
신앙의 '기초 체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교회 안팎의 도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숭상하면서 하느님이 배제된 사고방식을 부추기는 세속주의는 점점 더 맹렬한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성화(聖化)시키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속화(俗化)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교회가 세속적 생활양식에 물들어가는 데 대한 경종이다.
또 사회가 다원화되고, 여러 종교가 혼재하면서 그리스도교 진리마저도 여러 가치관 가운데 하나가 돼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시장 지상주의와 경제위기, 사회 양극화는 신앙생활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미래 과제가 아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물론 신앙 위기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 활력이 떨어지고, 신자들 삶과 신앙이 분리돼가고, 냉담교우가 증가하는 현실은 사실 교회 내부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신앙의 해 제정 자의교서 「믿음의 문」에 따르면, 우리가 가톨릭 신앙의 근본 내용을 잘 몰라 그 안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도 신앙의 해 사목교서에서 "한국 신자들의 신앙 위기는 신앙의 기초가 약하다는 데 있다"며 허약한 신앙의 기초를 강화하는 신앙의 해가 되길 기원했다.
전문가 진단과 현장취재 병행
따라서 우리가 신앙의 해에 집중해야 할 일은 신앙의 뿌리 또는 근본을 정확히 알고, 그 앎을 통해 신앙생활의 충만한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사목국과 평화신문은 복음ㆍ기도ㆍ교회 가르침ㆍ미사ㆍ사랑의 실천 등 5가지를 신앙의 해 핵심어로 선정했다. 서울대교구 신앙의 해 실천 표어에도 담겨 있는 이 5가지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이자 뿌리이다. 우리 몸이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같은 5대 영양소가 부족하면 병이 생기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이 5가지가 약하면 세상의 악과 유혹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신앙의 해-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는 앞으로 6개월 동안 해당 분야 전문가를 동원해 이 5가지 핵심의 기초적 개념을 살피고, 현장 취재를 통해 다양한 사도직 활동과 목소리를 담아낼 것이다. 또 신앙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고, 신앙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데 필요한 보완점을 찾아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3년 1월 20일, 김원철 기자]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공동기획한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
"자전거는 타야 재밌지 메고 가면 힘들어"
"신앙은 '기쁨'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지만, 그것을 받아 키우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평화신문과 '신앙의 해 -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를 공동기획한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이번 기획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의 기쁨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신앙의 기초체력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손 신부는 "하느님 선물인 신앙을 키우려면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앙에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앙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 손 신부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어깨에 메고 다닌다면 힘이 든다"며 "하지만 타는 법을 배우면 자전거 타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앙의 해는 그러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신앙의 해 공동기획에 바라는 점은
"신앙의 해 취지가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또한 신앙의 맛과 기쁨을 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아울러 신앙의 해가 일회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신앙은 기쁨이자 하느님 선물이다. 신앙의 기쁨을 누리려면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만남 자체만으로도 기쁘다. 우리는 좋으신 하느님을 만날 때 매우 기쁘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제대로 알고 살았기에 기쁘게 순교의 칼을 받았다. 신앙의 기쁨을 느끼려면 우리에게 손 내미시는 하느님께 우리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미사에 참례하고 돌아가는 신자들 표정에 기쁨이 묻어나야 한다."
▶ 서울대교구는 말씀ㆍ기도ㆍ교회 가르침ㆍ미사ㆍ사랑나눔 등 5가지 신앙의 해 표어를 정했다. 선정 배경과 취지는
"서울대교구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위기는 '허약한 신앙'에 있다. 예비신자가 있지만 그만큼 냉담교우가 생긴다. 위험신호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로마 10,17)고 말했다. 그래서 첫 표어를 말씀으로 정했다. 기도는 그 다음이다. 또한 하느님 뜻은 교회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기에 교회 가르침도 중요하다. 요즘 신자들은 교회 가르침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교회의 공적 가르침은 하느님 뜻이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뤄졌다. 교회 가르침에 충실히 따라야 한다. 미사는 공동체성을 드러내 준다. 교회의 핵심이 미사다. '하나가 되자'는 것이 우리 신앙이다. 모든 신앙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바로 사랑 실천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신앙은 시작이요, 사랑은 마침'이라 했고, 야고보 사도는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 현대 신앙인들의 신앙적 토대가 점점 약해지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예전보다 기도를 안 한다. 옛 신자들은 가족과 함께 조과ㆍ만과(아침ㆍ저녁기도)를 바쳤다. 성경공부를 하는 이들도 전체의 10%도 안 될 것이다. 신자로서 꼭 해야 하는 말씀공부와 기도를 안 하는데 신앙적 토대가 튼튼할 리 없다. 교회 외적 요인도 가볍게 볼 수 없다. 학생들은 성적, 어른들은 돈을 하느님 위에 둔다. 돈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했으니 신앙이 약해지는 것이다. 돈을 절대화하는 풍토가 문제다. 나 자신을 절대기준으로 삼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도 우려스럽다. 우정이 깊어지려면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며 함께 이겨내야 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약해진다."
▶ 한국교회에도 유럽교회화 돼가는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이 있는데
"세속화를 경계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 모습은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세속적 판단기준이 통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변질되고, 복음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교회 봉사직에 명예, 재력, 학력을 내세우면 세상과 다른 게 무엇인가. 입교한 지 얼마 안 돼 냉담하는 사람 중에는 그런 모습에 실망하고 돌아선 경우가 많다. 순교자 중에 황일광(시몬, 1757~1802)이라는 백정이 있다. 그는 천국이 두 곳이라고 했다. 하나는 죽어서 갈 곳이고, 또 하나는 바로 여기라고 했다. 하느님을 만난 양반들이 천민 백정을 한 형제로 따뜻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다. 교회가 천국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2) 어떻게 해야 주님 말씀에 맛들일 수 있을까
성경 읽기가 주님 말씀 맛들이기 첫걸음
그리스도인에게 주님 말씀은 신앙의 출발점인 동시에 좌표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주님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희망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신앙을 튼튼히 하려면 먼저 주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삶의 기둥을 세워야 한다.
신앙의 해를 맞아 주님 말씀의 결정체인 성경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주님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말씀을 하시지만, 성경보다 더 분명하고 힘이 넘치는 말씀이 담긴 것은 어디에도 없다. 성경에도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묵시 1,3)하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성경을 어려워하는 이가 여전히 많다. 초보 신자가 성경을 통해 주님 말씀을 익히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성경을 읽는 것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구절처럼 말씀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다. 성경공부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꾸준히 주님 말씀에 맛들이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사목자들은 "주님 말씀에 맛을 들이려면 성경을 읽으라"고 권한다. 습관이 될 정도로 매일 읽고 묵상해야 주님 말씀에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안동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황재모(사목국장) 신부는 "말씀에 맛을 들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읽는 것이다. 읽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다음이 성경공부 모임이나 강의 등에 참여해 말씀을 심화시켜야 그 말씀이 자기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예로니모 성인은 "우리는 결코 홀로 성경을 읽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성경을 함께 읽고 공부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혼자 읽기 어렵다면 가족들과 함께 읽는 것도 좋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성경읽기에 도전하는 것조차 꺼리는 신자가 많다. 그렇다면 그날 독서와 복음이라도 미리 읽고 미사에 참례하는 방법도 있다. 3년 동안 매일미사에 참례하면 성경 주요 부분을 거의 대부분 봉독하게 된다. 미사 시간을 활용해 성경에 맛을 들이다 보면, 통독에 도전할 '믿음의 체력'이 길러진다.
잠들기 전 시간도 좋다. 성경을 잠자리에 두고 잠들기 전 10분을 성경 읽는 시간으로 정하자.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과 학생 등에게 부담 없는 방법이다. 체계적으로 성경을 읽으려면 신약을 79일, 구약을 286일에 읽는 '성경 읽기표'를 활용해 1년 만에 완독할 수 있다.
요즘 참여 열기가 뜨거운 성경필사는 말씀을 마음 깊숙이 새길 수 있는 방법이다. 성경필사에 성공한 이들은 "성경을 두 번 읽은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며 "말씀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마음에 와 닿는 성경구절을 정해 자신만의 성구를 갖는 것은 어떨까. 또 가훈을 성경구절에서 고르는 것도 가족이 성경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고(故) 정호경 신부처럼 성경구절을 나무판에 새겨 거실에 걸어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마르코 복음서」(가톨릭출판사)와 같은 성경 입문서나 해설서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하지만 성경읽기는 해설서가 아니라 성경 본문이 위주가 돼야 한다는 게 일반적 조언이다.
평화방송TV '장재봉 신부의 성경 속 재미있는 이야기' 진행자 장재봉(부산교구 활천본당 주임) 신부는 "성경은 하느님 얼굴이고 삶의 거울이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려준다"며 "처음엔 성경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여러 번 읽다 보면 말씀에 맛을 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8박 9일 간 신자들과 함께 성경통독 피정을 한 적이 있다"며 "73권 통독에 성공한 신자들 모습이 많이 달라졌음을 보고 하느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 지 새삼 체험했다"고 말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는 구절처럼 말씀에 맛을 들이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3일, 이힘 기자]
성경읽기 작심삼일 되지 않으려면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작심삼일(作心三日), '성경통독 도전'을 선언하고 창세기부터 펼친 사람치고 이 사자성어에 굴욕(?)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청난 두께에 지치고, 깨알 같은 글씨에 금세 지루함을 느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 맛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인옥(체칠리아, 수원가톨릭대 성경연구실) 실장에게 성경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이 실장은 "성경을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읽으라"며 "성경읽기를 목표로 하지 말고, 말씀 안에 머무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 성경은 재미있다
성경을 딱딱하고 경건한 책으로만 생각하지 마라. 의무감으로 읽으려 하지 말고 재미를 발견해야 한다. 성경을 도덕적 기준, 반성과 성찰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읽을수록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만 늘어난다. 성경을 '재미있는 책'으로 생각하라. 동화책이나 역사책을 읽듯이 읽으면 굉장히 재밌을 것이다.
▶ '~낳고'에 지지치 마라
굳이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나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씀부터 먼저 읽는 게 좋다. 창세기부터 읽다보면 "누구는 누구를 낳고"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족보'에 지치는 경우가 많다. 구약에서는 요나서, 잠언, 지혜서, 토빗기가 말씀에 맛들이는 데 좋다. 신약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복음, 사도행전을 초보 통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성경을 이론적 잣대로 분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문을 갖지 말고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즐겁게 읽어라. 인물에 집중해서 읽어도 좋다.
▶ 멈추고 묵상하라
모든 작심삼일에는 공통점이 있다. 흥미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오늘은 어디까지 읽고, 얼마만큼 옮겨 적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하면 쉽게 지친다. 필사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다만 '필사를 위한 필사'는 좋지 않다.
필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얼마나 빨리 했는지, 축복장을 받았는지에 집착하면 글씨쓰기 연습밖에 안 된다. 필사를 하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멈추고 묵상을 해보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완독, 완필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말씀에 깊이 빠졌느냐는 것이다. 말씀에 머무르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매일 읽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된다.
▶ 말씀 안에 머물러라
통독이 부담스러우면 「매일미사」에 있는 그날의 복음 말씀부터 거르지 말고 읽어보라. 복음을 읽고 묵상한 후 노트에 묵상 내용을 짧게라도 옮겨 적는 게 중요하다. 평생 동안 전권(73권)을 다 읽지 못해도 괜찮다. 성경읽기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해야 한다.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3일, 임영선 기자]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3 ) "집어라, 읽어라!"
힐링 원하는 시대, 사랑의 치유 '성경'에 귀 기울여야
강아지 언어
인간은 인간의 언어를 쓰고, 강아지는 강아지 말을 쓴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같이 있으면 자꾸 정이 쌓인다. 무릎에 턱을 고이면 뭔가 주고 싶고, 혀 내밀고 꼬리를 흔들면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강아지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강아지의 언어를 이해하면 가능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심하게 어지른다면, 물건을 입에 물고 놓아주질 않는다면, 다가와서 주인 얼굴을 핥는다면, '아, 이런 뜻이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주지 않는 것이 좋고, 외출이나 귀가할 때 인사 안 하는 것이 좋다. 밥 시간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져 화가 나게 되고, 나갈 때 이별 예고를 알아들은 강아지는 초조해진다.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강아지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하느님은 거룩하고 순수한 영이시다. 하지만 썩을 육신을 취해 오셨다. 하느님은 말이 필요 없는 분이다. 하지만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왜 그랬을까? 좋아하니까, 예뻐 죽겠으니까 어떻게든 같아지고 싶었던 것이다.
눈높이로 내려와 앉은 사랑. 인간이 알아들을 방법과 언어로 인간의 말로 표현된 하느님의 마음, 그것이 말씀이다. 인간의 글로 표현된 하느님 사랑, 그것이 성경이다.
말씀과 신앙
'신앙의 해'다. 굳은 믿음을 가지자는 것이다. 세속화와 허약한 신앙을 극복하자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고백한다. 마음에 와 닿지 않은 채 몸만 오간다고 고민한다. 믿음이 없다고 푸념한다. 왜 그럴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그렇기 때문이다.
신앙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믿음은 약한 사람이나 찾는 위로라고 말한다. 종교가 없는 것이 지성인의 자격처럼 여겨진다. 정신보다 물질이 우선시되는 사회. 실패보다 성공이 미화되는 세상.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압도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을까? 책을 읽어야 한다.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 하느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한다. 하느님에 대해 완전히 알려주신 분.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시다. 구약은 예수님을 약속한 책이고, 신약은 예수님을 증언한 책이다. 예수님을 알면 하느님을 아는 것과 같다. 결국, 성경을 읽지 않고 하느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하느님 사랑을 알고 보답하지 않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주인의 사랑을 알게 되면 그분의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를 위해 영생을 얻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분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앉아!" 하면 앉고, "일어서!"하면 일어설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진리를 찾아 방황했다. 젊은 시절 수사학을 배워 출세하기를 원했다. 마니교에 심취해 어머니 속을 썩여드렸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도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헌신적 사랑. 스승 암브로시오의 자애로운 보살핌. 어느 날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
가서 읽으면 된다. 집어 먹으면 된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에제 2,8). 신앙은 의무가 아니다. 진리를 따르는 인간의 보편적 선택이다.
말씀 씨앗과 세상이란 땅
말씀이 뿌려질 씨앗이라면, 세상은 씨앗이 움트는 토양이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교회가 존재하는 곳은 천상이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이 구사하는 언어를 익히고 소통해야 한다. 적극 경청하고 쉽게 말해야 한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셨다. 가난한 과부와 배고픈 소작인도 알아듣는 말씀이었다.
"교회는 이러한 인간 사회에 현존해야 한다. 교회는 그 사회에서 살아가거나 그 사회에 파견된 자기 자녀들을 통해 현존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존경과 사랑으로 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야 하며, 그들이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해야 하고, 온갖 인간적 교류와 활동을 통해 사회 문화생활에 참여해야 한다. 또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전통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들 안에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기꺼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내야 한다"(「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2항).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처한 환경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개인과 무관해진 신앙, 문화로 대체된 종교의 시대를 살고 있다. 모차르트나 바흐의 곡을 들으면서도 그들 신앙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가우디의 건축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그의 종교와는 거리를 둔다. 그들 예술이 신앙 속에서 꽃피운 결정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말씀의 힐링
한때는 '웰빙'이 유행이었다. 요즘은 '힐링'이 대세다. 힐링 캠프, 힐링 트래블, 힐링 푸드. 붙이기만 하면 트렌드가 된다. 힐링은 치유와 회복이란 뜻이다. 힐링이 요즘 시대를 진단하는 상징 언어가 됐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다쳤기 때문에, 아프기 때문이다.
힐링(Healing)과 동음어로 'Heel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배가 기울어진 상태, 경사를 말한다. 다시 말해 균형 잡히지 않았다는 말이다. 인간의 몸과 영혼은 연결돼 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영육의 단일체'라 부른다. 몸과 영혼이 균형 잡히지 않으면 병이 난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은 힐링이며, 우리가 진단한 세계의 상태는 '병이 들었다'인 것이다. 문화로 대체된 종교, 세속화와 허약한 신앙. 우리의 영혼은 치유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2-23).
성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신다. 성자께서는 말씀 그 자체이시다. 성령께서는 말씀 안에 생생히 살아계신다. 말씀 안에서 활동하길 원하신다. 말씀은 우리 영혼에 힘을 불어 넣고, 벅차게 살아 숨 쉬게 하신다. 말씀은 힘이 있다. 깊고 내밀한 영혼의 언어를 다시 찾아야 한다. 말씀 안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가서 읽고, 집어 먹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