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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아직도 혼자 살면서 선생님을 사모하지? 내가 손목을 한 번 안 잡아 봤는데 지금도 그저 죽을 줄 알면서 선생님이 그립지요?「예.」 그게 왜 그런지 알아요? 그래야 해방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교육받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가르침 받아 가지고 여자가 가야 할 모든 짐을 벗고 해방 받으려니까….
선생님의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그 길을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본심이 선생님을 따라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을 따라오지 않고는 인생이 가야 할 짐을 풀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선생님이 제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예.」
사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꼬집으면 아프고,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안 자면 졸린 것은 모두 마찬가지라구요. 그걸 극복해야 됩니다.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 조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인격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도수를 맞출 줄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라디오도 도수를 맞춰야 소리가 나오지 다이얼만 돌린다고 해서 소리가 나와요? 딱, 맞는 곳에 맞추어 가지고 조정해야 합니다. 정착하고 돌아갈 때, 돌아가서는 환경을 조정해 가지고 맞출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도인이지만, 내가 도포를 입고 옛날 무슨 도인들같이 그래요? 내가 도인인 줄 아무도 모릅니다. 장터에 가면 아줌마들이 팔던 옷을 내가 잘 팔아 줍니다. 오빠의 자리, 남편의 자리에서 팔아 주는 거예요. 내가 그런 것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문교주가 그런 일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는 자체도 모릅니다.
사람의 형편을 깊이 동정해 가지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길을 남기고 살아야 되는 것이 의로운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내가 금년에 여러분 집을 한 번씩 다 방문한다고 할 때, 자기 집에 방문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한번 손들어 봐요.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어디 좀 봐요. (웃음) 이러니까 내가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데 내가 어떻게 가겠어요? 전부가 자기 집에 오기를 바라는데 한 집만 방문한다면 내가 어디 살겠어요?
오늘날 기성교회의 목사들은 새로운 사람들이 올 적마다 앉아 가지고 ‘우리 교회에 오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 이러고 있습니다. 나는 죽어도 그런 짓은 못합니다. 재창조 과정이 무엇인지 알겠지요? 「예.」 동네에 들어가서 마사를 피우더라도 그것을 일 년 이내에 수습시켜 가지고 나중에는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이 떠날까 두려워서 길을 막을 수 있게끔 사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동네에서 밤이나 낮이나 말없이 희생해 가지고 위하는 사람입니다. 위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 다른 것이 아니고 효자 효녀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 류(類)의 사람이라구요. 부모를 위해서 희생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효자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충신이요, 만민을 위해서 희생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성인이요, 하늘땅을 위해서 희생하고도 잊어버리는 사람이 성자입니다. 죽으면서도, 자기의 생명을 넘어서면서도 희생하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 옆에 가서 살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 보고 싶어요? 「예.」 그게 힘든 길입니다.
그런 길을 가면 총칼이 앞을 가로막고 감옥이 문을 열고 나를 불러들입니다. 그런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생애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합니다. 감옥살이 한 얘기를 안 한다구요. 기가 찬 사연들이 많지만 얘기를 안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부모는 아무리 돈이 많고 세상에 출세를 해도 과거에 고생했던 얘기를 자식들한테 안 합니다. 그러한 얘기를 하는 것은 고생한 만큼 나를 대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러지 않아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어요? 자기는 혼자 다 잊어버리고 순수한 것만을 후손에게 남겨 주겠다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제 섭리사가 무엇인지는 다 알겠지요? 하나님의 경륜을 알겠지요?
그다음에 회고라는 말은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면 3단계로 나누어집니다.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입니다. 기성교회는 신•구약으로 다 끝난 줄 알고 있지만 아닙니다. 성약시대가 남아 있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와 가지고 뜻을 이루어야 되는데, 그것을 성약이라고 합니다. 구약이 있었고 새로운 약속이 있었으니, 그 약속이 이루어져야 될 거 아니예요? 그것은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로 봐 가지고 구약시대는 어떤 시대냐? 간단해요.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기 위한 것이 구원섭리입니다. 찾는 데는 어떻게 찾느냐? 타락했던 반대의 길을 통해서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잃어버린 것이 뭐냐? 먼저 잃어버린 것이 남자예요, 여자예요? 「여자입니다.」 여자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잃어버린 것이 뭐예요? 「아담입니다.」 아니예요. 아들 딸이라구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남자의 몸뚱이는 악마의 몸뚱이가 된 것입니다. 사탄의 것은 하나님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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