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3:47-51절 그물 비유에서 말하는 천국은
마13장에는 천국에 대한 비유가 일곱가지 나옵니다. 처음 4개의 비유는 공개적으로 말씀하셨고, 3개의 비유는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성경에 기록되면서 모두 공개된 비밀입니다. 그러나 깨닫는 사람도 있고(마13:51) 아직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감추어진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천국을 ‘파라다이스(Paradise)’라고 상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 비유를 100가지 더 들려준다고 해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파라다이스는 이 땅에도 얼마든지 있으며 ‘돈’과 ‘권력’으로 얼마든지 만들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그 ‘담장 안’ 파라다이스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천국은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헤븐(Heaven)이며, 좋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을 가려내는(구별하여 갈라놓는) 곳입니다. 7가지 천국 비유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선별하는 곳이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돈’으로 파라다이스를 즐기던 사람들을 골라내에 풀무불에 던져버리는 곳이 천국의 규정입니다. 천국에서 얻는 ‘충만한 기쁨’은 이 땅 파라다이스에서 누리는 ‘타락한 기쁨과 결코 비길 수 없습니다.
일곱가지 천국 비유들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구별하여 불러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계획을 이 땅에서 궁극적으로 성취하려고 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천국은 불러내는 곳입니다. 천국은 구별되는 곳입니다.
오늘은 그 7개의 천국 비유중에 마지막 그물 비유를 살펴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일곱 번째 비유는 그물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잡은 그물과 같습니다. 그물이 가득 찼을 때, 어부들은 바닷가에 그물을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 즉 먹을 수 없는 물고기들은 내 버립니다. 세상 끝에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인들을 가려내서, 악인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입니다. 악인들은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여기가 지옥입니다.
이 비유의 강조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물을 던져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데 있습니다. 둘째, 나중에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분리하게 됩니다.
먼저, 이 비유는 그물을 던져 각종 물고기를 모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좋은 물고기만 모으지 않습니다. 모든 물고기를 모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물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를 강조합니다. 우리는 누가 예수님을 믿을 자인지 믿지 않을 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물을 던져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비유에서 한 가지 생각할 점은 그물 안에는 좋은 물고기만 잡히지 않습니다. 나쁜 물고기도 잡힙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 안에 들어 올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는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가 혼합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신자와 불신자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한 곳이 아닙니다. 불완전합니다. 이러한 불완전성 때문에 성도들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자의 연약함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불신자들로 인하여 교회는 슬픔과 고통을 겪습니다. 교회가 갈등을 겪고 갈라지고 문을 닫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이러한 불완전성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물을 계속 던져야 합니다. 교회는 이 사명을 어떻게 이룰지 생각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현관은 넓지만 들어가는 문은 좁습니다.
47-50절에 나오는 그물은 저인망식으로 바닥까지 긁어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물은 넓게 치고 그물을 끌어 올려 잡는 방법인데 잡고자 했던 고기 외에도 많은 잡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의지와 섭리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 교회를 통하여 동서 사방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22:9절을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유대인과 이방인, 종이나 자유인, 남 녀 노소를 막론하고 교회안으로 들어 올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문 앞에 현관은 저인망처럼 아주 넓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7:14절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하셨습니다. 현관까지는 누구나 들어 올수 있는데 같은 이치로 교회당안에는 누구든지 들어 올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천국문은 누구나 아무나 들어 갈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마7:23절“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또한 사도 바울도 빌2:12절에“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아무렇게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선별해서 갈라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내는 목적은 악인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기 위함입니다. 악인들은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갑니다. 하지만 신자와 불신자를 갈라내는 일은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선별 작업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이 서로 분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악인은 영원한 형벌로 떨어질 것을 말합니다.
거기서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은 지금 이곳이 아니라 미래의 지옥에서 일어날 입니다. 지옥에서 슬퍼 울 것입니다. 그들은 지옥의 고통을 겪을 것이고 그곳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화를 이기지 못하여 이를 바득바득 갈 것입니다. 이것은 지옥에서의 생생한 모습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일군들에게 그물을 던지게 하실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멈추어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그의 일을 계속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그의 백성이 다 찰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음 증거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여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 제목에 혹시 복음 증거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습니까? 다시 집어넣기 바랍니다. 오늘도 만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달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소원을 가진 자들을 성령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한 번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농부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한 번 씨를 뿌렸다고 자동으로 곡식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녀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자라도록 돌봐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과정입니다. 사랑과 수고가 따라옵니다. 그 대상이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6-9)
우리는 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기대하며 우리의 역할을 다하면 됩니다. 우리의 역할은 심고 물주는 일입니다. 어떤 이는 심기를 잘합니다. 어떤 이는 물주는 일을 잘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은사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모두가 심고 물주는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복음 증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기독교에 대해서 거부하고 비판적입니다. 이상한 교회들이 많고 여러 교회들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교회가 못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 전하는 것을 주저하고 지금은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 믿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계기가 되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말해야 할 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참 진리를 믿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교만하고 무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친절히 그리고 담대하게 증거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이 죄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기독교에 있다고 전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고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여러분은 복음을 증거 하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식었습니까?
마치려합니다.
우리는 따뜻한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편지를 써서 전할 수 있습니다. 메일이나 문자 등을 통해서 전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복음이 담긴 작은 책자를 선물로 주면서 전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이 아닌, 기회가 되는대로 하십시오. 사람들은 듣고 싶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택자라면 그들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결정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