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눈으로 본 천자만평」
사랑이 지나가면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오후 다섯 시쯤, 아스팔트가 노을을 켤 준비를 한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낯익은 유행가, 내 가슴 어디에 낡은 가사가 들어있었는지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문득 이 길의 배경음악으로 꽤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라는 노래, 무심코 흥얼거리다 어쩌면 심정은 가사와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한 번쯤 가슴 저릿한 사랑을 해 봤을 텐데, 누구나 한 번쯤 이별해 봤을 텐데, 우린 모두가 떠난 사람이 아니라 남은 사람의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느 한쪽은 가고, 다른 한쪽은 남는 것이 순리인데 묘하게도 결과는 모두, 보내고 남아 있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다가, 달력을 넘기다, 영화를 보다, 서랍을 열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잊은 줄 알고 살았는데, 저 멀리 밀어놓고 살았다는 것을 느낄 때, 노을은 더 붉고 바람은 그렇게 차가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립다고 말을 하면 더 그리워질까 봐 부러 외면하며 사는 것이 이별이라는 것의 속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이별은 다반사지만 유독 사랑에 대해서만은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헤어지게 되면 그 상처가 깊다. 생채기는 환부를 도려내도 흔적이 남고, 사랑했던 어느 한때, 상흔의 시계는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마주 포개지는 정오처럼 감정의 원점으로 나를 돌아오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아프지 않은 척, 궁금하지 않은 척,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타인인 척, 가슴의 묘혈에 묻어 두고 사는 이유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삶의 방어기제 때문인지, 남았다는 치졸한 변명으로 나를 합리화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보냈다는 약자의 입장에 서야 마음이 편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평생을 보내기만 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나만 기억하며 산다고 해야 속이 시원하다는 말은 피해자의 입장이다. 만나고 헤어짐에 가해와 피해를 구분한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지만 사람의 본성은 어쩌면 차라리 내 속이 아픈 것이 낫다는 생각이 우선 하는지도 모른다. 서양 영화의 한 장면처럼 쿨하게 보내지 못하는 것이 동양적인 이별의 정서 아닐까 싶다. 이병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에서처럼 ‘떠나는 사람의 등은 고운 법’이라는 말은 정작 떠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내지는 보내야 하는 사람의 당위성을 미화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는 이별하고 싶지 않은데 여하한 이유에 의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 배후엔 아쉬움이 있으며 안타까움이 있으며, 운명적이라는 부분집합의 그림자가 끈끈하게 붙어있는 것 같다. 첫 만남의 가슴 떨림도, 뻥 뚫린 이별의 상처도 운명적이길 바라는 수동태의 수사가 위증일 것 같다. ' 사랑이 지나가면', 과연 나는 그것을 그저 그렇게 보냈는지? 아릿한 기억의 저 건너편에 부연 실루엣 하나 어룽거리는 어떤 날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슬픈 노래다. 그리움이 없다면 산다는 것은 참으로 무미건조한 일일 것이다. 5월의 마지막 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그리움의 조각을 꺼내 먼지를 털고 닦아주자. 그리움은 그대로 놓아두고 눈부셨던 실루엣만 소중하게 간직하자. (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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